3-03. 화장실에서 읽는 시   1999 년
 

 1999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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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설야 (雪夜) 김광균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기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게시기간 : 1999년 12월26일∼2000년 1월 1일) 143 기도 2 차옥혜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만 아니라 패배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불붙고 맞아서 제 구실하는 대장간 쇠붙이를 저는 압니다. (게시기간 : 1999년 12월19일∼12월25일) 142 아픔을 노래함 김성영 바람은 풀잎들의 아픔을 노래하고 세월은 우리들의 아픔을 노래한다. 존재하는 것마다 진홍의 피빛인 것은 깊은 내면으로만 목을 놓는 침묵의 절규인 때문인가 아아, 이길 수 없어라 이토록 사랑하는 것마다 앓고 있는 이 처절한 중증을 아아, 견딜 수는 어찌 있으랴 아파하는 존재들마다 사향처럼 진하게 토하는 순결한 사랑의 향취들 사랑과 아픔은 돌아 누울 수 없는 것 그래서 서로를 포옹하며 소리치며 뜨겁게 뜨겁게 노래하고 있건만 그것은 내면으로 터져있는 눈물의 분화구 오관으로는 들을 수 없도록 장엄하게 노래하고 있건만 나는 무엇으로 이 아픔을 노래할 수 있는가 (게시기간 : 1999년 12월12일∼12월18일) 141 방황하는 이에게 ... 문향란 밝은 날의 초라한 그림자를 우리 어둔 날은 외면치 않고 반겨줍시다 별을 띄워 주고 달도 띄워 주고 사랑하는 사람, 그대여 그 귓가에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많은 얘기를 해줍시다 인생은 이미 출발점을 지나 이제 중점에 서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택해야 할 때 그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헤매지는 맙시다 괴로워하기엔 너무 이른 우리 젊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해맑은 미소를 품고 있는 우리 못난 시절은 가슴에 접어두고서 이젠 거울 앞에 섰을 때 초라한 그림자가 아니길 바랍시다 (게시기간 : 1999년 12월 5일∼12월 11일) 140 거울 이상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 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 보지를 못하는 구료마는 거울이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속의 나를 만나 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 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事業)에 골몰할께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反對)요 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診察)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게시기간 : 1999년 11월28일∼12월 4일) 139 사랑을 한다는 건 최진영 사랑을 한다는 건 자신의 반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리운 이에게서 잃어버린 나머지 반을 얻는 것입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반반이 된 둘이서 새로이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을 한다는 건 사랑을 위해 사랑으로 사랑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을 한다는 건 모든 것입니다. (게시기간 : 1999년 11월21일∼11월27일) 138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게시기간 : 1999년 11월14일∼11월20일) 137 사랑 그대로의 사랑 유영석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른 아침 감은 눈을 억지스레 떠야하는 피곤한 마음속에도 나른함 속에 파묻힌 채 허덕이는 오후의 앳된 심정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런 모습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층층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속에도 십년이 훨씬 넘은 그래서 이제는 삐걱대기까지 하는 낡은 피아노 그 앞에서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내 눈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런 마음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비록 그날이 우리가 이마를 맞댄 채 입맞춤을 나누는 아름다운 날이 아닌 서로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잊혀져 가게 될 각자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슬픈 날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당신께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닌 사랑을 느끼는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게시기간 : 1999년 11월 7일∼11월 13일) 136 희망가 작가미상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맑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부귀와 영화를 누릴지라도 공동산 위에 꿈만 같고 백년장수를 할지라도 아침에 안개로다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하다 (게시기간 : 1999년 10월31일∼11월6일) 135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통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게시기간 : 1999년 10월24일∼10월30일) 134 그 해 가을의 일기 강인한 지금 내가 손바닥에 받아 보는 이 해의 가을 햇빛은 정말로 햇빛입니까. 지금 내가 하늘을 우러러 흘리는 눈물은 정말로 눈물입니까. 하느님, 아아 나의 하느님 지금 나는 어느 낯선 별에서 숨을 쉬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묻는 이 물음을 당신은 그 먼 곳에서 정말로 들을 수가 있습니까. (게시기간 : 1999년10월17일∼10월23일)

 


              133      이병기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西山)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게시기간 : 1999년10월10일∼10월16일)



              132   사랑을 위한 서시 (序詩)   송하선

              사랑한다는 것은
              햇빛의 미소를 배우는 일이다.
              가을날 아침 무렵
              나뭇잎새의 이슬방울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잠재우는
              햇빛의 미소를 배우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햇빛의 손길을 배우는 일이다.
              가을날 저녁 무렵
              알몸이 된 나무들의 기도를
              차마 떨치지 못하고 쓰다듬어 주는
              황혼빛의 손길을 배우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호수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거울 같은 가슴으로
              모두 다 모두 다 끌어안으며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를 꿈꾸는
              호수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산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하느님의 장손처럼 의연히 서서
              손 아래 무릎 아래 형제들을 거느리고
              묵묵히 묵묵히 미래를 명상하는
              산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다.

              (게시기간 : 1999년10월3일∼10월9일)



              131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게시기간 : 1999년 9월26일∼10월 2일)



              130   아름다운 달   백기만

              님이여, 수정 같은 달빛에 창문을 비쳐
                천리 밖 님 생각에 나그네 잠 못 자는 달밤이외다.

              님이여, 보아 주셔요
                푸른 저 달이 웃음 지으며 잠든 대지를 굽어봅니다.
              님이여, 들어 보셔요
                풀벌레의 웃음소리가 맑은 바람을 타고 웁니다.
              님이여, 그대는 아름다운 달,
                나는 달보고 우는 조그만 벌레!

              님이여, 보아 주셔요
                한 점 구름이 달려오더니 달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님이여, 들어 주셔요
                면사 쓴 달이 그 구름에게 고운 사랑을 속삭입니다.
              님이여, 그대는 아름다운 달,
                나는 달을 감도는 한 점의 구름!

              님이여, 계수나무 가지에 그네를 매고
                천리 밖 님의 창에 훨훨 날아가고픈 달밤이외다.

              (게시기간 : 1999년 9월19일∼9월25일)



              129   명태 (明太)   양명문

              감푸른 바다 바닷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元山)구경이나 한 후

              이집트의 왕(王)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쨔악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게시기간 : 1999년 9월12일∼9월18일)



              128   좋겠습니다   지병주

              당신의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장에는
              내 얘기가 가득 들어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굳이 내가 그것을 훔쳐보지 않더라도
              당신의 눈을 통해 읽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잠을 자는 머리맡에는
              지난 생일에 내가 사준 인형이 놓여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굳이 내가 당신 곁에 없더라도
              내 자장가에 팔베개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당신이 앞으로 갈 인생 길에는
              나의 사랑과 나의 충고와 나의 실수가 함께 한다면 좋겠습니다
              만에 하나 그 길을 내가 함께 가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 있어도 난 좋겠습니다

              사실 난 당신이
              그저 당신이라면 좋겠습니다

              (게시기간 : 1999년 9월5일∼9월11일)



              127   해바라기 피는 마을   이성교

              아무도 오지 않는 마을에
              해바라기 돈다.
              갇혀 있는 사람의 마음에도
              노오란 햇살이 퍼져
              온 천지(天地)가 눈부시다.

              지난 여름
              그 어둠 속에서
              열리던 빛
              눈물이 비친다.

              이제 아무 푯대 없이
              휘청휘청해서는 안 된다.
              바울처럼 긴 날을 걸어서
              까만 씨를 심어야 한다.
              해바라기 피는 마을에.

              (게시기간 : 1999년 8월29일∼9월4일)



              126   그 여름의 끝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게시기간 :  1999년 8월22일∼8월28일)



              125   매미   이태선

              숲속의 매미가 노래를 하면
              파란 저 하늘이 더 파래지고
              과수밭 열매가 절로 익는다.
              과수밭 열매가 절로 익는다.

              숲속의 매미가 노래를 하면
              찬 이슬 아침마다 흠뻑 내리고
              가을이 저 만큼 다가 온다죠
              가을이 저 만큼 다가 온다죠

              (게시기간 : 1999년 8월15일∼8월21일)



              124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유화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할 순 없지만
              말로서 표현하라 하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죠.
              저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빛의 밝기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

              설사 별이 빛을 잃고
              사라져 버린다면
              그 별을 뒤덮은 어둠의 깊이 만큼 당신을 사랑할겁니다.
              하지만 이 말들은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의 한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그 사소한 일부분만이라도 당신이 알아주신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일부분 만큼만이라도
              당신이 날 사랑하신다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에게 묻진 않으시겠죠.

              (게시기간 : 1999년 8월 8일∼8월14일)



              123   폭포 (瀑布)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게시기간 : 1999년 8월 1일∼8월 7일)



              122   사랑을 위한 기도   작가미상

              나의 외로움을 위해 사랑함이 아니라
              그대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희생이 따를지라도 그 희생마저 기쁨으로
              그대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 되게 하소서

              그대 다가설 수 없는 먼 그리움의 하늘 위에 있어도
              한줄 외줄에 목숨 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줄이 끊어져 맺어질 수 없는 인연으로 고통받아도
              끝없는 기다림으로 그 고통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랑 되게 하소서

              그러고도 마음의 너그러움이 남아 있다면
              그대의 사랑을 다시 찾게 해주소서
              주름진 얼굴 위에 삶의 그늘이 내려지는 순간까지
              진정 후회하지 않았노라 확신 할 수 있는
              사랑 되게 하소서

              (게시기간 : 1999년 7월25일∼7월31일)



              121   바다에 누워   박해수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일만(一萬)의 눈초리가 가라앉고
              포물(抛物)의 흘러 움직이는 속에
              뭇 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 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될까
              물살이 퍼져감은
              만상(萬象)을 안고 가듯 아물거린다.
              마음도
              바다에 누워
              달을 보고 달을 안고
              목숨의 맥(脈)이 실려간다
              나는 무심(無心)한 바다에 누웠다
              어쩌면 꽃처럼 흘러 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외로이 바다에 누워
              이승의 끝이랴 싶다.

              (게시기간 : 1999년 7월18일∼7월24일)



              120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릿답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 길이 푸르르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게시기간 : 1999년 7월11일∼7월17일)



              119   사랑하는 사람아   조선형

              오 내 사랑 그리움아
              어닌 연고로 그대는,
              멀리 있느냐

              호수가 잔잔히 여울질 때면
              피라미들도 한가로이 짝짓기 하건만
              갈대 숲이 살랑살랑 나부낄 때면
              먼발치에서 빨간 리본 달고
              와락 달려들 것 같은

              오, 내 사랑 그리움아
              어인 연고로 그대는,
              멀리 있느냐

              생각나거든
              하늘 한 공간 떠 있다가
              여름 하늘 벼락처럼
              굵은 빗방울로 소식 전하렴
              사랑하는 사람아 !

              (게시기간 : 1999년 7월4일∼7월10일)



              118   파란마음 하얀마음   어효선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거예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게시기간 : 1999년 6월27일∼7월3일)



              117   그대의 창을 닦으며   김아랑

              태양은 하늘에서 빛나고
              그 열꽃의 한 잎이 내 가슴에 닿을 때부터
              어느 한 몸부림에서 어느 한 몸부림까지
              무언의 무한한 대화 속에서
              그대는 내게로 온 하늘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가끔 인생은 기다림이라 생각했다.
              죽은 듯 고요한 정적 속에 와서
              작은 산새가 찍고 간 발자국처럼
              그리움은 호젓한 길로 걸어온다.
              싸락 싸락 내려 쌓인 눈길을 밟고
              만남은 어느 먼 길을 돌아서 온다.

              인내의 시간을 걸어 온 연인이여
              이제는 그대의 창을 닦으며
              나는 참으로 겸허한 생의 둘레를 갖고 싶다
              요란함보다는 변하지 않는 색의 크기로
              화려함보다는 싫증나지 않는 웃음의 넓이로
              누추하면 누추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오래 견디며 쉬 꺽이지 않는 깊이로
              한 평의 양지 바른 행복을 가꾸고 싶다

              (게시기간 : 1999년 6월20일∼6월26일)



              116   봉선화   김상옥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 앞에 삼삼이는 고향 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 물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 줄 만이 서누나

              (게시기간 : 1999년 6월13일∼6월19일)



              115   사랑하기 때문에 연인은 울 자격이 있다   원구식

              온 우주를 통틀어 연인은 오직 한 쌍뿐이다.
              그 나머지의 연인들은 연인이 아니라
              한 쌍뿐인 연인을 흉내내는 남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인들도
              서로를 조금씩 사랑하기 때문에
              울 자격이 있다.

              세상은 이러한 연인들 투성이다.
              사랑에 있어 가장 치사하고 더러운 패배자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조금씩이나마 사랑하는 만큼 운다.

              이러한 그들의 울음이
              메마른 내 가슴을 괴롭게 울리며 다가오는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운명을 뒤바꾸는
              양심의 부르짖음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이 시대야말로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가장 잔인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은
              모든 연인에게 사랑하는 만큼
              울 자격을 주셨다.

              (게시기간 : 1999년 6월6일∼6월12일)



              114   우리가 한 번쯤 이쁘게 살아 볼 만도 한 것은   배호열

              남루한 세상을 지겹게 사는 것은
              기약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산다하여 어긋나게 살아 간다면
              짧은 생을 더욱 짧게 삶의 촛불을 스스로 끄는 것입니다.

              무한한 생명이 아닐 바에야
              더욱 짧게 사는 것이 멋있게 보일지는 모를 일이나
              우리가 한번 쯤 이쁘게 살아 볼만도 한 것은
              사랑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 못해 사는 세상도
              노래 부르고 시를 쓸 동안 모두가 즐거운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 우리가 머물러 쉴 곳을 찾듯
              이 세상을 잠깐 쉬어 가는 쉼터로 여겨
              허허롭게 살아간다면
              내 마음 흘러 누구에게라도 스며들지 않을까 합니다.

              꽃이 저절로 피었다 지듯
              우리들의 세상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게시기간 : 1999년 5월30일∼6월5일)



              113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게시기간 : 1999년 5월24일∼5월29일)



              112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김재진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그때 그 용서할 수 없던 일들
              용서할 수 있으리
              자존심만 내세우다 돌아서고 말던
              미숙한 첫사랑도 이해할 수 있으리.
              모란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듯
              삶에는 저마다 제철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찬물처럼 들으키리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로 인해 상처받은 누군가를 향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 건넬 수 있으리
              기쁨 뒤엔 슬픔이 기다리는 순환의 원리를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너에게 말해주리

              (게시기간 : 1999년 5월16일∼5월22일)



              111   가벼운 금언   이상희

              기적을 믿니?
              이렇게 낡은 손으로 쓰는
              약속을, 사랑을 너는 믿겠니?

              빈 식기를 햇볕에 널고
              오늘은 가벼운 금언을 짓기로 한다.

              하루에 세 번 크게 숨을 쉴 것
              맑은 강과 큰 산이 있다는 곳을 향해
              머리를 둘 것,
              머리를 두고 누워
              좋은 결심을 떠올려 볼 것,
              시간의 묵직한 테가 이마에 얹힐 때까지
              해질 때 까지
              매일 한 번은 최후를 생각해 둘 것

              (게시기간 : 1999년 5월9일∼ 5월15일)



              110   어머님의 마음   양주동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가이 없어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게시기간 : 1999년 5월2일∼5월8일)



              109   이 꽃잎들   김용택

              천지간에 꽃입니다
              눈 가고 마음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

              눈을 감습니다
              아, 눈감은 데까지
              따라오며 꽃은 핍니다.

              피할 수 없는 이 화사한 아픔,
              잡히지 않는 이 아련한 그리움,
              참을 수 없이 떨리는 이 까닭없는 분노
              아 아, 생살에 떨어지는 이 뜨거운 꽃잎들

              (게시기간 : 1999년 4월25일∼5월 1일)



              108   사랑은 아무 예고도 없이 온다   박종화

              사랑은 아무 예고도 없이 와선
              온몸으로 몸살 앓게 한다.

              위에서 아래로 점점
              아래에서 위로 점점점

              능금꽃 살구꽃 배꽃 동백꽃
              산도화 진달래 철쭉 산에 들에
              꽃 피어나듯 아무도 모르게
              소리없이 온몸 물들게 한다.

              사랑은 아무 예고도 없이 와선
              그리움으로 물들게 하고 꽃피게 한다.

              (게시기간 : 1999년 4월18일∼4월24일)



              107   샘물이 혼자서    주요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울리운다.

              (게시기간 : 1999년 4월11일∼4월17일)



              106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게시기간 : 1999년 4월4일∼4월10일)



              105   강가에서   정의홍

              강물이여
              너의 가슴을 열어도 좋으냐.
              비록 뜨겁던 말은
              실어 보내고 없지만
              시방도 그렇게 아픈 몸짓
              아지랭이처럼 피네.
              내가 서러운 눈짓으로
              네 가슴을 열면
              아, 꽃잎처럼 환하게 밝아오는 것
              강물이여
              난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말이냐.
              내가 너의 사랑을 알았을 때는
              너는 한 잎의
              꿈으로 불을 켰지만
              내가 너의 아픔을 알았을 때는
              영영 안 잊히는
              울음으로 자라나서
              강물이여
              어째서 너 혼자만 흘러가느냐
              흘러가느냐.

              (게시기간 : 1999년 3월28일∼4월3일)



              104   목련화   조영식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그대처럼 순결하게 그대처럼 강인하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라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내일을 바라 보면서 하늘보고 웃음짓고
              함께 피고 함께 지니 인생의 귀감이로다
              그대 맑고 향긋한 향기 온누리 적시네
              그대처럼 우아하게 그대처럼 향기롭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게시기간 : 1999년 3월21일∼3월27일)



              103   산길에서   이호우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물 흐르는 소리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적게 껑충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게시기간 : 1999년 3월14일∼3월20일)



              102   새 봄의 기도   박희진

              이 봄엔 풀리게
              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리게 하옵소서
              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
              초록의 눈을, 그리고 땅속의
              벌레들마저 눈뜨게 하옵소서.
              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
              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
              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
              새소리, 물소리에
              귀는 열리게 나팔꽃인양,
              그리고 죽음의 못물이던
              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
              불붙게 하옵소서

              (게시기간 : 1999년 3월 7일∼3월13일)



              101   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게시기간 : 1999년 2월28일∼3월6일)



              100   부르심   최남순

              당신은 사랑의 크나 큰 자석인가
              강 건너 또 강
              넘을수록 더 높아만 보이던 산을
              씽씽 뛰어넘는 바람을 타고
              오기는 나 홀로 왔지만
              분명 홀로 온 것 같지 않음은 이상하다

              당신은 내 안에 숨어사는 빛인가
              어둠 짙을수록 더욱 빛나는
              내 마음 푸른 별이여
              슬프도록 아름다운 삶이고 싶다.

              살아가는 나날
              내 안에 당신은 더욱 빛으로 커지고
              나는 작아져
              당신안에 숨은 별이고 싶다.

              (게시기간 : 1999년 2월21일∼2월27일)



              099   기다리는 마음   김민부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소리 물새소리에 눈물흘렸네

              (게시기간 : 1999년 2월14일∼2월20일)



              098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 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은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와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게시기간 : 1999년 2월7일∼2월13일)



              097   별들의 노래   최원규

              캄캄한 밤에도
              꽃밭처럼 환히 불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둡고 아득한 하늘에서도
              맑고 밝은 노래가 도란거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기쁨과 웃음이 가득 고여 있는
              별들의 사랑 때문일 거야

              지금 우리가
              더러 잘못 들어서 웅덩이나 시궁창에 빠져 있어도

              지금 우리가
              더러 잘못 만나 모진 눈보라에 잠겨 있어도

              지금 우리가
              더러 잘 몰라서 거친 파도에 시달려 있어도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 어둠을 뚫고
              밝음을 찾을 수 있는 힘은

              오직 그대들의 저마다 빛나는
              사랑의 몸짓 때문일 거야

              (게시기간 : 1999년 1월31일∼2월6일)



              096   나 지금 뚜껑 열렸어!   장재화

              스케이트 타자 하면
              롤러 스케이트장으로 끌고 가던 너

              알사탕 먹자 하면
              막대사탕 사다가 깨서 주던 너

              붕어빵 좋다 하면
              국화빵이 더 맛있다고 우기던 너

              김치볶음밥 먹겠다 하면
              '아줌마 김치찌개 둘이요' 말하던 너

              숨바꼭질하는 아이도 아니면서
              꼭꼭 숨어 버리던 너

              너의 그런 용기있는 모습에
              나 지금 뚜껑 열렸어!

              (게시기간 : 1999년 1월24일∼1월30일)



              095   사랑은 감출수록   문학철

              향기는 가둘수록 깊어지고
              사랑은 감출수록 넘쳐흘러라

              온 겨울 꽁꽁 감추었던 푸른 꿈은
              천리사방 온 산천을 뒤덮고
              수 십년 묻어온 불씨
              솟구치는 구름 기둥을 붉게 태우며
              일렁이는 바닷물을 태워 달궈라

              강물은 막을수록 부풀고
              사랑은 덮을수록 불길 더 해라

              (게시기간 : 1999년1월17일∼1월23일)



              094   어둠이 되어   안도현

              그대가 한밤 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게시기간 : 1999년 1월10일∼1월16일)



              093   기도   나태주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게시기간 : 1999년 1월 3일∼1월 9일)



              092   마음 하나 등불 하나   윤후명

              어두운 마음에 등불 하나
              헤매는 마음에 등불 하나
              멀리 멀리 떠난 마음에 등불 하나
              할퀴어진 마음에 등불 하나
              찢어진 마음에 등불 하나
              무너진 마음에 등불 하나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도 있다
              어느 마음 속에도
              하늘 있고
              땅 있고
              찰나와 영겁 닿는 빛 있음을
              등불 걸어 밝히어라
              보이지 않는 마음도 밝혀
              그 애끓는 사랑 하나 환하게 환하게
              뭇 별까지 사뭇 밝히어라

              (게시기간 : 1998년 12월27일∼1999년1월2일)

3-03. 화장실에서 읽는 시 1999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