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화장실에서 읽는 시   1998 년
 

 1998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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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 마음 하나 등불 하나 윤후명 어두운 마음에 등불 하나 헤매는 마음에 등불 하나 멀리 멀리 떠난 마음에 등불 하나 할퀴어진 마음에 등불 하나 찢어진 마음에 등불 하나 무너진 마음에 등불 하나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도 있다 어느 마음 속에도 하늘 있고 땅 있고 찰나와 영겁 닿는 빛 있음을 등불 걸어 밝히어라 보이지 않는 마음도 밝혀 그 애끓는 사랑 하나 환하게 환하게 뭇 별까지 사뭇 밝히어라 (게시기간 : 1998년 12월27일∼1999년1월2일) 091 산타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원태연 산타 할아버지 이젠 믿을 건 할아버지 뿐이예요 제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예쁜 마음으로 착한 일 많이 했으니까 교회에도 열심히 다녔으니까 선물로 그 얘를 돌려 주세요 루돌프가 무거워서 짜증을 내면 할아버지가 좀 달래서 썰매에서 떨어져 안 다치게 살살 데리고 오세요 큰 양말도 어젯밤에 다 만들어 놓았어요 넉넉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내가 깜빡 잠이 들어도 답답하지 않을 거예요 산타 할아버지 이제 믿을 건 할아버지 뿐이예요 더 예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더 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산타 할아버지 도와 주세요 (게시기간 : 1998년 12월20일∼12월26일) 090 그 분의 사랑 작가미상 내가 불쾌한 사람을 참아 주어야 하는 까닭은 누군가도 불쾌한 내 모습을 참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참아내고 남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하는 까닭은 누군가도 나의 허물을 참아주고 덮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끝없이 기다리고 사랑해야 하는 까닭은 누군가도 나를 끝없이 기다려주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해야 하는 까닭은 누군가도 나를 용서해 주었기에 그 빚을 갚는 것입니다. 갚아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평생의 빚이 있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어도 포기하지 않고 쏟아주신 그 분의 사랑 그 사랑의 빚이 나에게 사는 의미를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게시기간 : 1998년 12월13일∼12월19일) 089 12월의 연가 김준태 겨울이 온다 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으리 멀리서 밀려오는 찬바람이 꽃과 나무와 세상의 모오든 향기를 거두어가도 그대여, 나는 오히려 가슴 뜨거워지리 더 멀리서 불어오는 12월 끝의 바람이 그 무성했던 그림자마저 거두어가버릴지라도 사랑이여, 나는 끝끝내 가슴 뜨거워 설레이리 저 벌판의 논고랑에 고인 조그마한 물방울 속에서도 때로는 살얼음 밑에서도 숨쉬며 반짝이는 송사리떼들 (게시기간 : 1998년 12월6일∼12월12일) 088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웅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있다.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게시기간 : 1998년 11월29일∼12월 5일) 087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저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게시기간 : 1998년 11월22일∼11월28일) 086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게시기간 : 1998년 11월15일∼11월21일) 085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정호승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사람을 멀리하고 길을 걷는다 살아갈수록 외로와 진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와 외롭고 마음 쓰라리게 걸어가는 들길에 서서 타오르는 들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면 어둠 속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고 가랑잎 위에는 가랑비가 내린다. (게시기간 : 1998년 11월8일∼11월14일) 084 내 연인(戀人)이여! 가까이 오렴! 오일도 내 연인(戀人)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애수(哀愁)의 가을, 가을도 이미 길었나니. 암흑(暗黑)의 밤 무너진 옛 성(城) 너머로 우수수 북역(北域) 바람이 우리를 덮어 온다. 나비 날개처럼 앙상한 네 적삼 얼마나 차냐? 왜 떠느냐? 오오 애무서워라 내 연인(戀人)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조락(凋落)의 가을, 때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나니. 한여름 영화(榮華)를 자랑하던 나뭇잎도 어느듯 낙엽(落葉)이 되어 저 성(城)둑 밑에 훌쩍거린다. 잎사귀 같은 우리 인생(人生) 한번 바람에 흩어 가면 어느 강산(江山) 또 언제 만나리오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한 발자취 그대를 옆에 두고도 내 마음 먼 듯해 미치겠노라. 전신(全身)의 파란 피 열화(熱火)같이 가슴에 올라 오오 이 밤 새기 전 나는 타고야 말리니. 까만 네 눈이 무엇을 생각느냐?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오늘 밤엔 이상하게도 마을 개 하나 짖들 않는다. 어두운 이 성(城)둑 길을 행여나 누가 걸어오랴 성(城) 위에 한없이 짙어가는 밤이 한밤은 오직 우리의 전유(專有)이오니. 네 팔에 내 목을 안아라. 우리는 두 청춘(靑春), 청춘(靑春)아! 제발 길어 다오. (게시기간 : 1998년 11월1일∼11월7일) 083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천양희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 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그땐 그걸 위해 다른 걸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게시기간 : 1998년 10월25일∼10월31일) 082 가을 편지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 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게시기간 : 1998년 10월18일∼10월24일) 081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게시기간 : 1998년 10월11일∼10월17일) 080 들국화 이하윤 나는 들에 핀 국화를 사랑합니다 빛과 향기 어느 것이 못하지 않으나 넓은 들에 가엽게 피고 지는 꽃일래 나는 그 꽃을 무한히 사랑합니다. 나는 이 땅의 시인을 사랑합니다. 외로우나 마음대로 피고 지는 꽃처럼 빛과 향기 조금도 거짓 없길래 나는 그 들이 읊은 시를 사랑합니다. (게시기간 : 1998년 10월4일∼10월10일) 079 가끔은 아주 슬픈 눈빛으로 서 있고 싶다 신병진 빗물이 촉촉히 젖어드는 플라타너스 나뭇잎처럼 가끔은 아주 슬픈 눈빛으로 서 있고 싶다 갈바람에 하이얀 솜털을 날려보내는 마른 갈대처럼 가끔은 아주 아련한 아픔으로 서 있고 싶다 외면해야 할 사랑 저버려야 할 믿음이 많은 세상 가끔은 또르르 굴러 내리는 빗물처럼 애처로운 모습으로 남고 싶다 가끔은 아주 슬픈 눈빛으로 너의 눈 속에 담기고 싶다 (게시기간 : 1998년 9월27일∼10월3일) 078 가을의 노래 신현봉 가을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가을빛으로 가득합니다 가을에는 머물러야 합니다 나뭇잎으로 풀잎으로 사랑이 가득한 열매로 바람으로 가을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그리울 것도 하나 없습니다. 가을에는 하늘이 가득히 땅 위에 이사를 옵니다 묶고 있는 사슬들을 풀어줍니다 가을에는 별은 그냥 별이고 시는 그냥 시가 됩니다 당신을 위하여 가을은 가을의 노래를 해마다 들려줍니다 (게시기간 : 1998년 9월20일∼9월26일) 077 어떤 날 허영자 쓸쓸한 날엔 벌판으로 나가자 아주 매 쓸쓸한 날엔 벌판을 넘어서 강변까지 나가자 갈잎은 바람에 쑥대머리 날리고 강물을 거슬러 조그만 물고기 떼 헤엄치고 있을 게다 버려진 아름다움이 몸을 부벼 외로이 모여 있는 곳 아직도 채 눈물 그치지 않거든 벌판을 넘어서 강변까지 나가자 (게시기간 : 1998년 9월13일∼9월19일)

 

              076   그대 내 마음의 창가에 서서   박화목

              그대 내 마음의 창(窓)가에 서서
              황혼(黃昏)의 그늘 같은 고요한
              미소(微笑)를 머금고 날 바라보고 있네.

              어서 들어오라는 정열(情熱)의 손짓에도
              나의 애 타는 안타까운 표시(表示)에도
              그대는 창가에 서서 미소(微笑)할 뿐이네.

              이제 구월(九月)의 밤하늘에 흰 달이 돋아오고
              유달리 반짝이며 선회하는 인공위성(人工衛星)과 함께
              기러기들이 날아올 테지만,

              그대는 흘러간 세월(歲月)과 같은 것.
              자꾸만 식어 가는 싸늘한 그대의 입김을
              내 마지막 사랑을 노래하여 덥힐 수 있으랴.

              아, 그러나 지금은 가을이 오고, 황혼(黃昏)이 내리고
              고독(孤獨)한 내 마음의 창(窓)가에 그대는 서서
              고요한 미소(微笑)를 머금고 날 바라볼 뿐이네.

              (게시기간 : 1998년 9월6일∼9월12일)



              075   당신 앞에 나는   이해인

              당신 앞에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항아리예요
              비켜 설 땅도 없는 이 자리에서
              당신만 생각하는 길고 긴 밤 낮

              나는 처음부터 뚜껑없는 몸이었어요
              햇빛을 담고, 바람을 담고, 구름을 담고
              아직도 남아있는 비인 자리
              당신만이 채우실 자리

              당신 앞에 나는 늘 얼굴없는 항아리
              기다림에 가슴이 크는 항아리예요

              (게시기간 : 1998년 8월30일∼9월5일)



              074   너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   송치욱

              처음 만날 때부터
              너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너와의 약속이 있을 때마다
              거울 앞에서 몇 번이고 연습하곤 하지만
              니 앞에만 서면 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지
              결국 너에게 아무 얘기도 못했지만
              아쉬움 속에 돌아온 나는
              굳게 잠긴 일기장을 열어
              나의 이야기를 펼쳐 놓곤 했어

              넘기는 페이지 페이지 마다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얘기들이
              널 기다리고 있지

              오랜 기다림 속에 먼지 쌓인
              내 일기장을 너에게 주고 싶어
              너에게 주고 싶었던 그 이야기를 말이야

              (게시기간 : 1998년 8월23일∼8월29일)



              073   나를 떠나 보내는 강가에   성춘복

              나를 떠나 보내는 강가엔
              흐트러진 강줄기를 따라 하늘이 지쳐간다

              어둠에 밀렸던 가슴
              바람에 휘몰리면
              강물따라 하늘도 잇대어
              펄럭일 듯한 나래 같다지만

              나를 떠나 보내는 언덕엔
              하늘과 강 사이를 거슬러
              허우적이며 가슴을 딛고 일어서는
              내게만 들리는 저 소리는 무언가

              밤마다 찢겼던 고뇌의 옷깃들이
              이제는 더 알 것도 없는 아늑한 기슭의
              검소한 차림에 쏠리워
              들뜸도 없는 걸음걸이로
              거슬러 오르는 게 아니면,

              강물에 흘렸던 마음이
              모든 것을 침묵케 하는 다른 마음의 상여로
              입김 가신 찬 스스로의 동혈(洞血)을 지향하고
              아픔을 찾고 피를 쏟으며
              나를 떠나 보내는 강으로 이끌리워
              되살아 오르는 게 아닌가

              강 너머엔
              강과 하늘로 어울린
              또 하나의 내가 소리치며
              짙은 어둠의 그림자로 비쳐 간다.

              (게시기간 : 1998년 8월16일∼8월22일)



              072   나무   김윤성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속에
              너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떠나려고 한다

              (게시기간 : 1998년 8월 9일∼8월15일)



              071   깊어지는 마음   김문희

              나이를 채울수록
              마음 아득히 깊어
              철이란 드는 것 아니라
              비어 가는 것이었다

              꿈자리 하나씩 잃어 가면서
              허무 한 겹씩 쌓아 오면서
              그대 소중한 줄 알았다

              넉넉할 땐 안 보이던 것들이
              가난한 마음에서 별이 되고
              작은 사랑에도
              행복한 눈물 담았다

              비운 마음으로 알았다
              더 이상 드릴 것이 없을 때
              그대 내 속에 들어와
              떨리는 기쁨 되리라는 것을

              (게시기간 : 1998년 8월2일∼8월8일)



              070   구슬비   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게시기간 : 1997년 7월26일∼8월1일)



              069   비가 와도 좋은 날   채영순

              옛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은
              창 밖에 비가 와도 좋다.

              밤은 넝마처럼
              시름시름 앓다
              흩어져 가고,

              자욱한 안개
              님의 입김으로
              조용히 걷히우면
              하늘엔 비가 와도 좋다

              세상은 참 아프고 가파르지만
              갈매기도 노래하며
              물을 나는데,

              옛 사람이 그리울 때만은
              창 밖에 주룩주룩 비가 와도 좋다
              속옷이 다 젖도록
              비가 와도 좋다.

              (게시기간 : 1998년 7월19일∼7월25일)



              068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김옥림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내가 그대 곁에 있어
              그대가 외롭지 않다면
              그대 눈물이 되어 주고 가슴이 되어 주고
              그대가 나를 필요로 할 땐
              언제든지 그대 곁에 머무르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만남이고 싶다
              내 비록 연약하고 무디고
              가진 것 없다 하여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건
              부끄럽지 않은 마음 하나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땐
              주저 없이 달려가 손을 잡아 주고
              누군가가 나를 불러 줄 땐
              그대 마음 깊이 남을 의미이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만남과 만남엔
              한치 거짓이 없어야 하고
              만남 그 자체가
              내 생애에 기쁨이 되어야 하나니

              하루하루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게시기간 : 1998년 7월12일∼7월18일)



              067   풀잎   박성룡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바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 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게시기간 : 1998년 7월5일∼7월11일)



              066   사랑하는 마음들이 닿을 수만 있다면   박성준

              사랑하는 마음들이 닿을 수만 있다면
              기쁨으로
              그리움은 또 하나의 그리움을 더하여
              아득히 먼 곳
              별들 반짝여
              가슴으로 쏟아져 내린다

              사랑하는 마음들이 닿을 수만 있다면
              가슴 기대어 듣는 말들이
              따뜻함으로 불 밝히는
              등불이 된다

              사랑하는 마음들이 닿을 수만 있다면
              마음으로 전한
              기쁨 넘치는 언어가
              차가움을 녹이고
              편견과 아집을 거두고
              고통없이
              아픔도 없이
              세상 적셔 가는 감동의 힘들이 된다
              희망이 된다

              사랑하는 마음들이 닿을 수만 있다면
              간직한 언어가
              별 밭에
              반짝이는 말들로 눈부심이 된다

              (게시기간 : 1998년 6월28일∼7월 4일)



              065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선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게시기간 : 1998년 6월21일∼6월27일)



              064   내가 맘 놓고 까불 수 있는 이유   최애리

              그대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예쁜 모습이 아닌
              미운 모습까지도
              이유 없이 사랑해 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깡패같이 행동해도
              그런 날 이해해 주고
              내 진심은 그렇지 않다는 걸
              그대가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골목대장처럼 까부는
              씩씩한 내 모습을
              그대가 좋아해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정
              맘 놓고 까불 수 있는 건
              그대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시기간 : 1998년 6월 14일∼6월20일)



              063   꽃은 제 내움에   신동춘

              꽃은 제 내움에
              밤내 잠 못 이루고

              나무는 해 저무도록
              제 그늘을 떠나지 않네

              사랑이사 아쉬움일레
              오래 곁하여

              여운은 여울지어
              메아리로 흘러라

              (게시기간 : 1998년 6월 7일∼6월13일)



              062   멀리있기   유안진

              멀리서 나를
              꽃이 되게 하는 이여
              향기로 나는 다가 갈 뿐입니다

              멀리서 나를
              별이 되게 하는 이여
              눈물 괸 눈짓으로 반짝일 뿐입니다

              멀어서 슬프고
              슬퍼서 흠도 티도 없는
              사랑이여

              죽기까지 나
              향기 높은 꽃이게 하여요
              죽어도 나
              빛나는 별이게 하여요

              (게시기간 : 1998년 5월31일∼6월 6일)



              061   꽃이 피고 지듯이   김후란

              꽃이 피고 지듯이
              사람의 나고 죽음
              또한 그런 것이련만

              타오르던 촛불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다 꺼지듯

              사람의
              나고 죽음
              또한 그런 것이련만

              스러지는 아침 이슬
              눈물로 지네
              눈물이네

              (게시기간 : 1998년 5월24일∼5월30일)



              060   애가   이창대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숨막히는 이별은 말하지 않으리
              여기로 불어오는 바람
              서러웁고
              저기서 울리는 종소리
              외로워도
              가만히 견디며 들으리라
              커다란 즐거움은 아픔뒤에 오는 것
              흐르는 강가에 가슴은 설레어도
              말하지 않으리라 이별의 뜻을
              그대 떠난 마음의 빈자리
              아플지라도
              나에게 잠들게 하라
              너의 그림자를

              (게시기간 : 1998년 5월17일∼5월23일)



              059   꽃의 노래   노수빈

              별빛 하나의 이름으로
              꽃이 피었습니다

              구름 하나의 그림자로
              꽃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천둥 하나의 소리로
              꽃망울 터지고 있었습니다

              오 그렇습니다
              내가 있었습니다
              내 하나의 사랑으로
              내가 꽃이 되었습니다

              (게시기간 : 1998년 5월10일∼5월16일)



              058   새싹들이다   좌승원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라
              넓고 높고 푸른 하늘
              가슴을 펴고 소리쳐 보자
              우리들은 새싹들이다
              푸른 꿈이 자란다 곱고 고운 꿈
              두리둥실 떠간다 구름이 되어
              너른 벌판을 달려나가자 씩씩하게 나가자
              어깨를 걸고 함께 나가자 발 맞춰 나가자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라
              넓고 높고 푸른 하늘
              가슴을 펴고 소리쳐 보자
              우리들은 새싹들이다
              해님 되자 달님 되자 별님이 되자

              너른 세상 불 밝힐 큰 빛이 되자
              무지개 빛깔 아름다운 꽃 모두 우리 차지다
              너와 나 함께 우리가 되어 힘차게 나가자

              (게시기간 : 1998년 5월3일∼5월9일)



              057   사랑   김유미

              사랑한다는 건
              자유를 조금씩
              잃어가는 거다

              어느 순간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게 될 때

              몸 속 깊숙히
              꽃가루는 번져

              아니야, 아니라고
              몸부림쳐봐도

              더이상 자신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

              사랑한다는 건
              이 세상 단 한사람
              그 앞에
              항복하는 거다.

              (게시기간 : 1998년 4월26일∼5월2일)



              056   봄길   이석

              봄길 고향의 길은
              가도 가도 고향이다

              이제 너는 어디로 가도 봄이다
              한 마리 작은 새가 되어도 좋다

              하지만 끝없는 허망에 솟는
              종달새야 나는 너 처럼

              밑도 끝도 없이 뛰놀며
              제 노래 제 장단에 취하다가
              오늘처럼 외롭게
              고향의 길만 걷는다.

              주막집 버드나무 홀로 늙었지만
              고향의 산천은 더 젊어있다

              (게시기간 : 1998년 4월19일∼4월25일)



              055   즐거운 편지   황동규

              □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게시기간 : 1998년 4월12일∼4월18일)



              054   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꽃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바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밣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게시기간 : 1998년 4월5일∼4월11일)



              053   살아감 속에 아픔은   작가미상

              우리들이 나눈 대화 중에
              몇 마디 때문에
              고민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랑을
              한순간이 아니라
              일생을 두고 이루어야 한다면
              항상 기쁨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웃기만 하며
              말도 별로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는 그대이지만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에게 달려들 듯이
              다가올 때도 있을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바다는 살아 있기에 성난 듯 파도도 치지만
              많은 날들은
              잔잔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봄바람은 꽃을 피우고
              가을 바람은 열매를 맺게 하듯이
              살아감 속에 아픔은
              그 만큼씩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게시기간 : 1998년 3월29일∼4월4일)



              052   우리의 기도   신재순

              생의 전부를 원하는 그 날까지
              따스한 사람들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항상 고귀한 미소 간직하게 해 주시고
              잊을 수 없는 편안한 그리움으로
              서로 하나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미워질 때도 사랑할 때도
              언제나 외로운 마음 갖지 않게 해 주시고
              마지막이라는 슬픔 거두어 주옵소서

              우리 생애 슬픈 눈물 흘리지 않도록
              진실로 서로를 아낄 수 있는
              사랑의 다리 놓아 주옵소서

              (게시기간 : 1998년 3월22일∼3월28일)



              051   체념   김달진

              봄 안개 자욱히 내린
              밤거리 가등(街燈)은 서러워 서러워
              깊은 설움을 눈물처럼 머금었다.

              마음을 앓는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는
              빛나는 웃음보다 아름다워라.

              몰려가고 오는 사람 구름처럼 흐르고
              청춘도 노래도 바람처럼 흐르고

              오로지 먼 하늘가로 귀 기울이는 응시(凝視)
              혼자 정열의 등불을 다룰 뿐

              내 너 그림자 앞에 서노니 먼 사람아
              우리는 진정 비수(悲愁)에 사는 운명
              다채로운 행복을 삼가하오.

              견디기보다 큰 괴로움이면
              멀리 깊은 산 구름 속에 들어가

              몰래 피었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싸늘한 입술을 맞추어 보자.

              (게시기간 : 1998년 3월15일∼3월21일)



              050   사랑의 슬픔   마광수

              오 내 사랑, 넌 내가 팔베개해 주는 걸 좋아했지
              내 팔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 곤 했지

              처음에 난 그저 행복하기만 했어
              곱게 잠든 네 얼굴에 키스하며 온 밤을 새웠어

              오 내 사랑, 제발 기억해 다오
              내가 아픔을 참고 매일 밤 팔베개를 해줬다는 걸

              하지만 난 결국 팔에 신경통이 생겨
              더 이상 팔 베개를 해 줄 수가 없었지 정말 아팠어

              오 내 사랑, 그러자 넌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나는 팔이 아파 너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다만 애원하며 설득했을 뿐, 이것이 사랑의 실존이라고

              오 내 사랑, 그래도 넌 내 곁을 떠났다
              팔베개 하나 못해 주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립다 내 사랑, 제발 기억해 다오
              내가 매일 밤 팔베개로 널 재웠다는 걸

              돌아와라 내 사랑,
              이젠 팔이 다 나았으니

              (게시기간 : 1998년 3월8일∼3월14일)



              049   우화(寓話)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 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게시기간 : 1998년 3월 1일∼3월 7일)



              048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조병화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일이 어려서 기쁘리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오늘이 지루하지 않아서 기쁘리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늙어 가는 것을 늦춰서 기쁘리

              이러다가 언젠가는 내가 먼저 떠나
              이 세상에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것으로 얼마나 행복하리

              아,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날이 가고 날이 오는 먼 세월이
              그리움으로 곱게 나를 이끌어 가면서
              다하지 못한 외로움이 훈훈한 바람이 되려니
              얼마나 허전한 고마운 사랑이런가.

              (게시기간 : 1998년 2월22일∼2월28일)



              047   봄을 기다리는 마음   신석정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게시기간 : 1998년 2월15일∼2월21일)



              046   그에게 있어서 나는   이주현

              그가 두통으로 고생할 땐
              효과 좋은 아스피린처럼

              술 마신 다음날 아침
              그의 속을 풀어 줄
              시원한 콩나물국처럼

              급하게 현금이 필요할 땐
              서비스 받을 수 있는
              고마운 신용카드처럼

              그가 스트레스 쌓였을 때
              피우는 담배 한 모금처럼

              잠이 오지 않는 까만 밤에
              조용히 들을 수 있는 음악처럼

              어느 순간 꼭 그가 생각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싶다.

              (게시기간 : 1998년 2월8일∼2월14일)



              045   반달   윤극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게시기간 : 1998년 2월1일∼2월7일)



              044   님이 오시는지   박문호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갈 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

              내 맘은 외로와 한없이 떠돌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 오네


              백합화 꿈꾸는 들녁을 지나
              달빛 먼 길 내 님이 오시는가

              물풀에 배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
              꽃향기 헤치고 님이 오시는가

              내 맘은 떨리어 끝없이 헤메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게시기간 : 1998년 1월 25일∼1월 31일)



              043   별 아래 서서   도종환

              별 하나 흐르다 머리 위에 머뭅니다
              나도 따라 흐르다 별 아래에 섭니다
              이렇게 마주 보고 섰어도
              늘상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습니다
              함께 사랑하고 기뻐한 시간보다
              헤어져 그리워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만났던 시간은 짧고
              나머지는 기다리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어느 하늘 어느 땅 아래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떠나간 마음들 그리워 별만 바라봅니다

              (게시기간 : 1998년 1월18일∼1월24일)



              042   내 허락도 없이   류형옥

              이상하다고......
              틀림없이 내가 맞는데
              낯 설게만 느껴진다고......
              솔직한 친구들의 의견이었지
              나 또한 언제부턴가
              나 자신에 대한 자신이 없는 나를 느꼈어
              사소한 표정까지도
              너를 닮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

              숨이 막힐 것 같아
              혹시나 싶어
              병원에서 X레이를 찍었더니
              역시나
              넌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거야

              (게시기간 : 1998년 1월11일∼1월17일)



              041   생명찬가   노향림

              어느 생명이나 찬란한 것
              머리 위 쪽빛 하늘 바라보며
              여기까지 왔다

              슬픔도 나누어 가지면 향기롭다
              도도히 흐르는 저 강물 강물은

              고통을 새김질하며
              아직은 내게 더 가라 더 가라 한다

              우리 더 먼길 가야 하리


              가자 기쁨은 우리의 것
              고통은 나누어 가지면 가벼워진다
              풀잎에 스민 이슬 한 방울을 보라

              그냥 반짝이지 않고
              온몸으로 반짝인다

              하물며 우리 생명, 생명은
              소중하고 찬란하지 않으랴

              우리 더 먼길을 가야 하리.

              (게시기간 : 1998년 1월4일∼1월10일)



              040   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 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오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게시기간 : 1997년 12월28일∼1998년1월3일)

3-02. 화장실에서 읽는 시 1998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