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23 년
 

   2023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1357 깡통 심강우 나보고 깡통이래 축구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고 머리가 텅 비었다고 형은 나만 보면 깡통 깡통 하는 거야 학교에서 오다가 깡통을 봤어 길 한복판에 떡 버티고 있는 거야 냅다 걷어찼지 일주일 동안 발에 깁스를 하고 다녔어 깡통은 무조건 비어 있다고 생각한 내 잘못이지 뭐 나를 뭘로 채워야 형이 조심할까? (게시기간 : 2023.04.30. ~ 05.06.) 1356 주름 송민화 엄마, 주름은 왜 생겨? 음 ...... 주름은 훈장이야 기쁜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외로운 일까지 다 견디고 온 사람에게만 주는 거야 그럼 할머니는 훈장을 많이 받으신 거야? 그럼 그럼 스무살에 시집와서 60년 농사지은 할머니 주름은 금메달보다 값지고 진주보다 아름답고 영화보다 더 슬프지 근데 엄마는 그 얘기 하면서 왜 눈이 빨개져? (게시기간 : 2023.04.23. ~ 04.29.) 1355 괜찮아 이태학 가지에 머문 새 날아간다고 나무는 울지 않는다 '괜찮아' 다른 새 날아와 다시 앉겠지 밤새도록 때리는 거센 파도 등대는 울지 않는다 '괜찮아' 바람 자면 성난 파도 물러가겠지 비바람 지쳐 떨어진 꽃잎 목련은 울지 않는다 '괜찮아' 새 봄엔 새 꽃잎 다시 피겠지 딸아, 아들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살아라 그러는 사이 네 속에 괜찮은 사람 하나 의젓이 들어와 앉을 것이다 (게시기간 : 2023.04.16. ~ 04.22.) 1354 30cm 박지웅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거리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거리 눈빛이 흔들리면 반드시 들키는 거리 기어이 마음이 동하는 거리 눈시울을 만나는 최초의 거리 심장 소리가 전해지는 최후의 거리 눈망울마저 사라지고 눈빛만 남는 거리 눈에서 가장 빛나는 별까지의 거리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거리 눈감고 있어도 볼 수 있는 거리 숨결이 숨결을 겨우 버티는 거리 키스에서 한 걸음도 남지 않은 거리 이 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가 30cm 안에 들어온다면 그곳을 고스란히 내어준다면 당신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게시기간 : 2023.04.09. ~ 04.15.) 1353 꽃나무를 심다 이양희 집 안에 꽃나무를 심는 일은 담 밖에 꽃을 피우는 일이다 묘목이 자라 첫 꽃을 피운 날처럼 어느 먼 봄날의 햇살에 저의 심장을 터뜨리며 마침내 담 밖으로 꽃을 내밀 때 오고가는 걸음을 꼭 붙잡는 일 그들의 마음 문을 밀고 들어가는 일 담을 넘어 꽃나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다 눈보라 치는 겨울을 견디며 그들의 꽃을 기다리게 하는 일 그들의 사계절을 일구게 하는 일이다 집 안에 꽃나무를 심는 일은 담 밖에 꽃을 피우는 일이다 마음 한쪽에 꽃나무의 묘목을 기르는 일이다 (게시기간 : 2023.04.02. ~ 04.08.) 1352 짐짓 모른 체 표성배 한 발짝이나 비켜서서 걷는 그림자를 부러 못 본 체 그냥저냥 걸어 볼 일이다 개나리꽃 노랗게 물들면 따라 그림자도 노오랗고 찔레꽃 하얗게 물들면 따라 그림자도 하이얀 노을이 내 이마 어디쯤 머물다 가면 따라 내 이마가 붉게 물드는 그런 길 한 번쯤 그냥저냥 걸을 일이다 가다 지치기라도 하면 잠시 노을의 옷섶을 끌어다 짐짓 모른 채 깔고 앉아 볼 일이다 어느새 따라 엉덩이 걸치는 그림자 엉덩이를 토닥토닥거리다 보면 내 이마 어디쯤에도 반짝 별 하나 슬쩍 자리 잡는데 그때서야 왔던 길 길게 되돌아볼 일이다 (게시기간 : 2023.03.26. ~ 04.01.) 1351 게발선인장 조용수 아파트 베란다 구석 화분에서 선인장이 겨울을 났다 물 한번 주지 않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어둑한 저녁 무렵 청소를 하는데 평소 나지 않던 냄새가 난다 어깨가 축 처져 있으면서도 줄기 끝에 꽃이 폈다 꽃을 피우려고 줄기의 허리는 잘록해졌고 뿌리는 얼마 남지 않은 흙을 꽉 쥐고 있다 나를 보더니 고개를 들어 웃는다 물 한 바가지 듬뿍 주었다 (게시기간 : 2023.03.19. ~ 03.25.) 1350 중년 나이 - 언제 한 번 노영임 언제 한 번 만나자 언제 한 번 밥 먹자 늘 언제 한 번으로 수인사 나누지만 누구도 묻지 않는다 그때가 언제인지 누구지?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청첩장에서 꽃샘추위 들이닥치듯 찾아든 부고장까지 툭하면 납기일 찍힌 고지서로 날아드는 걸 <부의>, <축의> 봉투 들고 품앗이 나선 날 얼마만이야! 호들갑 떨다 살며시 고명 얹듯 난 지금 바빠서 말야 언제 한 번 또 보자 (게시기간 : 2023.03.12. ~ 03.18.) 1349 행복 심재휘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지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3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스무 살 뒷모습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지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게시기간 : 2023.03.05. ~ 03.11.) 1348 문득 양승준 모름지기 인생이란 이렇게 끌려갈 게 아니라 저 혼자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를테면 층층나무 그늘 속에서 곤줄박이의 울음소리를 귀 기울여 듣거나 맛있게 칼국수를 먹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내 삶의 주체가 아니라 내 삶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그것이 비록 격정뿐인 삼류 멜로영화를 보는 것만큼 유치하거나 감동 없는 후일담의 주인공과 조우하는 것만큼 시시할지라도 나름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막막한 생의 끄트머리와 마주했을 때 세월을 함께 건너오며 지켜본 그간의 삶에 유음(遺音)을 대신할 단상 하나 간략히 적은 후 내 이름자 아래에다 크게 수결(手決)*을 놓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이순에 이르러 처음 맞이한 봄볕을 데리고 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게시기간 : 2023.02.26. ~ 03.04.) 1347 사랑해서 아프다 최수월 너를 모르고 살았더라면 사랑도, 그리움도 몰랐을 텐데 사랑한 만큼 아픈 것인지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가슴 한쪽 늘 아리고 아프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가슴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애틋한 그리움 백년이 흐른다고 지워질까 천년이 흐른다고 잊혀질까 다음 세상에 다시 만나도 여전히 사랑일 수밖에 없는 너 어느 날, 우연히 한번쯤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이토록 아프지 않을 텐데 (게시기간 : 2023.02.19. ~ 02.25.) 1346 이런 하루였으면 합니다 작가미상 사람의 향내가 물씬 풍기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렌지 같이 시큼하면서 달콤한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향수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은은한 향기를 뿜어낼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맑은 물 같은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 만났다고 즐거워 할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난 행운아야라고 말하며 어깨에 힘을 더 할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거나 짜증나지 않고 미소 머금을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게시기간 : 2023.02.12. ~ 02.18.) 1345 사람 그리기 류정환 여기다 사람 좀 그려보라고 딸아이가 떼를 쓰며 도화지를 들이 미는데 백지가 사막같이 넓고 아득하다. 사람이 어디쯤에 있어야 하지? 사람을 어떻게 그리더라? 시험지를 받아 든 듯 정신이 아뜩하다. 울퉁불퉁 둥그렇게 머리통을 그리고 듬성듬성 머리카락, 퀭하니 마음을 알 수 없는 눈, 실없는 농담처럼 삐뚤어진 코, 허기진 듯 반쯤 벌린 입, 볼품도 없고 크기도 다른 귀를 붙여놓고 들여다보니 있을 건 다 있는데 왠지 허전한 게 아무래도 사람 같지 않아서 색연필을 못 놓고 머뭇거리고 있다가 이게 뭐냐고, 여태 사람도 못 그린다고 유치원 졸업반 딸아이한테 제대로 면박을 당하고 무안하여라, 하루 일의 절반이 사람을 보는 일인데 어려운 일 중에도 사람을 그리는 일이 어렵구나 설명하는 일 또한 어려워 쥐구멍을 찾다가 어렸을 적 수없이 그렸던 사람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민망한 눈길 아득한 사막을 헤매노라니 도화지 속의 얼굴이 측은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 절룩절룩 걸어 나와 내 어깨를 짚어줄 것만 같다. (게시기간 : 2023.02.05. ~ 02.11.) 1344 선택의 대가 박병찬 선택이란 무언가를 고르는 일종의 "행위" 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고른 게 없어도 선택이 됩니다. 즉 남은 것을 취하는 것도 선택이듯이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은 것도 선택한 것입니다. 선택 후 우리는 각자의 결과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우리의 현재가 과거 선택의 결과물이듯 우리의 내일도 현재 선택의 결과물이 되는 것이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어떻게 되겠지를 바라는 선택, 부디 그 선택을 하지 마시길...... 이제 선택할 시간입니다. (게시기간 : 2023.01.29. ~ 02.04.) 1343 뜨거운 건 왜 눈물이 날까 김회권 손꼽아 기다렸던 설 아침이었지요 어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쇠뭇국을 놋그릇에 그득 담아 우리 어린 오남매를 아랫목 동그랗게 불러 앉혔지요 눈 환하게 와 닿는 그 맛이라니, 음식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오물거리는 어린 입과 둥글게 말아 쥔 꼬막손을 어머니는 마냥 흐믓이 바라보며, 오메 저것 보소, 입속에 밥 들어가는 저것 좀 보소! 당신도 입 안 가득 뽀얗고 뜨건 행복을 꼬옥 물고 계셨지요 이제와 생각하면 사람 사는 게 다 먹고 살자는 일이지만 마른 논바닥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거야말로 세상천지 가장 보기 좋은 풍경이라던 어머니 뉘 볼세라 돌아앉아 쿡쿡 옷소매로 눈물 찍어내셨지요 오늘 그 반가운 날이 와 그 맛있다는 쇠뭇국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순 쌀밥을 조반상에 올려놓고 나는 한입 가득 뜨다 말고 또 한입 뜨다 말고 알다가도 모르게 자꾸 자꾸만 입술 깨무는지 젖은 눈꺼풀만 공허니 끔벅거리는지 뜨거운 건 왜 눈물이 날까 (게시기간 : 2023.01.22. ~ 01.28.) 1342 김치찌개를 함께 먹는 다는 것은 한영희 냄비 안에서 서로를 껴안는 소리들 잘 익어 간다는 것은 적당한 온도와 양념이 버무려 져야한다 숙성된 김치를 듬뿍 잘라 넣고 소박하게 끓여먹는 김치찌개 백반 식구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냄비 속으로 내려앉는다 침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순간이다 따뜻한 국물이 살 속으로 스며든다 맛있는 냄새를 기억하고 그 힘을 아침을 맞이하는 식구들 (게시기간 : 2023.01.15. ~ 01.21.) 1341 비닐하우스 강성은 추워서 들어간 그곳이 말할 수 없이 포근해 놀랐습니다 검고 촉촉한 밭고랑 사이로 푸른 상추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밖은 겨울 이토록 얇은 비닐일 뿐인데 겨드랑이에 땀이 났습니다 안이 너무 넓고 투명해 출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닐 너머에 환하고 환한 빛들이 있는 것처럼 상추는 믿을 수 없이 크고 싱싱한 날개를 펄럭이며 이곳은 누구의 집인지 누구의 꿈속인지 묻지 않았고 끝없는 겨울이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게시기간 : 2023.01.08. ~ 01.14.) 1340 새해 아침에 위영남 삼백예순다섯 개의 해를 숨겨 놓고 그 속에 우리들의 꿈도 묻어 놓고 '새해엔 당신의 소망을 이루어 보셔요.' 조용히 속삭여 주는 삼백예순다섯 개의 까만 꽃씨들 새해 달력 앞에 서면 파도처럼 일렁이는 가슴은 희망이 꿈틀거리는 아침 바다 우리들 마음 속 꽃밭에도 삼백예순다섯 개의 꽃씨를 심고 둥근 해가 떠오를 때마다 곱게 곱게 피어날 우리들의 새해 꿈 (게시기간 : 2023.01.01. ~ 01.07.) 1339 꿈 노트 석기영 내 어릴 적 몽당연필로 침 발라 써놓은 낡은 모조지 공책에 쓰러질 듯 위태롭게 박혀있는 나를 보았지 그때의 꿈은 지금의 나보다 한 아름은 더 웅장해 보였지 그때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시시해진걸 보면 그동안 치열하게 전진한 까닭이다. 이 세상에 펼쳐진 위대한 일과 다가올 우리의 희망도 돌이켜보면 내 어릴적 꿈에서 비롯되었음을. (게시기간 : 2022.12.25. ~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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