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0 년
 

   2010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익스플로러 단축키(Ctrl+F)로 시 제목, 내용, 시인 이름을 검색(?) 할 수 있습니다.  ^^;

713 사랑은 아름다워라 이훈강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보다 더 가슴 뛰는 말이 있다면 나에게 알려다오 나뭇가지에 쌓인 흰 눈꽃의 순수함과 별 초롱 빛나는 밤하늘에 걸린 그리움이 가슴 저리는 시간의 뒤편으로 나를 몰아 나 오늘을 영원히 붙잡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외로움에 갇혀 다시 천년을 보낼지라도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보다 더 목마르게 찾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에게 알려다오 난 오늘도 바람처럼 스쳐 가는 인연의 커다란 주머니에서 진주보다 더 고운 내 사랑의 이름들을 더듬어 찾고 있다 (게시기간 : 2010.12.26.~2011. 1. 1.) 712 누군가 희망을 저 별빛에 정공량 누군가 희망을 저 별빛에 걸고 있다 시간을 데리고 내일로 가는 내일을 데리고 희망으로 가는 저 별빛은 밤을 새워 빛나고 내일 밤에도 다시 빛날까 그리움으로 하여 견디지 못할 시간은 없는가 무수한 날들 위에 져 버리는 져서 묵묵히 사라지는 것들이 하나씩 목소리를 높이다 다시 사라진다 차겁고 매서운 오늘을 아직 건너기도 전에 내일은 얼마나 더 내 영혼을 부수는 일인가 누군가 오늘도 희망을 저 별빛에 걸고 있다 오늘이 부서져 내일이 이룩되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지우지는 못하고 그리움과 기다림, 그런 깨달음에 익숙한 바람이 된다 누군가 희망을 저 별빛에 건다면 저 별빛 타 버린 설움도 함께 빛날까. (게시기간 : 2010.12.19.~12.25.) 711 아내 박제영 다림질 하던 아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겠단다. 부부가 있었어요. 아내가 사고로 눈이 멀었는데, 남편이 그러더래요. 언제까지 내가 당신을 돌봐줄 수는 없을 테니까 이제 당신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아내는 섭섭하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혼자 시장도 가고 버스도 타고 제법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마침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이 나오더래요.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그랬대요. 저 여자 참 부럽다. 그랬더니 버스 기사가 그러는 거예요. 아주머니도 참 뭐가 부러워요. 아주머니 남편이 더 대단하지. 하루도 안거르고 아주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구만. 아내의 뒷자리에 글쎄 남편이 앉아 있었던 거지요. 기운내요. 여보. 이럴 때 오히려 당당하게 보여야 해요. 실업자 남편의 어깨를 빳빳이 다려주는 아내가 있다. 영하의 겨울 아침이 따뜻하다. (게시기간 : 2010.12.12.~12.18.) 710 올 겨울에 받고 싶은 편지 김수현 우리 처음 만나던 날을 기억하시는지요 바람 세차게 불던 어느 겨울날 처음 만난 그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덥석 손잡아 버렸던 그때 우리 어디선가 자연스레 아주 많이 만난듯한 기분이였지요 나만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들려오는 수화기 저편에 그대의 목소리만 안고서 처음 마주한 자리 한강변을 거닐었던 그 자리엔 또다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 만나야할 운명이라면 이쯤에서 서로에게 마음 터 놓고 함께하면 어떨까요 향기 좋은 아침 햇살을 가득 담아 매일매일 그대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아침마다 향기로운 차 한잔을 마시며 그대와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린 아침마다 행복할 것 같지 않나요... 나만의 그대가 되어 주신다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 처음 만난 그 자리 한강 선착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올 겨울에는 어느 한 남자로부터 이런 편지 한 장 받아 보았으면 싶다 (게시기간 : 2010.12. 5.~12.11.) 709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신양란 부귀영화? 아니! 입신양명? 아-아니! 처음 다짐 줄기차게 밀고 끌고 가는 것 가다가 핑계거리에 휘둘리지 않는 것 (게시기간 : 2010.11.28.~12. 4.) 708 백년 정거장 유홍준 백년 정거장에 앉아 기다린다 왜 기다리는지 모르고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어버렸으면서 기다린다 내가 일어나면 이 의자가 치워질까봐 이 의자가 치워지면 백년 정거장이 사라질까봐 기다린다 십년 전에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십년 전에 떠난 버스는 이제 돌아오면 안된다 오늘도 나는 정거장에서 파는 잡지처럼 기다린다 오늘도 나는 정거장 한구석에서 닦는 구두처럼 기다린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뽕짝을 틀고 떠난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해질녘에 떠난다 백년 정거장의 모든 버스는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바닥이 더러운 정거장에서 천장에 거미줄 늘어진 정거장에서 오늘도 너는 왜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린다 (게시기간 : 2010.11.21.~11.27.) 707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일 윤석구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내 평생의 마지막 기쁨이요 내 사는 날까지 계속 될 내 운명이요 영원불변한 내 사랑으로 당신의 일상에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 나 혼자가 아닌 당신과 함께 공존하는 행복으로 나보다는 먼저 당신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가슴이 되고 싶습니다 수 만리 밖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내가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을 그리워하고 당신의 정다운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당신의 따스한 가슴을 그리워하는 것은 내가 신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게시기간 : 2010.11.14.~11.20.) 706 갈대 이한열 불혹의 고개를 넘었거나 넘지 않았거나 누구나 세월의 여울 어디에서나 한번쯤은 피하고 싶지 않는 바람을 맞이하리라 어쩌면 그 바람은 그대에게 닿아야 할 기연(奇緣)인지도 모르리 연륜을 흔들고 심금을 적시는 돌풍이거나 상념을 멈추게 하는 회오리바람이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이유 없이 젖어드는 공허나 살갗에 검게 내리는 햇살의 무료가 흔들더라도 관여치 않으리 검은 숱이 다 자란 아이가 밖에서 서성이는 시간이 많은 탓이라도 책하지 않으리 어느 날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이 잔주름처럼 늘어나더라도, 새장에 갇혀 있는 새라는 이유라도 힐난치 않으리 어디서나 짧은 하루의 해인데 불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라 옷자락이 나부끼며 물너울 지는 것에는 대수롭지 않게 접어도 좋으리라 중심이 흔들려도 짐짓 내색하지 마라 그대가 쌓아온 사유의 청자빛 시간만큼 고고하게 흔들려라 늘 꿈꾸어온 타는 강 노을 속의 그대가 서 있는 수묵화 한 폭을 은은하게 그려 나가라. (게시기간 : 2010.11. 7.~11.13.) 705 이불 김나영 아이 둘 순산한 내 몸엔 늘 찬 기운이 돈다. 마음의 온기도 차츰 빠져나가고 있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곧 중학생이 될 아들 녀석이 내 배 위에 찰싹 옮아붙는다. 녀석의 어리광이 때때로 나를 귀찮게도 하지만 제 몸과 내 몸이, 제 피와 내 피가 서로 부르는 걸 아무도 벌려놓을 수 없는 이 간격을 어쩔텐가. 아들의 몸무게와 온기가 내 몸으로 저릿저릿하게 퍼져온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견딜만한 무게와 가장 따뜻한 온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이다. 아 따뜻해, 너도 따뜻하냐 내 평생 이렇게 너를 덮고 살련다 너는 내 살과 피로 부풀려 만든 이불 아니겠냐 이 세상에 너 만한 온기가 어디 또 있겠냐 끝까지 나를 덮어다오. (게시기간 : 2010.10.31.~11. 6.) 704 산 노을 유경환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 넘어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산울림이 외로이 산 넘고 행여나 또 들릴 듯한 마음 아, 산울림이 내 마음 울리네 다가왔던 봉우리 물러서고 산 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게시기간 : 2010.10.24.~10.30.) 703 열매에도 붉은 상처가 있었네 황정숙 벚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듬성듬성 매달린 붉은 버찌 꽃잎이 아문 자국이라네 넘어져 깨진 무릎 근질거림을 참지 못해 잡아 뜯은 딱지처럼 그 속에도 붉은 자국은 있었네 얼얼하게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어머니 죽음이 생각나듯 자지러지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그 아픔이 꽃잎처럼 후두둑 떨어진다네 가슴 속에 상처 하나씩 숨기고 산다는 것 새살이 딱지를 밀어낸 흔적 꽃 진 자리 보아 알 수 있겠네 그 자리에 다시 푸른 잎 돋고 잘 영근 주머니 속에서 붉은 입술들이 물고 있는 까만 씨앗들 열매 속 깊이 잘 익어 있었네 (게시기간 : 2010.10.17.~10.23.) 702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윤제림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법 하나는 노래하며 걷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걷는 것이다 저를 모르시겠어요, 눈물을 훔치며 손목을 잡는 버드나무가 있을라 마침 흰 구름까지 곁에 와 서서 뜨거운 낯이 한껏 더 붉어진 소나무가 있을라 풀 섶을 헤치며 나오는 꽃뱀이 있을라 옛사랑은 고개를 넘어오는 버스의 숨 고르는 소리 하나로도 금강운수 강원여객을 가려낸다 봉양역 기적소리만으로도 안동행 강릉행을 안다 이젠 어디서 마주쳐도 모르지 그런 사람 찾고 싶다면 노래를 부르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걸을 일이다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게시기간 : 2010.10.10.~10.16.) 701 그 때 이규경 사람들은 말한다. 그 때 참았더라면 그 때 잘 했더라면 그 때 알았더라면 그 때 조심했더라면 훗날엔 지금이 바로 그 때가 되는데 지금은 아무렇게나 보내면서 자꾸 그 때만을 찾는다. (게시기간 : 2010.10. 3.~10. 9.) 700 꽃 사과 강병순 하롱하롱 연초록 새잎 쫑긋쫑긋 발돋움 하더니 어느새 가을의 문턱 햇살에 파르르 타올라 꽃사과의 작은 반란이 시작된다 열매의 순수를 잃어버려 꽃처럼 맺힌 영롱한 눈동자 가지마다 알알이 맺힌 사연 터져오르는 울음이 붉다 (게시기간 : 2010. 9.26.~10. 2.) 699 저녁의 연인들 황학주 침대처럼 사실은 마음이란 너무 작아서 뒤척이기만 하지 여태도 제 마음 한번 멀리 벗어나지 못했으니 나만이 당신에게 다녀오곤 하던 밤이 가장 컸습니다 이제 찾아오는 모든 저녁의 애인들이 인적 드문 길을 한동안 잡아들 수 있도록 당신이 나를 수습할 수 있도록 올리브나무 세 그루만 마당에 심었으면 진흙탕을 걷어내고 진흙탕의 뒤를 따라오는 웅덩이를 걷어낼 때까지 사랑은 발을 벗어 단풍물 들이며 걷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어디 사는지 나를 찾지도 않았을 매 순간 당신이 있었던 옹이 박인 허리 근처가 아득합니다 내가 가고, 나는 없지만 당신이 나와 다른 이유로 울더라도 나를 배경으로 저물다 보면 역 광장 국수 만 불빛에 서서 먹은 추운 세월들이 쏘옥 빠진 올리브나무로 쓸어둔 마당가에 꽂혀 있기도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올리브나무로 내 생애 들러주었으니 이제 운동도 시작하고 오래 살기만 하면, (게시기간 : 2010. 9.19.~ 9.25.) 698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 김민정 고비에 다녀와 시인 c는 시집 한 권을 썼다 했다 고비에 다녀와 시인 k는 산문집 한 권을 썼다 했다 고비에 안 다녀와 뭣 하나 못 읽는 엄마는 곱이곱이 고비나물이나 더 볶게 더 뜯자나 하시고 고비에 안 다녀와 뭣 하나 못하는 나는 곱이곱이 자린고비나 떠울리다 시방 굴비나 사러 가는 길이다 난데없는 고비라니, 너나없이 고비라니...너나없이 고비는 잘 알겠는데 난데없이 고비는 내 알바 아니어서 나는 밥 숫갈 위에 고비나물이나 둘둘 말아 얹어드리는데 왜 꼭 게서만 그렇게 젓가락질이실까 자정 넘어 변기속에 얼굴을 묻은 엄마가 까만 제 똥을 헤쳐 까무잡잡한 고비나물을 거져 올리더니 아나 이거 아나 내 입 딱 벌어지게 할 때 목에 걸린 가시는 잠도 없나 빛을 보자 빗이 되는 부지런함으로 엄마의 흰 머리칼은 해도 해도 너무 자라 반 가르마로 땋아 내린 두 갈래 길이라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조금만, 조금만 더 필요한 위로는 정녕 위로 가야만 받을 수 있는 거라니..... 그렇다고 낙타를 타라는 건 상투의 극치, 모래바람은 안 불어주는 게 덜 식상하고 끝도 없는 사막은 안일의 끝장이니 해서 나는 이른 새벽부터 고래고래 노래나 따라 부르는 까닭이다 한 구절 한 고비, 엄마가 밤낮없이 송대관을 고집하는 이유인즉슨이다 (게시기간 : 2010. 9.12.~ 9.18.) 697 들꽃이여 김정숙 외로운 향기를 피우는 들꽃이여 그 누구도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그 누구도 돌봐 주지 않은 들꽃이여 어쩌다 태어나 이슬 머금고 고운 마음으로 영글어 온 들꽃이여 오가는 길손에게 예쁜 미소 지으며 향기를 쥐어주는 들꽃이여 어느 날 문득 어느 길손에게 모가지 잘려 이끌려가는 한이 있어도 예쁘게 피어나서 뒤돌아보는 눈길 잊지 마시고 그 자리 지키소서. (게시기간 : 2010. 9. 5.~ 9.11.) 696 스스로 그러하게 김해자 밤새 비 내린 아침 옥수수 거친 밑둥마다 애기 손톱만한 싹이 돋아났다 지가 잡초인 줄도 모르고 금세 뽑혀질 지도 모르고 어쩌자고 막무가내로 얼굴 내밀었나 밤새 잠도 안 자고 안간힘을 썼겠지 온몸 푸른 심줄 투성이 저것들 저 징그러운 것들 생각하니 눈물난다 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솟아오른 저 작은 생 앞에 내 시끌벅적한 생애는 얼마나 가짜인가 엄살투성인가 내가 인간으로 불리기 전에도 내 잠시 왔다 가는 이승의 시간 이후에도 그저 그러하게 솟았다 스러져 갈 뿐인 네 앞에 너의 부지런한 침묵 앞에 이 순간 무릎 꿇어도 되겠는가. (게시기간 : 2010. 8.29.~ 9. 4.) 695 한밤 갓등 아래 장철문 저 중에는 하루만 살고 가는 것들 그냥 아하, 이게 사는 거구나 하고 가는 것들 사는 게 그저 알에서 무덤으로 이사 가는 것인 그런 것들 불빛의 반경 안에서 어지럽게 원을 그리는 도무지 뭐랄 수도 없는 것들 이 마음에는 순간만 살고 가는 것들 너무나 빨라서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 존재를 알리는 것들 그저 잉잉거리다 마는 것들 사라진 뒤에야 그 잔상이나 남기고 가는 것들 그마저 거두어지는. (게시기간 : 2010. 8.22.~ 8.28.) 694 당신은 늘 내 눈가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 김준 보도 블럭은 쉬고 싶은가요 발걸음 무거울때. 지금 태양으로 흐르는 땀냄새에 문득 멈추어진 발자국 앞에서 당신의 모습 보이면 따가운 햇살로도 마르지 않고 젖어 버리는 내 눈가 곁에서 당신 향기가 묻어납니다. 잊혀지려 하면 생각나는 지겨운 그리움과 떠나려고 해도 떠나지 않는 당신이 남긴 기다림은 쉬지도 않고 시간을 거슬러 당신 곁에 머문 그리자가 됩니다. 「우리 오랜 동안 기다리자 우린 늘 함께 그리워하자 」 그리워서 잠못 이루는 어둠 속에 여름밤 홀로 피는 밤꽃 같은 기다림으로 항상 당신 곁에 잠들겠습니다. 어느 날 당신이 먼 창가에 어린 슬픈 이별로 얼굴을 드리운다 하여도 당신은 늘 그렇게 내 눈가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 (게시기간 : 2010. 8.15.~ 8.21.) 693 눈물 문인수 곤충 채집할 때였다. 물잠자리, 길 앞잡이가 길을 내는 것이었다. 그 길에 취해가면 오릿길 안쪽에 내 하나 고개 하나 있다. 고개 아래 뻐꾹뻐꾹 마을이 나온다. 그렇게 어느 날 장갓마을까지 간 적 있다. 장갓마을엔 큰누님이, 날 업어 키운 큰누님 시집살이하고 있었는데 삶은 강냉이랑 실컷 얻어먹고 집에 와서 으스대며 마구 자랑했다. 전화도 없던 시절,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느그 누부야 눈에 눈물 빼러 갔더냐며 어머니한테 몽당빗자루로 맞았다. 다시는 그런 길, 그리움이 내는 길 가보지 못했다. (게시기간 : 2010. 8. 8.~ 8.14.) 692 이슬 같은 사랑 박금숙 그대 앞에 티 없이 맑은 이슬 같은 사랑이고 싶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날 때 찬란한 빛으로 답할 줄 알고 그대 흘린 눈물인양 비가 내리면 함께 뒤엉겨 슬퍼할 줄 아는 이슬 같은 사랑이고 싶습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하루만큼의 소망으로 구태여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목마르지 않는 이슬 같은 사랑이고 싶습니다 밤마다 풀벌레 음률에 촉촉이 귀를 적시고 부끄럽지 않은 나신으로 데구르르, 굴러도 보는 이슬 같은 사랑이고 싶습니다 바람이 흔들어 깨우는 아침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영롱한 무지개 꿈 하나 살포시 안겨줄 그런 이슬 같은 사랑이고 싶습니다 (게시기간 : 2010. 8. 1.~ 8. 7.) 691 폐차와 나팔꽃 복효근 폐차는 부활 같은 건 꿈꾸지 않나 보다 쓸 만한 부품은 성한 놈들에게 내어주고 폐차장엔 끝끝내 끌고 온 길들을 놓아주어 버린 분해되는 낡은 차가 그래서 평화스럽다 영생을 믿지 않아 윤회가 시작된 것일까 벌써 나팔꽃 한 가닥이 기어올라 안테나에 꽃을 피웠다 비켜라 경적을 울려대며 회생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달릴 줄만 알았던 한참 광나던 시절엔 어찌 알았으리 필요로 하는 것들에게 하나하나 내어주고 마지막 끝자리마저 나팔꽃에게 내어주고 제 몸이 비어갈수록 채워지는 햇살의 따스함 폐차는 성자처럼 나팔꽃이 시들 때까지만 지상에 남아 있기를 기도할지도 모른다 폐차가 아름다운 어느 아침 (게시기간 : 2010. 7.25.~ 7.31.) 690 소나기 강계순 한때는 우리의 사랑도 저렇지 않았으랴 사금파리 같은 햇살에 등을 태우고 채울 길 없는 갈증에 목이 메어서 고통 같은 결핍 언제나 울음으로 터지던 청청한 여름 전신으로 찾아 헤매던 우리의 그리움도 저렇지 않았으랴 사방에 물보라를 세우면서 쏜살같이 맨발로 달려와 염천 더위 한낮의 불붙는 땅을 적시고 검푸른 숲 뜨겁게 고인 침묵도 서늘히 흔들고 드디어는 분별없이 쏟아져 온몸으로 드러눕는 소나기의 전력 투구 한때는 우리의 열정도 저와 같지 않았으랴 팽팽하게 시위 먹은 짧고 날카로운 화살 세상 밖으로 쏘아대다가 끝내는 깨어져 자취 없어진 순수의 집중, 비산(飛散)하는 무지개같지 않았으랴. (게시기간 : 2010. 7.18.~ 7.24.) 689 파산자 고형렬 어느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나느 불행해져 있었다 자정 무렵 화장을 지운 아내는 아직도 침대 속에 다리를 걸친 채 늦잠을 즐기고 아이들은 고수부지로 나가고 없었다 냉장고와 세탁기, 텔레비젼, 초현실주의 그림 그러고 보니 내가 축적한 재산이란 것이 고작 이런 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파산법원의 명령이 다 끝난 날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나의 모든 프로페스와 학업과 결혼한 출산들이 여기서 이렇게 멈추어 버리고 말았던 것 나의 아침은 너무나 무겁고 어두웠다 나의 이 서울의 마지막 아침은 처참하였다 참구할 수가 없다 나의 모든 관계의 당사자들을 나는 내가 얼마나 숨 가쁘게 살아왔는지 갑자기 오물을 토할 것 같은 울음이 울렁였다 기억할 수 없는, 복원할 수 없는 나의 파산 나는 그 이후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아무에게도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나는 오늘부터 이 도시와 무관한 한 부재로 남는다 어디선가 해조음이 들려오다 조용해졌다 나는 저 지상의 내가 없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시기간 : 2010. 7.11.~ 7.17.) 688 없는 하늘 최종천 새는 새장에 갇히자마자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새는 의미가 아니어도 노래했지만 의미가 있어야 노래한다 하늘과는 격리된 날개 낱알의 의미를 쪼아 보는 부리 새의 안은 의미로 가득하다 새는 무겁다 건강한 날개로도 날 수가 없게 되었다 주저앉은 하늘 아래에서 욕망을 지고 나르는 인간의 등이 휘어진다 (게시기간 : 2010. 7. 4.~ 7.10.) 687 너그러움에 대하여 김영현 너그러움이란 나이 먹는대로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작은 일에 나도 모르게 자주 벌컥벌컥 화를 잘 부리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아내랑 사소한 일로 다투었다. 홈쇼핑에서 산 대머리 치료제 때문이었다. 왼종일 그 일로 마음이 찜찜하였다. 불혹(不惑)이니 지천명(知天命)이니 이순(耳順)이니 나이들면 자연히 그렇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째째해지고 더욱 잘 혹하고 더욱 고집만 세어지고 더욱 귀가 닫히니 정말이지 너그러움이란 그저 찾아오는 게 아니다 (게시기간 : 2010. 6.27.~ 7. 3.) 686 그리움의 덫 인애란 하늘이 잔뜩 흐린 날이면 아침에 미처 챙기지 못한 우산 생각에 마음이 먼저 비를 맞는 듯 합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 쏟아낼 것처럼 나지막이 부풀어있는 하늘을 살피다가 순간 그리움의 덫에 걸립니다 두고 온 우산의 부재는 어느덧 시린 그리움의 비를 뿌리고 하루종일 당신생각에 마음 빼앗겨 하늘에서 눈 한번 떼지 못합니다 미리 예감하고 피해갈 수도 있으련만 매번 그리움의 덫에 걸리고 마는지 당신 생각만 하면 끝내 울고 마는지 이렇듯 바람처럼 일어나 꼼짝없이 사로잡히고 마는 게 어쩔 수 없이 발목 내어주고 마는 게 그리움인가 봅니다. (게시기간 : 2010. 6.20.~ 6.26.) 685 물방울 우산 허금주 투명 비닐우산을 펼치면 물방울들의 목소리가 찾아온다 길 가는 사람들이 물방울로 변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 버림받은 날들과 지켜지지 않은 약속 시드는 꽃잎 같은 오래 숨겨온 눈물의 흔적들 투명 비닐우산을 펼치면 언뜻언뜻 찾아오는 사랑하면서 모른 척하면서 방울방울 눈물 흘리는 나는 물방울처럼 가볍게 비밀스러워진다 (게시기간 : 2010. 6.13.~ 6.19.) 684 행복 작가미상 운동을 하세요. 일주일에 3번, 30분씩이면 충분합니다. 좋았던 일을 떠올려보세요.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당신이 감사해야 할 일 다섯가지를 생각하세요. 매주 온전히 한 시간은 배우자나 가장 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세요. 식물을 가꾸세요. 아주 작은 화분도 좋습니다. 단, 죽이지만 마세요. TV시청 시간을 반으로 줄이세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해보세요.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구나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정하세요. 하루에 한 번 유쾌하게 웃으세요. 매일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하세요. 그리고 그 선물을 즐기는 시간을 가지세요. 매일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세요. (게시기간 : 2010. 6. 6.~ 6.12.) 683 짜증 론(論) 이희중 모름지기 짜증은 아무한테나 내는 것이 아니다 짜증은 아주 만만한 사람한테나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짜증을 받아줄 마지막 사람은 제 엄마다 짜증이 심한 사람은 엄마 말고 식구들한테도 짜증을 낸다 필시 이 사람은 식구들을 아주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달리 보면 가족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더 심한 사람은 식구 아닌 남들한테도 짜증을 낸다 이 사람은 아주 힘 있는 놈이 아니면 망나니임에 틀림없다 짜증낼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자신한테 짜증을 낸다 이 사람은 자신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니면 이 사람은 자신 말고는 아무도 안 믿는 사람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일 것이다 (게시기간 : 2010. 5.30.~ 6. 5.) 682 5월의 꽃 장진순 남의 영역을 넘보는 것은 사람뿐인 줄 알았다 잘 가꾸어놓은 파란 잔디밭을 슬며시 파고들어 영역을 넓혀가는 클로버 족 사명감에 충실한 것은 사람뿐겠지 하였는데 영혼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위로하는 한 무리 국화가 있음을 알았다 잘난 체하고 뽐내는 것도 사람들만의 오만함이라 여겼는데 짙은 화장에 정열적인 자태를 뽐내는 장미를 보았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섬기는 것은 그래도 사람뿐이지 했는데 아무도 보아 주는 이 없는 벼랑에 핀 꽃 가냘픈 향기로 주위를 밝히는 이름 없는 풀꽃을 보았다. (게시기간 : 2010. 5.23.~ 5.29.) 681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정지원 단 한 번일지라도 목숨과 바꿀 사랑을 배운 사람은 노래가 내밀던 손수건 한 장의 온기를 잊지 못하리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도 거기에서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리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길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가는지를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다순 화음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찾으리 무수한 가락이 흐르며 만든 노래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뜻을 (게시기간 : 2010. 5.16.~ 5.22.) 680 오월 고창환 바람이 지날 때마다 눈이 부시다 잎이 넓은 나무들 세상의 그늘을 가려주지 못하고 나지막이 엎드린 가난 위에서도 반짝거리는 나뭇잎 착한 이웃들의 웃음처럼 환한 잇몸을 드러내며 햇살이 쏟아진다 사람의 흔적이 자목련 향기처럼 아름답다 숲을 떠난 꽃씨들이 큰 길까지 날리고 나른한 향수에 풀린 마을을 내다본다 골목길을 따라 풍선마냥 가벼운 마음들이 들락거린다 자꾸 꺾이는 바람도 세상살이가 조금씩 눈에 보일 쯤이면 바로 펼 수 있을까 마주치는 세상의 모퉁이마다 큰 바퀴가 지나고 마른 돌가루가 날릴지라도 손바닥을 펴서 햇살을 받는다. 사는 날까진 기다릴 것이 남아 있는가 오랜 희망을 다시 짚어보듯 푸른 소리를 실어나르는 송전탑을 향해 귀를 세운다. (게시기간 : 2010. 5. 9.~ 5.15.) 679 서홍관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지 논두렁 개울가에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도 잊어먹고 개울 위로 떠가는 지푸라기만 바라보는 열 다섯 살 소년이 되어보는 (게시기간 : 2010. 5. 2.~ 5. 8.) 678 기다림 김삼주 저 눈부신 오월의 공기 같은 기다림은 아름답다 라일락 향기가 되어 문간을 넘어서는 투명한 기다림은 아름답다 마냥, 기약도 업이 그저 네 이마를 찾아 떠도는 공백(空白)의 바람 설령 그것이 네게 닿기도 전 꽃비 속에 스러진다 할지라도 라일락 향기가 되어 길을 더듬는 기다림의 이 투명한 비어 있음은 아름답다 (게시기간 : 2010. 4.25.~ 5. 1.) 677 그것이 아픔이라는 걸 모르고 차창룡 아스팔트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를 주워 죽어가는 관음죽 화분에 올려놓았더니 도토리의 대가리를 뚫고 나무 한 마리 솟아올랐다 저러이 둥근 알 속에 사방으로 가지치는 인연이 숨어 있었다니 벌레들 허공 그리고 흙은 도토리에서 연방 내장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것이 아픔인 줄 알면서도 (게시기간 : 2010. 4.18.~ 4.24.) 676 당신에게 말걸기 나호열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게시기간 : 2010. 4.11.~ 4.17.) 675 허전한 인사 박상순 아내가 옷장 정리하다 십 년 넘은 양복을 이제 버리자고 한다. 두어 벌의 새 양복이 옷장에 걸리는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양복을 버리자고 한다. 털이 다 빠지고 소매 낡아 몸에도 맞지 않는다. 어깨가 좁고 소매가 달랑 올라붙었다. 뿌리양복점이 문 닫은 지 이십 년이 지났는데, 옷장에는 아직 뿌리양복점이 걸려 있다. 안주머니에 뜨겁던 젊은 날이 아직 남아 있으려나. 비닐봉지에 싸여 구석으로 밀려난 양복을 꺼낸다. 휑하니 불어오는 바람의 문을 닫는다. 젊은 날 수고 많았다. (게시기간 : 2010. 4. 4.~ 4.10.) 674 꽃잎 편지 허영미 좋은 사람아 니 가슴 한켠의 먼지 쌓인 우체통을 닦아두렴 연두빛 봉투에 꽃 분홍 편지지 깨알 같이 빼곡한 사연이 배달될지도 몰라 좋은 사람아 봄비 내리는 날 새순이 자라듯 마음의 씨앗에도 겨우내 감춰둔 움이 트고 햇살 고운 날에 꽃으로 피어나면 꽃잎마다 사연을 적어 그리운 너에게 띄우려 하네 (게시기간 : 2010. 3.28.~ 4. 3.) 673 백목련 백우선 나뭇가지가 알을 낳았다 수백의 알이다 알을 가지 끝끝마다 자랑스레 들어올리고 있다 햇살은 알에서 토도로록 튀어오른다 사람의 눈길도 모여들어 알을 어루만진다 바람은 그 비단결로 휘감아 흐르고 어느 하나 품어주지 않는 게 없다 한눈 판 사이엔 듯 일제히 부화해 재재거리는 하얀 새떼 오는 봄 다 불러모아 일일이 머리에 깃털을 달아주고 있다 나무도 벌써 몇 번을 날아올랐으리라 (게시기간 : 2010. 3.21.~ 3.27.) 672 남으로 띄우는 편지 고두현 봄볕 푸르거나 겨우내 엎드렸던 볏짚 풀어놓고 언 잠 자던 지붕 밑 손 따숩게 들춰보아라. 거기 꽃 소식 벌써 듣는데 아직 설레는 가슴 남았거든 이 바람 끝으로 옷섶 한 켠 열어두는 것 잊지 않으마. 내 살아 잃어버린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너. (게시기간 : 2010. 3.14.~ 3.20.) 671 커피 윤보영 커피에 설탕을 넣고 프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네요 아~ 그대생각을 빠뜨렸네요 (게시기간 : 2010. 3. 7.~ 3.13.) 670 자전거 류지남 얘야, 원래는 스스로 굴러간다는 뜻이긴 하다만 자전거는 결코 그 이름처럼 스스로 굴러가지 않는단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두 다리에 한껏 힘을 주고 언제나 저만치 앞을 보며 온몸으로 밀고 가는 것이란다 가만히 서 있어도 아니 되고 그렇다고 마구 내달리기만 해서도 안 되는, 세상 살아가는 그런 이치를 이제 일곱 살인 네가 하마 알랴마는 호동그런 눈망울 가득 푸른 하늘을 담고 낑낑거리면서도 신바람이 난 네 뒤를 밀다가 세상 사는 일에 턱없이 뒤뚱거리기만 하는 애비는 쓸데없이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앞을 향해 열심히 내닫는 자전거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법이란다 이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게시기간 : 2010. 2.28.~ 3. 6.) 669 당신아 봄이 오는 소리 들었지 이응윤 저무는 서녘 놀 겨울 몰래 구름으로 봄을 손짓하는 아래, 산에 산들이 한 뼘씩 소매 걷어올려 우, 우우 휘파람 불고 겨우내, 웅크리고 선 소나무들 봄날 제짝 그리움 피워 설레는 멋내기를 시작했네 당신과 나의 가슴 인고(忍苦)의 응달과 밤길을 건너서 깨어날, 우리 새 봄을 위한 희망의 믿음이야 겨울을 포옹해 낸 인내들이 아름다운 계절, 아직도 아득한 듯 야속하게 내일 우리를 꺾으려 드는 찬바람 서글프게 달려들 때도 있겠지만 겨울 끝에 선 우리야 그것은 우리 봄날의 속전이야 조금만 더 눈웃음 나눠보자 조금만 더 입 맞추며 조금만 더 포옹하자 나 당신에게 당신 나에게 가슴에 그린 봄 맞대어 보자 쿵쾅거리는 박동소리 느끼며 사랑의 눈물 그만큼, 그만큼 지어 보자 또, 그 만큼 우리 봄은 태어나고 있는 거야 (게시기간 : 2010. 2.21.~ 2.27.) 668 찻물 끓이기 하정심 가끔 누군가 미워져서 마음이 외로워지는 날엔 찻물을 끓이자. 그 소리 방울방울 몸을 일으켜 솨 솨 솔바람 소리 후두둑후두둑 빗방울 소리 자그락자그락 자갈길 걷는 소리 가만! 내 마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주전자 속 맑은 소리들이 내 마음 속 미움을 다 가져가 버렸구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용서만 남겨놓고. (게시기간 : 2010. 2.14.~ 2.20.) 667 고향집 설날 오정방 세상일 접어두고 고향집 찾아가서 설빔으로 차려입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웃음꽃 맛있는 음식 배가 절로 부르리 타관서 멍든 상처 고향가서 치료받고 그립던 일가친척 만난 곳이 낙원이라 덕담에 훈훈한 인정 해 지는 줄 모르리 (게시기간 : 2010. 2. 7.~ 2.13.) 666 순간 속의 순간 권현숙 흔히 기적은 없다고 말들 하지만 나는 당신을 통해서 매순간 기적을 체험합니다. 이 광막한 우주공간,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같은 별, 같은 나라, 같은 시대에 태어난 우리,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부딪혔어요. 각각 다른 별자리에 외로이 붙박여 있던 별들이 부딪히듯이 극적으로. 그리고는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어요. 이보다 더한 기적이 있을까요? (게시기간 : 2010. 1.31.~ 2. 6.) 665 온돌방 조향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 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작은방 구석에는 수수대로 엮어놓은 곳에 고구마 가득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 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 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게시기간 : 2010. 1.24.~ 1.30.) 664 아름다운 당신 정재학 세상에는 아름다운 게 넘쳐 난다고 하지만 나에겐 하나밖에 없습니다. 많음 보다 하나이기에 더욱 아름답다는 걸 늘 마음으로 생각하지만. 늘 곁에 있음에 난 당신이 아름답다는 걸 매일 잊어버리고 살지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단 말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내지만 세상이 어둠으로 내려올 때 그때 당신은 별이 됩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그런 아름다운 당신을 난 사랑합니다. (게시기간 : 2010. 1.17.~ 1.23.) 663 겨울나무 정한용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가만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중심 줄기의 무게가 있다 땅에서 나무를 지나 저 하늘까지의 거리 처음 바람이 비롯된 곳부터 불어가야 할 목적지까지의 곤고함 그 가운데서 그 깊이를 측량하며 나무는 서 있다 뿌리가 빨아들인 지난 여름의 빗방울과 대륙 쪽에서 물어온 공기의 입자들이 거기에서 만난다 만나 서로의 선물을 건네고 협상하고 새 힘을 세우며 내일 올 봄을 위하여 거대한 잎을 준비한다 중심은 깊고 무거워 겨울 찬 흙에 꽂은 발톱으로 세상이 고요하다 (게시기간 : 2010. 1.10.~ 1.16.) 662 희망으로 가는 길 반기룡 첨탑에 있는 까치집을 보라 삶의 진솔한 땀과 의지가 엮어낸 생(生)이 허공에 집을 짓고 있지 않은가 누가 그들에게 집 짓는 방법을 알려주었던가? 누가 그들에게 터전을 제공하고 위치를 선정해 주었던가 희망으로 가는 길은 스스로 만드는 길이다 희망으로 가는 길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어도 굴복하지 않는 당당함이다 절벽에 솟아있는 소나무를 보라 악천후를 이겨내고 척박함과 싸우며 든든한 몸통을 이루고 거센 기후와 맞서는 의젓함과 강인한 저력이 있지 않은가 누가 그들에게 절벽이란 최악의 길을 선택케 했던가 누가 그들에게 척박하고 외진 곳에 뿌리를 내리라 명령하였던가 희망으로 가는 길은 아픔을 이기는 길이다 희망으로 가는 길은 어리석음과 나태함을 과감히 소멸시키는 길이다 (게시기간 : 2010. 1. 3.~ 1. 9.) 661 설날 아침 김동리 새해라고 뭐 다른 거 있나 아침마다 돋는 해 동쪽에 뜨고 한강은 어제처럼 서쪽으로 흐르고 상 위에 떡국 그릇 전여 접시 얹혀 있어도 된장찌개 김치보다 조금 떫스름할 뿐 이것저것 다 그저 그렇고 그런 거지 그저 그렇고 그렇다 해도 그런대로 한 해 한 번씩 이 아침에 나는 한복으로 옷이나 갈아 입는다 (게시기간 : 2009.12.27.∼2010. 1. 2.)

3-14.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10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