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2 년
 

   2012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818 새해에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정진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라 간절한 소원을 밤마다 외쳐라 지치면 지칠수록 더 크게 외쳐라 더 큰 용기와 더 큰 꿈을 가져라 또 새해에는 지난 날들의 악습을 버려라 오늘 하지 못한다면 내일도 하지 못하는 법 오늘 조금이나마 전진했다면 일년 후 십년 후에는 꼭 성공하리니 조급함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유로워라 네 인생의 마지막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애써 설명하지 마라 세월이 가면 모든게 환하게 드러나는 법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에 집념하라 날마다 좋은 날이 되게 애써라 궂은 날일수록 더 간절한 기도를 올려라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도록 새해에는 심호흡을 크게 하라 (게시기간 : 2012.12.30.~2013. 1. 5.) 817 어제, 오늘, 내일 김종호 어제를 돌아봅니다.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사랑 감사 말고 다른 말이 생각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 용서뿐이었고 모든 것에 자비로운 손길뿐이었습니다. 어제는 감사였습니다. 오늘을 살펴봅니다. 순간마다 동행하며 속삭여주신 따뜻한 당신의 음성 눈시울만 적셔옵니다. 행복의 그림자까지 만들어주신 오늘 오늘 당신 품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오늘도 감사뿐이랍니다. 내일을 바라봅니다. 희망뿐입니다. 행복뿐입니다. 영광만이 넘칠 뿐입니다. 사랑의 노래를 부를 겁니다. 내일이 내게 있음에 감사뿐이랍니다. (게시기간 : 2012.12.23.~12.29.) 816 교차로 강연옥 아쉬움과 그리움의 교차로 삶은 마음과 상관없이 신호 따라 진행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신호 묶어놓은 듯 초록, 주황, 빨강 잠시 후 파란 신호등 켜지면 달려야만 한다. 너에게서 조금 더 멀어짐이 아쉬워 유턴 길에서 마음은 교차하고... 차라리 비상등을 켜고 멈추어 서서 달려가고 싶은 차들은 나를 피해 가든 말든 뭉쓰고 싶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파란 신호등 켜지고 백미러 슬쩍 보면 줄줄이 내 뒤로 서있는 차들 나를 채찍질한다 삶은 마음과 상관없이 신호 따라 진행해야만 하는가 빨간 신호등이 그리운 날이다 (게시기간 : 2012.12.16.~12.22.) 815 골목 여태천 조금 우스워지고 싶을 때 골목을 걷는다. 김씨 아저씨가 구워 내는 붕어빵 냄새는 즐겁다. 달콤한 붕어빵 생각에 나는 조금 가벼워진다. 종일토록 종이만 줍는 이씨 노인과 날씬해지고 싶은 홍씨 아줌마는 황금잉어빵을 먹으며 기억상실증에 걸린 붕어처럼 매일 매일 골목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꼬리가 잘릴까 두려워 꼬리를 물고 골목을 달리지만 골목은 붕어의 것이다 나는 삼다수 한 병을 들고 목구멍이 간질간질할 때까지 골목을 걷는다. 골목은 사라지기 좋은 곳이다. (게시기간 : 2012.12. 9.~12.15.) 814 삶이든 연애든 끝까지 가 본 사람은 안다 박미숙 삶이든 연애든 끝까지 가 본 사람은 안다 한번쯤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실패한 것들이 눈물나게 아름답다는 것을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더 이상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는 것을 그 누구도 날 찾지 않는데 세상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잘도 돌아간다는 것을 막가는 인생에는 신호등이 없다는 것을 가끔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는 것을 무엇이든 무너질 때에는 여지없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을 눈을 오래 감을수록 별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도 살아남은 자가 결국 이긴다는 것을 삶이든 연애든 끝까지 가 본 사람은 안다. 이게 끝이 아니란 것을 (게시기간 : 2012.12. 2.~12. 8.) 813 내 인생의 스승은 시간이었다 김정한 인생의 스승은 책을 통해서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살아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나를 가르치는 건 말없이 흐르는 시간이었다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정답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찾게 되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의 메세지도 거짓없는 시간을 통해서 찾았다 언제부터인가 흐르는 시간을 통해서 삶의 정답도 찾아가고 있다 시간은 나에게 늘, 스승이었다 어제의 시간은 오늘의 스승이었고 오늘의 시간은 내일의 스승이 될 것이다. (게시기간 : 2012.11.25.~12. 1.) 812 가슴에 핀 꽃 홍광일 휘이- 사람들은 바람소리라고 한다 그대를 부르는 내 마음인 걸 쏴아- 사람들은 파도소리라고 한다 그대에게 드리는 내 마음인 걸 가슴에 핀 꽃 사람들은 그런 건 없다고 한다 늘 내 가슴에 피어있는 그대를 (게시기간 : 2012.11.18.~11.24.) 811 허영심뿐 이라는 걸 이경식 세상을 모르고 세월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어렸을 적엔, 참 동화 같아서 좋았는데 가슴이 설레이고 마음도 어쩔 수 없을 만큼 그리웠을 적엔, 오직 너만 있으면 족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물들고 세월에 휩쓸리면서……! 더 큰 마법에 빠지려 하고 더 황홀한 사랑에 젖으려 하는 나를 보았어 아, 한 번 뿐인 생이며 돌이킬 수 없는 삶인데 긴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 나는 다시 소년이 되려 하지만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이미 훌쩍 커 버린 허영심뿐 이라는 걸. (게시기간 : 2012.11.11.~11.17.) 810 시골 국민학교를 추억함 유하 내 가슴엔 아직도 사루비아의 달콤함이 살고 여선생님 하얀 치아의 눈부심과 새 수련장 빠알간 색연필로 쓴 ‘참 잘했어요’가 산다 히말라야시다 오동나무 가지 사이로 놀러 온 햇볕도 다람쥐도 찌르레기도 어린 풍금 소리에 맞춰 가슴에 달린 손수건처럼 마음을 펄럭이던 그래 생명의 모든 국민학교가 거기 있었지 아직도 내 입 안에 사는 철수와 영희, 아련하게 바둑이를 부르며 둥글게 둥글게 그 착한 영혼의 이름들로 충만한 운동장 아, 다시 가고 싶어라 환한 금빛 모래알의 은하수 (게시기간 : 2012.11. 4.~11.10.) 809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생애의 어느 한 때 한 순간, 누구에게나 그 한 순간이 있다. 가장 좋고 눈부신 한 때 그것은 자두나무의 유월처럼 짧을 수도 있고 감나무의 가을처럼 조금 길 수도 있다 짧든 길든, 그것은 그래도 누구에게나 한 때, 한 순간이 된다. 좋은 시절은 아무리 길어도 짧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시기간 : 2012.10.28.~11. 3.) 808 너를 보내고 권옥희 저 길 끝에 나, 무엇이 되어 서 있을까? 그대 숨가삐 달려오면 너른 가슴 펼쳐 포근히 안아줄 한줄기 바람이 될까? 너를 보내고 누가 먼저 빌고 간 돌탑 위에 네 이름을 묻으며 나는 마른 숲에 숨은 바람처럼 잊으라 했다 밀쳐도 밀쳐내도 떨치지 못할 몹쓸 연(緣)의 사람아 아, 사람아 두 손 안에 감싸쥔 그리움 한줌으로 너도 어디엔가 내 사랑의 돌탑을 쌓고 있겠지. (게시기간 : 2012.10.21.~10.27.) 807 김일연 연필을 깎아 주시던 아버지가 계셨다 밤늦도록 군복을 다리던 어머니가 계시고 마당엔 흑연빛 어둠을 벼리는 별이 내렸다 총알 스치는 소리가 꼭 저렇다 하셨다 물뱀이 연못에 들어 소스라치는 고요 단정한 필통 속처럼 누운 가족이 있었다 (게시기간 : 2012.10.14.~10.20.) 806 시월 그리고 바다 김만권 오후 내내 바다는 새파란 몸살을 앓았다 이따금 바위를 넘어오는 파도를 피하지 못한 나는 발목부터 가을에 젖어야 했다 하늘 만큼이나 물빛은 투명하지만 어쩌다가 끌려 나온 광어의 등짝에 마른 낙엽을 새겨 넣었다 먼 수평선 어디쯤에서 단풍은 물들어 오는 것일까 홍조 띤 하늘가에 걸렸던 구름은 문득 낙엽이었다 언제부턴가 바람이 일 적마다 내 안을 한없이 쓸고 다니던 그대였듯이 (게시기간 : 2012.10. 7.~10.13.) 805 꿈이 익는 숲 장지현 설핏 잠결에도 낙엽이 묻어왔다 지난밤 아름다운 추억 속을 한 없이 누빈 오솔길 단풍잎 붉게 물들고 신갈나무 이른 낙엽 짐에 허접한 틈새로 여린 가을 햇살이 부서져 어둠을 깨운다. 아련한 고요 속에 텃새의 익은 울음소리 정적을 깨고 이슬 젖은 가랑잎 갈바람에 흩어지는 도랑물 따라 낙엽은 나뭇잎 배 되어 떠나고 아직 겨울준비 분주한 청설 모 재바른 발놀림에 도토리 찾는 시월의 포근한 날씨 덕에 아직 여유인가 다람쥐 무엇이 그리 좋아 어린아이 촐랑대듯 흔드는 모습이야 순정한 마음처럼 철없는 아이 보채듯 그렇게 가을 숲은 옷 벗어 쓸쓸함을 메우는 가을날의 꿈이 익는 숲은 아름다워라 (게시기간 : 2012. 9.30.~10. 6.) 804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돌을 세우지 마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리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게시기간 : 2012. 9.23.~ 9.29.) 803 돌탑 이정란 아무리 높이 솟아 있어도 홀로 선 돌을 탑이라 하지 않는다 셋이서 다섯이서 받쳐주며 높아질때 탑이 된다 산길 한 쪽에 아무렇게나 쌓아진 돌탑이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건 저를 쓰러뜨리려고 수없이 다녀간 바람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돌과 힘, 힘과 돌 틈으로 화기를 보내주었던 때문이다 훗날 하늘 한 겹 끌어다 틈을 메워주는 바람의 보은으로 탑은 더욱 견고해진다 (게시기간 : 2012. 9.16.~ 9.22.) 802 나무의 후손 손진은 손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류의 조상은 나무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글우글한 누대의 흰뿌리 퍼올려 낳는 잎맥들 어머니 나무에서 나온 한 그루 나의 씨앗에서 싹튼 어린 몸에 나부끼는 잎맥이 하, 신기하게도 닮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TV 속 이산가족들 하나같이 주름진 잎맥들만 연신 부벼쌓겠는가 도시보다 도시가 낳은 골목들보다도 더 조밀한 잎맥들 낱낱의 손금에 흐르는 강물이란 무수한 사람들 틈에 흐르며 불쑥 못 보던 줄기 하날 치는 것 점심 후 도심 산길, 가지 새로 흘러내리는 햇살 왼몸에 창자에 감다보면 제 푸르던 생을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다 나무들 잎새를 무덤처럼 둥글게 쌓아둔 채 저 생으로 몸을 밀 때는 별무리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밤마다 먼 별들의 강숲에서 글썽이는 눈시울들이 어린 잎자루를 반짝이며 닦아쌓겠는가 하여 잠시 빠져나왔던 일터의 공기를 떠올릴 때도 어느새 내 핏줄을 포위하는 자신의 맥박들이 세상을 다 밀어버리는 것도 모르는 잎맥들의 흔들림! 그래, 나는 잘못 진화된 나무가 낳은 자동차 충혈된 힘줄이 스멀대는 마른 나무들의 분지를 잎새에 스치는 바람이듯 바스락거리는 잎새들이 밟히는 사원이듯 성큼, 다시 들어선다 (게시기간 : 2012. 9. 9.~ 9.15.) 801 상처는 여전히 붉다 정용화 나는 그 새 이름을 알지 못한다 깃털만 만져도 가슴에 상처 하나씩 갖게 된다는 그 새는 내 입 안 깊은 동굴 속에 살다가 무심코 입을 벌리자 기어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왔다 새가 빠져나간 자리, 허공이 자꾸 아프다 햇빛의 온기가 남아있는 돌 위에서 새는 아까부터 견고한 비밀을 쪼아대고 있다 저녁은 어두워지게 내버려두고 오래도록 물어뜯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처음엔 그저 작게만 보였던 새 걷는 것이 전부인 듯 보이더니 날개가 생겼다 날카로운 발톱이 생기고 부리가 점점 커져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어둠도 가둘 수 없는 새가 날아간다 무엇으로도 저 새를 잡을 수 없다 새가 날아간 자리 두고 간 소문만 무성하고 노을 너머 상처는 여전히 붉다 (게시기간 : 2012. 9. 2.~ 9. 8.) 800 옆에 산다는 것 이운진 이삿짐을 싸다가 수세미가 자라던 화분을 넘어뜨렸습니다 아직 그 누구의 허리도 감아보지 못한 어린 녀석을 같이 데려가지 못하는 미안함에 땅 내음이라도 맡으려무나 아파트 화단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고는 찬찬히 나무들을 쳐다봅니다 제일 큰 벚나무는 귀찮아할까 라일락의 목을 죄면 향기를 잃고 말겠지 산수유나무에서는 우리 집 창문이 보이지 않을 거야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나무마다 찾아다니며 밑둥을 만져 봅니다 나무에게도 눈물 같은 것이 있어서 손을 대면 뿌리의 체온이 전해집니다 뜨겁지도 먹먹하지도 않은 나무 곁에 수세미를 심어주고 이제 막 허공 한 줌을 움켜 쥘 만한 덩굴손으로는 상처 난 나무껍질을 감아주었습니다 나무와 수세미의 그림자는 이미 하나였습니다 옆에 산다는 건 이런 일이었습니다 실로 우연히라도 그림자를 포개어 놓고 싶은 일 말입니다 먼 곳에서 당신이 보낸 대숲의 소식을 받는 순간 내 안에 당신이라는 심장이 생기는 그런 일 말입니다 (게시기간 : 2012. 8.26.~ 9. 1.) 799 멍요일 박남희 오늘은 멍요일이다 어젯밤 말 안 듣는 아들을 심하게 때리고 내 가슴에도 멍이 들었다 오늘 아침 아들 종아리에 난 멍자국을 들고 파주 낙원공원묘지 아버지 산소를 찾아간다 그동안 나를 키우시며 멍들었을 아버지의 멍자국을 만져보러 간다 무덤 위에는 어느새 풀들이 무성하다 바람은 무덤위의 풀을 흔들고 자꾸 내 마음을 흔들어 댄다 바람 속에 까칠한 멍자국이 보인다 세상에서 흔들리는 너무 많은 것들에게 더 이상 흔들리지 말라고 붙잡다가 생긴 멍자국을 가지고, 저 바람은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의 무덤은 당신의 멍을 하늘로 밀어올리며 푸르게 푸르게 무성하다 나는 가지고 간 아들의 멍자국을 아버지 무덤에 가만히 대어본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푸른 멍이 반갑다고 반갑다고 서로 몸을 비비는지 감촉이 까실까실하다 (게시기간 : 2012. 8.19.~ 8.25.) 798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게시기간 : 2012. 8.12.~ 8.18.) 797 허허 김승동 그리운가 잊어버리게, 여름날 서쪽 하늘에 잠시 왔다 가는 무지개인 것을 그 고운 빛깔에 눈멀어 상심한 이 지천인 것을 미움 말인가 따뜻한 눈길로 안아주게 어차피 누가 가져가도 다 가져갈 사랑 좀 나눠주면 어떤가 그렇게 아쉬운가 놓아버리게 붙들고 있으면 하나일 뿐 놓고 나면 전부 그대 것이 아닌가 세상의 그립고 밉고 아쉬운 것들 그게 다 무엇인가 사랑채에 달빛 드는 날 묵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인 것을 (게시기간 : 2012. 8. 5.~ 8.11.) 796 김치를 담그다가 권정남 세상 살아가면서 그 누구를 위하여 온 몸 소금에 절여 진 적이 있는가 펄펄 살아 있는 독기를 다스리며 진짜 하고픈 말 안으로 삼키며 내 몸에 탈수가 일어 날 때까지 흰 소금기로 삶의 무늬를 그려 본 적이 있는가? 내 또한 누구를 위하여 배춧잎 버무리듯 세상속에 나를 버무려 놓고 일과 사람 앞에서 나를 섞어 넣으며 수줍어 수줍어 노을처럼 얼굴 붉어 본 적이 있는가 진정 그들한테 양념이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을 바라보다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다가 눈동자가 붉어지도록 울어 본 적이 있는가 영하의 온도에서 겹겹이 나를 누이며 내 온 영혼을 삭이고 삭이며 그 누구를 위하여 진정 나를 발효시켜 본 적이 있는가 돌다리를 건너듯 세상을 건너가는 종교인의 삶을 몸 안에 겸혀히 받아들이며 세상 사람들한테 나를 맞추기 위하여 좁은 공간 영하의 온도에서 숨죽이며 숨죽이며 내 몸과 영혼을 푹 삭혀 본 적이 있는가 (게시기간 : 2012. 7.29.~ 8. 4.) 795 인생 김정환 이젠 내 눈 앞에서 인생의 좌우가 보여 처음의 끝과 끝의 더 끝이 그 끝에서 보여 내 인생은 밤늦은 골목길 귀가하는 그림자 비틀거리는 그림자 아 여생이 비틀거리면 안 되지 이젠 내 눈 앞에서 역사의 좌우가 보여 10년으로 보면 끊어지는 30년으로 보면 역동하는 백년으로 보면 거대한 이어짐이 보여 아주 가깝게 아 여생이 너무 가까우면 안 되지 (게시기간 : 2012. 7.22.~ 7.28.) 794 빨간 우체통 앞에서 신현정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냉큼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 껍데기를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 안고 그냥 왔다. (게시기간 : 2012. 7.15.~ 7.21.) 793 마음에 얹어주는 한 줌 덤 정영 "한 주먹만큼만 더 주세요" 라고 하면, 그래 오늘 인심 쓴다, 며 나물을 한 주먹만큼 더 얹어주는 행상 할머니.. 배추 값이 너무 비싸니 오늘은 무를 사가세요, 하며 무 하나를 덤으로 더 얹어주는 채소가게 아저씨.. 당신이 오늘 개시 손님이니 장사 잘되겠네, 하며 바지락 한 주먹을 더 넣어주는 생선가게 아주머니.. 그렇게 '덤'이란 말이 '선물'처럼 들리는 재래시장에서 나는 오늘 모처럼 장을 본다.. 어린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되도록이면 가게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보다 행상에서 이것저것 팔고 있는 할머니들 물건을 사주라고.. 그리고 이천 원어치를 천 원에 살 수도 있지만.. 천 원어치를 이천 원에 살 줄도 알아야 한다고.. 손수 재배한 호박이나 부추 같은 걸 턱도 없이 싼 값에 내어놓는 할머니들 앞에서 난 어머니의 그 말을 늘 생각한다.. 그렇게 난 '덤'이란 게 내가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난 '덤'이란 게 내가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덤'은 물건도 돈도 아닌, 내 마음에 얹어주는 당신의 선물이고.. 그대 마음에 내가 얹어줄 수 있는 마음의 선물이라는 것도.. 오늘 저녁 식탁은 푸진 '덤'의 성찬이 되겠다.. (게시기간 : 2012. 7. 8.~ 7.14.) 792 열정 김은영 담쟁이 새잎처럼 사랑이 줄을 탑니다 우리들 아련한 가슴이 맞닿아 저려와도 잡은 손 놓을 수 없습니다 서로를 쳐다보는 눈이 울고 있지만 볼 수가 없음을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시작이라 말 한적 없으므로 끝 또한 없겠지요 다만 몇 억겁 전부터 지어졌던 인연을 따라 갈 뿐입니다 운명이 길을 내면 앞선 그 뒤를 기쁨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가는 내내 웃음 잃지 않아 행여 그가 뒤를 돌아보는 의심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그 길을 다 지나 험한 길 어떻게 왔냐고 물으면 반듯한 어깨만 보고 따라 왔다 말 할겁니다. (게시기간 : 2012. 7. 1.~ 7. 7.) 791 언제 다시 보자는 말 곽효환 둔촌시장 어귀에서 오래전 친구를 기다린다 결혼은 했겠지 그 때 그 여자일까 아이는, 부모님은, 직장은…… 세꼬시 횟집에서 마주 앉은 그의 모습에서 이십 년을 건너 뛴 내 나이를 읽는다 성근 머리칼, 볼록 나온 아랫배, 왜소해 보이는 팔과 다리 아내는 전에 그녀가 아니라고 했고 아이는 둘이고 모두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고 내내 공부만 하다 지금은 아버지 사업을 돕는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안부를 묻고 술잔을 주고받고 이야깃거리가 마를 무렵 자리를 옮겼다 다시 한참을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잡담 그리고 언제 다시 보자고 기일 없는 약속을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높낮이가 평평하기만 하던 일자산(一字山)이 집으로 가려면 이리로 오라고 부른다 문득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렵다 그리고 헤어질 때 건네는 언·제·다·시·보·자· 는 말이 나를 더없이 속물이게 한다 둔촌시장 길따라 사람들 사이로 숨고 싶다 (게시기간 : 2012. 6.24.~ 6.30.) 790 비와 그리움 안경애 오늘은 온종일 비가 내립니다 비를 닮은 그리움까지 살며시 젖어 녹아 마음이 설렙니다 오늘은 온종일 비가 쏟아집니다 헝클어져 서글픈 마음마저 오롯이 고여 드는 슬픔까지 이야기하듯 행복합니다 오늘은 온종일 비가 퍼붓습니다 싹둑 베인 가슴까지 씻어내고 닦아내듯 멈추지 않는 빗소리가 참 좋습니다... (게시기간 : 2012. 6.17.~ 6.23.) 789 아내의 생일 김두일 자꾸 고관절이 아프다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보던 의사는 골다공증이라며 구멍이 숭숭 뚫린 아내의 뼈 사진을 보여주었다. 뼈에 뚫린 구멍들을 자세히 보니 사나운 이빨자국이 선명했다. 아들 녀석이 한 입씩 베어 문 흔적 옆에 승냥이보다 더 예리하게 뜯어낸 내 이빨자국이 무수하게 널려있었다. 깊은 밤에 마시고 버린 술병이 아내의 뼈 속에서 파편처럼 박혀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아마도 아내는 수렵의 시대를 지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날, 뼈에 좋다는 사골을 넉넉히 사고, 티비에서 광고해대던 속옷을 세트로 사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는 바늘을 쥐고 앉아 너덜너덜한 속옷 구멍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속옷의 구멍이야 바늘로 깁지만 뼈에 난 구멍을 무엇으로 메우려는지. 한 무더기 시간이 내 뼈 속에서 휘파람을 불며 빠져나가는 오후.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 속에서 아내의 허벅지 뼈 한 덩이를 건져 올렸다. (게시기간 : 2012. 6.10.~ 6.16.) 788 고향 백석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 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한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 아느냐 한즉 의원이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게시기간 : 2012. 6. 3.~ 6. 9.) 787 돌담 김기홍 발길에 걸리는 모난 돌멩이라고 마음대로 차지 마라. 그대는 담을 쌓아 보았는가 큰 돌 기운 곳 작은 돌이 둥근 것 모난 돌이 낮은 곳 두꺼운 돌이 받치고 틈 메워 균형 잡는 세상 뒹구는 돌이라고 마음대로 굴리지 마라. 돌담을 쌓다 보면 알게 되리니. 저마다 누군가에게 소중하지 않은 이 하나도 없음을 (게시기간 : 2012. 5.27.~ 6. 2.) 786 조화 (造花) 남재만 다방엘 갔더니 자그마한 화분에 장미 몇 송이가 빨갛게 피어 있다. 조화를 생화 뺨치게 만들어 놓는 사람들의 솜씨에 감탄하며 꽃잎을 살짝 만져봤다. 그때 내 손끝에 하르르 전해오는 장미의 가녀린 떨림. 아, 그 장미는 조화가 아니라 생화였다. 수줍어 얼굴 빨개진. 미안하다 장미야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장미야 정말 미안하다. (게시기간 : 2012. 5.20.~ 5.26.) 785 흐르는 물을 붙들고서 홍사용 시냇물이 흐르며 노래하기를 외로운 그림자 물에 뜬 마름닢 나그네 근심이 끝이 없어서 빨래하는 처녀를 울리었도다. 돌아서는 님의 손 잡아다리며 그러지 마셔요 갈 길은 육십 리 철없는 이 눈이 물에 어리어 당신의 옷소매를 적시었어요. 두고 가는 긴 시름 쥐어 틀어서 여기도 내 고향 저기도 내 고향 젖으나 마르나 가느니 설움 혼자 울 오늘 밤도 머지 않구나. (게시기간 : 2012. 5.13.~ 5.19.) 784 소리 박순원 모란이 필 때 어떤 소리가 나는데 우리는 듣지 못 한다 멀리서 별과 별이 부딪칠 때도 소리가 나는데 그것도 듣지 못 한다 가끔 개가 듣고 짖는다 과일이 다 익어서 떨어질 때도 소리가 난다 이제 됐다 너 혼자 살아라 툭 예전에 내가 어떤 여자가 헤어질 때도 소리가 났다 이제 됐다 각자 살자 눈빛에서 소리가 났다 그녀가 키우던 개가 그 소리를 들었는데 못 들은 척하고 잠잠했다 (게시기간 : 2012. 5. 6.~ 5.12.) 783 접기로 한다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 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게시기간 : 2012. 4.29.~ 5. 5.) 782 신지혜 밥은 먹었느냐 사람에게 이처럼 따뜻한 말 또 있는가 밥에도 온기와 냉기가 있다는 것 밥은 먹었느냐 라는 말에 얼음장 풀리는 소리 팍팍한 영혼에 끓어 넘치는 흰 밥물처럼 퍼지는 훈기 배곯아 굶어죽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느 죽음보다도 가장 서럽고 처절하다는 거 나 어릴 때 밥 굶어 하늘 노랗게 가물거릴 때 알았다 오만한 권력과 완장 같은 명예도 아니고 오직 누군가의 단 한 끼 따뜻한 밥 같은 사람 되어야 한다는 거 무엇보다 이 지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것은 인두겁 쓴 강자가 약자의 밥그릇 무참히 빼앗아 먹는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은 둘 다 옳다 목숨들에게 가장 신성한 의식인 밥 먹기에 대해 누가 이렇다 할 운을 뗄 것인가 공원 한 귀퉁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이에게도 연못가 거닐다 생각난 듯 솟구치는 청둥오리에게도 문득 새까만 눈 마주친 다람쥐에게도 나는 묻는다 오늘 밥들은 먹었느냐 (게시기간 : 2012. 4.22.~ 4.28.) 781 동그라미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입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속의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다인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순 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화장실에서 읽는 시 (게시기간 : 2012. 4.15.~ 4.21.) 780 목련꽃 진다 최광임 아름다운 것이 서러운 것인 줄 봄밤에 안다 미루나무 꼭대기의 까치둥지 흔들어 대던 낮바람을 기억한다 위로 솟거나 아래로 고꾸라지지만 않을 뿐 바이킹처럼 완급하게 흔들리던 둥지 그것이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라고 의지 밖에서 흔들어대는 너 내 몸에 피어나던 목련꽃잎 뚝뚝 뜯어내며 기어이 바람으로 남을 채비를 한다 너는 언제나 취중에 있고 너는 언제나 상처에 열을 지피는 내 종기다 한때 이 밤, 꽃이 벙그는 소리에도 사랑을 하고 꽃이 지는 소리에도 사랑을 했었다 목련나무는 잎을 밀어 올리며 꽃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이 밤도 둥지는 여전히 위태롭고 더욱 슬퍼서 찬란한 밤 또 어디서 꽃잎 벙그는 소리 스르르, 붉은 낙관처럼 너는 또 종기에 근을 박고 바람으로 불어간다 꽃 진다, 내가 한고비 진다 (게시기간 : 2012. 4. 8.~ 4.14.) 779 나하나 꽃되어 조동화 나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게시기간 : 2012. 4. 1.~ 4. 7.) 778 둥근 반지 속으로 이사라 봄볕이 내려 앉는 창가에서 이렇게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인 듯 한 사람인 듯 눈동자 속에 둥근 집 한 채 짓고 눈빛 속에 눈물 속에 눈뜬 꿈 둥글게 두고 싶다 둥근 세상과 한몸으로 철철이 물들어 눈 밖에 나는 일 없으면 좋겠다 딱딱한 것 깨고 나와 알고도 모르는 척 다시 세상 살면서 온 마음이 온 마음에게 부디쳐도 즐겁게 쓸리는 여느 봄날같이 가지 끝의 연륜이 가벼울수록 팔랑팔랑 안타까운 봄날같이 사랑했던 사람들 다시 파릇한 봉분에서 피어오르는 봄날같이 이렇게 둥근 눈으로 마주 보며 말 못하고 피 마르는 고통도 오래될수록 씨눈 된다는 말, 이제 믿는다 사랑은 말없이 둥글다며 누구나 말없이 단풍 들고 낙엽 지고 누구나 말없이 봄볕 들고 새순 돋는다는 말, 정말 믿는다 둥글게 세상 담은 반지속으로 사람들 자꾸 들어간다. (게시기간 : 2012. 3.25.~ 3.31.) 777 손톱 강세화 왠지 심란한 날은 손톱을 깎는다. 우리 살아가는 애처러운 일상이 때때로 잘려나가듯 달아나는 손톱을 본다. 어렵고 어려워라 일마다 이리도 어려울까 순리도 원칙도 한순간에 밀려나고 분김에 손톱을 뜯어도 역(逆)으로만 가는 세상. 등 뒤에 그늘을 숨기고 덤덤히 서 있을 때 어찌 견디나 손톱이나 깎지. 톡톡톡 잘려나가고 무심찮게 자라도록…… (게시기간 : 2012. 3.18.~ 3.24.) 776 마누라 음식 맛보기 임보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즈음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 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 맞추는 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게시기간 : 2012. 3.11.~ 3.17.) 775 녹차 한 잔 고옥주 그대에게 녹차 한 잔 따를 때 내 마음이 어떻게 그대 잔으로 기울어 갔는지 모르리. 맑은 마음 솟구쳐 끓어오를 때 오히려 물러나 그대 잔을 덥히듯 더운 가슴 식히리. 들끓지 않는 뜨거움으로 그리움 같은 마른 풀잎 가라앉혀 그 가슴의 향내를 남김없이 우려내야 하리. 그대와 나 사이 언덕에 달이 뜨고 풀빛 어둠 촘촘해 오니 그대여, 녹차 한 잔속에 잠든 바다의 출렁임과 잔잔한 온기를 빈 마음으로 받아 드시게 (게시기간 : 2012. 3. 4.~ 3.10.) 774 아버지 생각 하종오 저를 낳은 고향에서 늙으시는 아버지 저도 타향에서 자식 거느린 아비가 되었습니다. 어린 것 품에 안고 봄 햇살 속에 서면 자식 가슴에 맞대어야 제 가슴이 맑아지고 자식 속에 스며들어야 제 속이 깨끗해지니 어디서나 사람들이 넉넉하게 보이고 아버지 늙으신 뜻도 알겠습니다. 늙으셨건만 제게 늘 어린 마음이셨던 아버지 저는 커다란 산을 뛰어넘으면서도 시든 풀꽃 앞에서는 울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고향 쪽 하늘 더듬으며 제가 늙어갈 적엔 제 자식은 다른 타향에서 아비 되어 이리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게시기간 : 2012. 2.26.~ 3. 3.) 773 밥, 그 밥 한 그릇에 사랑이여 용서여 이선관 여보야 밥 안 먹었지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김이 난다 식기 전에 얼른 와서 밥 같이 나눠 먹자 마주 보면서 밥 같이 나눠 먹으면 눈빛만 보고도 지난 오십년 동안 침전된 미운 앙금은 봄눈 녹듯이 녹아내릴 것 같애 우리 서로 용서가 될 것 같애 여보야 밥 안 먹었지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밥, 한 그릇의 사랑이여 용서여 (게시기간 : 2012. 2.19.~ 2.25.) 772 사랑의 시작입니다 박남권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하늘은 늘 비어 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포옹하는 그 넓은 우주까지 품에 넣어 사랑하는 광대무변 또는 무심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은 관심입니다 사랑이 너무 깊기에 미워지는 사랑의 결과입니다 비운다는 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더 큰 사랑의 준비입니다 (게시기간 : 2012. 2.12.~ 2.18.) 771 사랑하는 내 아들아 작가미상 아들아 아들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너에게 흡족히 준 것이 없구나 무언가를 무언가를 네 손에 가득 쥐어주고 싶은데 나 아무 것도 네게 준 기억이 없구나 힘겨운 세상에 상의도 없이 멋대로 데려다 놓고 힘들게만 했지 어미라는 거룩한 이름이 부끄럽기만 하구나 먹이고 입히는 일이야 나만 했겠느냐 아들아 아들아 이렇게 부르기만 해도 그냥 좋은데 곁에 있으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아무런 두려움도 없으니 아들아 어찌 이런 아름다운 인연으로 너 내게 왔는냐 저 높은 대문 웅장한 성 다 지나고 좁고 초라한 나에게로 너 어찌 왔느냐 반듯한 밥상하나 차려내지 못하는 주변없는 나에게 어머니란 성스런 이름도 달아 주고 세상 누구보다 믿고 따라주니 아들아 기쁨으로 떨리는 어미 가슴 보았느냐 너를 안고 네 붉은 입술에 젖 물리던 기억들이 내 생에 행복의 극치였음도 고백하고 싶지만 아들아 너 행여 빚진 마음들어 버거울까 하여 어미는 한 마디 말도 아끼고 싶구나 네가 잘 먹으면 내 배도 부르고 네가 아프면 내 살점 점점이 녹아 내렸단다 이제 미끈한 나무처럼 잘 자라서 이 어미에게 그늘주고 열매도 주고 보석보다 값진 뿌듯함을 날마다 내어주니 아들아 너와 나 모자의 인연으로 만난 이 세상이 너무도 고맙고 아름답구나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게시기간 : 2012. 2. 5.~ 2.11.) 770 화분 이병률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 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게시기간 : 2012. 1.29.~ 2. 4.) 769 이런 친구 하나 있다면 하성희 거울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그림자 같은 친구 하나만 더 있었으면 끝을 볼 수 없는 우물같이 맘 깊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와 같은 친구 있었으면 참 좋겠다. 나쁜 마음을 먹었을 때 넌지시 능청 떨며 바로 잡아 주는 친구 숨긴 마음 금방 알아채고 ´너 이랬구나´ 웃어 주는 친구 가끔은 ´너 참 좋은 친구´라고 추켜세워주며 위로해 주는 친구 삶이 힘들때 어깨 살며시 빌려주며 다독거려 주는 친구 친구가 별건가? 부담스럽지 않은 가지런한 마음으로 서로를 향해 웃음 지을 수 있다면 그건 무조건 꼭 필요한 친구인 것을… 이런 친구 하나만 가졌다면 삶의 중간 점검 필요 없이 지금껏 잘 살고 있는 증거이리라. (게시기간 : 2012. 1.22.~ 1.28.) 768 사랑은 오철수 문을 열자 더운 기운이 훅 끼쳤다 나는 밖에서 "참 따뜻하네요"했고 동시에 여자는 안에서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네요"했다 거기 잠깐 눈웃음 머물고 사랑은 늘 그랬다 완전히 다른 말이면서도 같은 동행 만나야 할 이유도 헤어져야 할 이유도 늘 함께하는 동시였다. 내가 너를 향하고 있는 내내 (게시기간 : 2012. 1.15.~ 1.21.) 767 행복을 열어가는 마음 손병흥 이처럼 삶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길섶에서 이젠 타인의 마음속 아픔 어둠마저도 쉽사리 헤아리고 껴안을 수 있음을 슬며시 한 걸음 양보하고 포용하게 됨을 진실로 아끼고 기다리며 인내해야 함을 이제사 조금씩 깨닫게 된 소중한 날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은 채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던 오늘따라 그 한마디 손길 더욱 그리워 맑고 따뜻한 마음 밝은 미소 가득히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하며 용서해가는 삶 감싸주는 인연 만큼 기쁨주는 인연들이 사랑으로 깨닫고 기쁨으로 하나되는 그 순간 참 가치 의미 지혜 너그러움 쫓아 언제 어디서나 늘 아름다운 그길로 조용히 먼저 손 내밀던 한조각 퍼즐. (게시기간 : 2012. 1. 8.~ 1.14.) 766 새해의 작은 소망 정연복 억만금(億萬金) 보석보다 소중한 하루 그 눈부신 은총의 날을 하늘은 올해도 삼 백 예순 다섯 개나 선물로 주셨다 나, 아직은 많이 서툰 인생의 화가이지만 그 하루하루의 매 순간을 사랑과 기쁨과 행복의 곱고 순수한 색깔로 예쁘게 보람있게 채색하고 싶다 (게시기간 : 2012. 1. 1.~ 1. 7.) 765 오늘을 위한 기도 김우정 나는 내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삽니다 나는 오늘에 고마워하며 삽니다 오늘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내 곁에 오늘이 있다는 것은 어제가 있었고 내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며, 산이 되고 싶었고 강을 닮고 싶었고 꽃처럼 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나를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나를 찾기에 바빴습니다 산처럼 우직이 강물처럼 어울리어 꽃처럼 향기롭게 하늘처럼 푸르게 살지 못 했습니다 내 안에, 산이 들어오고 강이 흐를 수 있도록 꽃밭이 생기고 하늘을 닮을 수 있도록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싱그럽고 기쁨에 찬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오늘에 감사한 느낌으로 두 손을 모음니다 정성들인 마음의 합장을 합니다 (게시기간 : 2011.12.25.~12.31.)

3-16.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2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