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22 년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1340 새해 아침에 위영남 삼백예순다섯 개의 해를 숨겨 놓고 그 속에 우리들의 꿈도 묻어 놓고 '새해엔 당신의 소망을 이루어 보셔요.' 조용히 속삭여 주는 삼백예순다섯 개의 까만 꽃씨들 새해 달력 앞에 서면 파도처럼 일렁이는 가슴은 희망이 꿈틀거리는 아침 바다 우리들 마음 속 꽃밭에도 삼백예순다섯 개의 꽃씨를 심고 둥근 해가 떠오를 때마다 곱게 곱게 피어날 우리들의 새해 꿈 (게시기간 : 2023.01.01. ~ 01.07.) 1339 꿈 노트 석기영 내 어릴 적 몽당연필로 침 발라 써놓은 낡은 모조지 공책에 쓰러질 듯 위태롭게 박혀있는 나를 보았지 그때의 꿈은 지금의 나보다 한 아름은 더 웅장해 보였지 그때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시시해진걸 보면 그동안 치열하게 전진한 까닭이다. 이 세상에 펼쳐진 위대한 일과 다가올 우리의 희망도 돌이켜보면 내 어릴적 꿈에서 비롯되었음을. (게시기간 : 2022.12.25. ~ 12.31.) 1338 성탄절 양광모 산타를 기다리지 마세요 누군가에게 산타가 되세요 신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도 산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이 세상 가장 따뜻하고 붉은 우리의 심장이 만드는 것 눈을 기다리지 마세요 누군가에게 눈 같은 사람이 되세요 (게시기간 : 2022.12.18. ~ 12.24.) 1337 부지깽이 전언(傳言) 장하빈 아궁이에 군불 지펴보면 안다 불길과 연기가 내통하는 길 있다는 것을 참나무 장작 꾸역꾸역 밀어 넣어보면 안다 구들장 아래 방고래로 불길 지나기 위해서 때때로 바닥에 엎드려 눈물 쏟아야 한다는 것을 방 아랫목 싸늘해진 새벽녘 깨어나 캄캄한 아궁이 들여다본다 산다는 것, 이렇게 검게 속 태우는 일이거나 불구덩이 뛰어들었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일이라며 산더미처럼 쌓인 재 푹푹 퍼 담는다 (게시기간 : 2022.12.11. ~ 12.17.) 1336 가족 이심훈 싸락눈 내리는 간이역 근방 산그림자 기우는 저만치 땅거미 밀려드는 외딴 토담 큰 애 신발 옆 올망졸망 작은 애 신발 엄마 신발 곁으로 아빠 신발 돌아오면 되겠네 오밀조밀 모여 있을 식구들 곁으로 내 신발 돌아가면 되겠네 (게시기간 : 2022.12.04. ~ 12.10.) 1335 막걸리 양은주전자를 바라보며 김광렬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그야말로 벌집처럼 패인 저 양은주전자도 상처 드러낸 채로 살아가잖은가 우리가 세상경륜을 두루 거친 인생 선배를 존경하듯 찌그러지고 헐벗어서 더 손님들이 사랑한다는 막걸리 양은주전자를 바라보며 그래, 상처투성이로 살아간다고 슬픈 것만은 아니라고 너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결코 너를 위무하는 말만은 아니다 떨어져 비에 젖은 나뭇잎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이 다 추지다고 여기지는 않듯이 세상 한 모퉁이에는 아픈 것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한스러움으로 본다면 저 양은주전자도 남 못지않다 그러나 도전적으로 묵묵히 그래, 더 부딪치며 살아가자 그 순간순간들이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미라는 듯 상처를 빛내며 사람들에게로 간다 삶은 아픈 몸 껴안고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게시기간 : 2022.11.27. ~ 12.03.) 1334 행인3 전동균 물론 대사는 없죠 등이나 스쳐 가는 옆모습으로 말해야 하죠 수많은 배경 중 하나 있어도 없어도 그만 자막 맨 끝에 가까스로 매달리거나 아예 지워지는 이름 그런데 왜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게 가을 저녁의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가는 게 그토록 힘들었을까요 왜 그리 자주 NG를 내고 눈물을 감추고 마른 입술을 깨물어야 했을까요 잠깐 누군가의 어미 아비가 되는 일 살구나무에 맺힌 살구 알을 만지는 일 가슴의 생각을 묻고 듣는 일 때론 침대에 누워 잠드는 일마저도 (게시기간 : 2022.11.20. ~ 11.26.) 1333 뚜껑을 열다 이안 처음 냄비에 밥을 한 적이 있다 뜸 들이는 시간을 알지 못해 뚜껑을 몇 번 여닫았더니 설 익은 밥이 무덤처럼 솟아 있었다 살다보면 뚜껑 열리는 일이 있다 잘잘못을 고민할 틈도 없이 생쌀처럼 설익은 말과 행동이 터져 나올 때가 있다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크고 작은 생각의 차이로 열 받는 육신의 뚜껑을 열기 전 마음에 뜸을 들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게시기간 : 2022.11.13. ~ 11.19.) 1332 처음이라 그래요 윤동미 붕어빵 아저씨 개업 첫날 꼬리 탄 붕어 옆구리 터진 붕어 지느러미 찢어진 붕어가 자꾸 쌓인다. 기다리는 줄이 길어지자 아저씨 콧잔등엔 땀이 송골송골 -제가 처음이라 그래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붕어빵이 못생겨서 미안하다며 한 마리씩 덤으로 담아준다. (게시기간 : 2022.11.06. ~ 11.12.) 1331 가을 강가 최도선 조금은 여윈 듯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반짝이는 가을 강가에 가보라 흔들리는 갈대와 갈바람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리니 언덕을 기어오르던 메꽃 잡풀 그 언던 언저리에 다 부서지고 흩어져 유리알보다 더 맑은 허공에 무겁게 끌고 온 무게들을 가만 내려놓고 떠난다 눈썹 위에 욕망도 가슴에 꽃힌 아픈 상처도 네 발목에 묶인 끈도 풀어 던지고 속이 풀릴 때까지 그 강물에 띄워 보내보라 물 아래 반짝이는 모래가 얼마나 오랜 세월 부대끼며 제 살을 깎아왔는지 물살만 보아도 눈물이 고이는 가을 강에 가서 보라 눈이 부신 강가에 (게시기간 : 2022.10.30. ~ 11.05.) 1330 단풍나무 윤종영 말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저 단풍나무처럼 말하지 않고 잎을 키웠으면 좋겠다 키운 잎 노랗게 물들였으면 좋겠다 떨어져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봄을 맞고 여름을 견뎌내고 가을에 익었으면 좋겠다 겨울을 살았으면 좋겠다 말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저 단풍나무처럼 뿌리를 키웠으면 좋겠다 (게시기간 : 2022.10.23. ~ 10.29.) 1329 홍시 문충성 메밀잠자리 서너 마리 누렇게 날아다니는 가을날 비쩍 마른 감나무 한 그루 홍시들 가지 가지 찢어지게 익어가고 그늘에 들면 몇 없는 이파리 한 장 한 장 울긋불긋 바람 만들고 홍시 따 먹는 것보다 홍시 따 주시던 외할머니 외로운 생각에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네 외할머니 얼굴 보듯 그때 높은 가지에서 투욱 떨어진다 홍시 하나 서늘하다 (게시기간 : 2022.10.16. ~ 10.22.) 1328 빈 장독의 노래 김철진 한때는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고 누구의 집에서도 사랑받은 몸 시방은 나이들어 장독대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질그릇으로 태어났어도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살아온 나달 철 따라 배불리 먹여 주던 아낙네들 손맛이 때로는 그립다 육신의 배부름은 없어도 다 비워 버린 여유로운 삶 가을에는 빨간 단풍 한두 잎 떨어져 빈 가슴에도 뜨거운 피가 돌게 한다 거꾸로 보는 세상이 더 참이다 비워 버린 삶이 더 행복하다 비어 있어도 늘 배가 부른 것은 빛살도 바람도 머물다 가기 때문이다 (게시기간 : 2022.10.09. ~ 10.15.) 1327 늙은 대추 이길원 떫고 아리던 풋대추 비바람 태풍에 시달리다 한여름 태양에 붉게 몸 태우고 가을 서릿발에 오그라들며 알았네 삶의 절정이 지금이라는 것을 산등성이에 올라 세상사 굽어보듯 돌아보는 삶 밥알 넣어주기 바쁘던 품속의 아이들 떠나고 욕망 삼키고 야심 잠재운 늦가을 흐르는 구름처럼 평안하기만 한데 언제 지금처럼 평온한 날 있었나 이제야 알았네 쪼글쪼글 붉은 대추 속살 달콤한 연유를 나이 칠십에. (게시기간 : 2022.10.02. ~ 10.08.) 1326 고향집 어머니 권영분 어머니는 언제나 하늘을 이고 긴 밭고랑 김을 매시며 기도를 한다. 급행열차도 서지 않는 산골마을 토담집에서 도시로 나간 큰 자식,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전히 어머니 안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로 금방이라도 들릴 것 같은 웃음소리에 기다림의 행복으로 살고 계신다. 곡식이 익어 가는 계절의 소리 해질녘 돌아오는 작은 발소리 흙냄새 배어있는 어머니 모습 깊은 물소리 없이 흐르듯 어머니 깊은 마음은 자연만큼 편안하다. (게시기간 : 2022.09.25. ~ 10.01.) 1325 아내의 구두 박정원 아내의 구두굽을 몰래 훔쳐본다 닳아 없어진 두께는 곧 아내가 움직였을 거리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쪽으로만 기대었던 굽이 다른 한쪽 굽을 더 깊게 파이게 했다 덜 파인 쪽에 힘을 주면 굽의 높이가 같아질까 나를 받아주기 위해 제 몸만 넓혀갔지 헐렁한 건강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구두 밑창을 갈면 왠지 낯설 것 같은 구두, 버리면 지나간 가난이 서릿발처럼 일어설 것 같아 신발장에 슬며시 들여놓는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눈물 흘렸을 때 군말 없이 동행해주었던 구두 핼쑥해진 아내의 얼굴처럼 광택이 나지 않는 구두 아무렇게나 신어도 쑥쑥 들어가는 구두가 키를 맞추겠다면서 높은 구두는 고르지도 않던 아내에게 숫처녀 같은 구두 한 켤레 사주고 싶다. (게시기간 : 2022.09.18. ~ 09.24.) 1324 담을 넘어가는 이유 정지윤 오이, 호박, 가지, 깻잎, 토마토 바구니 한가득 가져온 옆집 할머니 힘들게 농사지은 걸 왜 다 나눠 주시는지 여쭤보면 나 혼자 하는 거 아녀 하늘이 반, 내가 반 같이 지으니 나눠 먹고 살아야지 그래서 우리 집 덩굴장미도 웃음꽃 나누려고 자꾸 담을 넘어가나 보다 (게시기간 : 2022.09.11. ~ 09.17.) 1323 추석날 고명 구두를 닦는다, 아버지 토방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레 문지른다 툇마루에 올려놨던 살핏줄 내음 박사 따온 오진 자식 그 애린 볼 부비듯이 '즈이 어미 살았으면 오죽 좋아하랴만' 쓰잘데 없는 생각 털어 버린다 솔질 한 번 더 한다 "느그들이 온께 사람 사는 집 겉다 잉? 허허" 남의 땅에서 태어난 손주놈 잠자리처럼 마당 휘젓고 다니는 모양, 눈에 꽉 차올라 구두를 닦는다 그저 자식놈 구두만 닦는다 곡식 가마니 져 나르던 휘어진 등허리에 추석날 기우는 햇살 미어지게 실어 나른다 (게시기간 : 2022.09.04. ~ 09.10.) 1322 스스로 그러하게 이순희 언제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화분에 하얀 날개 같은 꽃이 피었다 볼품없는 잎을 달고 제구실도 못하던 싸구려 그 화분엔? 물도 잘 주지 않았다 예쁜 꽃을 피우는 화분들에게 정성 들여 물을 주다가 남은 물 선심 쓰듯 조금 끼얹어 줄 뿐이었다 그런데 그 화분 잎 끝마다 뽀오얀 속살을 내밀더니 천사 날개 같은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스치는 무엇 무심해져야 꽃도 꽃잎 무심하게 지우고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꽃 하나 피웠다고 호들갑 떨지 말아야겠다 (게시기간 : 2022.08.28. ~ 09.03.) 1321 노각 박영식 늙는다는 것은 결코 서러운 것만 아니다 젊은 날 사근사근 씹히던 푸른 맛이 한 생애 절정이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숱한 강 노 저어 와 겸상 앞에 앉은 저녁 짭조름 천하별미 요게 뭐냐 물었더니 누렇고 퉁퉁한 오이 장아찌라 말한다 된장에 배인 맛이 어쩜 당신 닮아 있다 역시나 삶이란 건 오랜 속 달인 끝에 은근히 우러난 애증 진국이라 하겠다 (게시기간 : 2022.08.21. ~ 08.27.) 1320 내 손톱에 봉숭아물 이월순 흘러간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땐 봉숭아물을 들여보세요. 돌이킬 수 없는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땐 봉숭아물을 들여 보세요. 있지 못할 흘러간 추억이 몇 개나 있나? 조용히 눈을 감고 떠올려 보세요. 그 중에는 봉숭아물들이던 때가 생각날 겁니다 그럴 땐 여름마다 봉숭아를 한 포기 심어서 봉숭아물을 들이세요. 만약에 동지섣달 긴긴 밤에 잠들지 않고 그 옛날 어린 시절이 그토록 새록새록 떠오를 때면 냉동에 찧어 얼려 놓은 봉숭아를 꺼내서 손톱에 올려놓고 기다려 보세요. 세 번만 갈아붙이면 아주 예쁘게 물듭니다. 이렇게 한 다음 열흘 후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발라보세요. 어린 시절이 돌이킬 수 없는 먼 추억이 아닙니다. 세월은 거슬러 현실로 되돌아왔습니다. 너무도 흐뭇하고 행복합니다. 그 옛날 친구들이 눈앞에 와 히히덕 거립니다. 내 생의 허전한 한 칸의 공백을 봉숭아가 꽉 채웠습니다. 일 못한다 꾸짖던 왼손도 봉숭아물 덕분에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게시기간 : 2022.08.14. ~ 08.20.) 1319 국제 열차는 타자기처럼 김경린 오늘도 성난 타자기처럼 질주하는 국제열차에 나의 젊음은 실려가고 보라빛 애정을 날리며 경사진 가로에서 또다시 태양에 젖어 돌아오는 벗들을 본다. 옛날 나의 조상들이 뿌리고 간 설화가 아직도 남은 거리와 거리에 불안과 예절과 그리고 공포만이 거품일어 꽃과 태양을 등지고 가는 나에게 어둠은 빛발처럼 내려온다. 또다시 먼 앞날에 추락하는 애정이 나의 가슴을 찌르면 거울처럼 그리운 사람이 흐르는 기류를 안고 투명한 아침을 가져오라. (게시기간 : 2022.08.07. ~ 08.13.) 1318 물 한 컵 앞에서 서상만 새벽,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 한 컵 받는다 문득 목말라 죽어가는 목숨들 까맣게 잊고 한량없이 마셔온 물, 오늘따라 공손히 두 손으로 받아도 염치가 없다 내 누굴 위해, 손톱만큼이라도 눈물 같은 눈물 흘려 사랑 한 번 옳게 베푼 적 있는지 숙연히 찬물 한 컵 또 받는다 (게시기간 : 2022.07.31. ~ 08.06.) 1317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송경동 몇 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게시기간 : 2022.07.24. ~ 07.30.) 1316 친밀감의 이해 허준 이제 서로 깔깔거리며 지낼 나이가 지났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주머니의 자갈을 끄집어내어도 자꾸 자갈이 생긴다는 뜻이다 오래된 건물들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사실이다 벽들은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있다 간혹 건물들이 울면 사람들은 이유 없이 어두워진다 명랑함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음에 들지 않던 보조배터리를 극장에서 분실하고 찾으러 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들이 너를 버린 게 아니다 견고했던 것들도 깨어진다는 것을 차츰 알아간다 사람들 사이에 끈이 있는데 당기거나 당겨진다 예전에는 그걸 몰랐었다 (게시기간 : 2022.07.17. ~ 07.23.) 1315 송아지의 등을 핥는 최진연 무던히 젖을 빨리다가 송아지의 등을 핥는 어미 소의 혀처럼 내 혀가 늘 그리 부드럽게 하소서. 일터에서 돌아오는 지아비 허기진 모습에 밥상을 보는 지어미 그 바쁜 손길처럼 내 손이 늘 그리 바쁘게 하소서. 젖을 물리고 앉아서 아기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눈빛처럼 내 눈이 늘 그리 따뜻하게 하소서. 장미꽃처럼 아니 화려해도 가시 없는 백합, 그 향내 별빛 고여 넘는 샘물이듯 내 속에서 늘 그리 향내나게 하소서. (게시기간 : 2022.07.10. ~ 07.16.) 1314 사랑의 간격 최경옥 얼마나 힘들까 싶어 멋 모르고 물을 흠뻑 주는 일도 때로 싱싱한 화초를 죽게 한다 이파리 하나, 둘 누렇게 짓물러 떨어지다 서서히 썩어가는 줄기 애지중지 관심도 독이란 걸 알았다 소량의 물기 만으로도 견디며 살아가는 법을 제 스스로 체득하도록 가만히 두는 것도 아픔의 이유가 되지 않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충분할지도 모른다 (게시기간 : 2022.07.03. ~ 07.09.) 1313 알고 보면 김종상 이름 모를 풀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요 모르면 천한 것도 알고 보면 귀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거의다가 풀입니다 하찮은 잡초라도 멸시하면 안 되지요 잡초라 하는 것도 약초인 게 많습니다 우리가 찾는 보약은 대부분이 풀입니다. (게시기간 : 2022.06.26. ~ 07.02.) 1312 그래도 그대가 그리운 것은 권갑하 그대 이미 내 수첩에서 지워진 이름이지만 그래도 그대가 그리운 것은 자꾸 그리운 것은 언젠가 내 빈 가슴 채워줄 사람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그대 이미 내 앨범에서 사라진 얼굴이지만 그래도 그대가 그리운 것은 자꾸 그리운 것은 언젠가 지친 내 마음 보듬어 줄 사람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그대 이미 내 마음에서 멀어진 사랑이지만 그래도 그대가 그리운 것은 자꾸 그리운 것은 언젠가 내 차가운 손 잡아줄 사람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게시기간 : 2022.06.19. ~ 06.25.) 1311 바다처럼 잔잔히 밀려오는 사람 권혁소 나중에 당신을 기억할 때 바다처럼 잔잔히 밀려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오물오물 뱉어내던 그녀의 말을 잔잔히 밀려오는 바다 같은 사람이라면 좋겠어요, 라고 읽는다 사람과 바다 사이에 사랑이 있다 결코 쉽게 헤엄쳐 건널 수 없는 거리 손 내밀면 멀어지는 섬처럼 오도카니 떠 있는 실루엣, 그것이 사랑이라니 사랑도 흙처럼 만질 수 있는 것이어서 만드는 이의 손길에 따라 꽃병이 되거나 사발이 되거나 접시가 된다면 나는 이 전율을 주물러서 무엇을 만들게 될까 한 걸음 다가서면 두 걸음 물러나는 사랑 (게시기간 : 2022.06.12. ~ 06.18.) 1310 그냥 이혜화 "그냥"이라고 말해보세요 내 몸이 가벼워져요 발목을 잡히지도 않지요 날아갈 것 같아요 "그냥"이라고 말해보세요 더 다른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돼요 왜냐고 다그치면 냉큼 "그냥"이라고 대답해 버리세요 그러면 회색빛 그리움이란 증후군 따라오지 않아요. 그냥 바닷가에 나왔노라고 그냥 이곳에서 한움큼 세월 부스러기 집었다가 놓아도 백사장이 다 묻어주어요 그냥은 떠올려도 잘못없는 옛사랑 그냥 좋아서 그냥 좋아서 이 바다에 오지요 (게시기간 : 2022.06.05. ~ 06.11.) 1309 비빔밥 조성범 아무리 맛난 삶이라도 한 가지 맛으로만 산다면 그건 싱거운 일 자란 곳이 서로 다른 나물에 생의 감초 같은 고추장 두어 숟갈 밥과 함께 비비면 쓰고 달고 맵고 짠 제 잘난 맛은 없고 팔도의 맛을 낸다 사람 사는 동네도 가난한 동네는 열두 곳도 더 거쳐 온 영혼들이 모여 달그락 쨍그랑 오만가지 소리를 내며 살아가는데 무슨 맛으로 사는지는 몰라도 보면 서로 머리를 숙이고 웃음을 섞는 비빔밥 같은 사람들 어쩌다 함께 밥을 먹는 날이면 한 양푼 가득 밥을 비벼 여러 개의 수저로 달그락 거리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더 먹으라며 밥을 미는 서로 성이 다른 사람들 (게시기간 : 2022.05.29. ~ 06.04.) 1308 시작 노트 류휘석 세상에는 단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는데 왜 이야기는 모두 비슷할까. 지구를 밟고 마주 선 너와 나는 왜 이름을 두고 자꾸 우리라고 부르는 걸까. 지구가 기울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그러나 우리라는 것은 아무리 조심해도 넘어지기 마련이다. 포개진 우리의 바깥에 너무 많은 여백이 남을 걸 알면서. 그게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걸 알면서. 나도. 나도. 손을 들면서. 다 같이 넘어지고. 다 같이 일어서고. 까진 무릎을 서로 가려주면서.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면 덜 외로운 기분이 든다. (게시기간 : 2022.05.22. ~ 05.28.) 1307 비 오시는 날은 임동윤 비 오시는 날은 멀리 있는 사람도 가까워진다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밀린 세탁기도 돌리고 모처럼 동네회관에 모여앉아 부침개도 붙이는 시간 처마 끝으로 빗방울이 모여 낮은 음표로 멀리 있는 그리움을 불러 보은다 바다도 소리 해삼 멍게도 모두 잊어버린다 오직, 서울 자식 생각도 잠시 해보는, 원양어선 남편도 잠시 밤하늘 별로 띄워놓고 쑤시는 팔 다리 주무르는 시간 비 오시는 날은 멀리 있는 얼굴까지 그리워진다 푸른 바다를 내려놓고 잠시 나를 내려놓는 아주 넉넉한 시간 (게시기간 : 2022.05.15. ~ 05.21.) 1306 새들의 언어 이명덕 새들의 언어에는 존댓말과 낮춤말이 없습니다 다만, 날아다니는 말과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는 말들이 있을 뿐입니다 애벌레처럼 꿈틀대거나 작은 날개를 흉내낸 말입니다 새들의 말엔 예민한 나뭇가지가 있고 허세를 부리는 허수아비의 허풍이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마치 하늘로 비상할 꿈을 꾸는 작은 열매를 닮았습니다 말로 싸우는 존재는 인간들입니다 계산된 언어를 생산하고 말의 설계로 무기를 만들고 지배와 억압을 행합니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은 잘잘못 따지고 말로 배제하려 합니다 큰 목소리와 작은 목소리로 사람을 두어 부리려 합니다 오랜 시간 딱딱해진 인간의 말이 말랑한 숲속 둥지에 깃들지 못해 우리가 새들의 언어를 자연이라 일컫는 데는, 어느 귀를 열어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게시기간 : 2022.05.08. ~ 05.14.) 1305 어린 왕자의 기억들 나병춘 길을 가다가 문득 뒤가 궁금해지거든 제자리에 딱 멈추는 거야 두 발을 한껏 벌린 채 가랭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한참 들여다보는 거야 고개를 박고서 바라보는 구름 꽃나무 날아다니는 새들 벌레들도 보일 거야 돌멩이들도 보이겠지 하나하나 다른 모양의 돌멩이들 발자국들 좁다랗고 널찍한 길 구불텅구불텅하고 쪽 곧은길이 두 기둥 사이에서 꿈틀거리고 있겠지 모든 길은 가랭이 사이로 통하는 거겠지 뒤가 궁금해지거든 그렇게 한번 해 보아 빼툴빼툴 서럽게 서툴게 걸어온 발자국도 보이겠지 당당하기도 하고 흔들거리기도 하면서 아름다이 흔적없는 풍경화가 되어 뒤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겠지 (게시기간 : 2022.05.01. ~ 05.07.) 1304 정답 오하룡 벼르고 벼르던 집을 장만했다 정원수도 몇 그루 뜨락도 제법 있는 그것도 당당한 이층집이다 빚도 안고 세도 안아 내 집이라기엔 어설프고 낯간지럽다 손 내저으며 과분한 내색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요즘 세상 꼭 제 돈만 가지고 집 장만합니까 한결같이 진작부터 준비한 듯한 앵무새 표현들이다 손 내젓기가 민망해진다 언제부터 이런 정답이 나온 것일까 나도 정답의 한 부분이 되어 이 아침 부끄럽게 대문을 나서고 있다 (게시기간 : 2022.04.24. ~ 04.30.) 1303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심재숙 차를 마신다 국화차를 마신다 꽃향이 낯설다고 말하지 않는다 참 좋다고 참 편안하고 여유가 있다고 잠시, 누가 떠오르더라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럴 때 그냥 향이 참 좋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게시기간 : 2022.04.17. ~ 04.23.) 1302 택배 류우림 묵은 김치가 택배로 왔다 꼼꼼하게 포장을 하고 단단하게 매듭을 해놓아서 손을 대기가 민망했다 중요한 물건이 든 것도 아니고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 매듭마다 굵은 세월과 사랑을 실어서 보내왔다 결국은 잘라야 할 매듭이라고 사랑은 잘라내야 하는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 문구용 가위로 끈을 자른다 툭, 투둑 삶이,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 쏟아져 나왔다 (게시기간 : 2022.04.10. ~ 04.16.) 1301 막돌도 집이 있다 홍신선 주워 모은 잡석들로 터앝 배수로 돌담을 쌓는다. 막 생긴 놈일수록 이 틈새 저 틈새에 맞춰본다. 이렇게 저렇게지만 뜻 없이 나뒹굴던 돌멩이가 틈새를 제집인 듯 척척 개인으로 들어가 앉는 순간이었다. 존재하는 것치고 쓸모없는 건 없다는 거지 그렇게 한번 자리 찾아 앉은 놈은 제 자리에서 요지부동 끄덕도 않는다 사람도 누구나 어디인가 제 있을 자리에 가 박혀 오! 돌담처럼 견고한 70억 이 세상을 이룬다. (게시기간 : 2022.04.03. ~ 04.09.) 1300 어린 봄을 업다 박수현 몇십 년 만에 아이를 업었다 앞으로 안는 신식 띠에 익은 아이는 자꾸 허리께로 흘러내렸다 토닥토닥 엉덩짝을 두드리자 얼굴을 묻고 나비잠에 빠졌다 슬그머니 내 등을 내려와 제 길 간 어미처럼 아이도 날리는 벚꽃잎 밟으며 자박자박 걸음을 뗀다 어릴 적, 어른들 따라 밤마실 갔다 올 때면 넓은 등에 얼굴 묻는 것이 좋아 나는 마실이 파할 즈음 잠든 척하곤 했다 업혀서 돌아올 땐 부엉이 우는 밤길도 무섭지 않았다 가끔 백팩이나 메는 내 어두운 등짝으로 어린 것의 온기가 전해진다 내가 걸어온 한 생이 고작 두어 뼘 등판 위에서 뒤집혔다는 생각 겁 많고 무른 가슴팍 대신 갖은 상처를 받아내느라 딱딱해진 등이 혹 슬픔의 정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득, 누가 이 말간 봄빛 한나절을 내 빈 등에 올려놓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아이가 얕은 숨을 쉬며 옹알거렸다 멀리서 온 그 말씀, 하르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조심스레 포대기를 추슬렀다 출렁, 한 뼘 팔이 더 길어졌다 (게시기간 : 2022.03.27. ~ 04.02.) 1299 봄의 곁 김화연 계절들에게는 곁이 있다 봄의 골목을 지나갈 때 여름의 나무들을 지나갈 때 뒷짐 지고 걷던 골목길 모퉁이 향이 난다면 그건 은은한 존재의 곁이라는 뜻이다 덜 깬 새발가지에 기대고 싶은 햇살 비가 오고 안개 끼고 허청대는 바람도 안녕하며 걸어가는 발걸음도 조심조심 꽃을 피하는 봄 봄꽃 꺾는 도둑에게도 어느 꽃에서 구입한 향수냐고 묻고 싶은 그런 향기가 난다 꽃 나들이를 놓친 핑계도 목련꽃 헹가래도 모든 향기와 냄새들은 곁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곁으로 크고 누군가의 곁이 되는 동안 멀어지거나 멀어져온 언저리 이끼가 끼고 축축하다 초록 버드나무가 중얼거리는 아래에 한참 서있었다 그 말이 내 머리에 닿을 것 같았다. (게시기간 : 2022.03.20. ~ 03.26.) 1298 휴식 김명배 멍하니 그냥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은 이 편안함, 외로움이 오히려 편안하다. 라디오를 켜 놓고 듣지 않을 때가 있다. 멍하니 그냥 앉아 있기가 편안하기 때문이다. 아직, 예정에는 없지만 말하지 않고 듣지 않고. (게시기간 : 2022.03.13. ~ 03.19.) 1297 고집 센 책 나영애 나, 라는 책 넘겨보면 백지가 많다 ‘경력’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고 생활 반경도 집과 하느님의 집, 동네 시장 정도이니 읽을거리가 서너 쪽뿐이다 그렇더라도 오래 묵은 책, 깊이 간직하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 마음의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겨 읽는 사람이 있다 극적인 반전도 없는 바람 빠진 내용이지만 굵고 검은 활자로 깊이 박혀 있는 발자국에 밑줄까지 쳐 가며 따라 읽는 나의 사람이 있다 고집 센 책을 옹고집으로 따라 읽는 단 한 사람의 독자가 있다 (게시기간 : 2022.03.06. ~ 03.12.) 1296 봄, 묻혀있던 것들의 환호 채재순 겨우내 묻어두었던 무를 꺼낸다 몇 년 동안 옷장 속에 넣어두었던 옷을 꺼낸다 20 여 년 보관했던 연서를 펼쳐든다 봄 이 다 묻혀있던 것들의 환호가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고 그것을 신호로 산에, 들에 꽃봉오리가 툭, 툭 터진다 (게시기간 : 2022.02.27. ~ 03.05.) 1295 어느 날, 문득 정이랑 눈을 떠보니 선인장 하나가 말라비틀어져 죽어 있었다, 왜일까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도대체 왜? 사람의 곁에서 훌쩍 떠나버린 것일까 무슨 잘못을 내가 저지른 것일까 누구에게 물어 봐야 하는 걸까 며칠 째 답답한 가슴만 움켜잡고 있다 아프면 병원으로 가듯 꽃집을 찾아갔다 "햇볕과 놀게 하셨나요? 물은 주셨습니까?" 이제 알았다, 나의 무식함 때문임을 나는, 나도 모르게 가해자로 살아왔던 것이다 나에게로 온 이후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던 것 선인장에게 물은 주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꿋꿋하게 나만 지금껏 잘 살아온 것이다 아아, 이를 어쩌나! 그래, 또 누군가에게 잘못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가시 없는 말이 그대에게는 비수일 수도 있었겠지 아아, 참 미안하다 그대여! 한동안 선인장 앞에서 성호를 긋고 두 손 가지런히 모아 눈을 감아본다 (게시기간 : 2022.02.20. ~ 02.26.) 1294 바람이 부는 날이면 최인찬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 흔적 없는 방황의 좌표 미로의 해답을 지고 바람의 친구가 되어 꿈결에 취해 자유 누리는 새처럼 날고 싶다 눈 뜨면 허무의 무게 별똥별처럼 쏟아져 내리는 현기증 되돌려져 원점이라 해도 잊혀진 허상의 늪 헤매는 꿈속이고 싶다 종소리 작아지듯 사라지는 망각의 끝을 돌아서 바람은 또다시 불어와 영혼의 창문을 열고 구름처럼 떠돌고 싶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게시기간 : 2022.02.13. ~ 02.19.) 1293 가끔은 이상문 가끔은 전등을 끄고 밤하늘 별을 세어 보자. 가끔은 잊혀져 가는 얼굴도 떠올려 보자. 가끔은 일기장에 눈물 한 방울도 떨어뜨려 보자. (게시기간 : 2022.02.06. ~ 02.12.) 1292 설날 아침 이진호 방에 손주가 들어와 아침 하늘을 빛으로 연다. 세배하고 일어 선 색동옷에서 떨어지는 빛 금빛가루들..... 묵은 수염 끝에 금빛가루를 달고 “이제 몇 살고” “......” “오오라 여섯 살” 대견해 하시는 할아버지 움푹한 볼 우물에 금빛가루를 퍼 담고 “내년에 할미하고 핵교 가야재” “......” 할미는 손주와 동학년 금방 하늘에서 내려 온 꽃잎에 싸여 싱그런 새 날 새 아침이 열린다. (게시기간 : 2022.01.30. ~ 02.05.) 1291 나에게도 김마리아 하루에 한 번쯤은 내가 나에게도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 잘 있었니? 뭐 해? 반가워 남에게도 하는 말 나에게도 해 보면 내 하루가 알차고 신날 거야 그래, 바쁘지만 하루에 한 번쯤은 내가 나에게 말을 걸어보자 다정하게. (게시기간 : 2022.01.23. ~ 01.29.) 1290 황태 날다 이서화 아가미를 벌리고 큰 추위들이 황태 덕장으로 실려와 겨울을 지날 때까지 온몸이 노릇하게 말라간다 내장을 비운 배 속엔 한파 특보가 가득 들어있다 추위를 먹고도 한 철을 날 수 있다는 경지 틈만 나면 뜨끈한 국물을 속에 넣기 바쁘고 그것도 모자라 한증막 열기에 몸 바깥을 데우는 사람들 크게 입 벌리고 이 겨울, 추위란 추위 모두 먹어버리겠다는 어느 지경에 이르러서 온몸 비린내 다 버리고 옅은 금빛 황태가 되겠다는 작심이 꾸덕꾸덕하다 깊은 산속을 찾아가던 바람과 준령을 넘어온 푸른 파도 소리가 맛으로 드는 황태 일렬종대의 덕장 사이로 지나가는 골바람, 차가운 햇빛 어느 투박한 뚝배기를 만나 쓰린 속 풀어줄 한 그릇 맛 보시報施가 녹았다 얼었다 한다 밤사이 또 눈이 내리고 아가미 가득 푸른 허공을 물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누군들 저 푸른 허공 한 그릇 배 속에 넣고 시원하게 속 풀어지지 않겠는가 겨울 내내 눈 한번 감지 않는 황태 더 이상 꼬리로는 살지 않겠다는 듯 말라비틀어진 후미 쪽으로 똑똑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다 하늘을 향해 입 벌리고 겨울 햇살 쪽으로 온몸 뒤틀며 날아오르고 있다 (게시기간 : 2022.01.16. ~ 01.22.) 1289 겨울 저녁 무렵에 박숙경 되돌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세상에서 되돌리고 싶은 무엇이 있다고 느껴질 때 그 막막함이랄까 쓸쓸함이랄까 헐벗은 나뭇가지의 흔들림처럼 내 마음 또한 헐벗은 채로 한없이 흔들리고 싶을 때 다 알고 있는 줄만 알았던 그대 마음 손톱 끝의 봉숭아 물 만큼도 모르겠던 날의 산꼭대기 벼랑에서 눈보라에 언 마음일 때 주머니 깊숙이 손 찔러 넣고 퇴근하던 길 담벼락 아래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던 아주 오래 전 친구의 모습처럼 가끔은 내게도 반가운 일이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겨울 저녁 무렵에 (게시기간 : 2022.01.09. ~ 01.15.) 1288 기적의 원천 이동영 모든 기적의 원천은 꾸준함이고, 모든 운명의 원천은 도전(부딪힘)이며, 모든 인연의 원천은 들이댐이다. 인생이 무료하고 일상의 변화가 간절한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바뀌기를 바라는가? 그곳으로 떠나지 않으면 그곳의 무엇도 맡을 수 없다. 시도하자, 끊임없이. (게시기간 : 2022.01.02. ~ 01.08.) 1287 새해의 기도 김덕성 저마다 소망이 이루어 밤하늘의 별처럼 새해의 우리 삶이 새날의 태양같이 빛나게 하소서 마음을 비운 겸손함으로 끝까지 정의를 지키며 부끄럼이 없는 삶으로 꽃향기 같이 향기롭게 하소서 나밖에 모르는 세상이 아닌 서로 베푸는 삶으로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같이 깨끗한 영혼으로 살게 하소서 새해에는 무엇보다 앞서 용서와 배려로 사랑의 마음이 흘러가는 화해(和解)의 강이 되게 하소서 (게시기간 : 2021.12.26. ~ 2022.01.01.)


3-26.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22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