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5 년
 

   2015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974 먼 곳에의 그리움 전혜린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안다 그러나 동경과 기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너져 버린 뒤에도 그리움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는 새해가 올 때마다 기도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어떤 엄청난 일, 무시무시하도록 나를 압도 시키는 일, 매혹하는 일. 한마디로 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모험 끝에는 허망이, 여행 끝에는 피곤만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안다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만의 시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이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 텅 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게시기간 : 2015.12.27. ~ 2016. 1. 2) 973 인생은 꽃을 사는 것 손희락 누군가를 위해 한 송이 꽃을 샀다가 시들어 버렸다해도 그대여 기뻐하십시오 누군가를 위해 다시 꽃을 사서 기다리다가 말라 버렸다해도 그대여 춤을 추십시오 살아 숨쉬는 동안 수 없이 꽃을 샀으나 다 시들어 버렸다 해도 서러워 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인생은 그래도 꽃을 사는 것 향기로운 꽃 한송이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것 미련한 바보같이 손해 보는 삶 하늘이 주신 축복입니다 (게시기간 : 2015.12.20. ~12.26) 972 겨울이 오면 안다 박만엽 왜 사람이 낮아져야만 하는지 겨울이 오면 안다. 봄에는 한마음으로 여름에는 함께 일구어 가을에는 풍요해지지만 혼자만 높아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주는 사랑보다도 받기만 하는 사랑 높여 주는 마음보다 낮게 보는 마음으로 남들에게 상처를 주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상처를 받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겨울이 오면 그제야 안다. (게시기간 : 2015.12.13. ~12.19) 971 두 팔 크게 벌려 윤성완 살아 한 번 크게 고마운 이 가까이 있거든 두 팔 크게 벌려 힘껏 안아줄 일이다 살아가며 소중한 이 곁에 있거든 두 팔 크게 벌려 하트 한번 그려줄 일이다 사는 동안 어려운 이 알고 있거든 두 팔 크게 벌려 손 한번 꼬옥 잡아줄 일이다 죽기 전에 내 아는 이 안부 닿거든 두 팔 크게 벌려 이만큼 행복했노라 꼭 말해줄 일이다 (게시기간 : 2015.12. 6. ~12.12) 970 삶은 홀수다 김별아 사람들은 여전히 무리를 짓는 일에 열심이다 휴대폰이 울리지 않는 날에는 우울해지고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으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볼까봐 차라리 밥을 굶는다 그런 이들은 홀로 있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자유로운 일인지 알지 못한다 혼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기쁨과 그것을 통해 흥미로워지는 삶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라 그리워서 가만히 외로워져야 사람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사랑하기 보다 지나친 포만감을 경계하며 그리움의 공복을 즐기는 편이 낫다 삶은 어차피 홀수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롭거나 쓸쓸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테니까 (게시기간 : 2015.11.29. ~12. 5) 969 첫추위 나석중 ‘첫’이란 미지의 눈동자를 마주 보는 일이란 두렵고도 설레게 하는 일, 그런데 나에겐 첫 손님이 반갑고 막연한 첫추위조차 반갑습니다 갑자기 오신다기에 삼가 얼마나 맵고 찬지 마중 나왔더니 하루 밤새에 길 안팎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어제도 각별할 것 없이 걸어갔던 산길, 오늘은 길도 헐벗으면 춥겠다고 생각했겠지요. 마른 떡갈나무 잎, 졸참나무 잎이 서로 몸 잇대어 누비이불을 두껍게 덮어줬습니다 눈대중만큼은 조심해서 걸어도 발아래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는 서럽습니다. 서러워서 마음으로 긁어모아 다비를 드리며 훨훨 타오르는 하늘 올려다보니 거기에도 구름 이불 한 장 없는 살얼음장입니다. 내일은 더 춥겠습니다 (게시기간 : 2015.11.22 ~11.28) 968 길 위에서 이철성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가 말한다 "나의 조상들은 수 많은 여행을 통해서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난 지금 부서지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의 단단함이 날 아프게 한다 난 불행하다" 난 돌멩이를 주워 만지작거리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돌멩이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그 길 위에 있었다 (게시기간 : 2015.11.15 ~11.21) 967 짝사랑, 그 놈 이상용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접어야 하는데 이 못난 사랑은 주인의 말도 듣지를 않습니다 아닌데도 제 사랑이라 우기는 것도 힘든 일인데 자고 일어나면 제 마음은 다시 당신을 향해 있습니다 바보 같게도 그 못난 사랑은 누가 주인인지 아직도 모르나 봅니다 모진 말이라도 들었으면 차가운 눈빛이라도 받았으면 냉정하게 돌아서는 당신의 쌀쌀한 모습이라도 보았으면 그랬으면 이놈의 고집도 한 풀 꺾일 텐데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그놈도 서러울 텐데 저 닮아서 그런 것은 잘 참습니다 그놈 생각해서 당신이 타일러주시던가 아니면 그 놈 하나만 데려가 주십시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거 하나면 만족하니까요 (게시기간 : 2015.11. 8 ~11.14) 966 흔들의자 구재기 등을 기대고 앉아 있으면 세상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이 이토록 편안할 줄이야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그 물결이 출렁이면서 바다가 살아있다는 것이 보인다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은 것들도 한 번쯤 흔들리고 나면 정이 붙는다 흔들릴 때마다 하늘이 내려와 앉고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이 치솟다가 물속에 잠기기도 한다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안심이 된다 배 한 척이 수평선 위에 뜨기까지 얼마동안이나 육지를 밀어내며 흔들려 나아갔을까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는 세상에서 혼자서만 편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나를 본다 (게시기간 : 2015.11. 1 ~11. 7) 965 그리운 친구들 박정순 구멍 난 검정고무신을 움켜쥔 채 운동장을 종횡무진으로 치닫던 코흘리개 친구 여학생 고무줄놀이만 보면 끊고 다니던 개구쟁이 친구들 지금은 어디서 뭘 할까 빛바랜 플라타너스 낙엽사이로 조각난 달이 얼굴을 내밀면 가버린 추억들의 소리 아련히 들려온다 다시 그 순간들 소쿠리에 주섬주섬 담아보려 해도 술술 빠져버리는 시간들 잊혀진 추억들 한 움큼이라도 다시 붙잡고 놓지 않으련만 그 시절은 어디서 쑥부쟁이 꽃처럼 부스스 웃고 있을까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추억 (게시기간 : 2015.10.25 ~10.31) 964 가을 바람에 김세웅 가을 바람에 모든 것이 녹슨다. 매일 타고 내리던 엘리베이터도, 귀뚜라미의 노래도. 구름은 낮게 내려와 山의 이마를 흐려놓고 바람잡는다. 아, 저 구름처럼 모든 것은 장난처럼 시작되어 다짐했던 약속마저 녹슬게 하고 스스로도 녹슬어 주저앉는다. 엘리베이터도, 사랑도 입술도 칼도 녹슬고 잊어선 안될 슬픔마저도 이슬 맞은 자리마다 녹슨다. 녹슬지 않는 유일한 철로처럼 가을 해가 지나는 하늘의 길은 저리도 빛나는데 땅에선 모든 것이 장난처럼 시작되어 주저앉는다. (게시기간 : 2015.10.18 ~10.24) 963 가을 운동회 권순진 종이만국기 팔락팔락 줄에 걸린 학교 운동장 집단체조와 달음박질을 위해 그어진 횟가루 선은 백설탕처럼 반짝였고, 우리는 이날이 오기를 기다림의 눈깔사탕을 매일 빨고 녹였다 허술한 맞배지붕 형상의 광목 천막 아래는 어른들의 잔칫집, 그러나 우리에겐 야전사령부 하얀 모자에 호루라기 하나씩을 목에 건 선생님은 영락없는 야전 지휘관 그날은 내 바지춤에도 돌돌 감긴 십 원짜리 지폐가 내 자존을 한껏 치켜세웠고 청군이 이기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백군 이겨라 목이 다 쉬도록 소리쳤으며 뜻도 모를 '브이아이시티오알와이'를 외쳐댔다 김밥과 사이다로 대표되는 성찬 김밥으로 행복했던 위장을 사이다로 헹구었다 가장 먼저 배운 수준 높은 한자가 얇은 공책 표지에 파란 스탬프로 찍힌 "賞"이란 글자 몇 권 수중에 넣고 나면 세상 다 거머쥔 듯 의기는 양양했고 기를 쓰고 모래주머니로 터트린 달 바가지 속에는 우리들의 꿈들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게시기간 : 2015.10.11 ~10.17) 962 가을체로 읽는 저녁 허영숙 읽어야 할 것이 많은 가을의 밑줄은 저리 붉은가 저물 무렵 구름과 구름의 붉은 행간 속으로 새떼들이 일렬로 날아간다 지금 들녘은 황금빛 밀물이 지는 물결체 제 살끼리 부대껴도 서로 상처 내지 않는 갈대체 몸 안의 푸른 물기 모조리 비우고 스스로 떠날 줄 아는 낙엽체의 문장 획과 획 사이에 쓰여 진 가을을 정독하고 서서 어딘가로부터 여기로 흘러 와 저녁을 건너 또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새들의 행보를 읽는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 숨결도 서로 부대끼며 흔들리다가 가을저녁처럼 저물다가 언젠가는 생의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분명히 읽고 지나는 저녁 (게시기간 : 2015.10. 4 ~10.10) 961 홀로 무엇을 하리 홍관희 이 세상에 저 홀로 자랑스러운 거 무어 있으리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는 거 무어 있으리 흔들리는 풀잎 하나 저 홀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서있는 돌멩이 하나 저 홀로 서있는 게 아니다 멀리 있는 그대여 행여 그대 홀로 이 세상에 서있다고 생각하거든 행여 그대 홀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우리 함께 어린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자 밥그릇 속의 밥알 하나 저 홀로 우리의 양식이 될 수 없고 사랑하는 대상도 없이 저 홀로 아름다운 사람 있을 수 없듯 그대의 꿈이 뿌리 뻗은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며 살아있는 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나니. (게시기간 : 2015. 9.27 ~ 10. 3) 960 사랑할 때는 윤준경 사랑할 때는 불도 끄지 못했네 사랑할 때는 잠도 들지 못했네 사랑할 때는 꽃도 못보고 사랑밖에는 아무것도 못했네 사랑 엎지를까봐 모로 눕지도 못했네 뒤도 돌아보지 못했네 그대만 보고 가다가 넘어진 줄도 몰랐네 (게시기간 : 2015. 9.20 ~ 9.26) 959 산에 간다 윤오성 거기 있어 산에 간다지만 산은 내 안에 있다 정상을 밟고도 아직 가야할 산이 많다고 하고 초입 약수터까지 가고도 산에 갔다왔다 한다 심지어 산에 가야지 하고 마음먹은 것까지 산에 간다고 말한다 각기 모습을 달리할 뿐 누구나의 마음 속에 있는 산 가슴 속에만 담아두었던 산을 오늘은 저만치 던져놓고 먼 산 보듯 먼 산 보듯이 해야겠다 산에 들었으면 한번은 능선을 타야 한다지만 한계를 알고 포기하는 것 또한 아름답기에 산에 간다, 간다 하면서 먼 산 보듯 하는지도 (게시기간 : 2015. 9.13 ~ 9.19) 958 산다는 것 최재환 산다는 것은 맺힌 매듭을 푸는 일이다. 그것은 바램이다. 죽는 날까지 아슴프레 떠오르는 지평을 향해 꾸준히 신발을 고쳐 신는 영원한 바램 그것이다. 부모형제와 이웃들. 또 다른 나와의 조우 오가다 마주치는 눈길도 희노애락의 어느 길목에서 무심코 버린 한숨도 삶을 확인하는 소중한 인연이다. 쉽게 맺힌 매듭도 쉽사리 풀리진 않는 법. 풀리지 않는 매듭을 풀기 위해 더욱 열심히 발버둥 치다보면 어느덧 해는 서산에 구르고 아픔은 조용히 닫히는 것을. 설혹 풀렸달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굳게 맺히는 매듭들을 자꾸자꾸 풀고 맺는 세상살이. 산다는 건 결국 풀린 매듭을 다시 맺는 일이다. (게시기간 : 2015. 9. 6 ~ 9.12) 957 바람 속을 거닐다 이태관 그때 나는 바람 속을 걷고 있었지 결기를 세운 바람은 먼 대숲으로부터 불어와 대추나무의 가지를 흔들고 여린 풀들 땅에 눕게 하였네 옷자락이 내 몸을 떨치려 하였네 검은 비닐이 허공을 날아 일식이 일어났지 새도 짐승도 두려움에 떨며 우리 속으로, 어미의 품으로 파고들었네 바로 그때, 나는 보았네 살아있는 나무라야 바람에 허리 굽힌다는 것을 바람이 세차도 죽은 나뭇가지는 결코 제 몸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영혼이 빠져나간 나무는 다만 온몸이 소리통 되어 울 뿐, 살아간다는 것은 조금씩 허리 굽혀 가며 사는 것임을 알았네 지나온 길 잊지 않기 위해 얼굴에 주름살 하나 새기며 (게시기간 : 2015. 8.30 ~ 9. 5) 956 하루에 한번쯤은 박석구 하루에 한번쯤은 혼자 걸어라 세상 이야기들 그대로 놔두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라. 말이 되지 말고 소가 되어 나에게 속삭이며 혼자 걸어라. 괴로움이 나를 따라오거든 내가 나에게 술도 한잔 받아주고 나를 다독거리며 혼자 걸어라 나무도 만나고 바람도 만나면 마음은 어느 사이 푸른 들판 잊었던 꽃들이 피어나고 고향 내음새 되살아나 내 가슴을 울리는 나의 콧노래 하루에 한번쯤은 이렇게 나를 만나며 살아가거라 (게시기간 : 2015. 8.23 ~ 8.29) 955 보석밭 성찬경 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알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 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 놓은 듯 일대 장관이었다. 또 가만히 응시하니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빛으로 사방 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이러한 돌밭을 나는 걷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의 밭이었다. 홀연 보석밭으로 변한 돌밭을 걸으면서 원래는 이것이 보석밭인데 우리가 돌밭으로 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것 모두가 빛을 발하는 영원한 생명의 밭이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다. (게시기간 : 2015. 8.16 ~ 8.22) 954 달전을 부칩니다 신혜경 달전을 부칩니다 신혼 때부터 즐겨 먹던 것입니다 애호박을 썰어 부친 것을 달전이라 합니다 달처럼 둥글다고 해서이지요 비탈진 언덕 호박꽃 같은 신혼집에서 벌처럼 붕붕대며 늦은 저녁과 함께 부쳐 먹곤 했습니다 남편은 달전을 먹으며 호박처럼 둥글둥글 살아가자고 했습니다 보름달처럼 환하게 살자고도 했습니다 달덩이 같다는 말은 때때로 뚱뚱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는데 내 얼굴이 보름달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둡고 험한 삶의 언덕 더듬더듬 넘을 때마다 달전 부쳐놓고 남편을 기다립니다 하늘이 달을 띄워 밤길 열어주듯 밥상 가득 달을 띄웁니다 사시사철 애호박이 있어 든든합니다 여름 한철 나던 것보다 맛은 덜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전을 부칠 수 있으니까요 사는 일이 호박덩굴처럼 엉켜버린 오늘은 그믐입니다 시장에서 가장 잘 생긴 애호박을 골라 이 어둠 밝힐 달전을 부칩니다 (게시기간 : 2015. 8. 9 ~ 8.15) 953 들꽃편지 채은서 그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바람이 흔들어 놓은 들꽃 무리들을 바라보며 마음에서 피어나는 그대를 향하는 고운 말 한마디 정성껏 가꾸어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습니다 부르면 달려와 줄 것 같은 날들을 떠나가는 계절의 갈피 속에 묻으며 여린 꽃잎마다 그리운 마음을 또박또박 옮겨적고 있으면 들판은 또 한번 환한 동화나라 그대를 그리워하는 일이란 이렇듯 무지개빛 세상을 꿈꾸며 나도 모르게 행복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대 푸른 창을 한 번 열어 보십시요 등뒤에서 그리워하던 만큼 꼭 그만큼만 한세상 들꽃처럼 낮게 흔들려 그대 마음에 적힌 따스한 말도 이제는 다정하게 읽고 싶습니다 (게시기간 : 2015. 8. 2 ~ 8. 8) 952 천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김난도 뜨거운 햇볕 아래 발밑에 진하게 붙어 있는 그림자를 볼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 그림자만큼이나 떼어내기 힘든 운명 같은 굴레가 있다고 어떤 몸부림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독한 아픔을 갖고 있다고.. 이것들은 어느 순간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견뎌내는 것이다 한순간씩, 하루씩 살아가고 버티다보면 그 징그럽던 운명의 굴레도 생명의 수레바퀴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꼭 하루씩만 살아내자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워야 할 주문이 있다 독실한 신도가 몸을 접듯 간절하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되뇌어야하는 주문이, 그러다보면 어느덧 자신과 그 숙명을 바꾸어줄 바로 그 주문이. (게시기간 : 2015. 7.26 ~ 8. 1) 951 엄마 김주대 옛날부터 우리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도 이제 꽤 나이 들었다 생각하며 찾아갔는데 홀로 사는 엄마는 어느새 또 나보다 나이가 많아 있었다 흰머리 이고 허위허위 저만큼 가신 당신 나이를 퍼뜩 따라가 동무해 주지 못하는 그것이 오늘 슬펐다 (게시기간 : 2015. 7.19 ~ 7.25) 950 나무에게 말걸기 박두규 나무가 되지 않으면 나무와 말할 수 없다는 것인가. 나무는 말이 없다. 50년을 살면서 내가 제대로 말을 건 사람은 몇 명이던가. 그러고 보니 나는 아내에게도 아직 말을 걸지 못했다. 20여 년 동안 함께 살면서도 나는 아내가 되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되지 못했고 선생이, 친구가, 시인이 되지 못했고 나무가 되지 못했다. (게시기간 : 2015. 7.12 ~ 7.18) 949 모퉁이를 돌고 싶다 김옥남 길을 걷다 보면 등성이 굽어 휘어져 도는 길 모퉁이를 돌고 싶다 앞으로만 치닫는 숨 가쁘지 않는 질주 둥근 듯이 휘인 쉼표가 나는 좋아 그 곳 굽이를 잠시 돌면 술레 피해 숨어들던 유년의 추억 하나 여태 만나지 못한 누군가와 인연 하나 보물처럼 남아 있을 모퉁이를 돌고 싶다 (게시기간 : 2015. 7. 5 ~ 7.11) 948 마음은 무게가 없다 윤동재 안동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할머니 한 분이 자기 키보다 더 큰 배낭을 짊어지고 거기다가 두 손에는 또 보따리까지 들고 내린다 배낭에는 마늘이 들어 있고 보따리에는 애호박 몇 개, 고추와 참깨가 들어있다 아들네 집인지, 딸네 집인지 가는가 보다 지하철 강변역 쪽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할머니 이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들고 가시려고 가져오셨어요?“ 하며 보따리를 모두 건네받아 들어드리자 “마음을 담아 왔지. 별거 아니야” 한다. 그러면서 마음은 무게가 없다 한다 마음은 아무리 담아와도 무겁지 않다고 한다 마음은 아무리 담아와도 힘들지 않다 한다. (게시기간 : 2015. 6.28 ~ 7. 4) 947 저녁 엄원태 비 그치자 저녁이다 내 가고자 하는 곳 있는데, 못 가는 게 아닌데,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저녁이다 저녁엔 종일 일어서던 마음을 어떻게든 앉혀야 할 게다 뜨물에 쌀을 안치듯 빗물로라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리라, 하고 앉아서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저녁이다 종일 빗속을 생각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젖어가는 날개 가진 것들의 젖어가는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겠다 저녁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늙어가는 어떤 마음과 다름없는 것을... 뽀얗게 우러나는 마음의 뜨물 같은 것을... (게시기간 : 2015. 6.21 ~ 6.27) 946 풀꽃으로 우리 흔들릴 지라도 김현숙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바로 가누기 힘들지라도 햇빛과 바람 이 세상맛을 온 몸에 듬뿍 묻히고 살기는 저 거목과 마찬가지 아니랴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낮은 몸끼리 어울릴지라도 기쁨과 슬픔 이 세상 이치를 온 가슴에 골고루 적시며 살기는 저 우뚝한 산과도 무엇이 다르랴 이 우주에 한 점 지워질 듯 지워질 듯 (게시기간 : 2015. 6.14 ~ 6.20) 945 항아리 최재영 처음 나는 겸손한 흙이었다. 진흙 층층이 쌓인 어둠을 밀어내고 누군가와 끈끈하게 얽혀진 숨결 불룩한 옆구리를 뽐내며 어느 집의 연륜을 저장하는, 도대체 우화를 꿈꾸지 않았건만 나는 햇살을 움켜쥐고 내 안의 목록을 삭여내는 중이다 아주 오랫동안 해마다 비밀스런 내력을 보태며 맛과 맛, 그 아귀를 맞추는 시간들은 서로 맥박을 주고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때마다 번쩍이는 세월의 빗금하나 그어지고 그리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짜고 싱거움에 길들여진 것들 손꼽아 여닫히던 햇살들 점점 순도 높은 깊은 맛을 우러낸다 내게 저장된 세월을 프라스틱 통에 담아가는 사람들,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으며 겸손한 덕담 하나씩 건네준다. (게시기간 : 2015. 6. 7 ~ 6.13) 944 나무와 나무와 나무 사이는 김병규 나무는 우리에게 얼마나 떨어져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바람이 지나는데 걸림이 되지 않을만큼, 산새들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가는데 힘들지 않을만큼, 내려오는 햇살에게 가림이 되지 않을만큼 키 낮은 나무의 꽃들에게는 밤하늘의 볕을 못 보게 가리지 않을만큼 나무는 또 우리에게 얼마나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길 하나를 낼 수 있을 만큼, 멀리서 날아온 풀씨들이 땅까지 내려갈 수 있을 만큼, 나무와 나무가 서로 손잡고 산을 에워쌀 수 있을 만큼 (게시기간 : 2015. 5.31 ~ 6. 6) 943 사랑니 정양 어쩌자고 늙발에 사랑니가 난다 새로 나는 게 아니고 숨어 있던 게 드러나는갑다고 치과의사는 잠시 어이없고 나는 뭘 들킨 것처럼 욱신거리는 것도 계면쩍다 가슴에 묻어둔 눈물이 하늘에 별처럼 글썽거리는 밤도 있었거니 숨기고 감추고 묻어두어도 마침내는 이렇게 드러나는가 (게시기간 : 2015. 5.24 ~ 5.30) 942 중심을 수선하고 한순 느티나무 그늘 아래 장난감 같은 집으로 허리를 굽혀 들어가면 내 삶의 감찰자 같은 이가 신발을 받아든다 마치 위장이나 간 혹은 마음속을 들여다보듯 신발을 살피다가 여지없이 거꾸로 뒤집어 삶의 예각을 드러낸다 건너편 은행 회전문은 사람들을 차례차례 삼키더니 단물 빠진 고단한 발만 토해낸다 뒷축을 수선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영혼의 무게에 눌려 한쪽으로 기울게 달았던 내 받침대는 뽑혀 나간다 반듯하게 중심이 잡힌 새 구두굽이 끼워지면 이제는 잘 걸어보리라 다짐하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나에게 중심을 외쳐주는 저이는 누구인가? 잠깐 꿈을 꾼 듯 내 중심을 수선하고 돌아보니 느티나무는 날개를 펄럭이며 심호흡을 토해낸다. (게시기간 : 2015. 5.17 ~ 5.23) 941 햇빛 좋은 날 권영상 엄마가 널어놓은 베란다 건조대 위의 촘촘한 빨래들. 아빠 와이셔츠 어깨에 내 런닝 팔이 슬며시 기대어 있고 형 티셔츠에 내 한쪽 양말이 마치 형 배 위에 올려놓고 자는 내 무엄한 발처럼 느긋이 얹혀있다. 엄마 반바지에 내가 묻혀놓은 파란 잉크펜 자국. 건조대 위에서 보송보송 마르는 촘촘한 빨래들. 빨래 마르는 것만 봐도 안다. 햇빛 좋은 날의 우리 가족. (게시기간 : 2015. 5.10 ~ 5.16) 940 메주 박라연 생콩의 시절은 이제 잊은 지 오래 혼자서 가고 싶었던 길도 놓은지 오래 우리는 이름을 잃고 삶아져서는 함께 섞여서는 함경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복자네 아랫목에서 다시 태어났다 해탈의 곰팡이 피어날 때까지 몸을 썩히는 일 공중에 매달려서 햇살과 바람 시간의 일부가 될 때까지 몸을 말리는 일을 배운다 즐거운 입맛을 위해 이름을 잃고 어디선가 매달려 살았을 비릿한 내 사랑, 콩 우리들의 안 잊히는 이름, 의 생무덤 (게시기간 : 2015. 5. 3 ~ 5. 9) 939 이사 서영식 보잘 것 없는 세간 사이 행운목 한 그루 실려간다 누렇게 말라죽은 나무를 세간이라 싣고 가는지 식구라 싣고 가는지 담요까지 말아 살뜰하게 싣고 간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옮겨가는 집에서는 운이 트여 죽은 나무에도 백년에 한번 필까말까 하는 꽃이 필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죽어도 버릴 수 없는 것 그게 행운이란 말이다 (게시기간 : 2015. 4.26 ~ 5. 2) 938 마음의 방 김수우 방문을 열면 그 너른 들판이 펄럭이며 다가와 내 이야기를 듣는 벽이 된다 그저 떠돌던 바람도 큰 귀를 열고 따라 들어온다 커피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노라면, 나는 잊혀진 왕족처럼 적막한 고독감과 함께, 잃을 뻔한 삶의 품위를 기억해낸다 마음의 4분의 1은 외롭고 또 4분의 1은 가볍고 나머지는 모두 무채색의 따뜻함으로 차오른다 두어 개 박힌 대못 위에 수간 한 장과 거울을 걸어두는 것, 그리고 몇 자루의 필기구만으로 문명은 충분한 것임을 깨닫는다 마음 속이 작은 방만큼만 헐렁했으면. (게시기간 : 2015. 4.19 ~ 4.25) 937 소박한 소망 공혜경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고 보니 왠만한 일엔 끄떡없이 단단해졌다. 크지 않은 사건에는 놀라지 않게 됐고 그리 욕심도 없고 그리 미운 사람도 없다. 날 뼈저리게 사무치게 하는 일도 없고 날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일까...... 어느 때는 한꺼번에 슬픔이 밀려 올 때가 있다. 점점 강하고 단단해지는 내 자신이 무서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무표정한 내가 가여워 어루만지고 싶을 때도 있다. 거울 앞에선 내 모습이 여전사로 비춰지는 오늘... 엄마가 아닌, 작은 여인이고 싶은 소박한 소망 하나 가져본다. (게시기간 : 2015. 4.12 ~ 4.18) 936 청솔 그늘에 앉아 이제하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빛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 해도 좋아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아니 그냥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게시기간 : 2015. 4. 5 ~ 4.11) 935 손맛 이명윤 식당에서 찌개를 먹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누군가 이십 년 된 손맛이라 일러 주었다 끄덕끄덕 주방 아주머니 손을 훔쳐보았다 식당 마루에 세 살 남짓 아이가 걸어가더니 화분의 몽돌을 집어 든다 누구 손맛인지 예쁘게 키웠다 매일 기저귀 갈아 주고 이불 덮어 주고 먹여 주고 닦아 주고 업어 주고 쓰다듬으며 키웠을 손을 생각해 보는 것인데 몽돌이 떼굴떼굴 구른다 부드러운 저 몽돌은 어느 바닷가 파도의 오래된 손맛이다 후식으로 나온 사과도 비와 바람과 햇빛의 손맛이고 사과나무 돌보던 농부의 손맛이다 손바닥을 펴 본다 손 안의 세상이 미지의 눈으로 꿈틀거린다 길가 벚나무의 수많은 손가락이 꽃눈을 밀어 올리던 맛있는 봄날 전화가 왔다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묵그라 수화기에서 나온 어머니 손이 물비늘처럼 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게시기간 : 2015. 3.29 ~ 4. 4) 934 김성근 매듭을 풀며 삽니다. 가슴에 응어리진 매듭도 이미 재가 되어버린 매듭도 한 올씩 풀며 삽니다. 어느 한 순간도 두 개의 매듭을 풀지 못하고 한 올씩 풀며 삽니다. 완전히 동여진 매듭이 조금씩 조금씩 끈으로 연결되는 희망으로 삽니다. 영원히 다 풀 수 없는 매듭을 다 풀 희망으로 삽니다. (게시기간 : 2015. 3.22 ~ 3.28) 933 빈 화분 김점용 베란다에 빈 화분이 하나 오래 전부터 놓여 있다 그동안 실어 나른 목숨이 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하면 마흔 넘게 나를 옮겨 담은 화분도 아득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가족, 학교, 군대, 사랑, 일터, 오 대~한민국!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는지 빈 화분, 그 오랜 공명이 오늘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간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게시기간 : 2015. 3.15 ~ 3.21) 932 인연 박재근 저 분열된 봄비의 알갱이 속에 전생의 내가 있었을지도 몰라 풀 잎사귀 위로 구르고 흘러 흘러 가다가 잠시 굽이친 흔적이 당신인지도 몰라 어쩌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시공의 어느 끝에서 머물다가 잠깐 왔다가 나는 길목인지도 몰라 당신이나 나나 한번 인연이 되어 진 것도 끝내는 붉은 단풍이 지듯 그렇게 허무한 것인지 몰라 (게시기간 : 2015. 3. 8 ~ 3. 14) 931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이원규 자꾸 넓어지고 더 빨라지는 동안 길 위에서 길을 잃고 인간의 길 위에서 죄 없는 야생동물들이 죽어갑니다. 이제 남은 것은 길을 지우는 일. 물고기는 헤엄을 치며 저의 지느러미로 물속의 길을 지우고, 새는 날며 저의 깃털로 공중의 길을 지우지요. 마침내 나도 길을 지우며 처음처럼 가리니 그대 또한 길이 아닌 곳으로 천천히 걸어서 오시기 바랍니다. (게시기간 : 2015. 3. 1 ~ 3. 7) 930 더 멀리, 더 높게, 더 깊이 오우영 왼손을 펴고 한 뼘을 재어 봐 10 cm도 안 되는 짧은 길이지? 하지만 난 고만큼 더 멀리 바라볼 테야.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그 다음엔 고만큼 더 높게 뛰어볼 테야. 푸른 하늘이 내려오도록 마지막엔 고만큼 마음 속 웅덩이를 깊이 파야지. 내 꿈이 그 안에서 더 크도록 내가 자라면 고 한 뼘도 따라서 자랄 거잖아? (게시기간 : 2015. 2.22 ~ 2.28) 929 은수저 최동호 굽은 허리 이제는 펴지 못해 이빨 빠진 내 생애는 돌이킬 수 없어 할머니는 닳은 은수저를 내려놓으며 한숨처럼 말했다 네 인생은 구부리지 말고 제대로 살아가 보렴 (게시기간 : 2015. 2.15 ~ 2.21) 928 어깨 위로 떨어지는 사소한 편지 이기인 균형을 잃어버리고 있는 내가 당신의 어깨를 본다 내일은 소리 없이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나는 초조를 잃어버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더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소처럼 미안하게 걸어 다니는 일이 이어지지만 끝까지 정든 집으로 몸을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닮아가는 구두 짝을 우스꽝스럽게 벗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밤늦게 지붕을 걸어다니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껴안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벽에 걸어놓은 옷에서 흘러내리는 주름 같은 말을 알아듣고 벗어놓은 양말에 뭉쳐진 검정 언어를 잘 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중심을 잃어버린 별들이 옥상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뒤척이는 불빛이 나비처럼 긴 밤을 간다 (게시기간 : 2015. 2. 8 ~ 2.14) 927 모험은 시작되었다 김영안 사람들 앞에서 웃는다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은 그에게 속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받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실망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노력한다는 것은 실패할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그러나 모험을 감행되어야 한다. 모험하는 않는 이들은 그 순간의 아픔이나 고통을 피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며, 변화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으며, 사랑할 수 없고, 진정으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시기간 : 2015. 2. 1 ~ 2. 7) 926 서안나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않는 곳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서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게시기간 : 2015. 1.25 ~ 1.31) 925 아버지의 거울 노두식 두 아이를 무등 태우고 살면서 발에 밟히는 세상이 만만찮은 풍랑임을 알았다 내 아이처럼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나도 별을 만지며 놀았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수평이었고 수평의 맑은 거울이었다 그 시절 발 아래에선 천지개벽 같은 태풍도 불었음직하건마는 거울 밑에 감추어 둔 아버지의 한쪽 세상을 까막눈이 나는 오래도록 몰랐었다 어깨의 물매가 뜬금없이 기우는 날이면 나는 내 아이보다 아버지를 아버지의 거울을 그래서 쓸쓸히 그리워하는 것이다 (게시기간 : 2015. 1.18 ~ 1.24) 924 내가 좋아하는 말 최동희 넘쳐 나는 말들 중에서 꼭 몇 마디만 골라야 한다면 이런 말을 고르고 싶다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고 아무리 써도 변함이 없어 자꾸만 쓰고 싶어지고 쓸 때마다 그 말처럼 돼 버리는 말 생각만으로도 웃음 절로 나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든든해지고 소리 높이지 않아도 말할 수 있고 언제 들어도 가슴 두근거리는 말 사람들에게서 처음 배워 사람들 속에서 마지막까지 쓰고 싶은 한 번쯤은 일부러라도 쓰고 싶은 그래서 남들도 좋아하는 말 " 우리 " " 사랑해요 " 이런 말을 고르고 싶다 (게시기간 : 2015. 1.11 ~ 1.17) 923 나의 작은 행복 하원택 나의 작은 행복은 내 맘 읽어주는 당신의 목소리에 있고 나의 작은 행복은 무릎 꿇은 당신의 새벽기도 속에 있고 나의 작은 행복은 살짝 건내준 당신의 작은 메모지에 있고 나의 작은 행복은 앞만 보고 달리는 나를 잠시 멈추게 만든 당신의 작은 손에 있고 나의 작은 행복은 살며시 내 어깨에 머무는 당신의 머리결에 있다 (게시기간 : 2015. 1. 4 ~ 1.10) 922 새해엔 새 마음의 눈으로 이정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새해 새 아침에 우리는 그 길을 새로이 가리라 세상에 뜻 아닌 것이 없고, 새롭게 보면 새 소식이 아닌 게 없으리라 세상에 새 것만이 있는 게 아니라 새 눈으로 보면 낡은 것도 새 것이 되리라 새해엔 새 눈으로 천사처럼 착하고 아름답게 새 마음의 눈으로 다시 보리라 새 마음 새 뜻으로 너와 내가 소통하리니 우린 서로에게 새 소식이 되리라 새해에 새 길을 나서며 새롭고 뜻있는 사람이 되리니 새해에는 더욱 서로 사랑하리라 (게시기간 : 2014.12.28. ~2015. 1. 3)

3-19.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5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