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4 년
 

   2014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922 새해엔 새 마음의 눈으로 이정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새해 새 아침에 우리는 그 길을 새로이 가리라 세상에 뜻 아닌 것이 없고, 새롭게 보면 새 소식이 아닌 게 없으리라 세상에 새 것만이 있는 게 아니라 새 눈으로 보면 낡은 것도 새 것이 되리라 새해엔 새 눈으로 천사처럼 착하고 아름답게 새 마음의 눈으로 다시 보리라 새 마음 새 뜻으로 너와 내가 소통하리니 우린 서로에게 새 소식이 되리라 새해에 새 길을 나서며 새롭고 뜻있는 사람이 되리니 새해에는 더욱 서로 사랑하리라 (게시기간 : 2014.12.28. ~2015. 1. 3) 921 삶의 길목에서 박영란 낮 달이 남기고 간 자리에 어둠이 내리면 숨가쁜 하루를 내려놓고 한 입, 세월을 베고 눕는다. 돌아보면 지난한 삶 속에 일그러진 연습도 없이 던져진 연극 무대에 어설픈 풍각쟁이의 모습으로 달려온 시간들 내 나이 반쯤 접힌 인생의 길목에 돌아보니 더 잘할 수 있었다는 변명만 늘어놓게 될 심판대 앞에서의 초라한 내 모습 반듯한 길을 가고 싶었다 훌륭한 연주자가 되어 돌아서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었다. 저만치 보이는 문안에 들어서기까지 아직은 달리고 싶다. 마지막 무대에 혼신(魂身)의 힘을 다해 열기를 토해내는 주인공처럼.... (게시기간 : 2014.12.21. ~12.27) 920 참 좋은 사람 이선형 미더움이란 변하지 않는 가슴이다 긴 겨울 참아주고 따뜻한 햇살 담아 꽃을 안겨주는 그런 사람 그늘 진 마음 쪽빛하늘처럼 맑게 해주는 사람 비바람 길 달빛 외로움 같이 걸어 준 사람 가시 같은 새장에서 푸른 미래 날개 하는 자유를 아는 사람 곧은 나무처럼 곁을 지켜주는 사람 참 좋은 사람 (게시기간 : 2014.12.14. ~12.20) 919 이욱환 거친 돌에도 속을 보면 여러 가지 꽃들이 박혀있다 단지 굳어 있을 뿐 조금만 다독이면 아름답게 피어난다 돌 속에도 혈관이 있다 조금만 녹이면 붉은 피가 흐르리 서로 어두워 보지 못한 꽃잎 따뜻한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 돌도 피가 흐르고 꽃이 핀다 돌이 뜨거워지면 더 오래 오래 열기를 간직한다 (게시기간 : 2014.12. 7. ~12.13) 918 포장마차 고종만 첫눈이 내리는 날 여인네 눈웃음이 예쁜 포장마차에서 너와 나 함께 마주앉아 한 잔의 술로 인생을 달래 보자꾸나. 모든 것 다 떨쳐버리고 진정한 너와 나로 만나 주거니 받거니 거나하게 마셔보자꾸나. 어제의 일들을 안주 삼아 마시고 또 퍼마시고 우리 함께 밤새도록 취해보자꾸나. 그리고는, 슬픈 일 아픈 일 다 토해내고 텅 빈 그곳을 우리의 우정으로 가득 채워보자. (게시기간 : 2014.11.30. ~12. 6) 917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원재훈 낙엽에 놀라 하늘을 본 어느 날이였다. 찬바람 몰려왔다 갑자기 거친 바람에 창문이 열리듯, 낙엽은 하늘을 듬성듬성 비어 놓았다. 그것은 상처였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간이역에는 기차가 오지 않아 종착역이 되었다. 모두들 바삐 서둘러 떠나고 있다. 나의 우체통에는 낙엽만 쌓여 가고 하늘은 상처투성이의 어둠이였다. 밤엔 별들이 애써 하늘의 아픔을 가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텅 빈 주머니에는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주소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이름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마음을 볼 수가 없다.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화장실에서 읽는 시 (게시기간 : 2014.11.23 ~11.29) 916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유홍준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군 평생 누구에게 발톱을 내밀어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단 한번도 발톱을 깎아주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발톱을 예쁘게 깎아주는 사람은 목덜미가 가늘고 이마가 예쁘고 속눈썹이 길다더군 비가 오는 날이면 팔베게도 해주고 지짐도 부쳐주고 칼국수도 밀어준다더군 그러니 결혼을 안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싸움을 할 수가 있겠어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고양이에 가깝고 공에 가깝고 뭉쳐놓은 것에 가깝다네 그는 가장 작고 온순하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게시기간 : 2014.11.16 ~11.22) 915 아프게 울어본 사람만이 알리라 이민숙 아프게 울어 본 사람만이 알리라 아픔은 고작 작은 상처에 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픈 가슴을 새까맣게 태워 본 사람은 알리라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통증에 몸서리친다는 것을.. 바늘 귀처럼 얇은 상처가 파편처럼 송송 커다랗게 심장에 박혀 가슴을 뚫었다 편두통처럼 찌르던 해일이 밀려온다 깊게 파인 상처의 긴 늪 몸살 나게 아파 본 사람은 알리라 바람만 불어도 심하게 흔들리는 가슴을.. 부는 바람에 향기처럼.. 인주 같은 빨간 상처만 아프게 날리는 가슴을 지닌 사람만 알리라 (게시기간 : 2014.11. 9 ~11.15) 914 그대의 발명 박정대 느티나무 잎사귀 속으로 노오랗게 가을이 밀려와 우리 집 마당은 옆구리가 화안합니다 그 환함 속으로 밀려왔다 또 밀려나가는 이 가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한 장의 음악입니다 누가 고독을 발명했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들이 다 음악입니다 나는 지금 느티나무 잎사귀가 되어 고독처럼 알뜰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누가 저녁을 발명했습니까 누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사다리 삼아서 저 밤하늘에 있는 초저녁 별들을 발명했습니까 그대를 꿈꾸어도 그대에게 가 닿을 수 없는 마음이 여러 곡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저녁입니다 음악이 있어 그대는 행복합니까 세상의 아주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음악이 되는 저녁,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합니다 (게시기간 : 2014.11. 2 ~11. 8) 913 이윤정 사는 것이 별 게 있는가! 어느 날은 친구들과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어느 날은 혼자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푸당당 거리면서 세월 보내는 것이지. 채워도 채워도 덜 차는 가슴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아직 가슴이 덜 찼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는 것이지 (게시기간 : 2014.10.26 ~11. 1) 912 무늬 이용섭 사람과 나무는 결로써 말을 한다 기름진 흙과 햇볕, 적당한 물기와 사랑이 촘촘한 세월과 한 몸을 이뤄 이쪽 저쪽 밀고 당기며 엇갈리며 비로소 곱고 단단한 제 무늬가 된다 아프고 뒤틀리는 절망의 순간도 돌아보면 아름다운 무늬가 되고 옹이 진 상처조차 고운 결이 된다 톱날의 세월이 제 살을 저미며 깊은 상처를 남길 때 사람과 나무는 향기로운 저만의 무늬로 말을 한다 (게시기간 : 2014.10.19 ~10.25) 911 시월의 언덕에 부는 바람 김수구 산마루에 서서 바라만 보아도 흰 손을 흔들며 달려와 줄 것만 같은 사람이여 눈짓만으로도 온몸을 휘감아 올 것만 같은 부드러운 외침이여 기약도 없이 흔들어대는 바람의 언덕에서 누군가 손끝이라도 흔들면 넘실넘실 무녀져 내릴 슬픔을 부둥켜안고 희기만 한 손 가을의 서리 끝에 서서 너를 부른다 수줍기만 했던 지난날 그리움을 한 폭의 수채화로 담아 흰 손도 부드럽게 너는 달빛을 휘어 감고 있구나 노을 꽃 붉게 피다 저문 강변 슬픈 시월의 언덕 억새밭에서 물빛도 고왔던 들풀들의 사랑노래 소슬바람이라도 스치어 지나가거든 들어주렴 억새꽃이 눈발처럼 휘날리는 언덕 붉은 울음을 토하는 시월의 산자락에 서서 여정의 은발을 나부낄 터이니 달빛에 바람 타고 서걱서걱 울리더라고 전해주렴 (게시기간 : 2014.10.12 ~10.18) 910 강이 휘돌아 가는 이유 우대식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직선의 거리를 넘어 흔드는 손을 눈에 담고 결별의 힘으로 휘돌아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짧은 탄성과 함께 느릿느릿 걸어왔거늘 노을 앞에서는 한없이 빛나다가 잦아드는 강물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강이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이유는 굽은 곳에 생명이 깃들기 때문이다 굽이져 잠시 쉬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들이 악수를 나눈다 물에 젖은 생명들은 푸르다 푸른 피를 만들고 푸른 포도주를 만든다 강이 에둘러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것은 강마을에 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감사 때문이다 (게시기간 : 2014.10. 5 ~10.11) 909 가을의 노래 김대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떠나지는 않아도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사람이 보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다. ‘주여!’ 라고 하지 않아도 가을엔 생각이 깊어진다. 한 마리의 벌레 울음소리에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고, 잊혀진 일들은 한 잎 낙엽에 더 깊이 잊혀진다. 누구나 지혜의 걸인이 되어 경험의 문을 두드리면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고 삶은 그렇게 아픈 거라 말한다. 그래서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이라는 말 속에 있다. (게시기간 : 2014. 9.28 ~10. 4) 908 오늘 같은 날 이경섭 내 마음의 뜨락에 햇살을 들여놓고 맑은샘 길어 차를 끓인다 희망의 뜨락 초록잎들을 따내어 가슴을 적시는 그리움의 향 찻잔에 또렷이 담아낸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만큼 삶에 지친 그대를 위해 사랑이라는 맑을 물을 담은 농익은 차를 끓인다 오늘 같은 날 (게시기간 : 2014. 9.21 ~ 9.27) 907 가을 소포 김성춘 초인종도 없이 門 앞에 가을이 막 도착했다. 정오의 가을 햇살 한 마당 숨쉬는 황금 들판 잘 익은 붉은 감 가슴 두근대는 코스모스 몇 묶음으로 기분 좋게 잘 포장된. 神의 가을 소포. 초인종도 없이 門 앞에 눈부신 세계의 名品 경주의 가을이 막 도착했다. (게시기간 : 2014. 9.14 ~ 9.20) 906 추석 무렵 류제희 읍내 장터에 간다 햇곡식 서너 말(斗) 싣고 여름내 푸념처럼 자라난 머리칼도 자르고 알록달록 네살바기 추석비슴 손에 들려 돌아오는 길 물봉선 꽃더미 속에서 식구들의 그림자가 가벼워졌다 노을도 가깝게 내려오는 시간 경운기 짐칸에 매달려 앉은 임씨네 세 모녀 알밤같이 야물어 보이는, 오늘 (게시기간 : 2014. 9. 7 ~ 9.13) 905 9월이 오면 김향기 웃자라던 기세를 접는 나무며 곡식들, 잎마다 두텁게 살이 찌기 시작하고 맑아진 강물에 비친 그림자도 묵직하다 풀벌레 노래 소리 낮고 낮게 신호 보내면 목청 높던 매미들도 서둘러 떠나고 들판의 열매들마다 속살 채우기 바쁘다 하늘이 높아질수록 사람도 생각 깊어져 한줄기 바람결에서 깨달음을 얻을 줄 알고, 스스로 철들어가며 여물어 가는 9월. (게시기간 : 2014. 8.31 ~ 9. 6) 904 포도가 신문을 읽다 박재희 초여름이면 포도가 서서히 익어간다 농부는 포도에 신문지로 만든 봉지를 씌운다 빼곡히 적힌 기사들 푸릇한 포도송이에게도 철지난 신문이 배달되었다 세상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시끄러운 사건들이 포도알에 박힌다 푸른 눈알을 반짝여 본다 기름 냄새에 절은 눈알들 무엇일까? 무엇일까? 까막눈으로 읽고 또 읽고 …… 달포가 지나 오늘 신문에 자신이 주인공이 된 <**포도축제> 기사가 크게 났다 머지않아 그에게도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 감싸고 있던 신문 기사를 북북 찢고 시끄러운 세상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게시기간 : 2014. 8.24 ~ 8.30) 903 두고 나온 우산 김석주 비 속에 슬픔이 묻어 왔는가 봅니다 흠벅 젖은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이는 게 두고 나온 우산보다 더 남은 미련은 그대도 나처럼 그냥 나왔을까 괜한 근심하는 비 맞은 초라한 나였습니다 이제 내 것 아닌 사랑 가랑비 마냥 맞아도 견딜 줄 알았는데 그칠 줄 모르며 내리는 비는 온몸을 적시며 우산도 그대도 없는 나의 몸과 가슴을 오래도록 아프게 적시고 있었습니다 (게시기간 : 2014. 8.17 ~ 8.23) 902 사랑이란.. 양형근 키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가 어깨동무하듯 그렇게 눈 비비며 사는 것 조금씩 조금씩 키돋음하며 가끔은 물푸레나무처럼 꿋꿋하게 하늘 바라보는 것 찬서리에 되려 빛깔 고운 뒷뜨락의 각시감처럼 흔들리지 않게 노래하는 것 계절의 바뀜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는 것 새벽길, 풀이슬, 산울림 같은 가슴에 남는 단어들을 녹슬지 않도록 오래 다짐하는 것 함께 부대끼는 것 결국은 길들여지는 것. (게시기간 : 2014. 8.10 ~ 8.16) 901 숟가락과 삽 홍일표 나는 한 생애를 숟가락질로 탕진하였다 내 속의 허공을 메우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이때껏 작은 고랑 하나도 메우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왼손 오른손 다 동원해도 나는 텅텅 울리는 커다란 독이다 채워지지 않는 슬픈 욕망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금속성의 연장은 자란다 조금씩 키가 커지고 쓰면 쓸수록 욕망의 몸집도 불어난다 기진하여 더 이상 생의 도구를 들 수 없을 때 숟가락은 슬슬 떠날 채비를 한다 작고 날렵했던 한 시절을 청산하고 평생 섬겼던 주인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한다 밥 대신 붉은 땅을 파내어 잠자리를 마련하고 주인과 더불어 고단한 생을 마감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 숟가락이 터무니없이 크고, 많이 야윈 까닭이다 (게시기간 : 2014. 8. 3 ~ 8. 9) 900 아! 바다 이수동 세상 모든 물이 바다로 향하는 건 그 바다가 낭만적이거나 고향 같아서가 아니라 그저 낮아서이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 깊은 뜻을 말하는 그대. 먼저 낮아져라 움직이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흐르는 것은 모두 낮은 곳으로 향한다 이 얼마나 간단한 원리이자 진리인가? 꼿꼿하게 높이 솟아 있는지 모르고 다들 외롭다 말한다 이제부터라도 사람 사는 정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면 그대 ! 바다만큼 낮아져라 (게시기간 : 2014. 7.27 ~ 8. 2) 899 호박잎쌈을 먹다 이미영 재래시장 쪼그린 그늘에 무릎이 허옇게 시린 할머니가 호박잎을 내놓았다 이슬 떨치고 일어난 자리마다 어머니의 말간 눈매가 선한 그리움으로 포개진다 빽빽한 강된장이 끊어 넘치는 흙 마당 평상 위로 분주하게 불러들이는 품속 사랑 한소끔 쪄낸 호박잎에 보리밤 쌈을 싸서 풋고추 된장에 찍어 건네던 여름날 저무는 당신 뒤로 하늘가는 붉게 물들어가고 등에 밴 땀은 부채 바람에 식어갔다 그랬다 고운 웃음은 묵은 사진첩 한켠으로 밀려나고 잘 있냐는 안부에 목마른 딸꾹질만 나던 여름 저녁 엄마를 닮아버린 세월이 내게 와 안겼다 발목으로 무릎으로 가벼운 바람 소리가 지나간다 (게시기간 : 2014. 7.20 ~ 7.26) 898 고백 윤애라 오래 오래 익혀둔 말들은 세월에 가라앉아 삭아버렸네 생각만 해도 머릿 속 환해지며 가슴에 꽃등이 켜지는... 제 때 일어서지 못해 모퉁이에 밀린 말들 입속에서 주문처럼 앉아 있구나. 차마 꺼내놓지 못하던 내 청춘의 짙푸른 심장 소리와 한 번, 꼭 한 번 목소리로 토해내면 되었는데 갈 곳을 찾지 못해 아직도 세월의 가로등 아래서 서성이는 설익은 나의 목소리 (게시기간 : 2014. 7.13 ~ 7.19) 897 굵은 비 내리고 장만호 굵은 비 내리고 나는 먼 곳을 생각하다가 내리는 비를 마음으로만 맞다가 칼국수 생각이 났지요 아시죠, 당신 내 어설픈 솜씨를. 감자와 호박은 너무 익어 무르고 칼국수는 덜 익어 단단하고 그래서 나는 더욱 오래 끓여야 했습니다 기억하나요 당신. 당신을 향해 마음 끓이던 날 우리가 너무 서로 익었거나 덜 익었던 그때 당신의 안에서 퍼져가던 내 마음 칼국수처럼 굵은비 내리고 나는 양푼 같은 방안에서 조용히 퍼져갑니다 (게시기간 : 2014. 7. 6~ 7.12) 896 내 허락 없인 아프지도 마 염경희 꽃도 필 때는 아프다고 밤새 울어 눈물 방울 머금잖아 진주 조개는 아린 상처 파도에게 하소연하는데 뜨거워 견딜 수 없다고 노을마저도 서산 마루에 안기던 걸 하물며 사랑하는 당신이 아프려면 내게 먼저 물어 보고 아파야지 그래야 아픈 상처, 바람에게 호호 불어 달라 부탁을 하지 비에게 일러 어루만지라 얘기를 하지 정말이야 이제 내 허락 없인 아프지도 마... (게시기간 : 2014. 6.29~ 7. 5) 895 발을 사랑하기로 했다 윤재철 발길 닿는 대로 간다 할 때에도 늘 생각이 앞장서 갔다 너무나 오래 걸어 발이 부르터 터질 때도 발보다는 앞으로 남은 길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 지나온 길이 흔적 없음에 발은 조용히 눈을 뜨고 늙은 슬라브 노예의 눈빛으로 나를 본다 그래, 안다 이제는 돌아서 늦기 전에 집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발이 그 길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혼자 있을 때면 이제껏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틈만 나면 구두를 벗고 두 발을 어루만지며 발과의 행복한 귀향을 꿈꾼다 (게시기간 : 2014. 6.22~ 6.28) 894 우산 문숙 남편과 오랜만에 외식을 하다말고 아이 문제로 다투다 옆자리를 돌아본다 부부인 듯, 남자가 여자 접시에 반찬을 놓아주며 다정하다 옆자리 남자에게 자꾸 눈길이 쏠린다 씁쓸한 밥을 억지로 넘기고 남편을 따라 식당문을 나서는데 출입문 입구에 ― 본인 우산 꼭 확인하고 가져가세요, 자주 바뀌거든요 한참동안 내 우산을 찾다말고 한 생각이 스친다 굳이 내 것을 고집할 필요 있나 실컷 쓰고 다녀서 빛바랜 우산인데 까짓것 누군가 바꿔갔으면 고마운 일이지 기회가 왔을 때 한 번쯤 바꿔보는 거야 무늬가 화사한 우산 하나를 뽑아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식당문을 나선다 접힌 우산을 펼치자 살이 휘고 구멍이 뚫려 있다 자꾸 빗물이 샌다 옷이 흠뻑 젖고 있다 앞서 가던 남편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 빨리 와서 내 우산 써, 바보야 (게시기간 : 2014. 6.15~ 6.21) 893 다림질을 하며 오은석 물을 뿜어 구겨진 옷자락을 다림질 한다. 접혀진 구김살마다 서려 있는 일상의 흔적 비우지 못한 마음 크고 작은 잘못으로 하루는 온통 주름투성이 아침마다 얼룩진 어제를 다림질해도 또 어느새 여기저기 생겨나는 주름투성이 구겨진 옷을 다리듯 잘못을 펴는 일은 또 하나 나를 찾는 고된 작업 찬란한 내일을 위해 이슬 뿜어 구겨진 오늘을 뜨겁게 뜨겁게 다림질 한다 (게시기간 : 2014. 6. 8~ 6.14) 892 즐거운 책임 구본형 여기, 반 쯤 물이 채워진 유리잔이 있다. 이미 누군가가 따라놓았는데 누군지 이름이 분명치는 않다 때로는 '유전적 재능'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그동안 받아온 교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물론 '부모나 귀인의 도움'이라고 불린다 무엇이든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이미 내 인생의 반을 좌우했다 나는 이 잔에 물을 가득 채우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손으로 물을 채우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무엇인가'가 그 잔을 채우는 것을 방관한다 마치 자신의 인생이 아닌 것처럼 나는 우리가 스스로의 손으로 이 잔의 나머지 반을 채워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인생에 대한 즐거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게시기간 : 2014. 6. 1~ 6. 7) 891 부른다는 말 속엔 이진수 오랜만에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얻은 친구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또 보자 악수하면서 아이 돌 때 잊지 말고 연락해 그래야지 그럼 당연히 불러야지 하던 그때. 내 속 어딘가에 갑자기 화악 불 들어왔다 불러야지 하는 말이 이상하게도 불 넣어야지 하는 말로 들렸던 것이다 와서 노래도 좀 불러라 했을 때 그 말도 꼭이나 불 넣어라 하는 말로 들렸다 불 넣어 주면 금방 타오를 듯한 응원가를 아이 앞길에 훅훅 불어주고 싶었다 부른다는 말이 이렇게나 뜨겁다... 사람 사이만한 아랫목이 어디 있겠니 불 지피지 않으면 냉골이 되는 거지 가마, 꼭 가마 (게시기간 : 2014. 5.25~ 5.31) 890 나무 가지의 끝 전향 가장 여린 것이 기댈 곳 하나 없는 하늘 한가운데 홀로 덩그렇게 놓여 있다 뿌리로부터 가장 멀리 기둥으로부터 가장 멀리 다 커버린 잎들로부터도 멀리 떨어져서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다 햇살과 비와 바람은 힘이 되다가도 적이 되는 세상이지만 해도 달도 가는 길 가르쳐주지 않지만 아무도 도착한 적 없는 허공에 지도를 그린다 그 길 따라 띄엄띄엄 발자국 같은 연두 빛 집들이 생기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무성해지는 마을, 힘도 없고 작지만 큰 걸음이다 (게시기간 : 2014. 5.18~ 5.24) 889 날아간다고 정재완 꽃들이 비를 맞으며 이야기한다 어디 가고 싶어도 뿌리가 박혀 못 간다고 한다 비 그친 뒤 날아오는 벌이 말한다 너도 언젠가 씨가 되어 날아간다고. (게시기간 : 2014. 5.11~ 5.17) 888 아픈 장미 김영무 폭풍의 밤에 길 잃은 벌레 한 마리 오두막 불빛 보고, 아- 네 품속 파고들었다 진홍빛 침대에 누워 한 밤 푹 자고 가게 창문은 열어두렴 겁내지 마라 곧 동이 튼다, 장미야 (게시기간 : 2014. 5. 4~ 5.10) 887 꽃의 사명 성주엽 계절은 달라도 피어 있는 기간은 달라도 피어있는 순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색깔은 달라도 생긴 모양새는 달라도 그들에게는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빛깔과 모습으로 단장하든지 그윽하거나 청아한 향기로 유혹하던지 자신만의 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벌과 나비를 유혹해야 합니다. 때론 꽃가루를 휘날리기도 하고 철이 지나면 하나둘씩 꽃잎들이 비바람에 흩날려 떨어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그가 한 일을 알게 됩니다. 꽃이 지고 나서 꽃 뒤에 달려있는 작은 열매들을 보게 되면서 꽃들은 자신의 화려함과 아름다움만 자랑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고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 (게시기간 : 2014. 4.27~ 5. 3) 886 흙님 이묘신 할머니가 옥상에다 고추 모종 심던 날 흙 구하기 힘들다며 속상해하셨다 시골 가면 밟히는 게 흙인데 흙 구하기도 힘들다며 뒷집 화단을 넘겨다 보셨다 - 흙 필요하면 퍼다 쓰세요 뒷집 아줌마 소리에 얼른 흙을 담아 오시며 할머니가 소리치셨다 - 흙님 모셔왔다 (게시기간 : 2014. 4.20~ 4.26) 885 내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이현식 무서리 등 타고 온 한 톨의 꽃씨 살포시 내게와 꽃잎으로 피었구나 춘풍추우 (春風秋雨) 익힌 너의 향기 참으로 어여쁘고 아름답구나 인영으로 핀 그리움이 언 뜰에 설매화 피우듯이 청대밭 못 잊어 내린 바람처럼 부부 연(緣)내린 각별한 이날 축복으로 뿌리내려 초심으로 무성히 자라게 하라 부부란 세월의 방정식대로 지은 농사가 아니라 정성 담아 애정으로 오랜 기간 숙성한 곰삭은 인고의 부산물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게 하며 긍정의 힘으로 용서를 잉태케 하라 믿음이 녹슬지 않게 정직 안에 근면과 성실이 늘 깨어 있게 하라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니 모든 이가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여도 너희들은 백발까지 사랑하는 자가 되라 미소만 사랑하지 말고 눈물까지 사랑 하여라 늘 모나지 않고 웃자라지 않게 겸양으로 맘 다져 세월을 허비하지 말라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어느 장소든 가는 곳 마다 주인 되어 참된 삶을 개간해다오 내 사랑하는 딸과 아들아,,,,,, (게시기간 : 2014. 4.13~ 4.19) 884 메밀 싹 틀 무렵 이영식 내 배꼽 향기롭다 고물고물한 새싹나물로 고, 매콤한 풋것들로 한 저녁 비벼댔으니 방귀조차 향기롭겠다 봄 들여라 봄 들여라 오늘밤은 남쪽 창 열어놓고 꿈을 들여야겠다. (게시기간 : 2014. 4. 6~ 4.12) 883 길을 걷다가 김순진 길을 걷다가 돌뿌리를 차고 주저앉아 아파한 적이 있나요. 우리는 발만 주무를 뿐 돌뿌리를 나무라지 않았지요. 길을 걷다가 묶어놓은 띠풀에 넘어져 본 일이 있나요. 우리는 넘어진 자리에 쉬며 띠풀 묶은 이를 탓하지 않았지요. 신발이 벗겨지면 또, 신으면 되고 나뭇짐이 풀어지면 또, 묶으면 되지 뭐 그게 대수인가요. 누구 탓도 아니구요. 제 잘못도 아니에요. 무슨 원망이 그리 많나요. 넘어지면 잠시 쉬었다 가지. (게시기간 : 2014. 3.30~ 4. 5) 882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있다 장기려 수도꼭지엔 언제나 시원한 물이 나온다 지난 겨울엔 연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쌀독에 쌀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끼 밥을 먹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언제나 그리운 이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더 키울 수 있다 그놈이 새끼를 낳아도 걱정할 일이 못 된다 보고 듣고 말함에 불편함이 없다 슬픔에 울고 기쁨에 웃을 수 있다 사진첩에 추억이 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기쁠 때 볼 사람이 있다 슬플 때 볼 바다가 있다 밤하늘에 별이 있다 그리고…세상에 사랑이 있다. (게시기간 : 2014. 3.23~ 3.29) 881 봄은 살아가는 것이다 문혜관 봄은 살아가는 것이다 나비가 너울너울 들판을 가로지르고 비둘기가 구구구구 짝을 지어 보금자리를 틀고 봄은 살아가는 것이다 흙은 촉촉하여 싹을 틔우고 나무는 물을 빨아들여 꽃을 피우고 봄은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돌멩이도 봄비에 목욕하고 햇볕을 쬐고 햇볕은 돌멩이 위에 낮잠을 자고 봄은 살아가는 것이다 시냇가에 가 보면 알 것이다 들판 길을 걸어가면 알 것이다 산길을 걸어가면 알 것이다. (게시기간 : 2014. 3.16~ 3.22) 880 냉이의 꽃말 김승해 언 땅 뚫고 나온 냉이로 된장 풀어 국 끓인 날 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 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 찬 없이도 환해지는 밥상머리 국그릇에 둘러 피는 냉이의 꽃말은 허기진 지아비 앞에 더 떠서 밀어 놓는 한 그릇 국 같아서 국 끓는 저녁마다 봄, 땅심이 선다 퍼주고도 다시 우러나는 국물 같은 냉이의 꽃말에 바람도 슬쩍 비켜가는 들, 온 들에 냉이가 돋아야 봄이다 봄이라도 냉이가 물어 주는 밥상머리 안부를 듣고서야 온전히 봄이다 냉이꽃, 환한 꽃말이 밥상머리에 돋았다 (게시기간 : 2014. 3. 9~ 3.15) 879 무릎 박해석 고마워해야 하리라 무릎 한 켤레 온갖 뼈마디 부서져도 쉽게 낮아질 수 없는 우리에게 무릎 너희 있어 땅에 무릎 꿇고 거기 입 맞추게 하는 두 손으로 공손히 세상 한번 받들어 올리는, 신은 멀어도 그의 숨결 너나들이 하는 해진 무릎 한 켤레 흙으로 돌아가 발뻗고 잠들기까지 모름지기 우리는 그를 고마워해야 하리라 (게시기간 : 2014. 3. 2~ 3. 8) 878 친정 조정숙 나 가끔 친정으로 돌아가면 금세 엄마의 어린 딸이 되어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몸도 마음도 녹신녹신해져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한 일들 그만 가마득해지고 길을 가다 지나쳐 만난 사람처럼 남편 얼굴도 서먹서먹해져서 엄마 손에서 익은 물김치 호록호록 떠먹어가며 밤새도록 친구 같은 수다를 떨었네 엄마도 참, 고생이 많수 서로 마음을 만지작거리다가 니,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 한 줄 아나 좀 더 살아봐라 내 맘 알끼다 엄마를 관통한 바람이 목적도 없으면서 천천히 나에게 불어오는 내 속엔 작은 엄마가 있어서 가는 허리가 자꾸 허청거린다 (게시기간 : 2014. 2.23~ 3. 1) 877 항암승리가 (抗癌勝利歌) 윤민석 처음에는 기가 막혀 말도 못 했지 세상이 다 끝난 듯 했지 왜 하필 나인 거야 원망도 하고 두려움에 울기도 했지 하지만 이것 또한 내 삶의 모습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제대로 하나하나 부딪혀보자 후회 따윈 남기지 않게 암 이까짓 것 별거 아니야 암 이까짓 것 이길 수 있어 암 나는 다시 건강할 거야 다 툭툭 털고 일어날 거야 쉽지 않은 시간들을 견뎌야겠지 가끔은 절망도 하겠지 아픈 몸 아픈 마음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지 몰라 하지만 이것 또한 내 삶의 모습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제대로 하나하나 부딪혀보자 후회 따윈 남기지 않게 암 이까짓 것 별거 아니야 암 이까짓 것 이길 수 있어 암 나는 다시 건강할 거야 다 툭툭 털고 일어날 거야 (게시기간 : 2014. 2.16~ 2.22) 876 단골과 덤 정혜신 단골의 매력은 덤에 있습니다. 다른 손님 모르게 찌개 밑에 슬쩍 깔아주는 도톰한 목살, 메뉴에는 없지만 내 식성을 고려한 누룽지 후식 서비스, 이마의 열을 짚어보며 가족의 안부를 묻는 동네 의사의 푸근함, 등은 분명 단골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20%의 단골손님이 80%의 매출을 책임진다는 마케팅 법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단골은 가장 중요하고 우선해야 할 대상이지요. 그러고 보면 나에게 있어 ‘나’만큼 오래된 단골은 없지 않나요 그러므로 가장 먼저 배려하고 환하게 웃어주고 안부를 물어주어야 할 내 최대의 단골은 나일 수밖에요. (게시기간 : 2014. 2. 9~ 2.15) 875 동그라미 민병도 사는 일 힘겨울 땐 동그라미를 그려보자 아직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있어 비워서 저를 채우는 빈 들을 만날 것이다 못다 부른 노래도 끓는 피도 재워야하리 물소리에 길을 묻고 지는 꽃에 때를 물어 마침내 처음 그 자리 홀로 돌아오는 길 세상은 안과 밖으로 제 몸을 나누지만 먼 길을 돌아올수록 넓어지는 영토여 사는 일 힘에 부치면 낯선 길을 떠나보자 (게시기간 : 2014. 2. 2~ 2. 8) 874 설날 권영우 뒤뜰 청솔 더미에서 목욕한 해묵은 석양이 동쪽 하늘 붉은 때때옷으로 치장하고 대청마루에 새해 복 한 광주리를 걸어 놓는다 날마다 맞이하는 무덤덤한 햇살이 오늘 아침은 가난한 가슴에 부푼 꿈을 가득가득 안겨온다 섣달 그믐 묵은 때를 열심히도 벗기시던 어머니는 밤새도록 지극 정성 차례상을 준비하셨다 설빔하는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자지 않으려 용쓰다 깜박 잠든 새해 새 아침 설날 어둑새벽 개구쟁이 동생이 찬물에 세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넙죽 세배를 드린다 큰 누나가 지어준 색동 주머니에 깜박깜박하시는 할머니의 손 때묻은 무지개 알사탕이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는 오늘은 설날이다 소식 없는 대처의 둘째형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끓는 정성이 담긴 떡국 한 그릇 삼신할미에게 공양 되는 오늘은 설날이다 동네 어귀를 들어오지 못해 망설이던 떠돌이 새가 하얀 눈밭에 걸린 청솔가지에서 밤새 울다가, 일 년 365일 눈물로 지새운 어머니 치마폭에 용서를 비는 오늘은 설날이다 그렇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모든 걸 용서해주고 용서받고 그리운 가족 사랑을 주고받으며 정겨운 희망의 닻을 올리는 오늘은 설날이다 (게시기간 : 2014. 1.26~ 2. 1) 873 겨울 들판을 거닐며 허영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 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 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게시기간 : 2014. 1.19~ 1.25) 872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묻다 장순익 보내 주신 백계동 녹차를 오늘에야 개봉 했습니다 막연히 함께 나눌 사람 있을 것 같아 단풍 들고 낙엽 지고 겨울이 깊어졌습니다 밀어둔 신문 한꺼번에 읽다 손 시린 아침 찻물 끓여 쟁반에 놓고 두 개의 잔을 놓으려다 흠칫 했습니다 차 한 잔을 따라 두 손으로 감싸질 때 뜻밖입니다 내가 내 손을 잡아 준 지 참 오랜만입니다 (게시기간 : 2014. 1. 12~ 1.18) 871 최고의 습관 하영순 일 하루 한 번씩 나만의 감상실을 찾아 묵은 마음을 말끔히 털어낸다 십 단 십분이라도 고요를 찾아 나를 찾아보는 여유를 가진다. 백 느낌과 내 생각을 백자 이상 컴퓨터라는 친구에게 전해 준다 천 천자 이상 남의 시나 글을 읽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만 하루 만 번 땅바닥에 내 존재를 알리는 발 도장을 찍는다. 습관은 의지로부터 길들여지는 것 (게시기간 : 2014. 1. 5~ 1.11) 870 기회 안창호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게시기간 : 2013.12.29~2014. 1. 4)

3-18.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4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