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04 년
 

 2004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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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사랑하십시요 시간이 없습니다 김진학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시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십시요. 사랑하는 이에게 여유를 부리고 자존심을 세우기엔 세상에 있는 시간은 너무 짧고 세상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사랑 때문에 내가 있어 가슴 아파 하는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세상이 험하다해도 사랑하기엔 좋은 곳입니다. 내가 있어 그리워하는 가슴있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있는 시간은 너무 짧고 젊음의 시간도 빠릅니다. 그래도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일어나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십시오. (게시기간 : 2004.12.26.~2005. 1.1.) 403 세월은 김춘경 세월은 묻지 않는다 무엇을 쫓아 왔는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단지 지금 함께 가고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세월은 말하지 않는다 언제 시작 했는지 어디서 끝이 나는지 다만 이 순간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뿐이다 세월은 조용히 일깨워 준다 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그렇게 해답없이 가르쳐 줄 뿐이다 멀리서 미소만 짓고 있다 (게시기간 : 2004.12.19.~12.25.) 402 겨울밤 박경종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지요 붕붕 가랑잎이 우는 밤 붕붕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화롯가에서 모두 올망졸망 모여서 호호 밤을 구워 먹지요 (게시기간 : 2004.12.12.~12.18.) 401 얼마나 아름다운 12월인가 박우복 한해의 끝에 서면 나이를 더하는 것이 아니고 새해를 맞는 것이다 한해의 끝에 서서 아픈 기억을 지워 버리듯 얄팍한 우리의 나이도 지워버리자 애당초 시작 하면서 빈 손 하나만 가지고 인생을 엮어갔듯이 다시 한번 어깨를 펴자 우리에게 12월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침몰하는 시간이 아니고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는 가장 높은 전망대 처럼. (게시기간 : 2004.12.5.~12.11.) 400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남낙현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세상 살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삶이 어렵고 힘들 때 한 마음 되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을 하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누구를 그리워하다가 서로 사랑하면 더욱 좋은 일이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밤을 지새우며 홀로 울기도 하겠지만 누구를 진정으로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 본 사람은 더욱 더 삶의 깊이를 알 수 있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게시기간 : 2004.11.28.~12.4.) 399 가을편지 정숙진 가을이 아직 다 가지 않았는데 낙엽 따라 날아온 송년소식이 초대장에 담겨 내 곁에 앉아있네 가을인가 했더니 어느새 겨울로 가려는 길목에 채 하지 못한 일과 보지 못한 그리운 님 아직 인데 우수수 떨어져 그냥 가려 하네, 일상 속에 고여 오는 그리움 그저 상상화를 그리며 고이 접어 책갈피에 넣어둔 단풍잎에 담아두고 보고 싶을 때 마다 살짝 열어 보네 혹여 그대가 가을편지 보내올까 마음은 문 밖을 서성이네 (게시기간 : 2004.11.21.~11.27.) 398 소외된 것들을 위하여 김현태 모두 다 꽃만을 기억할 뿐 그 꽃을 담고 있는 꽃병을 알아주지 않는다 모두 다 별만을 올려볼 뿐 별과 별 사이의 어둠은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 다 연극배우에게만 박수를 보낼 뿐 무대 위에 대못으로 박아 세운 소나무 소품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모두 다 엘리베이터의 고마움만 알 뿐 계단의 우직함은 모른다 모두 다 흔들거니는 갈대를 사랑할 뿐 갈대밭에 사는 바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모두 다 이루어진 사랑만 축하할 뿐 이루지 못한, 그리움만 간직한 애달픈 사랑은 까마득히 알지 못한다 (게시기간 : 2004.11.14.~11.20.) 397 김성동 새가 되고 싶다. 물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되고 싶다. 그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이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새라면.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끼고 돌아가고, 산을 만나면 두 팔 가득 보듬어 안고 함께 가며, 가시철망 세멘콘크리트를 만나면 배밀이로 기어가다가, 흙을 만나면 땅 속 깊이 스며들어 마침내는 이윽고 콸콸 촤르르 흘러 갈 수 있는 물이라면. 늘 머물러 있으면서 늘 떠나고 늘 떠나면서도 늘 또한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바람이라면. (게시기간 : 2004.11.7.~11.13.) 396 사랑을 아는 너는 눈부시다 송시현 나는 별, 오직 그대만을 지키는 별이기에 항상 어두운 하늘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그대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대가 잠든 시간에도 홀로 하늘에서 빛나고 깨어있는 시간에도 그대를 환하게 비춥니다 하지만 그 빛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내 영혼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기에 이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사랑을 아는 그대, 그대를 보고 싶다는 말은 안 해도 마음 속으로 전해오는 그 느낌이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별 빛은 세상을 가득 채우고 그 빛은 그대를 보고 싶은 내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움에도 얼굴이 있다면 나는 그 얼굴을 비추고 두 손을 내밀어 만지고 싶습니다 손 끝에서 느껴지는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섬세한 것일까요 나는 눈을 감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을 아는 눈부신 그대를 (게시기간 : 2004.10.31.~11.6.) 395 가을 레슨 채희문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떠나 볼 줄도 알아야지 좀 돌아서 갈 줄도 알아야지 좀 천천히 갈 줄도 알아야지 점점 높아지는 하늘 점점 얕아지는 땅 그 사이에서 점점 흔들리며 작아지는 나 새삼 느껴 볼 줄도 알아야지 떨어지는 잎, 다시 볼 줄도 알아야지 싸늘한 바람에 손만 흔들고 서 있는 나무들도, 다시 볼 줄 알아야지 좀 멀리 볼 줄도 알아야지 좀 가까이 볼 줄도 알아야지 깊은 것도 얕은 것도 함께 볼 줄 알아야지 가을이 가기 전에 가을비 아침 이슬 같은 빗물로 만나 한 번쯤 썰렁한 가슴 젖어 볼 줄도 알아야지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쯤은... (게시기간 : 2004.10.24.~10.30.) 394 행복한 기다림 이우상 잘 나가는 친구가 베푼 과분한 술자리에서 돌아오는 길엔 왠지 소화불량 증세로 아랫배가 땡땡합니다. 처지가 어렵게 된 친구를 만나 곱창 안주와 소주를 마시고 술값을 서로 내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에 신명이 슬쩍 실려 있습니다. 막차가 끊어졌을까 싶어 약간은 불안해 하는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오는 길입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후 굉음을 울리며 전동차가 씩씩하게 들어올 것입니다. 지금 당신에겐 흐뭇한 신명이 실려 있네요. (게시기간 : 2004.10.17.~10.23.) 393 바람이 불 때 나는 바람을 사랑하고 김동수 바람이 불 때 나는 바람을 사랑하고 내 가슴은 열병이 돋아 바람에게 이끌려 멀리 강변까지 갔드랬습니다. 바람은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인데 바람에게 이끌려 나는 겨울나무처럼 잔가지에서 나뭇잎들을 다 떨어뜨렸습니다. 드디어는 앙상해 버린 나의 가슴에 그대여. 한 글자만 새겨주십시오. 나를 사랑한다고. (게시기간 : 2004.10.10.~10.16.) 392 그 빈 터 김영석 우리가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옛 절터나 집터를 찾아가 보라 우리가 돌아보지 않고 살지 않는 동안 그 곳은 그냥 버려진 빈 터가 아니다 온갖 나무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오가는 바람에 두런거리며 작은 벌레들과 함께 옛이야기처럼 살고 있다 밤이 되면 이슬과 별들도 살을 섞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린다 소중한 이름과 얼굴마저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그렇게 많은 것을 잃고 잊어버린 마음의 빈 터에 어느 날 문득 이르러 보라 무성히 자란 갖가지 풀과 들꽃들이 마파람 하늬바람과 작은 새 풀벌레들과 오순도순 살고 있다. 그 드넓은 풀밭과 들꽃들 위로 지는 노을은 아름답다 참 아름답다. (게시기간 : 2004.10.3.~10.9.) 391 - 경주 남산 정일근 마음이 길을 만드네 그리움의 마음 없다면 누가 길을 만들고 그 길 지도 위에 새겨놓으리 보름달 뜨는 저녁 마음의 눈도 함께 떠 경주 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 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 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길은 달빛 아니라도 환한 길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그 길 따라 내가 가네. (게시기간 : 2004.9.26.~10.2.) 390 가을 조영일 고추밭의 고추들 고추 내놓고 울타리 밑의 호박들 배꼽 내놓고 지붕위의 박덩이들 허어연 배통 내놓고 햇볕 즐기며 잠자는 걸 보았는지 잠자리 고추잠자리 얼굴 빨개졌다네 (게시기간 : 2004.9.19.~9.25.) 389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 김용복 마음은 때로 작은 상자를 만든다. 의자를 만들고 책상도 만든다. 마음은 또 집을 짓고 정원도 만든다. 작고 큰 마음들이 모이면 보다 큰 우리의 환경을 만들어 낸다. 맑고 깨끗한 너와 내 마음들이 모이면 푸른 산을 만들고, 맑은 강을 만들고 맑은 하늘을 만든다. 살기 좋은 우리 환경도 청정한 우리의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 낸다. (게시기간 : 2004.9.12.~9.18.) 388 나의 귀가 길 문상금 구월이 오자 노루꼬리 마냥 하루해가 짧아졌습니다 나의 귀가 길은 항상 초조합니다 내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의 딸들은 해질 무렵 엄마를 기다립니다 골목길 왕벚나무 아래 할머니 손 꼭 잡고 내 마음은 항상 달립니다 "엄마" 하며 양팔로 나를 껴안는 미처 쫓아오지 못한 막내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입니다 딸애들과 나는 하나입니다 단단하게 묶인 고리입니다 눈부신 인연입니다 (게시기간 : 2004.9.5.~9.11.) 387 산 너머 저쪽 이문구 산 너머 저 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 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게시기간 : 2004.8.29.~9.4.) 386 그대 사랑함에 손남태 내가 그대 사랑함에 그대가 힘겨워할 때 내 두 손 벌려 그대 안아주겠지만 내가 진작 어려울 때 그대에게 기대고 싶진 않습니다. 그대가 삶에 지쳐 연약한 얼굴 빛을 발함이 내게 그대를 향해 크나큰 힘을 발휘할 기회가 되겠지만 나의 나약함을 그대에게 보여줌은 그대 가슴에 더욱 어둠을 주는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론 그대에게 길고도 긴 한숨과 내가 가진 삶의 멍에를 풀어놓고도 싶음입니다. 어깨를 맞대고 한 번 온몸을 기대고도 싶음입니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하는 괴로움은 사랑이 나 자신을 위한 판단이기보다 그대를 위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게시기간 : 2004.8.22.~8.28.) 385 한 나무에 많은 열매 이탄 바람이 불고 벼락치는 모진 날을 이기고 나무가 쏘옥 쏙 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잎을 내밀고 한치 한치 하늘로 뻗는 것은 무슨 뜻일까 찌는 더위나 독한 추위를 이기고 때맞춰 꽃 피우고 열매를 여는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 그러는 걸까 한 나무에 많은 열매를 갖고 비바람을 거느리는 저 모습 하루를 그럭저럭 보낸 날이나 마음 허전한 날 저 열매들은 거울처럼 빛난다 (게시기간 : 2004.8.15.~8.21.) 384 너무 사랑하지도 너무 미워하지도 마십시오 고석 사람이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거리속에서만 정확히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온도와 속마음 그리고 아픈곳까지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미움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그 사람을 가깝게 품으려하고 소유하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의 헤어짐도 모두가 너무나 가깝게만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너무 가깝게도 너무 멀게도 있지 말자' 이 말은 곧 너무 사랑하지도 너무 미워하지도 말자는 중용의 의미에 다름 아닙니다 너무 사랑하여 상대방의 모든것을 관여하고 소유하려 마십시오 또 너무 미워하여 쉽게 돌이킬 수 없는 인간관계도 (게시기간 : 2004.8.8.~8.14.) 383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게시기간 : 2004.8.1.~8.7.) 382 여름밤 이준관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하마. 무릎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 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 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 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게시기간 : 2004.7.25.~7.31.) 381 비를 사랑하는 그대에게 박현자 내리는 빗물에 나의 순수함을 실어 그대의 발길 닿는 곳에 입맞춤하련다. 내리는 빗물에 나의 진실함을 실어 그대 지친 가슴에 포근함을 주련다. 내리는 빗물에 나의 미소를 실어 그대 슬픔 안에 기쁨을 주련다. 내리는 빗물에 나의 가슴을 실어 그대 살결에 열정을 느끼게 하리라. 그대를 아끼는 나의 소중한 마음으로 비 한 방울이 되어 그대 따뜻한 품안에 영원히 잠들리라. 서럽도록 너무나 서글픈 밤이다. 아직까지도 마음 깊숙한 곳에 남겨져 있는 인간적인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찬장 속의 포도주가 줄어듦은 곧 가슴속 깊은 곳의 그리움의 축적이다. 오늘밤, 차마 침묵 속에 내려보는 나의 별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이 밤을 이기기 위한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린다. (게시기간 : 2004.7.18.~7.24.) 380 나를 사랑하는 법 김수정 너를 사랑하느라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얼마나 철저히 내 자신을 잊고 살았는지 너 떠난 후 어디서부터 나를 어루만져야 할지 속엣 것을 다 끄집어낸 듯 황량한 마음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죽음 앞에선 내 자신은 울고만 있다 왜 나를 버려야 하는지 너 때문이라면 너는 떠나가고 없다 이대로라면 영원히 너를 볼 수도 없다 너를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네가 내게 주는 슬픔에도 온전히 버틸 수 있으려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 초라한 믿음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너를 다시 사랑할 수 있다 (게시기간 : 2004.7.11.~7.17.) 379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순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비록 가까이 있지 않아도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없어도 그로 인해 그리움이 산 처럼 쌓인다 해도 절망처럼 가슴이 무너져 내려도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찬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진정 행복한 일입니다 만나고 싶지만 마음대로 볼 수 없고 그대만의 향기 마음껏 맡을 수 없어 사무치는 마음 병이 되어도 생각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진정코 행복한 일입니다 (게시기간 : 2004.7.4.~7.10.) 378 해법 이영일 아들이 어렸을 적에 바닷가에 데리고 나간 적이 있습니다. "아빠, 바다의 끝은 어디예요?" "저기 끝에 보이는 수평선보다도 더 먼 곳에 있단다." 집에 돌아올 때쯤 되어서야 나는 우리가 서있던 해변이 바로 '바다의 끝'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 고뇌하고 있다면 자신의 발밑을 한 번 눈 여겨 보십시오. 해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특히 자기에게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게시기간 : 2004.6.27.~7.3.) 377 하얀 염소가 있는 풍경 조윤희 넓은 초원에 염소 한마리 풀을 뜯고 있다 하늘을 업은 염소의 잔등이 푸르다 그 잔등 위로 한 마리 새가 날아간다 주루룩 푸른 물이 쏟아져 내린다 새들이 지우고 간 자리만큼 하늘이 비어간다 새하얀 염소 한 마리 두둥실 떠간다 (게시기간 : 2004.6.20.~6.26.) 376 아름다운 충고 작가미상 당신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성장하게 합시다 자신을 너무 책망하지 맙시다 당신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갑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면 바늘가는데 실 가듯이 진실을 맺을 것입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도록 노력합시다 당신의 욕구에 응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욕구에도 응합시다 그러나 자신을 증오하거나 소홀히 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맙시다 당신이 당신인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입니다 (게시기간 : 2004.6.13.~6.19.) 375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 이성희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 산길 모퉁이 금강초롱 그 꽃잎 사이에서 나폴거리는 아침으로 새벽하늘에 돋아난 금성 그 별빛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 거울에서 사라진 웃음 눈물로 번제를 드린다면 다시 눈부신 오후의 타악기처럼 웃을 수 있을까 징검다리의 마지막 돌 하나로 살고 싶어라 시냇물의 노래를 들으며 가장 넉넉한 자리에 안착하는 새를 보며 저녁을 맞고 싶어라 (게시기간 : 2004.6.6.~6.12.) 374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흐른다 류영국 물은 합치려는 의지로 흐른다. 돌부리에서, 가랑잎 틈새에서 스며나온 물은 흐르다가 바윗등이 줄기를 갈라 놓으면 틈새로 새어나와 다시 만난다. 그렇게 만나고 합쳐서 강이 되어 흐르고 강물은 다시 합쳐 바다에서 하나로 된다. 물소리는 서로가 그리워서 울부짖는 외침이다. 그리움 끝에 만난 물줄기인지라 포구에 다 와서는 웃음짖는 만월을 띄우고 흐른다. 물의 여정은 하나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나뭇가지는 자라면서 갈라지지만 물은 갈수록 합쳐진다.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아래로만 흐른다. (게시기간 : 2004.5.30.~6.5.) 373 민들레 신용목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 오직 사랑은 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 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 솜털도 아니게 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 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 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 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게시기간 : 2004.5.23.~5.29.) 372 별하나 되어 박민수 어느 날 하늘 한녁 자리잡아 스스럼없이 작은 별 되어 살고 싶구나. 바람 부는 날 언덕에 올라 잠시 세상 모르는 꽃 한 송이로 피었다가 비 내리는 날 풀잎 속 온몸을 씻고 하하하 어느 날 스스럼없이 하늘에 올라 세상 향해 빛나는 속삭임 길게 던져 주는 작은 별 하나 되어 살고 싶구나. 어두운 돌멩이 밑 억눌린 시간의 꿈틀거리는 몸짓 위에 나의 속삭임 내려 앉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어깨 흔들면 어인 일이야 눈물 흘리며 덩실덩실 이 땅 저 땅 살아서 죽은 것들 춤바람되어 온 세상 덮으리니. 어찌하여 세월 붙들고 검은 땅 이다지 한숨일 뿐이랴. (게시기간 : 2004.5.16.~5.22.) 371 소녀들 양정자 철쭉, 산당화, 매화, 모란, 라일락, 다투어 피어나고 있는 향그런 5월 학교 꽃밭 앞에서 한 떼의 소녀들이 재깔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네 피어나는 꽃보다 훨씬 더 눈부신 자기들이 꽃인 줄 까마득히 모르는 채 (게시기간 : 2004.5.9.~5.15.) 370 어머니와 할머니 이재운 올해 예순 아홉이신 장모님을 모시고 산다. 말이 모시는 거지 실은 살림을 도맡아 하시므로 어머니가 자식들을 데리고 사시는 셈이다. 딸과 손녀의 투정에도 무조건 즐거워 하신다. 나이 쉰에 남편을 떠나 보낼 때까지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모진 인생을 살아온 어머니한테는 그나마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던 행복도 겨우셨는지 그만 삐끗한 것이 탈골이 되고 말았다. 어제까지는 어머니가 늙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힘든 살림도 척척 해내셨다. 그러므로 그냥 어머니일 뿐이라고 밖에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할머니 였다. 어머니가 누우시면서 거실 바닥의 먼지도 뽀얗게 잘 보였다. 마당의 잡초는 왜 그렇게 쉬 자라고, 쉬임없이 나는지 알 수 없다. (게시기간 : 2004.5.2.~5.8.) 369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배연일 아카시아 향내처럼 5월 해거름의 실바람처럼 수은등 사이로 흩날리는 꽃보라처럼 일곱 빛깔 선연한 무지개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휘바람새의 결 고운 음률처럼 서산마루에 번지는 감빛 노을처럼 은밀히 열리는 꽃송이처럼 바다위에 내리는 은빛 달빛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게시기간 : 2004.4.25.~5.1.) 368 유한, 무한 김시헌 지금은 봄이다. 움츠렸던 겨울의 생명들이 새 기운을 차린다. 날고 기고 뛰면서 봄을 즐긴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 속의 한 조각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 포기의 풀이 되고, 한 마리의 새가 되어서 그들과 더불어 흔들고, 뛰고, 날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리하여 나를 잃어 버린, 전체가 되어서 영원한 생명으로 지내고 싶다. (게시기간 : 2004.4.18.~4.24.) 367 새벽 편지 곽재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흔들만 깜박거리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 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 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게시기간 : 2004.4.11.~4.17.) 366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나희덕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요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 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게시기간 : 2004.4.4.~4.10.) 365 햇빛이 말을 걸다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게시기간 : 2004.3.28.~4.3.) 364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수인 아직도 그대의 이름이 나의 기쁨이 되고 아직도 그대의 고뇌에 일부분이 되고 있는 나 그대의 삶에 한 부분이 아닌 전체가 되어 꽃 피어날 그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다 갈 수만 있다면 삶은 다분히 축복일진대 봄날이여! 잎새도 없이 피어나는 한 그루 목련처럼 찬란한 고독이여 (게시기간 : 2004.3.21.~3.27.) 363 마음을 바꾸면 강현미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방문을 열고 시어머니의 안색을 살핍니다. 오늘도 차도가 없겠구나 생각하니 살아가는 나날이 힘겹게만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이 두터운 내 업장(業障) 탓, 그 업장을 소멸할 기회가 주어졌다 생각하니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것이 여간 고맙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을 바꾸니 몸도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게시기간 : 2004.3.14.~3.20.) 362 삼월 임영조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 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 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삼월 그 미완의 화폭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 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 본다 (게시기간 : 2004.3.7.~3.13.) 361 3월에 내리는 눈 이재호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보았는가 아직은 겨울이 묻어 있을 것 같은 안개를 헤치고 하이얀 까치 소리처럼 내가 먼저 누군가의 가슴 가까이 다가가 보았는가 아아, 이제는 봄이라고 살아야겠다고 잠든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보았는가 상큼한 치약 내음이 묻어 날 것 같은 웃음으로 그 누구보다도 일찍 아침을 열어보았는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자꾸 자꾸 편지를 띄어 보았는가 (게시기간 : 2004.2.29.~3.6.) 360 영안실에서 오세경 친구의 조문을 마치고 나와 두 사람이 말했습니다. "온 날짜는 알아도 가는 날은 모른다더니 그 말이 꼭 맞군." "언제 갈지 모르는데 이제부터라도 나를 위해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해 주고 싶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느껴보지 못하고 나를 그냥 죽게 하는 건 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삶의 평안과 깨달음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영안실을 나와 그들은 각자의 길로 향했습니다. (게시기간 : 2004.2.22.~2.28.) 359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고진하 그대가 불행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대의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대의 존재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불면으로 잠 못 이루는 그대의 반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불평과 원망이 마른풀처럼 잠들었을 때. 신발끈을 매고 길 떠날 준비를 하라. 생(生)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에 여윈 순결한 사랑이 아침 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가지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게시기간 : 2004.2.15.~2.21.) 358 너 때문이다 신형건 별을 징검다리 삼아 조심조심 건너뛰다가 한순간, 내 눈길은 발을 헛디뎌 첨벙! 캄캄한 하늘에 빠진다. 너 때문이다. (게시기간 : 2004.2.8.~2.14.) 357 마주보는 찻잔 백승우 우리 서로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각자의 빛깔과 향기는 인정하면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아줄 수 있는 꾸밈없는 순수로 서로를 보는 블랙의 낭만도 좋겠지만 우리 딱 두 스푼 정도로 하자 첫 스푼엔 한 사람의 의미를 담아서 두 번째엔 한 사람의 사랑을 담아서 우리 둘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은 슬픔이 모두 녹아져 없어질 때까지 서로에게 숨겨진 외로움을 젓는 소중한 몸짓이고 싶다. 쉽게 잃고 마는 세월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 식어가고 있겠지만 그 때는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 모자람 없는 기쁨일 테니 우리 곁에 놓인 장미꽃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우리를 부러워할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서로를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각자의 빛깔과 향기는 인정하면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아줄 수 있는, 서로에게 숨겨진 외로움을 젓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게시기간 : 2004.2.1.~2.7.) 356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작가미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빛이 나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함께 있음으로 해서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고 그 빛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한번쯤 이별을 통해 성숙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아파 본 사람만이 큰 가슴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성숙 속에서 더 큰 사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번만큼은 꼭 약속을 허물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사랑한다면서 힘없이 돌아서는 많은 엇갈림 속에서 그 소중한 약속만큼 나를 지켜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외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늘 혼자인 것에 익숙해져 힘없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 그 외로움 끝에는 언제나 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하늘이 늦게라도 맺어준 운명같은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지금쯤은 내 앞에 와 있을 그 운명을 믿고 마지막까지 있어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게시기간 : 2004.1.25.~1.31.) 355 이홍섭 일평생 농사만 지으시다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절을 잘하셨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나는 무엇보다 작은할아버지께서 절하시는 모습이 기다려지곤 했는데 그 작은 몸을 다소곳하게 오그리고 온몸에 빈틈없이 정성을 다하는 자세란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이라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만히 그 모습 떠올리며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끝을 모아 보지만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란 자세라 제풀에 꺾여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먼 훗날 내 자식이 또한 영글어 제삿날 내 절하는 모습을 뒤에서 훔쳐볼 때 그 모습 그대로 그리워지길 그리워져서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이라 생각해 주길 내처 기대하며 나는 또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가만히 발끝을 모아 보는 것이다. (게시기간 : 2004.1.18.~1.24.) 354 흔들리는 마음 임길택 공부를 않고 놀기만 한다고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다. 잠을 자려는데 아버지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으니 아버지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미워서 말도 안 할려고 했는데 맘이 자꾸만 흔들렸다. (게시기간 : 2004.1.11.~1.17.) 353 작은 솔씨가 소나무되네 용성스님 계란을 자세히 보시게나. 눈, 귀, 코도 없이 등굴둥굴하여 아무 지각도 없이 보이는데 따뜻한 곳에 두면 '꼬끼오' 하고 우는 물건이 그 속에서 나온다네. 매 알이 비록 작으나 그 속에서 송골매가 나오고 솔씨가 비록 작으나 낙락장송이 거기에서 나온다네. 알로 있을 때 보면 무정한 물건 같으나 이렇듯 당당하게 박차고 나오는 산 물건이 아니던가. 우리의 마음 법(法)도 이와 다르지 않다네. (게시기간 : 2004.1.4.~1.10.) 352 새해의 노래 김규동 새해에는 우리네 가슴에 푸른 강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백두산 지리산에 내리는 함박눈이 온 천지에 펑펑 쏟아져 집과 길을 파묻기도 하고 새와 짐승과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지친 우리 걸음걸이도 새 힘이 솟게 하세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동강난 강토에 새봄이 오니 우리 마음 어찌 무심하랴 남녘에도 북녘에도 통일의 노래 애타게 울려 퍼지니 우리의 바람 하늘에 닿으리 억울한 분단의 세월 너무 길었나니 흩어진 형제들 만나 봐야지 끊어진 다리 잇고 막힌 길 새로 헤쳐 그리운 님들 다시 찾아 봐야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넘어가 보세 하늘과 땅 사이 슬픔과 미련 사이 노여움과 원한 사이 그 모든 어둠과 설움 위에 화해와 해방의 빛 굽이치나니 이 고개 넘으면 좋은 세상 만나 본다네 까치 까치 설날은 우리의 설날 둘 아니고 하나인 해님 산 넘어 물 건너 희망의 새날 맞아 어서 나가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넘어나가세 (게시기간 : 2003.12.28.~2004.1.3.)
3-08.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04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