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1 년
 

   2011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766 새해의 작은 소망 정연복 억만금(億萬金) 보석보다 소중한 하루 그 눈부신 은총의 날을 하늘은 올해도 삼 백 예순 다섯 개나 선물로 주셨다 나, 아직은 많이 서툰 인생의 화가이지만 그 하루하루의 매 순간을 사랑과 기쁨과 행복의 곱고 순수한 색깔로 예쁘게 보람있게 채색하고 싶다 (게시기간 : 2012. 1. 1.~ 1. 7.) 765 오늘을 위한 기도 김우정 나는 내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삽니다 나는 오늘에 고마워하며 삽니다 오늘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내 곁에 오늘이 있다는 것은 어제가 있었고 내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며, 산이 되고 싶었고 강을 닮고 싶었고 꽃처럼 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나를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나를 찾기에 바빴습니다 산처럼 우직이 강물처럼 어울리어 꽃처럼 향기롭게 하늘처럼 푸르게 살지 못 했습니다 내 안에, 산이 들어오고 강이 흐를 수 있도록 꽃밭이 생기고 하늘을 닮을 수 있도록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싱그럽고 기쁨에 찬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오늘에 감사한 느낌으로 두 손을 모음니다 정성들인 마음의 합장을 합니다 (게시기간 : 2011.12.25.~12.31.) 764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백창훈 마음이 꺾이고 영이 억눌릴 때마다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힘이 다해 가는 비둘기의 날개 깃을 다시 퍼덕이며 날아가게 하소서 호숫가에서 산 그림자처럼 떨고 있는 한 여인의 마음을 붙들어주옵소서 겨울나무가지에서 찬바람 맞으며 매달리는 나뭇잎 하나를 포근히 뿌리 곁에서 쉬게 하소서 밤마다 밤을 지새며 홀로 눈물 흘리는 연약한 갈대의 뿌리에 새싹이 돋아나게 하소서 어둡고 달이 뜨지 않은 밤길을 걸어가도 뒤돌아보며 놀라지 않게 하소서 삶이 가난하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비록 타인이 내게 화를 내게 한다 하더라도 용서하며 너그러이 자비를 베풀며 중심 잃지 않게 하소서 진정한 평화와 힘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오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민족과 국가와 조상과 부모와 환경과 남을 원망하기 전에 내 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러움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게시기간 : 2011.12.18.~12.24.) 763 누군가를 가슴에 들이는 일은 조현수 누군가를 가슴에 들이는 일은 겨울 속에서도 꽃눈을 키우는 일이구나 찬바람 속에서도 섣불리 부를 수 없는 이름 가슴속 깊이 묻으면 조용히 물관부를 타고 오르는 푸르름 흔들림이 강할수록 눈망울은 중심을 붙들고 언저리마다 맺힌 그리움 가슴속에 들여진 것만으로도 아프고 기다림만으로도 눈감아 버려도 좋을 누군가를 누군가를 가슴에 들이는 일은 여문 씨앗하나 가슴에 품고 허물어지지 않는 자양분 뿌리에 담아 거스름 없는 하늘로 키워가는 일이구나 (게시기간 : 2011.12.11.~12.17.) 762 마흔 번의 낮과 밤 권혁웅 불혹은 일종의 부록이거나 부록의 일종이다 몸 여기저기 긴 절취선이 나 있다 꼬리를 떼어 낸 자국이다 아무도 따라 흔들리지 않았으므로 모믄 크게 벌린 입처럼 둥글다 제 자신을 다 집어넣을 때까지 점점 커질 것이다 저녁은 그렇게 온다 자다가 깨어날 때에는 꼭 뒤튼 자세다 작은 불길 하나가 여기저기 부딛혀 흘렀다 내 등본는 파이고 깎여 나간것 투성이다 삼각주에 관해서는 말할 것이 업스므로 침대는 먼 데서 날아온 것들로 버석거린다 내 방은 우물이 아니어서 돌을 던져도 아무 소리가 안난다 새벽을 절취선처럼 온다 일렁이는 빛이 다 물살이다 그걸 마저 뜯어내거나 바닥에 닿으려면 몇 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게시기간 : 2011.12. 4.~12.10.) 761 식구 유병록 매일 함께 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삼시 세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때마다 비슷한 변변치 않은 반찬에서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잡는데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한번에 먹자니 입 속이 먼저 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나머지 한 장을 떼어내어 주려고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게시기간 : 2011.11.27.~12. 3.) 760 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 위선환 언제부터인가 나무 뒤로 날이 저물더니 나무 뒤가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나무 뒤에 기대어 바라보는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인데 그렇게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쪽에서 하나씩 돋아나는 불빛들이 실은 어두워지면서 더욱 닦이는 그리움인 것을 눈치 챈지 오래다 이제는 저무는 하늘보다 빠르게 사람이 어두워지는 때에 이르러 헤아린다 왜, 그리움에 기댄 사람은 마침내 뼛속까지 깜깜해지는가를 그리고 사람의 안쪽에서 불빛 돋는 저녁이 언제부터였는가를 (게시기간 : 2011.11.20.~11.26.) 759 사람의 향기 박태강 여름의 푸르럼이 너무나 왕성하여 사시사철 푸르럴것 같아도 가을이면 낙엽지고 백년을 못 사는 인생 천년을 살것 처럼 언제나 청춘인양 하여도 세월가면 늙어 병들고 좋은 직장, 권력 수십년 갈것 같아도 세월 지나면 떨어져 딩구는 낙엽 처럼 되나니 겸손하고 겸손하여 스스로 몸을 낮추어 덕을 쌓는 것만 못 하나니 이웃을 사랑하고 좋은 만남 좋은 인연 많이하여 참 삶을 가지는 것이 인본이니 힘이 있을 때 내 부모 내 형제 내 이웃을 사랑으로 보살핌이 더없는 덕이 되어 삶에는 영광이 있고 마음의 화평으로 건강을 얻어며 언제나 평화가 있고 몸에 향기 나고 좋은 친구 많아 외로움 없이 기쁨으로 충만하여 신선처럼 살 것이여 ! (게시기간 : 2011.11.13.~11.19.) 758 가을 쉼표 이승민 시월은 가고 가을도 가고 한 잎 남지 않은 벽오동나무 새벽 물질 하는 찬 서리에 오돌오돌 그렇게 우리네 계절도 가네 발작증 환자처럼 벗겨지는 손 껍질 슬픔에 슬픔을 더하는 계절 준비해야 하는 나는 메마른 정전기에 감전돼 떨어지는 낙엽에 고정돼 한 점 가을 쉼표 찍지 못하네 아침을 된장찌개와 밥을 먹은 나는 잘 숙성된 어머니의 손맛과는 다르지만 오감을 적시며 묻혀오는 고향 그리움에 잠시 멍한 듯 목젖 타고 흘러 드는 뜨거움에 멈칫 급하게 채워 가는 한끼 해결로 하루 또 살아내야 하는 버거운 가을 쉼표 지우며, 지우며....... (게시기간 : 2011.11. 6.~11.12.) 757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종백 당신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어요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든 배경을 보기전에 믿음의 크기를 보세요 만약에 사랑을 하게 된다면 둘만의 이야기로는 다투더라도 집안의 일로는 의논하며 하나가 되어야 한답니다 만약에 서로의 사랑이 집착이 되어 가거든 맘속에 숨기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 안식하려 하지도 말고 그늘이 있는 공원에서 한 번 눈을 마주쳐보세요 오랫동안...... 만약에 헤어지려 하거든 아픔만큼 힘겨울 시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답니다 함께했던 시간의 그리움만큼 아련히 떠오를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아야 한답니다 당신에게 해주고픈 말이었어요...... (게시기간 : 2011.10.30.~11. 5.) 756 낙엽이 떨어질 때 예랑 푸르던 잎새 단풍져 떨어지듯 불혹지나 지천명인 양 나의 주변 단풍들도 한 잎 두 잎 떨어져 간다 마지막 잎새로 남은 나도 깊어 가는 이 가을 유수의 세월 탓하는 아픔으로 파르르 떤다 울긋불긋 단풍 닮지 말라 그대 이미 떨어질 때 되었나니 풋풋한 떡잎에 행복하여라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구는 떠돌이 영혼들 그대들의 주소가 아닌가 앙상한 가지마다 이름 모를 새 잎 돋아나겠지 무대는 몇 번씩 바뀌고 역사의 무덤에 잠든 그대의 발자취 서서히 지워가리니 어차피 지워질 발자취 남기려 왜들 발버둥인가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처럼 무소유의 삶을 마칠 수 없는가 ? (게시기간 : 2011.10.23.~10.29.) 755 추억을 위한 레시피 정경란 오늘의 요리법은 굽기에요. 당신은 여태 버리지 못한 아픈 기억 하나만 들고 오세요. 제대로 굽기 위해선 불 조절이 중요해요 너무 센 불에 두면 프라이팬이 먼저 타버리지요 아픈 기억도 어쩌면 서두른 탓인지 몰라요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열기도 전에 너무 뜨거워진 당신을 들켜버린 건 아닌지 저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숯이 된 기억들을 버리면서 후다닥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겉이 먹음직스러우면 속이 날것이고 속이 익었다 싶으면 겉은 까맣게 타버리지요 저 여린 불꽃을 봐요 단단한 기억의 육질을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은근함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온도가 필요한가 봐요 구수한 추억을 원한다면 먼저 당신의 심지를 조절하세요 (게시기간 : 2011.10.16.~10.22.) 754 불혹(不惑)의 구두 하재청 예고도 없이 불어 닥친 바람 이미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낙엽은 더 이상 밟히는 존재가 아니다 동강동강 인화된 가을이 구두코에 부딪치며 몰려오던 날 그다지 바쁠 것 없는 귀가는 신발장에 버려진 낡은 구두처럼 고요하다 발뒤꿈치를 타고 가슴에 차 올라오는 먼 귀가길 모퉁이에 매달린 소용돌이 때론 먼지처럼 뚝뚝 피어나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현관문을 열다 뒤돌아보곤 한다 내가 걸어온 이정표가 골목골목 훤하게 적시는 순간 예정된 귀가는 늘 서툴고 불편하다 신발장 구석 낡은 구두가 허리 아픈 아내보다 먼저 인사를 한다 구두 속 갇혔던 하루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맞는다 그렇구나, 나를 맞는 하루의 시작이 지금부터구나 不惑(불혹)을 넘긴 사람은 안다 저물녘이 고요에 젖어 흔들린다는 것을, 한 쪽으로 삐딱하게 닳은 구두 뒷굽이 나를 향해 휘청거린다 구두를 벗어 곧 살아 퍼덕일 내 하루를 신발장에 진열한다 낙엽에 할퀸 구두 뒤축 피 흘린 가을 몇 점. (게시기간 : 2011.10. 9.~10.15.) 753 하늘로 가는 길 박영님 참으로 슬퍼할 일 너무 많아도 이제 울지 않기로 하자. 한 세상 울다 보면 어찌 눈물이야 부족할 리 있겠느냐만 이제 가만 가만 가슴 다독이며 하늘 끝 맴돌다 온 바람소리에 눈 멀기로 하자 이 가을,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게 다그치지 않기로 하자 아니야,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기로 하자 (게시기간 : 2011.10. 2.~10. 8.) 752 가을하늘 유종인 하늘이 더 깊어진 것이 아니다 눈앞을 많이 치운탓이다 밥그릇처럼 뒤집어도 다 쏟아지지 않는 저 짙푸른 늪같이 떨어지는 곳이 모두 바닥은 아니다 열린 바닥이 끝없이 새떼들을 솟아오르게 한다 티 없다는 말, 해맑다는 말! 가을엔 어쩔 수 없다는 말, 끝 모를 바닥이라는 말! 바닥을 친다는 것, 고통을 저렇게 높이 올려놓고 바닥을 친다는 것 그래서, 살찌고 자란다는 것! 당신이 내게 올 수도 있다는 것 변명은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 화장실에서 읽는 시 (게시기간 : 2011. 9.25.~10. 1.) 751 뒤안 금별뫼 마당에는 햇빛이 있고 뒤안에는 그늘이 있다 너절한 마음의 갈래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잠깐의 이면 시래기 타레. 마늘 타레. 양파 타레. 그리고 건초들이 제 꿈 말리며 구절초 빛으로 걸려있던 곳. 농기구 옆에 오줌독 언제나 하늘 품던 곳. 햇빛보다 그늘은 냇정이며 측은지심이다 남몰래 어머니 내 머리 쥐어박고 속상해서 눈물짓던 곳 언젠가 어머니 누에처럼 웅크리고 앉아 아버지의 숨은 사연 심장 뛰며 읽어가던 곳 속절없는 당신의 뒷길 (게시기간 : 2011. 9.18.~ 9.24.) 750 식탁의자 안오일 가끔 삐걱거리던 의자가 이젠 수시로 휘청거린다 몸을 비틀면 그쪽으로 마치 관절을 가진 의자처럼, 뒤집어 놓고 보니 나사가 풀린 것인데 드라이버로 조여도 헛돈다 나사가 박혔던 나무부분이 부스러져 헐거워진 것 나사를 빼보니 나선 틈에 나무의 살이 끼어 있다 삐걱거릴 때마다 고정시켰던 나사가 나무를 파먹으며 아주 조금씩 풀린 자리 연결부위는 늘 약하다 나와 너의 관계처럼 최적으로 연결되었더라도 피로도는 연결부위에 고이게 마련인 것을, 하나로 버틴다고는 하지만 세월에는 단단히 조여 줄 크기의 나사가 없다 다만 삐익 삑 소리 날 때부터 조심했어야 했다 배려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게시기간 : 2011. 9.11.~ 9.17.) 749 나의 9월은 서영윤 나무들의 하늘이, 하늘로 하늘로만 뻗어가고 반백의 노을을 보며 나의 9월은 하늘 가슴 깊숙이 짙은 사랑을 갈무리한다 서두르지 않는 한결같은 걸음으로 아직 지쳐 쓰러지지 못하는 9월은 이제는 잊으며 살아야 할 때 자신의 뒷모습을 정리하며 오랜 바램 알알이 영글어 뒤돌아보아도, 보기 좋은 계절까지 내 영혼은 어떤 모습으로 영그나? 순간 변하는 조화롭지 못한 얼굴이지만 하늘 열매를 달고 보듬으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게시기간 : 2011. 9. 4.~ 9.10.) 748 한 발자국만 더 백기완 한 발자국만 더 한 발자국만 더 밀어내보다가 죽어도 죽자 한 발자국이 안 되면 단 한치, 단 한치만이라도 더 밀어내보다가 쓰러져도 쓰러지자 아 어이타 이 놈의 세상은 밀어낼수록 캄캄한 수렁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는다고 하는 것은 패배보다 더 끔찍한 타락이다. 밤이사 칭칭 더세지만 한 발자국만 더 한 발자국만 더 (게시기간 : 2011. 8.28.~ 9. 3.) 747 고통을 달래는 순서 김경미 토란잎과 연잎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 큰 종이 한 장에 갈매기와 기러기를 그린다 역시 거기서 거기이다 누워서 구름의 면전에 유리창을 닦듯 침을 뱉어도 보고 닦아도 본다 약국과 제과점에 가서 각각 포도잼과 붉은 요오드팅크를 사서 반씩 섞어 바른다 저녁 해에 갓 구워진 갈색의 머리에 직접 가위를 대거나 한 송이 꽃을 꽂는다 실성의 가로등 스위치를 찾아 죄다 한줌씩 불빛을 낮춘다 바다에 가서 강 얘기 하고 강에 가서 기차 얘기 한다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견딘다 (게시기간 : 2011. 8.21.~ 8.27.) 746 인연이 아니라 했어요 배현순 "인연이 아니구나"라는 한 마디, 그 한마디로 거북 등처럼 갈라 터진 영혼을 치유할 수는 없어요 차가운 새벽을 열어 생명수 한 모금 마시지 않고도 오던 길 돌이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선운사 산자락 자락마다 피멍으로 얼룩지던 동백꽃밭 해마다 삼월이 오면 어김없이 터트리던 붉은 울음 토해내지 않아도 되었을 거여요 제, 전화기에서 "부재중입니다"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오던 그 시간 전, 당신이 건너오실 개울가에 나가 앉아 "언제 오시려나" 실어증에 걸린 하얀 조약돌 한개 한개 집어들어 탑 쌓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꿈 속에 보내오신 당신 편지 아침내 해독하다 못해 가슴 졸이던 한 소절 아, 생각났어요 정신없이 뛰었어요. 개울가 언덕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거든요 손을 흔들었어요, 일단정지 버튼을 누르세요. 한 번만 돌아보세요, 창문이라도 열어 보세요 16분, 그래요. 딱 16분 전이었어요 기차가 간이역을 지나치고 있던 시간 밤송이 쏟아지듯 우수수 바람만을 남겨 놓고 떠난 자리 가시에 찔린 볼때기가 따가웠어요 네, 제 미혹함의 소치였어요, 미안해요, 아파요. 제, 가시 좀 빼 주세요 (게시기간 : 2011. 8.14.~ 8.20.) 745 남궁벅 풀, 여름 풀 요요기들의 이슬에 젖은 너를 지금 내가 맨발로 삽붓삽붓 밟는다. 여인의 입술에 입맞추는 마음으로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죽으면 흙이 되마. 그래서 네 뿌리 밑에 가서 너를 북돋워 주마꾸나. 그래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네나 내나 우리는 불사(不死)의 둘레를 돌아다니는 중생이다. 그 영원의 역정(歷程)에서 맞닥드려 만날 때에 마치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될 때에 지금 내가 너를 삽붓 밟고 있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삽붓 밟아 주려무나. (게시기간 : 2011. 8. 7.~ 8.13.) 744 지우개 송순태 잘못 써 내려온 문장이 있듯이 잘못 살아온 세월도 있다 바닷가에 앉아서 수평을 보고 있으면 땅에서 잘못 살아온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겠다 굳은 것이라고 다 불변의 것이 아니고 출렁인다고 해서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굳은 땅에서 패이고 갈라진 것들이 슬픔으로 허물어진 상처들이 바다에 이르면 철썩철썩 제 몸을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에 실려 매듭이란 매듭은 다 풀어지고 멀리 수평선 끝에서 평안해지고 마는구나 잘못 쓴 문장이 있듯이 다시 출발하고 싶은 세월도 있다 (게시기간 : 2011. 7.31.~ 8. 6.) 743 뒤로 걸어 가는 길 이용희 사람은 앞을 보고 산다지만 인간 된 몸으로 앞만 본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랴 미래를 예측하는 건 신들의 영역. 가끔은 뒤도 돌아보고 살아가자 밤바다의 선장이 별을 보고 항로 잡듯 지나온 길 돌아보고 앞길 정하자 불의의 주행사고로 죄인되어 속죄하며 뒤로 걷는 저 동냥할배 나의 무모한 인생주행은 몇 사람이나 다치게 했을까. (게시기간 : 2011. 7.24.~ 7.30.) 742 이문길 내 소원이 무엇인지 아나 소원이 생각날 리 없는 산골이라 아내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뭔데 내가 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람 안사는 저런 큰 산 하나를 사는 것이다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저 쓸데없는 것 사서 뭐하게 또 빌어먹을라카네 내가 풀이 죽어 말했다 개간해서 농사 지을라 안칸다 나는 말없이 산을 둘러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나한테는 필요 없지만 나무들한테 산이 필요해서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안개한테 구름한테 산이 필요해서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사도 누가 사는지 산이 모르기 때문에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사도 아무 소용없는 빈산이라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내 만년에 그런 산에 혼자 살고 싶어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게시기간 : 2011. 7.17.~ 7.23.) 741 살다가 보면 이근배 살다가 보면서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게시기간 : 2011. 7.10.~ 7.16.) 740 굽은 나무가 더 좋은 이유 구광렬 내가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곡선이 직선보다 더 아름답기도 하지만 굽었다는 것은 높은 곳만 바라보지 않고 낮은 것도 살폈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내가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곡선이 직선보다 더 부드럽기도 하지만 굽었다는 것은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살았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땅에다 뿌리를 두고 하늘을 기리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일까. 비틀대며 살다보면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의 가치를 알게 되고 하늘 한 번 쳐다 보고 땅 두 번 살피다 보면 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게시기간 : 2011. 7. 3.~ 7. 9.) 739 잊은 체 하면 잊혀진단다 이향미 잊은 체 살다 보니 잊혀지는 듯하다 가슴앓이 하도 깊어 생전에는 결코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살아 움직이지 못하는 모든 것들에게 눈길 한번 못주려니 하였어 잊은 체 살다 보니 모른 체 외면하긴 쉽더라 추억 하나 버린 날엔 예쁜 화분 하나 사들고 오지 기억 하나 지운 날엔 금붕어 몇마리 사들고 오지 잊지 못할 것들을 잊은 체 한 날에는 살아있는 것들을 데려와 내 안에 키우는 거야 그것들 자라나 휑하던 마음밭이 꽃이 만발 하거나 숲이 우거지거나 새가 둥지를 틀거나 하면 지나간 모든 잊지 못할 것들은 살아있는 것들 품안에서 영영 잠이 들지 몰라 이미 죽어버린 추억들과 피지도 못하고 시든 사랑과 부질없는 모든 그리움들은 영영 찾을 수 없을지 몰라 잊은 체 살다보면 잊혀진다는 것 이제 알았으니 희망은 또 오는 것이지 (게시기간 : 2011. 6.26.~ 7. 2.) 738 나는 가끔 박복화 때때로 나는 비 내리는 쓸쓸한 오후 커피향 낮게 깔리는 바다 한 모퉁이 카페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듯 내 삶의 밖으로 걸어 나와 방관자처럼 나를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까닭 없이 밤이 길어지고 사방 둘러 싼 내 배경들이 느닷없이 낯설어서 마른기침을 할 때 나는 몇 번이고 거울을 닦았다 어디까지 걸어 왔을까 또 얼만큼 가야 저녁노을처럼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까 세월의 흔적처럼 길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낡은 수첩을 정리하듯 허방 같은 욕심은 버려야지 가끔 나는 분주한 시장골목을 빠져 나오듯 내 삶의 밖으로 걸어 나와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게시기간 : 2011. 6.19.~ 6.25.) 737 돌을 줍는 마음 윤희상 돌밭에서 돌을 줍는다 여주 신륵사 건너편 남한강 강변에서 돌을 줍는다 마음에 들면, 줍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줍지 않는다 두 손 가득 돌을 움켜쥐고 서 있으면, 아직 줍지 않은 돌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드는 돌을 줍기 위해 이미 마음에 든 돌을 다시 내려놓는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고 또다시 줍고, 버린다 어느덧, 두 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빈 손이다 빈 손에도 잡히지 않을 어지러움이다 해는 지는데, 돌을 줍는 마음은 사라지고 나도 없고, 돌도 없다 (게시기간 : 2011. 6.12.~ 6.18.) 736 개밥바라기 박형준 노인은 먹은 것이 없다고 혼잣말을 하다 고개만 돌린 채 창문을 바라본다. 개밥바라기, 오래전에 빠져버린 어금니처럼 반짝인다. 노인은 시골집에 혼자 버려두고 온 개를 생각한다. 툇마루 밑의 흙을 파내다 배고픔 뉘일 구덩이에 몸을 웅크린 채 앞다리를 모으고 있을 개. 저녁밥 때가 되어도 집은 조용하다. 매일 누워 운신을 못하는 노인의 침대는 가운데가 푹 꺼져 있다. 초저녁 창문에 먼 데 낑낑대는 소리, 노인은 툇마루 속 구덩이에서 귀를 쫑긋대며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배고픈 개의 밥바라기 별을 올려다본다. 까칠한 개의 혓바닥이 금이 간 허리에 느껴진다. 깨진 토기 같은 피부 초저녁 맑은 허기가 핥고 지나간다. (게시기간 : 2011. 6. 5.~ 6.11.) 735 오랜만에 고영희 오랜만에 하늘을 본다 하늘은 언제나 거기 있는데 하늘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데 내 마음에 깃든 하늘은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길을 걷는다 길은 언제나 내 앞에 펼쳐져 있는데 길은 언제나 나를 부르고 있는데 내 마음을 담고 가는 길은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는 언제나 기억속에 웃고 있는데 친구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나를 찾는데 내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친구는 오랜만이다 오랜만인 것이 너무 많아서 오랜만인 것이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나는 내가 좋아졌다 (게시기간 : 2011. 5.29.~ 6. 4.) 734 꽃미용실 정채원 20년 전 다니던 꽃 미용실 내가 지금 딸만 할 때 다니던 꽃 미용실 나중엔 엄마꽃과 딸꽃이 함께 다니던 꽃 미용실, 생머리로 놔두어도 마냥 꽃이던 꽃시절, 꽃을 괜시리 들들 볶던 꽃 미용실 실컷 졸다 깬 다섯 살 꽃이 숏컷 된 거울 속 자기 머리를 보곤 으앙 울음을 터뜨리던 꽃 미용실, 울음 그치지 않는 꽃을 달래다 나도 함께 울 뻔하던 꽃 미용실 결혼 며칠 앞둔 딸아이 언젠가 제 딸과 함께 괜시리 머리 볶으러 미용실 찾을 때, 그땐 나도 20년 전 져 버린 꽃 미용실처럼 더 이상 아무도 찾지 못할 숨은 꽃이 될까 숨은 꽃 굳이 찾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마냥 꽃일 딸과 딸의 딸 세상 아무리 섣불리 딸 수 없는 꽃과 꽃의 꽃 그래서 세상은 꽃이 지지 않는 나라 (게시기간 : 2011. 5.22.~ 5.28.) 733 장미 허현숙 네가 주었던 이것은 시간이 흐르는 자국을 남기듯 뚝뚝 고개를 꺾어 눈물로 버무려진 화장한 여자의 얼굴처럼 희끄무레 변하면서 힘없이 쭈그러들어간다 네가 왜 하필이면 이것을 내게 주었는지 궁금해질 때마다 처음에는 붉었던 꽃잎을 들여다보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네 손길의 흔적이 주름으로 잡히다가 가시 되어 가시가 되어 가슴을 할퀸다 (게시기간 : 2011. 5.15.~ 5.21.) 732 어느 어머니의 말씀 작가미상 아들아! 결혼할 때 부모 모시겠다는 여자 택하지 마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마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면 네가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면 기분 좋겠느냐.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서운한 게 없겠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하는 맘이 네 엄마만큼은 아니지 않겠니.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는 얼마나 서럽겠느냐. 널 위해 희생했다 생각지는 않지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이 들지 않겠니? 아들아! 명절이나 어미 애비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되겠니? 네 생일 여태까지 한 번도 잊은 적 없이 그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네 아내에게 떠밀지 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되겠니?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릿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무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의 고마움을 알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난 내 아들의 안목을 믿는다. 딸랑이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아들아! 그런데 네 여동생 그 애도 언젠가 시집을 가겠지. 그러면 네 아내와 같은 위치가 되지 않겠니? 항상 네 아내를 네 여동생과 비교해 보거라. 네 여동생이 힘들면 네 아내도 힘든 거란다. 내 아들아 내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내 행복이 네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이 내 행복이거늘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어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겠느냐. 물론 서운하겠지 힘들겠지 그러나 죽음보다 힘들랴. 그러나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어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애써 온 부모다. 이제는 어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희 어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가다오. 다소 늙은 어미 애비가 너희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건 살아오면서 따라가지 못한 삶의 시간이란 걸 너희도 좀 이해해다오. 우리도 여태 너희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니. 너희도 우리를 조금, 조금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겠니? 잔소리 같지만 너희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렴. 우린 그걸 모른단다. 모르는 게 약이란다.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애비의 행복을 침해하지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하지 마라. 너보다 더 귀하고 예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자들이지만 늙어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마라. 날 나쁜 시어미로 몰지 마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게시기간 : 2011. 5. 8.~ 5.14.) 731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윤성택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놓고 손으로 꾹꾹 눌러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은 말없이 흔들렸습니다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위태하게 볕 좋은 옥상으로 너를 옮기지 않겠노라고 원래 있었던 자리가 그대 자리였노라고 물을 뿌리며 꽃잎을 닦아 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게시기간 : 2011. 5. 1.~ 5. 7.) 730 4월, 피고 지는 그 많은 사랑을 위하여 정영자 누가 말했습니까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그렇습니다. 매화꽃 피고 개나리 노랗게 피다가 벚꽃이 피고, 또 떨어지며 땅에서 다시 한번 피더니, 목련꽃 목숨처럼 버려지는 이 봄에 바다는 푸른 무늬로 얼렁설렁 많은 사랑 흔들어 봅니다. 4월이 가고 있습니다 그대 모습같이 조금씩 꽃피고, 주름지더니 때때로 초겨울 쌀쌀함 내려보내면서 화사한 나날을 가을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세월은 강뚝을 넘고 갈대숲 바람으로 흩날리고 기다리는 마음은 바위를 씻기는 물결 속에 부서지는데 그대 사랑의 말만이 보름달로 떠오르다가 어느 날 별로 뜨는 4월, 피고지는 그 많은 사랑을 위하여 다시 눈 뜨는 해운대의 동백섬, 그 빛나는 아침은 매일 매일 그대 가슴에 피는 꽃입니다. (게시기간 : 2011. 4.24.~ 4.30.) 729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쪽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게시기간 : 2011. 4.17.~ 4.23.) 728 사랑은 이승희 스며드는 거라잖아. 나무뿌리로, 잎사귀로, 그리하여 기진맥진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마른 입맞춤. 그게 아니면 속으로만 꽃 피는 무화과처럼 당신 몸속으로 오래도록 저물어가는 일. 그것도 아니면 꽃잎 위에 새겨진 무늬를 따라 꽃잎의 아랫입술을 열고 온몸을 부드럽게 집어넣는 일. 그리하여 당신 가슴이 안쪽으로부터 데워지길 기다려 당신의 푸르렀던 한 생애를 낱낱이 기억하는 일. 또 그것도 아니라면 알전구 방방마다 피워놓고 팔베개에 당신을 누이고 그 푸른 이마를 만져보는 일. 아니라고? 그것도 아니라고? 사랑한다는 건 서로를 먹는 일이야 뾰족한 돌과 반달 모양의 뼈로 만든 칼 하나를 당신의 가슴에 깊숙이 박아놓는 일이지 붉고 깊게 파인 눈으로 당신을 삼키는 일. 그리하여 다시 당신을 낳는 일이지. (게시기간 : 2011. 4.10.~ 4.16.) 727 4월의 그대 추다영 4월의 그대여 시간은 세월로 떠나고 4월은 깊어 봄의 끝자락에 매달렸다 만춘의 입맞춤은 라일락 향기로 가득하고 질투하는 비바람은 가슴으로 여민다 언약없이 떠나버린 가느다란 벚꽃추억 못 다한 4월의 사랑은 시리도록 그립다 4월의 그대 떠나는 걸음 무거울라 치면 가벼운 날개 파닥이는 나비 되어 내 빈 가슴 자리에 쉬어 가시게 4월의 그대 그대 위하여 내 빈 가슴밭에 향 진한 꽃 한송이 피워 놓으리라. (게시기간 : 2011. 4. 3.~ 4. 9.) 726 봄날 피고 진 꽃에 대한 기억 신동호 나의 어머니에게도 추억이 있다는 걸 참으로 오래 되어서야 느꼈습니다 마당에 앉아 봄나물을 다듬으시면서 구슬픈 꽃노래로 들려오는 하얀 찔레꽃 나의 어머니에게도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참으로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부르는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손은 나물을 다듬으시지만 마음은 저 편 상고머리, 빛바랜 사진 속의 어린 어머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의 둥근 등을 바라보다 울었습니다 추억은 어머니에게도 소중하건만 자식들을 키우며 그 추억을 빼앗긴 건 아닌가 하고 마당의 봄 때문에 울었습니다 (게시기간 : 2011. 3.27.~ 4. 2.) 725 맑은 토장국이 되고 싶다 황정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보면 그 앞에 가 앉아 주고 싶다 가만 마주 앉아서 봄동 겉절이가 맛나 보인다고 식욕도 거들고 강화에는 아마 쑥이 지천일거라고 세월 얘기도 하면서 알맞게 따뜻한 끓인 물도 따라 주고 어디 서러운 일이 혼자서 굳은 밥에 물 부어 먹는 것 뿐이겠냐만은 난 자꾸 혼자 밥 먹는 이의 맛난 반찬이 되어 밥상머리에 앉고 싶다 맑은 토장국이 되어 그 사람의 목젖을 적시고 싶다 (게시기간 : 2011. 3.20.~ 3.26.) 724 문을 열면 그대 향기가 이효녕 아침에 창문을 열면 바람이 앉았던 자리 쓸어내고 당신이 푸른 잎새로 돋아납니다 하늘이 청명하게 열리는 봄날 오래도록 멀어진 시간을 접어두고 수없이 자란 추억이 몇 번이나 자라 발하지 않는 빛깔로 꽃을 피어 당신은 향기로 전해집니다 눈 지그시 감고 바라보면 당신의 향기로운 내음이 가슴에 고랑을 파낸 뒤 흐르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한번쯤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던 모습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가 됩니다 우물 속에 하늘을 두레박으로 퍼내던 당신은 수장된 작은 물 그림자로 별을 만들어 내 마음에 언제나 띄었습니다 당신은 황량한 빈터에 연분홍 코스모스 꽃으로 피어 내 마음을 수없이 흔들기도 했습니다 작은 화분에 숨어있는 귀뚜라미로 슬픈 때는 기쁨을 기억하게 하고 어려울 때는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 어둠을 떠도는 달빛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창문을 열면 당신이 봄볕에 풀잎의 싹을 돋아 내게 꽃망울 보이는 것만이라도 지친 내 가슴에 향기로운 꿈이 소복하게 맺힙니다 . (게시기간 : 2011. 3.13.~ 3.19.) 723 일어나 김광석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수 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 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끝이 없는 말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왔다 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 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 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 나 봄의 새싹들처럼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살아있는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 버리지 일어나 일어 나 다시 한 번 해 보는거야 일어나 일어 나 봄의 새싹들처럼 (게시기간 : 2011. 3. 6.~ 3.12.) 722 진경산수 성선경 자식이라는 게 젖을 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새끼라는 게 제 발로 걸어 집을 나가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시도 때도 없이 - 아버지 돈 그래서 돈만 부쳐 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대 글쎄 어느 날 훌쩍 아내가 집을 나서며 - 저기 미역국 끓여 놓았어요 - 나 아들에게 갔다 오겠어요 나는 괜히 눈물이 났다 이제는 내 아내까지 넘보다니 - 이노무 자슥. (게시기간 : 2011. 2.27.~ 3. 5.) 72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김태광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그대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시간이리. 아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체통까지 걸어가는 내내 편지를 꼭 쥐고 있는 시간이리. 아니다, 아니다, 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그대에게 도착하기까지 기다림이리라. 연애편지를 쓰는 세상의 수많은 연인들도 나처럼 행복하리.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잘 들어갔을까 허리 굽어 우체통 안을 들여다보는 중년 부인에게서 행인들은 행복을 느끼리라. 2월의 겨울은 간혹 눈을 내리지만,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 갈피에는 벌써부터 노란 개나리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오늘은 살아 있음이 너무나 눈부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소년의 마음으로 쓴 편지를 읽을 그대를 생각하는 시간이리라. (게시기간 : 2011. 2.20.~ 2.26.) 720 연애 편지를 쓰자 김행숙 어둠을 동그랗게 오려낸 스탠드 불빛 아래서 꿈결처럼 너도 언젠가 그런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옛날 연애편지를 쓰자 이 연애편지에서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밤바다의 등대나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매우 어려운 것을 꿈꾸는 눈동자나 노래하는 심장과 함께 그때 우리는 열렬해 외롭기도 해 그랬지, 나는 오래전에 너의 창문을 두드리고 두드리다 갔지 지우개는 아직 하얗고 밤중에 밀려나오는 지우개 가루는 검다 모래로 쓴 글씨처럼 애써 지울 필요도 없이 우리는 내일 또 지워진 후에 아주 옛날식 연애편지를 쓰자 (게시기간 : 2011. 2.13.~ 2.19.) 719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 이상열 엄마는 당신 생명의 조각을 한 조각씩 떼어 자식을 키운다고 합니다. 우리들 몸속에는 금빛 찬란한 엄마가 들어 있어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장,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엄마를 두 손과 마음으로 안아 보세요. 아마 " 징그럽다 와 이라노" 하시지만 엄마 눈에는 눈물이 고이실 것입니다. (게시기간 : 2011. 2. 6.~ 2.12.) 718 바람이 아직 차다고 이창기 입춘 바람에 질척거리는 산그늘 잔설을 밟으며 심심해 죽겠다는 아이를 달고 백족산을 오르다 빙판 진 산 중턱 약수터 언저리 겨우내 매달려 있던 마른 잎 떨구듯 털썩 주저앉아 미끄럼 타는 아이 손 놓고 넉살 좋은 후배의 안부 전화 받다 우연히 매만진 겨울나무의 부드럽고 도톰한 어린 꽃눈 바람이 아직 차다고 가볍고 부드러운 솜털 옷 해 입혀 내보낸 그 마음 너, 알지? (게시기간 : 2011. 1.30.~ 2. 5.) 717 영화가 끝난 뒤 2 김리영 오후에 홍콩 무술 영화를 보러 갔다. 옷이 찢기고 발목이 부러져도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남자배우 나에게 질문을 한다. 인생의 배역을 맡은 무대 위에서 목숨 걸고 연기 해 왔는가? 조금이라도 멍이 들까봐 난 언제나 움츠렸다. 스턴트맨 없이 하루가 간다. 깨어진 유리조각 위에서 매맞고 뒹굴다 또 일어서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의 삶도 절찬상영중이어야 한다. (게시기간 : 2011. 1.23.~ 1.29.) 716 겨울 나기 탁명주 겨울은 껍질이 두꺼운 계수나무다 어린 나무가 겨울앞에 꿋꿋할 수 있는 건 바람 맞을 잎이 없음이다 뿌리깊은 리듬으로 오는 설레임이 있음이다 매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껍질속에 저장하였다가 사월 다수운 봄 햇살에 발효시켜 박하나무는 박하잎을 계수나무는 계피를 만드는 것이리라 한둥치 겨울 옷을 벗을 때마다 고갱이는 굵어지고 껍질은 단단해진다 어린 나무가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는 건 골패인 낙숫물 소문을 듣기 위함이다 껍질 속 비밀스런 세포분열에 향기짙은 녹수의 싹 힘껏 밀어올릴 물 오른 봄기운을 기다림이다 (게시기간 : 2011. 1.16.~ 1.22.) 715 고구마 조찬현 유년의 밥상엔 늘 고구마가 있었다 살얼음 동동 낀 동치미와 따끈한 고구마가 그땐 고구마가 왜 그리도 싫었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시절 고구마는 안방에서 살았다 문풍지 서럽게 울던 겨울밤에 수숫단 옷을 겹겹이 껴입고서 뒤주에 옹기종기 모여 상았다 입이 궁금한 어른들 허기진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화롯불의 고구마 한 입에 시꺼먼 입가에 피어나는 행복한 웃음꽃 유년의 밥상엔 늘 고구마가 있었다. (게시기간 : 2011. 1. 9.~ 1.15.) 714 음악처럼 흐르는 행복 안성란 사람을 좋아하고 만남을 그리워하며 작은 책갈피에 끼워 놓은 예쁜 사연을 사랑하고 살아있다는 숨소리에 감사하며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커피 향처럼 인생이 담긴 향기로운 아침이 행복합니다. 어디서 끝이 날지 모르는 여정의 길에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말이 통하고 생각이 같고 눈빛 하나로 마음을 읽어주는 좋은 친구가 있어 행복합니다. 녹슬어 가는 인생에 사랑받는 축복으로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음악처럼 흐르는 하루가 참 행복합니다. (게시기간 : 2011. 1. 2.~ 1. 8.) 713 사랑은 아름다워라 이훈강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보다 더 가슴 뛰는 말이 있다면 나에게 알려다오 나뭇가지에 쌓인 흰 눈꽃의 순수함과 별 초롱 빛나는 밤하늘에 걸린 그리움이 가슴 저리는 시간의 뒤편으로 나를 몰아 나 오늘을 영원히 붙잡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외로움에 갇혀 다시 천년을 보낼지라도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보다 더 목마르게 찾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에게 알려다오 난 오늘도 바람처럼 스쳐 가는 인연의 커다란 주머니에서 진주보다 더 고운 내 사랑의 이름들을 더듬어 찾고 있다 (게시기간 : 2010.12.26.~2011. 1. 1.)

3-15.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1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