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07 년
 

 2007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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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 새날을 맞는 기도 최명숙 눈 속을 걸어온 당신의 미소가 온 누리에 사랑의 빛으로 빛나는 새날의 아침입니다. 당신의 혜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의 눈을 더욱 초롱하게 하고 당신의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어디서든 고요를 간직하게 하며 당신의 따뜻한 눈빛과 손이 가슴이 시린 사람들에게 항상 머물게 하소서. 당신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것들을 나 또한 감사히 여기게 하시고 사람들보다 더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맞설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시고 나로 하여금 부지런히 정진하여 신중한 생각과 깨끗한 행동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리하여 삼백 예순 날 하얀 눈길을 걸어 비움의 바다에 닿게 하여 저 노을이 어둠의 바다 속으로 다시 지듯이 올 한해가 저물어갈 때에 이 목숨을 다하여 부끄러움 없이 살았음에 당신 앞에서 감사하게 하소서 (게시기간 : 2007.12.30.~2008. 1. 5.) 556 오늘 정철훈 어디 세월뿐이랴, 목숨뿐이랴 노래도 강물도 가락도 그대도 저 태양을 두고 떠날 것이기에 창 밖을 내다보는 여자가 오늘이 괴롭고 오늘은 가로수의 오후가 나에게 중요하고 그런 날은 세상의 모든 술잔들이 나를 향할 것이니 세상을 다 바라볼 필요는 없으리 다만 그때 상처 하나 입을 열어 오늘을 오늘답게 오늘을 오늘로써 중얼거리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모두 썩은 얼굴을 하고서도 그것을 받아먹을 것이요 말귀 알아듣는 몇몇은 눈물이라도 글썽거릴 것이니 그런 날은 세상이 하나도 불쌍하지 않겠네 (게시기간 : 2007.12.23.~ 12.29.) 555 살다 보면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정미숙 문득 떠나고 싶고 문득 만나고 싶은, 가슴에 피어오르는 사연 하나 숨 죽여 누르며 태연한 척 그렇게 침묵하던 날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고독이 밀려와 사람의 향기가 몹시 그리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차한잔 나누며 외로운 가슴을 채워 줄 향기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바람이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나뭇가지에 살포시 입맞춤하는 그 계절에 몹시도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살다 보면 가끔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게시기간 : 2007.12.16.~ 12.22.) 554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 이경아 마음을 주고싶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을 주고싶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소를 주고싶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모든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것같은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래를 불러주고싶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담아서 그대 즐겁게 해주고 싶은 그런 사람있으면 좋겠습니다 잠자는 영혼까지도 사랑하고 픈 그런 사람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전부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내게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그런사람 내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게시기간 : 2007.12. 9.~ 12.15.) 553 김원호 나는 마음속에 자를 하나 넣고 다녔습니다. 돌을 만나면 돌을 재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재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재었습니다. 물위에 비치는 구름을 보며 하늘의 높이까지 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가 지닌 자가 제일 정확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잰 것이 넘거나 처지는 것을 보면 마음에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확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가끔 나를 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무관심한 체하려고 애썼습니다. 간혹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틀림없이 눈금이 잘못된 자일 거라고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번도 내 자로 나를 잰 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직도 녹슨 자를 하나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재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있습니다. (게시기간 : 2007.12. 2.~ 12. 8.) 552 처음처럼 신영복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나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럽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게시기간 : 2007.11.25.~ 12. 1.) 551 가을에는 이별하기도 좋다 안수동 그대를 단념하는 것만이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기에 말없이 그대를 떠났습니다 가을이 문턱을 넘어온 어느 날 기대 않든 전화를 받았고 눅눅한 체온이 희미하게 남은 예전의 모습으로 마주 앉았어도 낯설어진 시선은 그대의 등 뒤만 봅니다 어떻게 지냈느냐는 안부에 세월이 그냥 흘렀겠느냐는 그대의 반문은 아문 상처라지만 진물같은 아픔이 흐릅니다 간간히 미소를 띄우고 있어도 찻잔이 사늘하게 식어가듯 차가워지는 침묵의 시간은 떠나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 탓일까요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내가 그대를 떠난 것은 사랑의 시작이지만, 그대가 나를 떠나는 것은 사랑의 끝이겠지요. 지금은 이별하기에도 좋은 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듯이 그대에게 물들어 올 황금빛 사랑을 위해 몹쓸사랑의 찌꺼기는 모두 내가 껴안고 낙엽처럼 떨어집니다. 그대여 식은 찾잔이야 버려두고 부지런히 그대의 가을을 찾아 일어 설 시간입니다 (게시기간 : 2007.11.18.~ 11.24.) 550 홍시 차호일 누가 홍시 아니랠까봐 이 대낮에도 붉게 불 밝혔는가 까치 한마리 감나무 위로 내려앉다 뜨거워 그냥 간다 익다 못해 타는 가을 (게시기간 : 2007.11.11.~ 11.17.) 549 중심 심수향 11월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듯이 배추가 제 삶의 한창때를 건너고 있다 꽃을 피우고 싶어하는 푸른 이마에 금줄같은 머리띠 하나 묶어주려고 이참 저참 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배추는 중심이 설 무렵 묶어주어야 한다고 귀뜸을 한다 배추도 중심이 서야 배추가 되나보다 속잎이 노랗게 안으로 모이고 햇살 넓은 잎들도 중심을 향해 서기 시작한다 바람이 짙어지는 강물보다 더 서늘해졌다 띠를 묶어주기에는 적기인 것 같아 결 재운 볏짚을 들고 밭에 올랐더니 힘 넘치는 이파리가 툭 툭 내 종아리를 친다 널따란 잎을 그러모아 지그시 안고 배추의 이마에 짚 띠를 조심스레 둘렀더니 종 모양 부도처럼 금세 단아해졌다 부드러운 짚 몇 가닥의 힘이 참 놀랍다 이제 배추는 노란 제 속을 꽉꽉 채우며 꽃과 또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추수 끝난 들녘에 종대로 서 있는 배추들 늦가을의 중심으로 탄탄하게 들어서고 있다 (게시기간 : 2007.11. 4.~ 11. 10.) 548 운명에게 말걸기 안정희 이젠 너와 손잡고 산책도 하고 의논도 하고 싶어 내 고슬고슬한 두 아들 너무 혹독하게 몰아붙이지 말고 멋 적은 내 남편 등 좀 두드려 주렴 그리고 더러 나에게도 하루 종일 씩씩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 좀 해 주어   네게 말은 못했지만 사실 많이 고단했거든   그렇다고 네게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이제 이 말은 하고 싶어   우리 친하게 지내자 (게시기간 : 2007.10.28.~ 11. 3.) 547 그리운 벗이여 박해옥 정아, 그리운 내 친구야 아랫배미 웃배미 가을걷이 끝냈는가 밤 나무골 샛길 언덕에 심은 호박들 올해도 보름달만한 누런 호박 달렸는가. 먼당 뚝, 고구마 올해도 궁벵이놈들 서리해 가는가 지난 봄 검둥염소 몸 풀었다더니 어미랑 새끼도 다 잘 크는가. 봄이면 벗들과 산나물 뜯고 가을이면 투둑 투둑 알밤 구르고 앞 냇가 언덕배기에 흐드러지던 구절초 그리운 그님들도 다들 잘 있는가 오월이면 온동네를 하얗게 물들이던 뒷동산 아카시아 하마 지금쯤 노랗게 노랗게 낙엽져 내리겠지. (게시기간 : 2007.10.21.~ 10.27.) 546 가을들판으로 나를 윤석산 가을 들판으로 나를 몰아가 다오 그리하여 서걱이는, 아픈 풀들의 몸짓으로 춤추게 해다오 서걱이는 들풀들 사이, 끝없이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환상으로 나를 살아가게 해다오 들판을 내닫는 사자들의 갈색 갈기, 갈기를 가르는 바람의 황량함으로 살아가게 해다오. 그리하여 산마루에 걸려진, 핏빛, 노을로 죽어가게 해다오. 우우우 달빛 쏟아지는 밤이면, 서걱이는 들판 헤매이는, 승냥이의, 푸른 울음 다시 살아나게 해다오. (게시기간 : 2007.10.14.~ 10.20.) 545 연가2 김귀화 그대 뼈끝까지 침범하는 고통으로 사랑하라. 그대 창문 틈으로 슬며시 새어들어 가슴, 갈빗대 하나하나 남김없이 헤집고 돌아서는 그 바람을 탓하지 말라. 땅 끝에서 땅 끝으로 말없이 뿌리를 내리는 그대의 사랑 아픈 언어를 내뱉지 말라. 그대의 절벽 끝에서 내솟는 한 줄기 빛 사랑하라, 사랑하라, 외면하지 말라. (게시기간 : 2007.10. 7.~ 10.13.) 544 임 그리워 정재삼 가을 빛 꼬임에 창문을 활짝 열고 하늘을 보면 가슴에 담아 놓은 임의 얼굴 떠오릅니다 창공을 나는 이름 모를 새들 사랑 놀음 날개 짓 보노라면 임 그리워 간장을 녹입니다 그림 붓 움켜잡고 파랑 물감 뿌렸는지 하늘 빛 너무 고와 하염없이 멍하니 허공만 바라봅니다 거 누가 없소 임 그리워 가을아, 사랑아 (게시기간 : 2007. 9.30.~ 10. 6.) 543 이렇게 詩(시)를 쓰자! 이윤재 이렇게 詩를 쓰자! 노을빛 고운 하늘아래 서서 그 빛깔 한량 적시지 못할바엔 그저 하늘이라고 적고 점점이 말없음표만 찍자. 이렇게 詩를 쓰자! 울다 잠든 아이의 숨결 그 정갈한 박동에 가슴 뛸 때면 감칠맛 나게 느낌표를 찍자. 이렇게 詩를 쓰자! 감색넥타이의 진실이 목을 죄고 내 미움의 침샘이 꿈틀대어 증오의 욕질이 헛구역질 하면 이미 용서인 것을......하며 쉼표만 찍자. 이렇게 詩를 쓰자! 나르시스를 향한 수선화의 그리움이 더 할수 없는 바다 빛 슬픔으로 찾아와 더딘 밤 더욱 깊어지면 그만 마침표를 찍자. 감동과 분노에는 어눌한 은유와 생경한 감탄사는 생략하자. 슬픔과 체념에는 어줍은 형용사와 치졸한 의태어는 코를 풀자 파아란 새벽까지 그저 점점이 말없음표만 찍자! (게시기간 : 2007. 9.23.~ 9.29.) 542 조등 남진우 장례식장에 걸린 조등 하나 바람도 없는데 잠시 흔들리다 멈춘다 죽은 이의 입김이 스쳐 지나간 걸까 죽은 이의 눈빛이 머물다 간 걸까 산 사람들만이 부산히 오가는 장례식장 입구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조등 하나 누군가에게 전할 말이 생각난 듯 잠시 흔들리다 멈춘다 (게시기간 : 2007. 9.16.~ 9.22.) 541 박두순 새 한 마리가 마당에 내려와 노래를 한다. 지구 한 귀퉁이가 귀기울인다. 새떼가 하늘을 날며 이야기를 나눈다. 하늘 한 귀퉁이가 반짝인다. (게시기간 : 2007. 9 9.~ 9.15.) 540 흔들림에 대하여 복효근 흔들리는 것은 살아 있다 흔들림으로 업을 삼은 깃발은 그 흔들림으로 살아 있다 무겁게 매달리는 땅덩이를 떨치고 하늘 저 켠으로 날아가고 싶지만 깃발은 누군가의 염원 끝에 매달려 목마른 몸부림으로 살아 있다 늘 검문소를 지나 집과 직장 사이 절집과 술집 사이 오랜 시간의 회의로 내 발걸음도 흔들려서 몇번이고 우회로를 돌아 오늘은 하늘 가까운 언덕 위에 선다 발걸음 흔들릴 때마다 이 언덕보다 높은 하늘 저 쪽 떠나버리고도 싶었지만 깃대를 떠난 깃폭을 누가 깃발이라 부르는가 살아 있음은 흔들려 몸부림친다는것 흔들어다오 누군가의 깃대 위에 그 흔들림의 마지막까지 온몸으로 살아있고 싶다 (게시기간 : 2007. 9 2.~ 9. 8.) 539 나 그대를 사랑하면 안될까요 서창원 그대의 작은 웃음에도 내 인생 전부가 기뻐지는데 나 그대를 사랑하면 안될까요 그대가 던지는 한마디 말에도 내 마음 전부가 흔들리는데 나 그대를 사랑하면 안될까요 그대가 내 손을 살짝 잡아주면 이 세상 모든 사랑 그대에게 주고픈데 나 그대를 사랑하면 안될까요 그대가 잠시 눈을 감고 있어도 온 세상 모두가 평안하다 느끼는데 나 그대를 사랑하면 안될까요 이제는 그대 마음 내게 심어져 그대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데 나 그대를 사랑하면 안될까요 (게시기간 : 2007. 8.26.~ 9. 1.) 538 그만큼 행복한 날이 심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게시기간 : 2007. 8.19.~ 8.25.) 537 어떤 흐린 날 이무열 할 일없이 담배를 태운다. 바둑이가 짖으며 내닫은 길 위로 아무도 한 번 가고는 오지 않는다. 구겨진 은박지 속에서는 아이들과 새들의 숨바꼭질이 한창인데 흐려지는 얼굴로 문득 그해 여름 맨드라미꽃 지고 있다. 먹다 밀쳐 둔 수제비 같은 유년의 운동장 가에는 분홍의 바람개비 저 혼자 돌아가고, 잃어버린 사방치기 돌 희미한 기억처럼 빛을 튕기고 있다. 아련하여라 줄레줄레 아직도 국기 게양대 옆 미루나무 잎사귀는 저요 저요 선생님 저요! 잎잎이 눈부신데 사라지는 담배연기 너머로 세상의 길은 구불구불 푸르게 뻗어만 갔다. (게시기간 : 2007. 8.12.~ 8.18.) 536 신발론(論) 마경덕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게시기간 : 2007. 8. 5.~ 8.11.) 535 부끄러운 손 정다혜 잘게 부서져 내리는 햇살 속에서 개미 서너 마리 빵부스러기 끌고 간다 끊어질 것 같은 가는 허리로도 여섯 개 다리가 하나 둘, 하나 둘 발맞추며 당당히 지구를 굴리며 간다 도대체 저 수레바퀴 같은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깨어 있는 것들은 저렇듯 온 몸 바쳐 생을 태워 등불을 밝히는데 하릴없이 빈둥대면서도 내 몸 어둡다 세상 모든 것을 끌고 가는 바퀴들을 축복한다 길은 무릇 걸어가는 자만이 만들 듯이 저 예사롭지 않은 더듬이의 촉각이 길을 만들고 휴지 떼어 들고 쓸어내려던 내 손 부끄러워 주머니 속에 감추고, 개미들의 거룩한 역사(役事)를 지켜보고 있다. (게시기간 : 2007. 7.29.~ 8. 4.) 534 화살나무 손택수 언뜻 내민 촉들은 바깥을 향해 기세 좋게 뻗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제 살을 관통하여, 자신을 명중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고 있는 가지들 자신의 몸 속에 과녁을 갖고 산다 살아갈수록 중심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동심원, 나이테를 품고 산다 가장 먼 목표물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으니 어디로도 날아가지 못하는, 시윗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산길 위에서 (게시기간 : 2007. 7.22.~ 7.28.) 533 풍경을 읽다 이정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산 정상 군데군데 내려다보이는 길들이 흩어진 퍼즐의 조각처럼 숲을 자르고 있다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 사이에 잘못 들어간 접속사 갈래갈래 흩어진 풍경에서 나를 들어내면 비로소 완벽한 문장이 된다 올려다 볼 줄만 알았지 내려다 볼 줄은 몰랐던 올라와서야 비로소 보이는 헛디딘 발자국들이 바꾸어 놓은 풍경이 나를 읽고 있다 흐르듯 이어지는 능선 길 위에 좌르륵 펼쳐놓고 있다 (게시기간 : 2007. 7.15.~ 7.21.) 532 비 갠 아침 김우택 비 갠 아침 어머니가 울타리에 빨래를 넌다 간 밤 논물 보고 온 아버지의 흙바지며 흰 고무신 천둥번개에도 꿈 잘 꾼 손자녀석 오줌바지 구멍난 양말들이 햇살에 가지런히 널려간다 쪼들리는 살림일수록 빨래감은 많아 젖어 나뒹굴던 낱낱의 잡동사니 가렵고 눅눅했던 이불 속 꿈들이 줄지어 널려가는 울타리에 오이순도 넌출넌출 감겨 오른다 빗물 빠진 마당가엔 풀새들이 눈을 뜨고 지붕 위 제비떼 날개 말리는 비 갠 아침 어머니가 빨래를 넌다 꺾인 팔은 바로 잡고 꼬인 다리는 풀어 주며 해진 목덜미 닳은 팔꿈치 아무리고 다독이면서 새옷보다 깨끗한 빨래를 넌다. (게시기간 : 2007. 7. 8.~ 7.14.) 531 손길, 발길이 머물던 양희순 묏부리 고추밭에 드렁하게 얼키설킨 호박덩굴 속 스락스락 스치는 꺼꾸러움 헤치고 곱게 삶아 쌈밥 먹으러 작은 호박잎 골라 소쿠리에 풍성히 채우고 호박꽃 속 꿀벌 가둔 채 장난스레 꽃무덤도 만들었다 돌아나오는 발 아래 바닥으로 깔린 호박넌출에 소복히 쌓인 벌레알, 부활을 꿈꾸는 날벌레의 사랑이었나 생각없이 곱게 드리운 사랑을 몰래 밟아버린 것도 이 시간쯤의 내 발걸음인데 엄니와 옛추억이 살고 있는 기와지붕 아래 누워 하늘을 본다 그리움 두 눈 자욱이 흐르고 옛처럼 밥상 위에 풀어놓아 줄 까끌하고 쌉쌉한 어미의 사랑이 없어 허허로운 마음이 오늘, 처마 낙숫물로 떨어지고 있다 (게시기간 : 2007. 7. 1.~ 7. 7.) 530 사랑 이창숙 그대 이름 내 안에 종일토록 비만 내리더니 오늘밤 그대로 하여 나뭇가지에 뿌리내리는 달을 보네 들여다보면 꿈틀대고 만지면 핏물 새어 나올 것 같고 그렁그렁 큰 울음하나 끌어안은 바윗돌 같은 버리면 가벼워 질 것을... (게시기간 : 2007. 6.24.~ 6.30.) 529 연필 권오삼 연필은 언제나 뼈로 글씨를 쓴다. 볼펜처럼 머리로 잉크 똥을 흘리면서 미끄럽게 술술 쓸 수 없어 뼈로 글씨를 쓴다. 닳으면 닳는 대로 부러지면 부러지는 대로 다시 뼈끝이 뾰족해질 때까지 정신이 뾰족해질 때까지 칼날에 사정없이 깎이는 아픔을 견디면서 언제나 뼈로 글씨를 쓴다. 그것이 마치 자기의 할 일인 양 보람인 양 (게시기간 : 2007. 6.17.~ 6.23.) 528 또 하나의 사랑이 다가왔지만 김경구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줄 때 밤이면 알 수 없는 갈등으로 나는 젖어 있었지 하나의 사랑을 지우지 못한 나에게 다가온 또 하나의 사랑은 너무나 힘겨웠기 때문이었지 혹 누군가 이 밤에 나처럼 옛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사랑의 상처 심하게 앓고 있을까 누군가를 이젠 타인이라 생각하자 언젠가 던질 이별은 아주 덤덤할 테니까 누군가가 주는 이별의 안녕은 눈물 한 방울 대신 웃음 한 조각 떼어줄 수 있을 테니까. (게시기간 : 2007. 6.10.~ 6.16.) 527 나는 삼류가 좋다 김인자 이제 나는 삼류라는 걸 들켜도 좋을 나이가 되었다 아니 나는 자진해 손들고 나온 삼류다 젊은 날 일류를 고집해 온 건 오직 삼류가 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더러는 삼류 하면 인생의 변두리만을 떠올리지만 당치 않은 말씀 일류를 거쳐 삼류에 이른 사람은 뭔가 다르다 뽕짝이나 신파극이 심금을 울리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너무 편해 오래 입어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낡은 옷 같은 삼류 누가 삼류를 실패라 하는가 인생을 경전에서 배우려 하지 마라 어느 교과서도 믿지 말라 실전은 교과서와 무관한 것 삼류는 교과서가 가르쳐 준 문제와 해답 만으로는 어림 없는 것 (게시기간 : 2007. 6. 3.~ 6. 9.) 526 나무의 꿈 문정영 내가 직립의 나무였을 때 꾸었던 꿈은 아름다운 마루가 되는 것이었다 널찍하게 드러눕거나 앉아있는 이들에게 내 몸 속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낮과 밤의 움직임을 헤아리며 슬픔과 기쁨을 그려 넣었던 것은 이야기에도 무늬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내 몸에 집 짓고 살던 벌레며, 그 벌레를 잡아먹고 새끼를 키우는 새들의 이야기들이 눅눅하지 않게 햇살에 감기기도 하고, 달빛에 둥글게 깎이면서 만든 무늬들 아이들은 턱을 괴고 듣거나 내 몸의 물결무늬를 따라 기어와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꿈속에서도 나는 편편한 마루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자라서 더 이상 내 이야기가 신비롭지 않을 때쯤, 나는 그저 먼지 잘 타고 매끄러운 나무의 속살이었을 뿐, 생각은 흐려져만 갔다 더 이상 무늬가 이야기로 남아 있지 않는 날 내 몸에 비치는 것은 윤기 나게 마루를 닦던 어머니, 어머니의 깊은 주름살이었다 (게시기간 : 2007. 4.29.~ 5. 5.) 525 봄을 그리는 색연필 전병호 파란 남청 색연필로 파란 하늘 그리고 하양 초록 색연필로 정성들여 칠하면 토끼구름 솜구름 산위에 피어나고 졸졸졸 흘러가는 골짜기 맑은 냇물 보리밭 푸른 물결 출렁이는 도화지에 종달새 날아와 즐겁게 노래하네 초록 연두 색연필로 나뭇가지 그리고 노랑 분홍 색연필로 정성들여 칠하면 높은 산 넓은 들에 새싹들이 돋아나고 하르르 피어나는 살구꽃 진달래꽃 꽃다지 민들레꽃 수를 놓은 도화지에 노랑 나비 날아와 즐겁게 춤을 추네 (게시기간 : 2007. 4.22.~ 4.28.) 524 꽃들은 상처 자국에서 핀다 배용제 뿌리 잘린 것들의 밑바닥엔 모두 상처가 있지 조팝나무 가지가 꽂힌 그릇의 물을 갈아주며 그가 중얼거린다 봄빛을 따라간 산책길에서 주워 온 꺾인 가지 몇, 시퍼런 눈조차 뜨지 못했던 것들 어느새 새하얀 연고 같은 꽃들을 매달고 있다 무슨 보물인 양 여기는 그의 우스꽝스런 몸짓을 보면서 고아원 양지바른 곳에서 여린 가지를 뻗고 자라온 그가 남매를 두고서도 또 다른 아이를 원하는 집착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지껏 삼켰을 눈물에 대해 어쩐지 그의 웃음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눈물이 싱싱해질수록 더욱 더 선명한 조팝나무 저 꽃들, 바람에 날려 온 봄빛의 부스러기일지도 몰라 상처를 딛고 악착같이 반짝이는 딱지 같은 꽃들을 무슨 별인 양 바라보는 그의 양팔에 아이들이 매달린다 어떻게 이것들이 내게서 생겼는지 햇살과 공기와 구름과 모든 계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그러나 꽃들이 제 몸을 벗어나기 전까지 그것들이 단단한 씨앗을 품을 때까지 아직은 잘린 상처로 눈물을 삼키며 허공을 움켜쥔 조팝나무 가지의 아슬아슬한 터전, 그의 봄날 (게시기간 : 2007. 4.15.~ 4.21.) 523 각인 배한봉 이름부터 아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장수풍뎅이, 각시붕어, 닭의장풀꽃 사는 법 알면 사랑하게 되는 줄 알았다 아이는 한 송이 풀꽃을 보고 갈길 잊고 앉아 예쁘네 너무 예뻐, 연발한다 이름 몰라도 가슴은 사랑으로 가득 차 어루만지지도 못하고 눈빛만 빛내고 있다 사랑은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임을 내게 가르쳐 주고 있다 헛것만 가득한 내게 봄을 열어주고 있다 깨닫느니, 느낌도 없이 이름부터 외우는 것은 아니다, 사랑 아니다 생각보다 먼저 마음이 가 닿는 사랑 놀람과 신비와 경이가 나를 막막하게 하는 사랑 아름다움에 빠져 온몸 아프고 너를 향해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때 사랑은 웅숭깊어 지는 것이다 이름도 사랑 속에 또렷이 새겨지는 것이다 (게시기간 : 2007. 4. 8.~ 4.14.) 522 이삿날 김행란 집 한 채가 1톤 트럭에 너끈히 실린 오후 하나 둘 도시의 집들이 나와 거리를 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집에는 집이 없다 낯선 자의 비좁은 집에 편승하여 세 식구 잠시 인생을 포개어 앉는다 밀어낼 수 없는 따스한 불편 살아온 사십여 년을 싸놓은 짐보다 무거운 아내의 한숨이 보자기를 풀어놓은 듯 물결친다 못질을 한다 세 식구 밝은 웃음을 걸어두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꺼낸 희망도 단단하게 더욱 단단하게 걸어 놓는다 오래된 살림살이 낡은 남루를 벗듯 아내는 오래오래 닦는다 부엌문에 딸아이가 제 그림을 붙인다 아내와 내가 어설프게 도화지에 서 있는 아내와 내가 가난하게 서 있는 방 한 칸과 두어 평 부엌을 이어 놓는다 딸아이의 여섯 살 웃음이 진달래꽃으로 곱다 (게시기간 : 2007. 4. 1.~ 4. 7.) 521 저녁 안국현 저녁은 눈부시지 않아서 아름답다 목련은 저녁빛을 얼마나 모아왔을까 가지 끝마다 꽃을 피웠다 눈부시지 않는 빛의 깊이를 본다 그 깊이가 바로 아름다움이어서 저녁빛 같은 꽃잎을 피우는, 즐거운 일이 내게도 일어났으면 싶다 그러나 저녁은 무섭다 저녁은 스스로 어두워져 가벼운 빛들을 드러낸다 사실, 꽃을 피우는 일이 서 있는 일보다 어렵고 사실, 꽃빛의 깊이를 갖는 일이, 향기 내는 일이 꽃을 피우는 일보다 아름다운 것인데 나는 뿌리내리는 법도 익히지 못했다 눈부신 것만을, 너무나 눈부셔 가벼운 것만을 쫓아다녔다 울고 싶다 무섭고 아름다워서 저 거리의 눈부시지 않는 것들을 한참 보면 (게시기간 : 2007. 3.25.~ 3.31.) 520 당신은 왜 내게 짠물인가 주용일 바닷물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했다 마실수록 갈증이 난다 했다 날마다 그리움이라는 갈증으로 허덕이며 사랑이라는 목마름으로 애가 타며 나는 왜 당신이라는 짠물을 마시는 것인가 나를 한 없이 물켜게 하는 당신은 왜 내게 그리움의 짠물인가 (게시기간 : 2007. 3.18.~ 3.24.) 519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 아들에게 민영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늘 약골이라 놀림받았다 큰 아이한테는 떼밀려 쓰러지고 힘센 아이한테는 얻어맞았다. 어떤 아이는 나에게 아버지 담배를 가져오라 시키고, 어떤 아이는 나에게 엄마 돈을 훔쳐오라고 시켰다. 그럴 때마다 약골인 나는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갖다 주었다. 떼밀리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얻어맞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떼밀리고 얻어맞으며 지내야 하나? 그래서 나는 약골들을 모았다.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비굴할 수 없다. 얻어맞고 떼밀리며 살 수는 없다. 어깨를 겨누고 힘을 모으자 처음에 친구들은 주춤거렸다. 비실대며 꽁무니빼는 아이도 있었다. 일곱이 가고 셋이 남았다. 모드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약골이다. 떼밀리고 얻어맞는 약골들이다. 그러나, 약골도 뭉치면 힘이 커진다. 가랑잎도 모이면 산이 된다. 한 마리의 개미는 짓밟히지만, 열 마리가 모이면 지렁이도 움직이고 십만 마리가 덤벼들면 쥐도 잡는다. 백만 마리가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코끼리도 그 앞에서는 뼈만 남는다. 떼밀리면 다시 일어나자! 맞더라도 울지 말자! 약골의 송곳 같은 가시를 보여주자!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우리나라도 약골이라 불렸다 왜놈들은 우리 겨레를 채찍질하고 나라 없는 노예라고 업신여겼다 (게시기간 : 2007. 3.11.~ 3.17.) 518 외출 김창진 이른봄, 나는 외출을 하였다 겨울에 익숙한 외투로 아직 한쪽은 겨울로 남은 몸을 감추고 봄 길로 나서면 봄 햇살에 큰크리트 벽들도 금세 싹을 틔울 것만 같다. 내 몸의 어디에서도 살갗을 뚫고 무엇인가 돋는 듯하다. 길가엔 동시상영 포스터와 선거 벽보들이 나란히 봄볕을 피해 긴 담을 따라 월장을 한참 준비중이다. 신축성 없는 마분지 같은 얼굴들이 고민 끝에 모조하는 근엄한 미소들은 깨알같은 자신의 약력 밑에 한 줄의 그것들을 더하기 위해 이 낯선 곳으로 애마부인 7과 외유를 나왔다. 난 그 앞에서 문맹이 되고픈 충동을 느낀다. 귀중하다는 나의 한 표 행사를 고민해야 할 걱정에 싸였다가 딴전 피듯 파란 하늘을 본다.   봄볕을 받고 개나리와 아지랑이가 출마를 하였으면 노랑나비가 빨리 봄을 노래하였으면 나도 아직 일부가 차가운 몸을 안고 봄으로 간다. 봄이 공천하는 많은 새 생명이 돋는 곳으로 나는 외출을 한다. 봄날은 우리에게 공약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햇살을. (게시기간 : 2007. 3. 4.~ 3.10.) 517 낡은 구두 송승근 집을 나서야할 이른 아침 차가운 시멘트 바닥 한 구석에서 밤을 지샜을 낡은 구두 한 켤레를 본다 오랜 세월 거친 길을 헤매면 몸 속의 멍도 감출 도리가 없는 듯 푸른색 실밥이 타져 나왔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쉬어야 하는 것일까 느슨하게 풀린 끈이 고갯길 바위시렁에 주저앉은 듯 그러나 알아야 한다 굽은 닳고닳았지만 문 밖을 향해 가지런한 것은 걸어야할 길이 아직 남아있기에, 그래서 말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길을 기억하는 낡은 구두여, 오늘도 너의 끈을 단단히 동여맨다 (게시기간 : 2007. 2.26.~ 3. 3.) 516 이런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정중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적당량의 양분을 공급해야 하듯이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서는 바라고 원하는 것을 참아내며 양보해야 합니다 사람이란 가끔 단순 무지하여 받은 만큼만 주려 하며 욕심이란 함정을 만들어 불면의 밤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영상에 허덕입니다 진정 아끼고 존경하는 사랑을 한다면 채워진 듯 든든하여 바라만보아도 행복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당신의 슬픔에 뒤돌아보게 되고 어깨를 들썩입니다 모자란 듯 다가서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소유하려 하지 않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게시기간 : 2007. 2.18.~ 2.25.) 515 서시 (序詩) 김솔연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사랑만이 불모의 땅을 갈아엎고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 천년을 두고 오는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랑만이 인간의 사랑만이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게시기간 : 2007. 2.11.~ 2.17.) 514 엄마의 런닝구 배한권 (1987년 당시 초등 6학년)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 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게시기간 : 2007. 2. 4.~ 2.10.) 513 반성 100 김영승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뭐.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 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게시기간 : 2007. 1.28.~ 2. 3.) 512 그대라는 그리움에게 송기자 누군가가 내 가슴 안으로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소리 없이 내려 쌓인 눈과 같이 그렇게 이렇게 쌓여 있었다. 너의 이름이 그대라는 그리움으로 날아다닌다. 그리움으로 아프게 쌓였다가 기쁨으로 곱게 부서지기도 한다. 눈물 없는 그리움은 사랑이 아니다 고통 없는 그리움도 사랑이 아니다 닿을 듯한 간격에서 아주 먼 거리의 간격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대라는 그리움을 향하여 새로운 깃발을 들어 올린다 (게시기간 : 2007. 1.21.~ 1.27.) 511 어느 상인의 일기 김연대 하늘 아래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하늘에 별이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장부엔 매상이 있어야 한다. 메뚜기 이마에 앉아서라도 전(廛)은 펴야 한다. 강물이라도 잡히고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한다. 일이 없으면 별이라도 세고 구구단이라도 외워야 한다. 손톱 끝에 자라나는 황금의 톱날을 무료히 썰어내고 앉았다면 옷을 벗어야 한다. 옷을 벗고 힘이라도 팔아야 한다. 힘을 팔지 못하면 혼이라도 팔아야 한다. 상인은 오직 팔아야 하는 사람.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 하는 사람. 그러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 묘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 (게시기간 : 2007. 1.14.~ 1.20.) 510 함박눈 조기호 털실 보퉁이를 추스르고 앉아 함박눈이 바늘 코를 세고 있어요. 빠알개진 순희 볼은 몇 뼘이나 될까, 옳지옳지 보송보송 털모자를 만들자 꽁꽁 언 철이 발은 몇 뼘이나 될까? 옳지옳지 포근포근 털장화를 만들자 털신 모퉁이를 추스르고 앉아 함박눈이 뜨개질을 하고 있어요. (게시기간 : 2007. 1. 7.~ 1.13.) 509 희망 한다발 엮어서 김미경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뜬구름 한 겹 한 겹 벗겨내고 오고 가는 여울목에서 이고 진 세상사 바다에 쏟아붓고 꽃 구름 한 묶음 희망 한 다발 엮어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찬 새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게시기간 : 2006.12.31.~ 2007. 1. 6.)

3-11.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07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