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3 년
 

   2013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870 기회 안창호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게시기간 : 2013.12.29~2014. 1. 4) 869 향기로운 기억 이은숙 겨울 밤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 들으며 향기 좋은 커피를 마셔 보았는지요 세상 사는 이야기와 더 살아야 할 세상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 있는지요 커피 향기처럼 처음에는 진했던 감정이 줄어드는 잔 속의 커피처럼 따뜻함이 식어 가고 향기도 공기 중에 날아가 버리고 잔 밑바닥에 남아 있는 커피의 앙금 그렇게 남아 있는 이름 지금도 있나요 아무려면 어떨까요 입안을 환하게 퍼져 돌아오는 향기로운 기억이야 어디 세월 간다고 잊혀지겠어요 (게시기간 : 2013.12.22~12.28) 868 아버지의 밥그릇 안효희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 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게시기간 : 2013.12.15~12.21) 867 마흔을 기다렸다 함순례 산허리에 구름이 몰려 있다 알 수 없지만 내가 가고 있으니 구름이 오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빗속에서 바라보는 구름은 고등어처럼 푸릇했으나 파닥거리지는 않는다 추녀에 매달려 울던 빗방울들이 호흡을 가다듬는 저녁 다섯 시 점점 켜지는 불빛들 바라보며 묘하게 마음 편안하다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어느 시인의 말에 방점을 찍는다 그 옆에 사랑은 세숫비누 같아서 닳고 닳아지면 뭉치고 뭉쳐 빨래비누로 쓰는 것이다,라고 적어놓는다 저 구름을 인생이라 치면 죽지 않고 반을 건너왔으니 열길 사람 속으로 흘러들 수 있겠다,고 쓴다 마흔, 잘 오셨다 (게시기간 : 2013.12. 8~12.14) 866 따뜻한 종소리 하상만 보리차를 마신 후 컵을 두 손으로 안는다 컵이 아직 따뜻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컵을 간절히 안았던 적이 있었나 컵은 보리차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누가 잠시 머물렀던 기억으로 빈 컵이 나를 데우고 있다 이 기억을 나도 누군가에게로 옮겨 가야하리라 겨울이다 차가운 세상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구세군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 데워진 것은 식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종소리가 온 세상에 퍼지고 있다 (게시기간 : 2013.12. 1~12. 7) 865 문득이라는 말 박병기 ‘문득’이라는 말 나 참 좋아한다 삶의 어느 한 순간 침체된 영혼의 채찍으로 날아드는 활력소 같은 그 말 건망증이 심한 내게 이것이야말로 생명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리운 그 무엇이 느닷없이 살아나서는 벌침 쏘듯이 생기를 불어 넣는다 ‘아! 그래’하고 무릎을 치는 순간 내 몸에 번져가는 저 기쁨의 엔도르핀 같은 기특하지 않은가 (게시기간 : 2013.11.24~11.30) 864 내가 살아 있다 나혜경 죽은 듯 움직임이 없는 나무 빗방울이, 톡 바람이, 일렁 참새가, 파닥 건드리고 지나가자 비로소 잔가지가, 파닥 잎이, 일렁 풋열매가, 톡 떨어진다 오, 살아 있구나! 나를 아프게 치고 간, 하여, 눈도 코도 입도 팔도 다리도 퍼렇게 멍들어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한 수많은 빗방울이며 참새며 바람 같은 그대들에게 고맙다 (게시기간 : 2013.11.17~11.23) 863 성인의 길 최인호 밖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밖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는 남편은 드물다. 서로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 아이를 낳고,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서로서로의 약속을 신성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다가,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성인(聖人)인 것이다. (게시기간 : 2013.11.10~11.16) 862 나무와 의자 이상백 나무 그늘 앞에 의자가 있는 풍경 때가 되면 나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어머니 잔소리가 거름되어 튼튼한 나무 되었지만 나를 깎아 의자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해 사람들 서성이다 떠나가게 한다 (게시기간 : 2013.11. 3~11. 9) 861 가을의 향기 박인걸 들에는 곡식이 익고 산에는 열매가 익고 있다 강에는 수초가 익고 하늘에는 노을이 익는다 나뭇잎 풀잎 하다못해 바위틈의 미초(微草)까지 가을에는 온통 익는 것들뿐이다 익다가 그만 익지 못하면 익지 못해 시들까봐 일시에 떠나야 하는 받아놓은 그 날을 향해 서둘러 익어야 하는 애틋함이여! 익어가는 것들은 향기를 뿜고 시드는 것들은 악취를 뿜기에 앞 다투어 익으려는 몸부림이여!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그대와 나의 모습에서 고운 향기가 솔솔 풍겨야겠지 사랑하는 그대여 시들지 말고 곱게 익어가세 (게시기간 : 2013.10.27~11. 2) 860 택배 박승연 어머니가 보내신 택배가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도착했다 서둘러 박스를 열어보니 당신의 투박한 손으로 꾹꾹 눌러 담은 채소가 자식 향한 어머니 마음처럼 부풀어 오른다 더운 공기에 시든 푸성귀를 다듬어 목욕시키니 당신의 푸른 미소로 살아난다 저녁상에 상추 쑥갓 담아내니 당신의 잊고 살아온 세월이 떠오른다 인고의 세월 견뎌내며 흙처럼 사신 당신 둥지 떠나 암 수술한 자식을 위해 산수(傘壽)에도 여전하신 사랑에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이 넘쳐난다 상추 한 잎 입에 넣으니 밭 매시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 가까이 계시나 언제나 그리운 당신 야채처럼 싱싱한 세월을 택배로 되돌려 보내드리고 싶다 (게시기간 : 2013.10.20~10.26) 859 그리운 건 다 그 안에 있었네 이지현 참으로 오래 사랑을 꿈꾸었네 길을 걷다가도 희미한 낮달을 보는 날 그처럼 길게 남은 흔적처럼 사랑의 힘이 오래 남기를 기도했네 한 계절이 지나고 서걱이는 바람소리의 켜켜이 네가 떠날 준비를 미처 알릴 비좁은 틈도 없이 내가 먼저 떠나왔네 계절이 먼저 지고 있었네 발아래 깔린 추억일랑 오래 그립게 내버려두는 게 우리 사랑의 진지한 예의, 가벼운 홀씨처럼 흩날려 듬성듬성 뿌리내릴 하루 그 하루가 지쳐 주저앉아도 그 사랑의 끝은 저무는 골목에 오래 기대어있네 길게 꿈꾼 사랑아, 이제 속절없이 돌아가는 너보다 내가 먼저 당도한 길위에 푸른 기억만 펄럭 지는데 그리운 건 다 그 안에 있었네 (게시기간 : 2013.10.13~10.19) 858 익는 가을 김일문 가을이 익는다 여름내 푹푹 쪄내더니 밤도 아침도 한낮도 가을 익는 냄새가 바람을 탄다 가을이 익는다 형형색색 여름내 가마솥에 쪄내더니 산 들녘 바다 물들이고 있다 뜨겁다 아프다 뒤척이더니 가마솥에 젓가락 푹푹 찍어가며 가을을 익히고 있다 (게시기간 : 2013.10. 6~10.12) 857 하늘에 쓴 연서 김봉주 오늘도 산마루에 홀로 앉아서 먼 산을 책상 삼아 글월 씁니다 파아란 하늘 위에 은하물 찍어 계수나무 붓으로 메워 봅니다 별보다 많은 사연 다 쓸 수 없어 못 맺은 채 바람결에 실어 보내니 대낮엔 햇빛 부셔 못 읽을세라 고요한 밤 달빛에 비춰 보소서 (게시기간 : 2013. 9.29~10. 5) 856 기차표 운동화 안현미 원주시민회관서 은행원에게 시집가던 날 언니는 스무 해 정성스레 가꾸던 뒤란 꽃밭의 다알리아처럼 눈이 부시게 고왔지요 서울로 돈 벌러 간 엄마 대신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했던 언니는 시민회관 창틀에 매달려 눈물을 떨구던 내게 가을 운동회 날 꼭 오마고 약속했지만 단풍이 흐드러지고 청군 백군 깃발이 휘날려도 끝내 다녀가지 못하고 인편에 보내준 기차표 운동화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토닥토닥 집으로 돌아온 가을 운동회날 언니 따라 시집가버린 뒤란 꽃밭엔 금방 울음을 토할 것 같은 고추들만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지요. (게시기간 : 2013. 9.22~ 9.28) 855 추석 다음 날 최영희 창 밖 멀리 까치 소리 참 요란하다 내, 시댁 조상님 모시느라 친정엘 못 갔더니만 내 어머니, 아버지 나 없는 젯상 받으시고 까치를 빌어 나보러 오셨나 보다 까치 소리 멀어져 간다 어머니, 아버지 나 둘러보고 가시나 보다. (게시기간 : 2013. 9.15~ 9.21) 854 가을의 기도 김시현 가을에는 취하지 않게 하소서 잊으려고 마신 술에 간절함 더해 흐릿해진 눈빛으로도 떠난 이름 부르지 않게 하소서 가을에는 절룩이지 않게 하소서 만삭의 그리움 지탱하지 못하여 홀로된 밤마다 그대 이름 난산하지 않게 하소서 가을에는 비틀거리지 않게 하소서 상처받은 인연에도 마음을 낮추어 여름 냇가 들풀처럼 초연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징검다리 되지 않게 하소서 나를 밟고 사랑으로 이르는 야속한 사람을 두 눈 멀쩡히 뜬 채 눈물 흘리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가을에는 아무도 내 이름 부르지 못하게 하시고 두고두고 사랑을 가지신 그리운 이만이 내 이름 부르게 하소서 (게시기간 : 2013. 9. 8~ 9.14) 853 마중물이 된 사람 임의진 우리 어릴 적 작두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이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나가 큰 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게시기간 : 2013. 9. 1~ 9. 7) 852 별을 꿈 꾸는 밤 김재미 종일 광활한 우주 여행하노라면 별도 피곤했을 테지 아마도 움직임 없이 밤하늘에 떠 있는 건 그 때문일 거다 드넓은 밤하늘 모두가 그의 것 어떤 장애물 없이 깜박깜박 코를 골며 자는 걸 거다 저만의 꿈속에서 미소도 지을 거다 그런 별을 착각하는 난 밤새 뜬 눈으로 그의 빛을 탐낸다 황금빛 사랑을 노래했던 젊은 날을 추억한다 애써 지웠던 그리움을 다독인다 그가 꿈엣 짓을 할 때마다 나를 위해 빛나는 거라고 그래서 깨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가 빛나는 것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맑게 그려지는 소망이고 싶다고 (게시기간 : 2013. 8.25~ 8.31) 851 숨어 사는 즐거움 조용우 가끔은 숨바꼭질처럼 내 삶을 숨겨두는 즐거움을 갖고 싶습니다 전화도 TV도 없고 신문도 오지 않는 새 소리 물 소리만 적막의 한 소식을 전해 주는 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 내 소란스런 흔적들을 모두 감추어 두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헛된 바람에 불리어 다녔음을, 여기저기 무지개를 좇아 헤매다녔음을, 더이상 삶의 술래가 되어 헐떡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적막 속으로 꼭꼭 숨어들어 홀로 된 즐거움 속에 웅크리고 있겠습니다 그리운 친구에게는 편지를 부치러 장날이면 가끔 읍내로 나가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갈 곳 없는 떠돌이처럼 갈대의 무리 속에 슬쩍 끼어들었다가 산새들 뒤를 허적허적 좇다가 해질녘까지 노닥거릴 생각입니다 내게 남은 시간들을 백지의 고요한 공간 속에 차곡차곡 쌓아 가겠습니다 (게시기간 : 2013. 8.18~ 8.24) 850 고요하다 유재영 하나님은 지난 밤 이슬방울 하나를 남기셨다 토란잎에 고인 하늘 바람이 불자 우주가 잠시 접혔다 다시 펴진다 고요하다 (게시기간 : 2013. 8.11~ 8.17) 849 사랑한다는 건 공석진 사랑한다는 건 마음을 비우고 용서하는 것 못이긴 척 져주는 것 사랑한다는 건 가엾이 여기되 동정하지 않는 것 내 의지를 그의 뜻대로 맡기는 것 사랑한다는 건 모두가 의심해도 믿음을 변치 않는 것 그의 상처를 대신 아파하는 것 사랑한다는 건 절대로 원망하지 않는 것 아름다운 것만 보는 것 사랑한다는 건 주고 또 주어도 항상 모자란 것 세상이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한 것 사랑한다는 건 먹는 일이 부질없다고 느끼는 것 지친 눈망울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 (게시기간 : 2013. 8. 4~ 8.10) 848 1%의 차이 최운규 모든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도 1%에 불과하다 지그 치글러는 말한다. "게으른 사람은 절반 정도의 노력만 기울이고는 온 힘을 기울였다면 할 수 있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 회사에서 사람들이 1% 더 애정을 가지고 근무하고 1% 더 긍정적 사고로 행동하고 1% 더 호기심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낸다면… 우리 주변엔 수많은 재능을 가지고도 마지못해 삶을 사는 사람과 우수한 학력으로도 세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부족한 1%는 무엇일까? (게시기간 : 2013. 7.28~ 8. 3) 847 여름 권오범 모든 것이 바쁘다 해는 화끈하게 삶고 싶고 장마는 구름에 물 적셔와 세상 물바다 만들고 싶고 그 등쌀 아랑곳없이 살아남아 기어이 대를 이으라고 바람이 초목들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후덥지근하게 지쳐버린 중복(中伏)허리 사람도 덩달아 수고로워야 한다 햇볕 피하랴 비 피하랴 시들고 물손 받은 먹을거리들 어떡하든 살려내랴 선풍기 냉장고 에어컨 부채라고 해서 마음놓고 쉴 새 있겠는가 누워 빈둥대지 말고 하다못해 모기라도 쫓아야지 하루살이들 이별파티 때문에 가로등마저도 (게시기간 : 2013. 7.21~ 7.27) 846 내가 이제야 깨닫는 것은 장영희 내가 이제야 깨닫는 것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은 정말 일어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는 것.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교실은 노인의 발치라는 것. '하룻밤 사이의 성공'은 보통 15년이 걸린다는 것. 어렸을 때 여름날 밤 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걷던 추억은 일생의 지주가 된다는 것. 삶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끝으로 갈수록 더욱 빨리 사라진다는 것. 돈으로 인간의 품격을 살 수는 없다는 것. 삶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들 때문이라는 것. 하느님도 여러 날 걸린 일을 우리는 하루 걸려 하려 든다는 것.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영원한 한이 된다는 것. 우리 모두는 다 산꼭대기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행복은 그 산을 올라갈 때라는 것... (게시기간 : 2013. 7.14~ 7.20) 845 나무 2 최규장 나무에게는 무엇인가가 있다 무성한 잎과 스스로 뽐내는 꽃과 여름을 이겨낸 탐스런 열매가 있다 나무는 푸른 하늘을 향해 한껏 발돋움을 한다 그러나 이상하다 하늘과 가까운 잎은 한결같이 푸르지 못하고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쉽게 맺지 못한다 낮은 곳의 가지일수록 잎이 무성하고 꽃이 화려하고 열매가 풍성하다 땅과 가까운 뿌리와 가까운 낮은 곳의 가지는 언제나 건강하다 (게시기간 : 2013. 7. 7~ 7.13) 844 잡초는 없다 문창갑 비싼 값 치르고 어느 댁 축하의 자리에 보낼 꽃 한 다발 사면서 풀꽃 한 아름 덤으로 얻어왔다 흔한 잡초라고 꽃집 구석에 천덕꾸러기로 버려진 식물 한껏 피워올린 연보라 꽃 송아리가 깜찍하고 사랑스럽기만 한데 이 식물이 왜 잡초여야 하는지 그러면 은은히 내 맘 홀리는 이 잡초는 이름도 없는지 부랴부랴 식물도감 뒤지니 어? 잡초는 없다 식물도감엔 바위구절초, 둥굴레, 산매발톱, 노루귀, 꽃창포, 하늘지기 물봉선, 범부채... 우리나라 들과 산에 이런 식물 산다고 상큼하고 고상한 이름이 넘실넘실 숨어서 울음 길 가는 사람아 다시 보면 그대도 이 땅의 어여쁜 꽃이려니 슬퍼 마라 울지 마라 어디에도, 어디에도 잡초는 없더라 (게시기간 : 2013. 6.30~ 7. 6) 843 수박 안재동 과일가게에서 고르고 또 고른 수박 한 덩이, 농하거나 설익어 짜증날 때 있고 잘 익어 기분 시원해질 때도 있다 여름 밭에서 나는 많은 수박들, 아주 잘 익은 걸로 쉬 골라먹기도 힘들지 잘 익은 수박 고대하듯 그대, 때론 날 기다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과일가게에 놓인 수박들 볼 때마다 생각나는 그대 오늘은 발갛고 향기롭게 잘 익은 수박 하나 골라야 할 텐데 살다보면 그대 앞, 잘 익은 찰수박 한 덩이나 되어 다가가고 싶을 때 있다 (게시기간 : 2013. 6.23~ 6.29) 842 여름 초입 박종영 산아래 묵정밭 귀퉁이 단감나무 몇 그루, 올해도 연둣빛 그늘로 찾아 와 나른한 바람을 치근댄다 새잎 가지마다 다닥다닥 숨은 감꽃 오므린 입술꼭지를 콩콩 쪼아대는 방울새 날개 치는 소리 간지럼 타는 듯 비비 꼬는 감나무 밑동에 옹기종기 청아한 바람이 옷섶을 파고들고, 그렇게 초여름은 푸르게 익어 가고, 밭둑 가시덤불 밀어내며 억척스레 뿌리내린 들 찔레, 보드라운 새순 한 개 꺾어 초록 얼굴 살살 벗긴 다음 한입에 깨물으니 오소소 열리는 파란 하늘 어느새, 무성한 여름이 마음속 텅 빈자리 채워주며 서 있구나 (게시기간 : 2013. 6.16~ 6.22) 841 양장본 이해리 펼쳐놓은 페이지가 고정 되지 않는군요 손바닥 힘 주어 문질러 놓으면 잠시, 손 떼면 이내 후루룩 내면을 감춰버리는군요 희고 단단하고 지적인 당신 참 성가시군요 더 감질나고 더 목마르게 하는군요 생은 튕겨야 맛이라 하려는 건가요 속을 쉽게 보이면 안된다는 말 하려는 건가요 다 내놓고도 자꾸만 감추는 당신 그러면 읽지 않는 수가 있습니다 당신을 영영 덮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게시기간 : 2013. 6. 9~ 6.15) 840 그리움에 대하여 서정학 때로는 멀리서 바라볼 일이다. 때로는 말없이 생각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일같은 그리움이 몰려올 것인가. 때로는 혼자 가만히 삭힐 일이다. 때로는 혼자 조용히 울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물 첩첩, 산 첩첩 험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인가 때로는 어두운 창 앞에서 바라볼 일이다. 때로는 벽 앞에서 이름 부를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머나먼 곳 그대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게시기간 : 2013. 6. 2~ 6. 8) 839 사랑, 끝나지 않은 양수경 무심히 길을 걷다 발길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에도 그대 사랑 느꼈다 물결처럼 떨리던 미소 가득 바람속의 먼지가 코웃음 쳐도 세상은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낮과 밤은 뮤즈가 되어 흐린 하늘과 빗물에도 사랑을 노래하고 뜨거운 내 심장을 끊임없이 유혹하는데 우주에 존재하는 고귀한 것들과 이름 없이 죽어가는 초라한 것들에 눈 먼 고백을 수없이 맹세 했었다 참사랑 이란, 폭포수 같은 고통의 세월 사랑 한다는 말은 언제나 떨리는데 나는 어디에 있나 무엇을 하나 애틋한 사랑이 냉정한 세월에 묻혀만 간다. (게시기간 : 2013. 5.26~ 6. 1) 838 이사 서수찬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지를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누가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게시기간 : 2013. 5.19~ 5.25) 837 산길을 걸으며 서하 사람들이 산 속을 걷고 있다 아니, 산이 사람 속으로 걷고 있다 두고 오려던 그림자는 악착같이 따라붙고 어디로든 흐르지 못한 마음들 산 아래서 쫓던 욕심들 내려놓으면 저 햇살처럼 가벼울 수 있을까 돌탑 앞에서 쉼표처럼 앉아 쉬다 몸 한 그루 일으키려 힘주는데 투두둑 세월이 타진다 민망한 듯 얼굴 붉히는 한낮 그늘과 햇살, 햇살과 그늘 한 땀 한 땀 꿰매는 실바람도 나뭇잎 같은 길 속으로 촘촘히 걷고 있다 (게시기간 : 2013. 5.12~ 5.18) 836 눈동자論 여영현 아이들의 수정체는 맑고 투명하여 사물의 빛을 모으기 좋다 초점이 잘 맞춰진 그 눈 깊숙이 바라보자면 여린 잎사귀 하나 하느작거리는데 거기엔 만물의 중심이 또렷하다 혹자는 그 속에서 초록별을 본다지만 그건 아니다, 눈동자란 빛을 내는 게 아니라 빛을 빨아들이는 무엇이다 우리 아이의 눈망울엔 나비 고양이 자동차가 있다 볼록한 렌즈는 투과력이 어찌나 좋은지 사물이 통과할 때마다 얼른 빛을 낚아채는 푸른 엽록소가 가득하다 어린 눈길은 늘 이건 뭐지? 하고 잎맥의 그물망을 활짝 펴는 것이다 (게시기간 : 2013. 5. 5~ 5.11) 835 희망에게 이희정 눈물이 날 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봐 나비 한 마리 허공에 환한 날개짓하며 다만 삶을 불태우고 있어 (게시기간 : 2013. 4.28~ 5. 4) 834 그 저녁 한서윤 호수에 나갔습니다. 기운 없는 저녁 지난 봄 놓고 간 체온에 기대어 앉았지요 당신은 없었구요 검붉은 노을만 가쁜 숨 몰아 자결하고 물살 위로 은빛 비늘이 반짝이며 웃더군요 소롯길따라 느리게 걸었습니다 의욕 없는 저녁 아슴프레 한 시간이 천천히 따라오더군요 당신은 없었구요 배시시 웃고 있는 산딸나무 하얀 얼굴 몰래 노을 몇 줌 주머니에 넣었지요 오랫동안 곰곰이 당신 생각만 했습니다 (게시기간 : 2013. 4.21~ 4.27) 833 스친다는 것 박선희 새로 사 온 시집을 넘기다가 종잇날에 손가락을 베었다 살짝 스친 것도 상처가 되어 물기가 스밀 때마다 쓰리고 아프다 가끔은 저 종잇날 같이 얇은 生에도 마음 베이는 날 그 하루, 온통 붉은 빗물이 흐른다 종잇날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모두 상처다 나와의 만남도 상처며 나와의 헤어짐도 상처다 무딘 날에 손 베인 적 있던가 무덤덤함에 마음 다친 적 있던가 얇은 것은 상처를 품는다 스친다는 것은 상처를 심는 거다 (게시기간 : 2013. 4.14~ 4.20) 832 봄, 익스프레스 하여진 바람 팽팽한 날 신대방동 버짐 샛길로 묵은 봄 싣고 가릉가릉 1.5톤 용달차 달려오네 앞좌석에 앉은 노부부 희나리진 얼굴 위로 벚꽃 휘날리는데 서로 부딪치어 그냥저냥 깨질 것도 없는 저 지는 봄송이 좀 보소 뿌리 불거진 주름살 손 꼭 붙잡고 언젠 아랫목 한번 탐한 적 있었던가 그저 시린 윗목에서 굳은살 박이도록 허드렛일 궁시렁 한번 해본 적 없던 일평생 풀었다 쌓다 헐거워진 고샅길 단스 서랍 열리고 닫히는 옹이 속 꽃샘 잎샘에 아차! 얼어버린 삶의 고랭지 꾹꾹 눌러 밟은 풋보리 누렇게 빛바랜 시절도 묶여 있겠네 테이프로 박은 깨진 거울 사이 오글오글 봄빛 스며드는 봄에는 봄에는 말여, 손 없는 날 꼽지 않아도 아무 때고 저승으로 옮겨가도 좋제 설 지난 쑥떡에 곰팡이 핀 봄 언덕 어디 전입한 주소에 새순 돋듯 늘그막에 또 물 오르것다. (게시기간 : 2013. 4. 7~ 4.13) 831 잠시 쉬어 가세 유인영 바다가 그리워도 삶은 허락하지 아니하네 산을 오르려 해도 삶은 바라만 보라 하네 오늘만 생각하려 해도 내일을 생각하라 하네 잠시 사색을 즐기려 해도 옷깃을 흔들며 깨어나라 하네 슬픈 마음으로 환한 미소 보여달라 하네 삶은 내 것이 없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라 하네 잠시 쉬어 가세 잠시 내려 놓으세 마음껏 허리 한번 펴보기 힘들었던 삶 마음껏 목이 터져라 외쳐보고 싶었던 삶 잠시 무거운 짐 내려놓고 쉬어가세 허리도 한번 크게 펴보세 목청껏 노래도 불러보세 (게시기간 : 2013. 3.31~ 4. 6) 830 불면이 카페인 때문만은 아니다 강서일 커피 한잔이 당신을 깨운다면 차라리 다행한 일. 늦도록 서투른 세상을 엿보다가 잠든 아내의 눈썹을 세어보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다. 불면이 다만 한잔의 카페인 때문이라면 상관할 바 아니지, 우편함을 채우는 일상의 청구서나 허공의 이름을 쫓아 또 오늘을 묻어버린 지금은 새벽 4시. 어둠을 도와 아침을 열고 있는 저 꽃 한송이를 보거나 귀 떨어진 별들을 모처럼의 사랑으로 더듬어보다, 홀연히 도심의 담을 훌쩍 건너뛰어 보는 것 그것도 썩 괜찮은 일이다. (게시기간 : 2013. 3.24~ 3.30) 829 꽃기침 박후기 꽃이 필 때 목련은 몸살을 앓는다 기침할 때마다 가지 끝 입 부르튼 꽃봉오리 팍팍, 터진다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 당신 살갗에 돋던 소름을 나는 기억한다 징그럽게 눈뜨런 소름은 꽃이 되고 잎이 되고 다시 그늘이 되어 내 끓는 청춘의 이마를 짚어주곤 했다 떨림이 없었다면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다 떨림이 없었다면 사랑이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떨림이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한시절 서로 끌어안고 살던 꽃잎들 시든 사랑 앞에서 툭, 툭, 나락으로 떨어진다 피고 지는 꽃들이 하얗게 몸살을 앓는 봄밤, 목련의 등에 살며시 귀를 대면 아픈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게시기간 : 2013. 3.17~ 3.23) 828 어느날, 우리를 울게 할 이규리 노인정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 뒤에서 보면 다 내 엄마 같다 무심한 곳에서 무심하게 놀다 무심하게 돌아갈, 어깨가 동그럼하고 낮게 내려앉은 등이 비슷하다 같이 모이니 생각이 같고 생각이 같으니 모습도 닮는 걸까 좋은 것도 으응, 싫은 것도 으응, 힘주는 일 없으니 힘 드는 일도 없다 비슷해져서 잘 굴러가는 사이 비슷해져서 상하지 않는 사이 앉은 자리 그대로 올망졸망 무덤 같은 누우면 그대로 잠에 닿겠다 몸이 가벼워 거의 땅을 누르지도 않을, 어느날 문득 그 앞에서 우리를 울게 할, 어깨가 동그럼한 어머니라는, 오, 나라는 무덤 (게시기간 : 2013. 3.10~ 3.16) 827 봄, 너무 고집이 세어 김영천 깊은 잠에서 잠깐 목례하듯 나타났다가 깨어보면 허방은 더욱 깊었다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체념하려 하여도 깨어나지 않는 꿈속에서 너는 아직도 참 고집이 세다 꽝꽝한 가지마다 우루루 돋아나는 그리움 (게시기간 : 2013. 3. 3~ 3. 9) 826 오타 (誤打) 전태련 컴퓨터 자판기로 별을 치다 벌을 치고 사슴을 치다 가슴을 친다 오타투성이의 글 내 수족에 딸린 손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마음은 수십 번 그러지 말자 다짐하지만 남의 마음같이 느닷없이 끼어드는 오타 어찌하랴, 입으로 치는 오타, 여지없이 그 맘에 상처를 남기고 돌아오는 것을 한 번 친 오타 바로잡는데 이틀, 사흘 그 가슴에 남긴 흔적 지우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 닦아야 할지 숱한 사람들 맘에 쳐날린 오타들 더러는 지우고 더러는 여전히 비뚤어진 채 못처럼 박혀 있을 헛디딘 것들 생은 어쩌면 그 자체로 오타가 아닌가 그때 그 순간, 선택이 옳았는가 곧은 길 두고 몇 굽이 힘겹게 돌아치진 않았는가 돌아보면, 내 삶의 팔할은 오타인 것을 (게시기간 : 2013. 2.24~ 3. 2) 825 당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를 이현우 새벽이 와서 눈 뜰 때마다 깨달으세요 당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를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님인가를. 커튼을 걷으면 해바라기 꿈 같은 빛이 있구요 창을 열면 청솔 향기 그윽한 공기가 있답니다. 밤새 어둠 속에서 그들은 내내 당신이 일어나길 기다렸어요. 어서 나와 보세요 있는 그대로. 모두가 지금 당신의 길섶에 내렸거든요. 문은 길을 향해 나 있고 손길 닿는 순간을 기다린 지 오래 됐어요. 이제 다시 뜨락으로 나서거든 남아 있는 눈물일랑 다 거두어 버려둔 꽃씨에게 뿌려 주세요. 비 오고, 바람 불고, 그러다 눈 내리고 언젠가 봄이 오면 싹 트지 않는다 나무라지 마세요. 너무 고와 더 아픈 영혼을 위해 우리 함께 등을 밝혀 찾아가는 날 활짝 피어 당신을 맞이하리니 (게시기간 : 2013. 2.17~ 2.23) 824 새벽 이우걸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새벽은 새벽이 된다 봉두난발 상처뿐인 제 가슴 쥐어 뜯으며 유백의 찻잔을 만드는 어느 도공의 기도처럼 길은 아직 헝클린 채로 안개 속에 묻혀 있는데 조간처럼 달려온 소중한 여백 하나 새로운 출발을 권하는 아~ 숨가쁜 초인종이여 (게시기간 : 2013. 2.10~ 2.16) 823 보조 바퀴 전남진 보조 바퀴를 뗀다 바퀴보다 더 많이 구른 바퀴 쓰러지는 바퀴를 세우던 바퀴 쓰러지는 바퀴 대신 상처를 받아낸 바퀴 만난 길이 모두 상처가 된 바퀴 그래서 모든 길이 문신이 된 바퀴 상자에 담긴다 두 발로 탈 수 있다며 보조 바퀴를 떼 달라고 아이들이 떼를 썼지만 나조차도 모를 이유로 떼지 않았던 보조 바퀴 오늘 뗀다 뗀 자리 깨끗한 새살이 눈부시다 보조 바퀴를 뗀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이 달린다 전보다 빠르게 달린다 이젠 거추장스러워진 보조 바퀴를 떼고 두 발로 더 빨리 달린다 나를 받치던 보조 바퀴 아주 오래된 이미 쓸쓸해진 보조 바퀴 나를 키운 그 자리에서 아직도 나를 기다린다 보조 바퀴였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를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사실도 잊은 채 기다린다 그 바퀴 뗀 자리 아직 환한데 이제 더는 누구도 받쳐주지 못하는 녹슬고 병든 보조 바퀴 세상을 달리다 지치고 상처날 나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오래된 보조 바퀴. (게시기간 : 2013. 2. 3~ 2. 9) 822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신경숙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사라지고 멀어져 버리는데도 사람들은 사랑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건 사랑의 잘못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위력이다. 시간의 위력 앞에 휘둘리면서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우리들의 내부에 사랑이 숨어 살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아이였을 적이나 사춘기였을 때나 장년이었을 때나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해 지나간 이름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게시기간 : 2013. 1.27~ 2. 2) 821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위녕, 언젠가 어두운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모두 지정된 좌석표를 들고 있는데 너 혼자 임시 대기자 줄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 언쯧 네가 보았던 모든 희망과 믿음이 실은 환영이 아니었나 의심될 때 너의 어린 시절의 운동회 날을 생각해 그때 목이 터져라 너를 부르고 있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네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엄마가 아니라면 신 혹은 우주 혹은 절대자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 너는 아직 젊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다 그것을 믿어라 거기에 스며있는 천사들의 속상임과 세상 모든 엄마 아빠의 응원소리와 절대자의 따뜻한 시선을 잊지 말아라 네가 달리고 있을 때에도 설사 네가 멈추어 울고 서 있을 때에도 나는 너를 응원할거야. (게시기간 : 2013. 1.20~ 1.26) 820 어머니의 입 양전형 어머니의 입을 보며 밥 먹는 법을 배웠거든요 내 입에 밥술을 떠 넣으실 때 어머니는 당신 입을 더 크게 벌리셨구요 내 입에 들어온 밥알이 떨어질세라 당신 입을 더 꼬옥 다무시면서 빈 입을 부지런히 씹으셨어요 어머니 가시고 일곱해 지난 지금 먹고 살 걱정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의 입이 살아 나와 이래라 저래라 시켜주세요 (게시기간 : 2013. 1.13~ 1.19) 819 작은 소망 김경호 내가 아주아주 어렸을 때는 달 하나 별 하나 풀꽃 하나 갖는 게 소망이더니 내가 조금 어렸을 때는 산 너머 무지개 하나 시냇가의 조약돌 하나 비밀처럼 갖는 게 소망이더니 하루 또 이틀, 나는 헤어지는 법 잊는 법을 배우고 놀이 지는 서녘을 바라며 꿈 하나 그리움 하나 미지의 벗 하나 갖는 게 소망이더니 어느날, 세월 밖에서 맴도는 사랑이란 이름 하나 사랑이란 이름 하나 약속 하나 갖는 게 소망이더니 오늘은 하늘 같은 가슴으로 마주 앉은 사람, 어둠 속에서도 따스한 그 마음 하나 차 한잔의 시간이 소망이거니 (게시기간 : 2013. 1. 6~ 1.12) 818 새해에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정진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라 간절한 소원을 밤마다 외쳐라 지치면 지칠수록 더 크게 외쳐라 더 큰 용기와 더 큰 꿈을 가져라 또 새해에는 지난 날들의 악습을 버려라 오늘 하지 못한다면 내일도 하지 못하는 법 오늘 조금이나마 전진했다면 일년 후 십년 후에는 꼭 성공하리니 조급함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유로워라 네 인생의 마지막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애써 설명하지 마라 세월이 가면 모든게 환하게 드러나는 법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에 집념하라 날마다 좋은 날이 되게 애써라 궂은 날일수록 더 간절한 기도를 올려라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도록 새해에는 심호흡을 크게 하라 (게시기간 : 2012.12.30.~2013. 1. 5.)

3-17.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3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