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9 년
 

   2019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1148 안부 윤진화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게시기간 : 2019.04.28. ~ 05.04.) 1147 소풍 손정휴 어머니가 챙겨주신 말표 사이다 한 병 보자기에 꼿꼿이 세우고 선생님께 드릴 희망 담배 두 갑 그리고 촘촘한 김밥 한 줄이면 내 생애 가장 두둑한 목록이었지요 돌아올 땐 빈병 가득 노을 한 줄기 가방 속엔 찰랑이는 솔잎 바람 가슴 안엔 또래들 웃음 한 다발 살짝 부딪혔던 선생님의 검지 관절 온기의 기억만으로 닷새는 행복했었지요 (게시기간 : 2019.04.21. ~ 04.27.) 1146 라일락 향기 장미숙 달빛은 온 밤 길에 라일락 향을 뿌려 놓았다 골목 옆 집집마다 불꺼진 창 틈에도 향기를 밀어 넣는다 라일락 향은 내 머리카락에 배어 골목 어귀까지 따라 오다 달의 손에 끌려갔다 나는 사월의 밤아, 밤아, 하고 눈부신 라일락나무 아래서 그리움을 부른다 (게시기간 : 2019.04.14. ~ 04.20.) 1145 산을 오르며 강진규 산을 오르며 세상을 건너는 법을 배웁니다 사무치는 바람소리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가는 소리 들어봅니다 세월의 찌꺼기 이내 바람에 부서집니다 바람소리에 폭우처럼 떨어지고 내 마음에도 부서져 폭우처럼 비웁니다 산을 둘러앉은 한줄기 내일의 그리움을 밟고 한줄기 그리움으로 산을 오릅니다 구름처럼 떠서 가는 세월 속에 나도 어느새 구름이 됩니다 소리 없이 불러 보는 내 마음의 내일 적적한 산의 품에 담겨 내 생각은 어느새 산이 됩니다 산을 오르며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는 꿈을 꿉니다 홀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을 산의 그리움을 배웁니다 (게시기간 : 2019.04.07. ~ 04.13.) 1144 산벚꽃 그늘 아래 - 취밭목 권경업 저건 소리 없는 아우성 같지만 실은, 너에게 보이려는 사랑한다는 고백이야 생각해 봐 저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그것도 겨울밤을, 비탈에 서서 발 동동 구르며 가슴 졸인 줄 생각해 보라구 이제사 너가 등이라도 기대주니까 말이지 저렇게 환히 웃기까지의 저 숱한 사연들을, 고스란히 몸 속에 품어두었던 그 겨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생각해 보면, 뭐 세상 별것 아니지만 먼 산만 싸돌아다니던 너가 그저, 멧꿩 소리 한가한 날 잠시 옆에 앉아 낭낭히 시라도 몇 줄 읽어주며 "정말 곱구만 고와" 그런 따뜻한 말 몇 마디 듣고 싶었던 거라구 보라구, 봐 글쎄, 금방 글썽글썽해져 꽃잎 후두둑 눈물처럼 지우잖아 (게시기간 : 2019.03.31. ~ 04.06.) 1143 진달래를 보며 이미순 나지막한 산자락 듬성듬성 하던 진달래가 사방으로 피어나고 속내를 감추지 못한 여린 꽃잎은 바람이 지날 때마다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지난날 애틋하게 남아 있는 추억들이 이제는 너무나 아득해서 기억에도 없을 것이라고 이름마저 서먹해서 꿈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꼭 그럴 것만 같았는데 산마루를 향해 번지는 분홍빛 꽃잎처럼 내 안에 갇혀 있던 그리움도 함께 피어나고 있다. (게시기간 : 2019.03.24. ~ 03.30.) 1142 혼자 먹는 밥 오규태 찬밥 한 덩어리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한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눌 희망도, 서로 힘 돋워 함께 할 삶도 없이 단지 배만 채우기 위해 혼자 밥 먹는 세상 밥맛 없다 참, 살 맛 없다 (게시기간 : 2019.03.17. ~ 03.23.) 1141 이제야 마주한 사랑 김종성 먼 세월 홀로 지나다 이제야 마주한 사랑 앞에 그리움에 저려오는 가슴 별에 이르는 길을 가는 경건함으로 혼을 찍어 쓰는 당신을 향한 사랑 당신 그리다 멍울 진 가슴에 깊은 밤 홀로 흐르는 실핏줄 흐르는 실핏줄 멈춘 끝자락은 오늘도 알 수 없는 당신의 가슴 한복판 당신 그리다 하얗게 바스라지는 심장 애간장 녹는 그리움 담은 가슴에 넘치도록 떠오르는 당신의 옆얼굴 어둠 밝히는 미소가 피는 아스라한 당신 얼굴 위로 흐르는 내 안타까운 시간의 아픔 샛강 강변에 핀 버들강아지 솜털 위에 내려앉는 햇살처럼 향기로운 미소가 머무는 당신이 계시기에 긴 세월 홀로 지나다 이제야 마주한 사랑으로 조용히 일어서는 행복 목숨 다 하는 날까지 같이 가고 싶은 사랑. (게시기간 : 2019.03.10. ~ 03.16.) 1140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 심현보 나는 '온다'라는 말을 좋아해. 비가 온다. 눈이 온다. 아침이 온다. 봄이 온다.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들 있잖아. 도무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들. 아마 그런 모든 것들을 사람들은 '온다'라고 얘기하나봐. 사랑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 도대체 언제쯤일지 목을 빼고 기다리지 않아도 어느 순간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 아무리 막아보려 애쓰고 애써도 도무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 아무 준비 없이 소나기를 만나거나 단 하루 사이에 거짓말처럼 봄을 만나는 것처럼. (게시기간 : 2019.03.03. ~ 03.09.) 1139 내 집이 천국이다 김길남 근 한 달여를 밖으로 나가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세 나라에서 끼니때면 김치도 없는 밥을 먹고 날이면 날마다 일정 맞추느라 모닝콜 소리에 잠도 맘대로 못 자고서 이곳저곳 졸린 눈 비벼가며 돌아다니다가 어젯밤 집에 와 푹 잤더니만 이토록 평안함 있으랴 아 여기 내 집이 천국일세 천국 (게시기간 : 2019.02.24. ~ 03.02.) 1138 소금 김지나 마음 상하지 말라고 아침에 일어나 가슴 속에 가득 소금을 뿌리고 나섰다 살아가면서 제 맛 그대로 내고 살 수 없기에 처음처럼 신선한 채 남아 있을 수 없기에 쓰라린 줄 뻔히 알면서도 한 됫박 소금을 푸는 출근길 아침 오늘도 퇴근 무렵이면 간간하게 절은 가슴 위로 삶의 맛이 배어들었겠다 (게시기간 : 2019.02.17. ~ 02.23.) 1137 골목이라는 말 속엔 김지헌 골목이라는 말은 얼마나 따뜻한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누군가 내다버린 연탄재처럼 다친 무릎에 빨간약 발라주던 무뚝뚝한 아버지처럼 골목이라는 말 속엔 기다림이 있다 벚나무 아래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둠이 먹물처럼 번지는 시각 생 무를 깎아먹는지 창밖으로 도란도란 들리는 목소리 골목이라는 말 속엔 아이들이 있다 너무 늙어버린 골목이지만 여전히 몽환 같은 밤을 낳아 여자들은 열심히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쑥쑥 커서 누군가의 애인이 되어 역사를 이어가는 골목의 불멸 사소한 것들이 모여 사랑이 이루어지듯 때론 박애주의자 같은 달빛이 뒷모습까지 알몸으로 보여 주는 절망과 희망이 번갈아 다녀가는 골목 (게시기간 : 2019.02.10. ~ 02.16.) 1136 엄마가 된다는 것 이성이 어느 날 글쎄 내가 아이들이 흘린 밥을 주워 먹고 먹다 남은 반찬이 아까워 밥을 한 그릇 더 먹는 거야 입고 싶은 옷을 사기 위해 팍팍 돈을 쓰던 내가 아예 옷가게를 피해가고 좋은 것 깨끗한 것만 찾고 더러운 것은 내 일이 아니었는데 그 반대가 되는 거야 아이가 사달라고 하면 줄서는 것도 지키지 않아 예전에 엄마가 그러면 엄마! 핀잔주며 잔소리를 했는데 내가 그렇게 되는 거야 아이가 까무러치게 울면 이해할 수 없어, 아무데서나 가슴을 꺼내 젖을 물리는 거야 뭔가 사라져가고 새로운 게 나를 차지하는 거야 이런 적도 있어, 초록잎이 아이에게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이가 아픈 거야, 그래서 공터에 가서 풀을 베다가 침대 밑에 깔아주기도 했어 엄마도 태어나는 거야 (게시기간 : 2019.02.03. ~ 02.09.) 1135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게시기간 : 2019.01.27. ~ 02.02.) 1134 우리 닮아갈 때 세상은 아름답다 최영복 오늘도 너를 만날 거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한 거냐 언제부터 너는 내 눈 가까이 다가와 아주 천천히 조금씩 가슴 이곳저곳을 점령하더니 꿈을 꿔도 그 속에서 미소 짓는 너의 모습을 보이게 하더라 너도 이런 마음인 거지 그렇게 하나씩 닮아가는 우리 마음 수많은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거 맞지. (게시기간 : 2019.01.20. ~ 01.26.) 1133 산과 강은 한현정 산을 돌아 흐르는 강과 강에 제 모습을 비추는 산 항상 변함없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오랜 세월 흐르고 또 흘러 왔지만 강은 한 번도 같은 물을 담아 본 적 없었고 늘 말없이 그 강을 지켜봤던 산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새 움을 틔워 왔었지 산과 강은 변함없는 게 아니야 부지런히 제 할 일 다 하고 있었던 거야. (게시기간 : 2019.01.13. ~ 01.19.) 1132 나를 위한 기도 김도화 나 오늘 하루를 사는 동안 깊이 사랑하게 하소서. 내가 보낸 눈길 하나가 의미가 되기보다는 누군가의 눈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 오늘 하루를 사는 동안 진정으로 미소하게 하소서. 내가 건넨 말 한마디가 기쁨이 되기보다는 누군가의 슬픔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 오늘 하루를 사는 동안 겸허로 돌아보게 하소서. 내가 걸어간 발자국 하나가 희망이기보다는 누군가의 방황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 오늘 하루를 사는 동안 고요히 바라보게 하소서. 내가 본 그 시선 하나가 높고 푸른 하늘이기보다는 아픈 상처 가득한 내 벗임을 깨닫게 하소서! (게시기간 : 2019.01.06. ~ 01.12.) 1131 솔개 곽문연 낡은 부리가 빠질 때까지 부리로 바위를 쪼개고 있는 솔개를 보았다 솔개는 새로 돋은 부리로 늙은 발톱과 두꺼워진 깃털을 뽑아내고 새 발톱과 깃털을 세운다 생은 때로 제 살을 도려내야 다시 서는 것 아슬한 절벽을 지나 솔개가 산을 덮으며 산맥을 넘는다 (게시기간 : 2018.12.30. ~ 01.05.)


3-23.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9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