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02 년
 

 2002년 1월부터 12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게시일 내림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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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청년으로 박재동 내가 만약 청년으로 다시 난다면 이렇게 하고 싶어라 우선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의 허술한 곳을 남기지 않고 운동을 하되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여 튼튼하고 멋진 몸을 가꾸리라 그리고 나의 한 가지 특기를 살려 연마하되 기초를 튼튼히, 튼튼히 하고 결코 교만하지 않으리라 사람관계를 소중히 여겨 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고 늘 친밀한 정분을 나누되 소탈하게 지내고 싶어라 연애를 하게 되면 그의 성장을 돕되 나를 만났으므로 세상이 괜찮았다는 말은 나오게 해야지 (아니, 아니 아주 진하게 해볼까?) 사람들의 아픔을 알며 나와 세상이 나아짐을 기뻐하고 그것을 위해 계획을 세워 봐야지 꽃 한 송이 돌 하나에도 배우고 감사하며 많이 들어 편견에 빠지지 말고 늘 자신을 살펴야 겠네 술은 즐기지 않되 친구와 밤늦도록 토론할 정도는 되어야겠고 음악이 약하니 음악을 많이 들어야지 간단한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게 좋겠지 그리고 부모님 생각도 좀 해야지 그래서 나날이 조금씩 조금씩 충만해가는 나를 느끼며 넘어가는 오늘을 뿌듯한 가슴으로 맞으며 살아봐야지 (게시기간 : 2002.12.29.~2003.1.4.) 299 바람의 노래 김순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게시기간 : 2002.12.22.~12.28.) 298 구두발자국 김영일 하얀 눈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 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 발자국 소복소복 도련님 따라서 새벽길 갔나 길손 드문 산길에 구두 발자국 겨울해 다가도록 혼자 남았네 (게시기간 : 2002.12.15.~12.21.) 297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 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 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아직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게시기간 : 2002.12.8.~12.14.) 296 12월의 기도 목필균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제 얼굴에 책임 질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게시기간 : 2002.12.1.~12.7.) 295 올라가기 황순택 젊었을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사람들은 있는 힘 다해 위로 위로 올라가려 한다. 그러나 올라가면 다시 떨어진다. (게시기간 : 2002.11.24.~11.30.) 294 차마 정을 끊어야 할 때 박렬 우리 헤어지는 연습도 하면서 삽시다 그대가 진실로 나를 위하신다면 차마 내키지 않더라도 단 한 번만 헤어지는 연습을 해 봅시다 인생이란 바람의 손 바람으로 한 세상을 떠돌다 보면 눈물마저 감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대로 저런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말하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제 갈 길이 있기에 때론 엇갈린 인연도 남길 때 있음입니다 진실로 최선을 다해 사람함을 건네보건만 그러나 당신의 따뜻함이 넘치면 넘칠수록 나에게는 고독만이 가득합니다 이걸 어쩌면 좋겠습니까 이제는 헤어지는 연습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복하소서 부디 사랑한 이여 안녕. (게시기간 : 2002.11.17.~11.23.) 293 편지를 쓰겠습니다. 경요 낙엽지는 이 계절 나는 그리운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쓰겠습니다. 나의 가슴속에 담긴 진실을 전할 낙엽지는 이 계절에 편지를 띄울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서재에서 차 한잔을 끓이면서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편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나의 이마와 머리카락을 스칩니다. 아침 뜨락의 청결함을 바라보며 삶을 생각하고 사랑을 꿈꾸었던 아름다웠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진정 그리운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어느덧 한 통의 편지를 다 쓰고 마침표를 찍습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마침표를 말입니다. (게시기간 : 2002.11.10.~11.16.) 292 소방관의 기도 작가미상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전에 어린 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만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인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게시기간 : 2002.11.3.~11.9.) 291 별 하나 이동순 개가 짖고 추수 끝난 들판에서 밤바람은 말을 달립니다 달이 밝습니다 나는 뜨락에 서서 달빛에 젖습니다 초롱초롱한 별 하나가 나를 봅니다 나는 방으로 들어옵니다 들어와서 다시 생각하니 그 별이 그대인 것을 알았습니다 황급히 나가 하늘을 보니 이미 그 별은 사라지고 보이질 않습니다 (게시기간 : 2002.10.27.~ 11.2.) 290 가을이 주는 고독으로도 유인숙 가을이 주는 고독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당신이 살아 계셔서 낮은 자의 영혼으로 노래하게 하심이니 스산한 바람 귓불을 스치고 지나가도 가을 햇살처럼 가슴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때로는 홀로 고독하겠습니다 수없이 입으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조금 아껴두고 가을날의 고요함 속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문 저녁나절 붉게 물든 서산마루에 고독한 가슴 쓸어안고 힘없이 주저앉는 태양처럼 나 일어설 힘이 없어 당신의 손길 간절히 갈구하는 낮은 자의 영혼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이 주는 고독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당신 앞에 고백하고 싶습니다 (게시기간 : 2002.10.20.~ 10.26.) 289 사랑은 끝없는 선택입니다 조성태 그대가 내 앞에 없어도 그대를 선택할 수 있음은 내 생명과 함께 또 하나의 축복입니다. 사랑을 선택한다는 것은 서로를 생명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없이 선택해도 항상 그대입니다. 선택은 있으되 그대가 내 사랑일 뿐입니다. 아니 선택하기 전부터 나에겐 그대밖에 없습니다. 그대는 나의 유일한 선택입니다.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게시기간 : 2002.10.13.~ 10.19.) 288 가을에 정한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끓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내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 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墜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게시기간 : 2002.10.6.~ 10.12.) 287 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게시기간 : 2002. 9. 29.∼ 10. 5.) 286 저 나무는 강문숙 세상 모든 흔들리는 것들로 부터 가을은 오네 마당가의 저나무 흔들림으로 아름답네 한 때는 온갖 새들 둥지를 틀고 그 그늘 아래 크고 작은 풀꽃들 피어있었네 나무는 흔들리면서 생각하네 이 다음엔 더 큰 그늘을 만들어야 할 텐데 괴로움의 시절 닥쳐오기 전에 시린 뿌리를 위하여 잎들을 떨어뜨려 덥어주네 나무잎들은 또 제 몸을 던지며 붉어지네 그것은 사랑이야 꺼지지 않는 목숨이야 바람이 중얼중얼 경전을 외우며 지나가네 흔들리자 세차게 흔들릴 수록 무성한 날들이 오겠지 나무의 기쁨이 하늘을 덮네 세상 모든 흔들리는 것들로 부터 가을은 오네 오래된 저 나무 흔들림으로 더욱 아름답네 (게시기간 : 2002. 9. 22.∼ 9. 28.) 285 할머니 댁 감나무 박명하 할머니 댁 앞 우뚝 선 큰 나무 할머니 시집 올 때 함께 온 그 나무, 할머니를 닮아 인심도 좋다.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가을엔 맛난 감을, 그래도 까치 줄 건 품 속에 꼭 갖고 있다. 할머니도 없고, 그 집도 이젠 없지만 감나무는 아직도 외로이 그 자릴 지킨다. (게시기간 : 2002. 9. 15.∼ 9. 21.) 284 옛날에 관하여 이화은 옛날 옛날 금간 유리창 위에 무궁화 꽃잎을 색종이로 곱게 오려붙였습니다. 비행기나 기차도 나란히 붙였습니다. 유리의 상처에는 언제나 꿈 같은 것들이 씽씽 달리고 꽃이 피고 꽃밭보다 더 예쁜 꽃 향내가 배추 흰 나비로 날았습니다. 깨진 것 금간 것들을 그 때는 아무도 섣불리, 쉽게, 갈아 끼우지 않았습니다. 옛날 옛날엔 사랑하는 사람들 책갈피엔 색색깔깔 참 많은 색종이들이 언제나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게시기간 : 2002. 9. 8.∼ 9. 14.)

 

              283   내게 남은 사랑   박기향

              내게 남은 사랑 주고픈
              외로운 한사람
              만났으면

              이름은 풀피리 같고
              눈매는 저녁놀 같은
              아름다운 한 사람
              만났으면

              해질녁엔
              함께 차를 마시고
              아침이면
              마주보는 얼굴로 잠 깰 수 있는
              한 사람 만났으면 ......

              하루가 저물어 가듯
              내 삶에도
              해는 지는데

              더 어둡기 전에
              이 목숨 주고픈
              외로운 한사람
              만났으면 ......

              (게시기간 : 2002. 9. 1.∼ 9. 7.)



              282   내 품에, 그대 눈물을   이정록

              내 가슴은 편지봉투 같아서
              그대가 훅 불면 하얀 속이 다 보이지

              방을 얻고 도배를 하고
              주인에게 주소를 적어 와서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거야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를 들이는 사이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를 부르면
              봉숭아 씨처럼 달려나가는 거야

              우리가, 같은 주소를 갇고 있구나
              전자레인지 속 빵 봉지처럼
              따뜻하게 부풀어오르는 우리의 사랑

              내 가슴은 포도밭 종이 봉지야
              그대 슬픔마저 알알이 여물 수 있지
              그대 눈물의 향을 마시며 나는 바래어 가도 좋아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그대 그늘에 다가갈 수 있는
              내 사랑은 포도밭 종이 봉지야

              그대의 온몸에, 내 기쁨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을로 갈 거야
              긴 장마를 건너 햇살 눈부신 가을이 될 거야

              (게시기간 : 2002. 8. 25.∼ 8. 31.)



              281   채송화   김윤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면
              나도 꽃을 나즈막히 피우겠습니다.
              꽃판을 달고 향기도 풍기겠습니다.
              이름을 달지 못하는 꽃도 많습니다.
              토담 위라고 불만이 있을 리 없구요
              속셈이 있어 빨강 노랑 분홍의 빛깔
              색색이 내비치는 것은 아닙니다.
              메마르고 시든 일상에서 돌아와 그대
              마음 환히 열린다면 그만이겠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세상 행복합니다.

              (게시기간 : 2002. 8. 18.∼ 8. 24.)



              280   연인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김기연

              사랑하는 그녀와 이별을 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우리,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란 거였다.
              난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 자신도 알 거다
              힘들다는 것을-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이별하고 나서 더 좋은 친구로 남게 될지도
              사랑할 수 없다면 좋은 친구가 되어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행복이 아닐까?

              (게시기간 : 2002. 8. 11.∼ 8. 17.)



              279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한참 갈이 : 한참 갈만한 농토
              구름 : 헛된 명리
              왜 사냐건 : 왜 사느냐 물으면
              -----------------------------
              (게시기간 : 2002. 8. 4.∼ 8. 10.)



              278   봐라, 아이들이 소독차를 따라간다   조용미

              소독차가 왔다
              눅눅한 여름날 저녁
              동네 아이들이 슬리퍼를 끌며 뛰어나간다
              꽁무니에서 하얀 안개를 뭉텅뭉텅
              뿜어내는 흰 차를 쫓아서
              마술피리 소리에 혼이 나가
              저녁 끼니도 잊은 채
              집에서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피리 부는 사람이 몰고 온 수상쩍은 흰 차는
              아이들을 몽땅 다 데리고
              마을을 빠져 나간다
              저녁 밥상에서 아이들의 밥이
              식어가고 있다
              소독차는 아이들의 어린 영혼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데리고
              달아난다
              하하하,
              아이들이 웃으며 기뻐 날뛰며
              따라가는 소독차

              (게시기간 : 2002. 7. 28.∼ 8. 3.)



              277   나비   윤곤강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의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 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게시기간 : 2002. 7. 21.∼ 7. 27.)



              276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게시기간 : 2002. 7. 14.∼ 7. 20.)



              275   무서운 나이   이재무

              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
              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
              내 몸에 번개 꽂혀올까봐
              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
              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
              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쇠붙이 노상 몸에 달고 다녀도
              그까짖 것 이제 두렵지 않다.
              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
              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

              (게시기간 : 2002. 7. 7.∼ 7. 13.)



              274   행복이란?   최영숙

              행복이 무엇이냐고
              걸인에게 물었다
              한 조각의 빵이라고 했다
              강물에게 물었다
              바다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별들에게 물었다
              밤이 다가오는 것이라고 했다
              해바라기에게 물었다
              태양이 떠오를 때라고 했다
              화가에게 물었다
              좋은 작품을 완성했을 때라고 했다
              불면증 환자에게 물었다
              그리움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라고 했다
              시인에게 물었다
              살아있는 시를 썼을 때라고 했다

              (게시기간 : 2002. 6. 30.∼ 7. 6.)



              273   보고 싶은 사람아   이창근

              보고 싶은 사람아
              지금은 볼 수 없다.
              그리움 흥건히 젖어 질척거려도
              떨어져 사는 동안은 볼 수가 없다.
              당신의 눈 빛 그 꽃송이
              편안한 미소로 나를 흔들던
              그 순간 생각하면 향이 베인다
              당신의 체취가 나를 감싼다.
              고즈넉한 밤은 깊어만 가고
              별빛에 전해 오는 아슴한 숨결
              네 목소리 고운 음향
              귀가 밝는다.

              (게시기간 : 2002. 6. 23.∼ 6. 29.)



              272   너에게는 나의 사랑이 필요하다.   윤수천

              너는 내가 생각해주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거야
              나의 그리움이 너를 만들지.
              눈, 코, 입, 너의 마음까지도

              어느 날 너는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숨쉬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너는 한 그루 작은 나무
              나의 그리움으로 자라는
              푸른 식물

              내가 가꾸는 만큼 아름다워지고,
              내가 꿈꾸는 만큼 눈부셔가는
              아름다운 너는
              나의 한 그루 기쁨의 나무
              내 몸 안의 새살

              네 앞에 서면 내 가진 것 다 주고 싶다.
              다 주고도 기쁠 수 있다.

              내가 생각해주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너는 나의 반쪽,
              외로운 너에게는 나의 사랑이 필요하다.

              (게시기간 : 2002. 6. 16.∼ 6. 22.)



              271   내 마음이 그러하므로   김현수

              수많은 날들을
              누군가를 위해 기다려 왔지만
              이젠 누군가가 아닌
              그대를 기다리고 싶다

              드러내면 녹이 슬까
              마음깊이 숨겨온
              나의 순결한 보석도
              이젠 누군가가 아닌
              그대에게 주고 싶다

              내 마음이 그러하므로
              이젠 누군가가 아닌
              그대를 사랑하고 싶다

              (게시기간 : 2002. 6. 9.∼ 6. 15.)



              270   얼마나 좋을까   신진호

              깨끗한 찻잔 부딪치는 투명한 소리처럼
              맑은 소리 내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떨어진 꽃잎 보며 정말 거짓이 아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종달새 울음 같은
              예쁜 울음 울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부셔, 그 눈부신 햇살 받으며
              초라한 껍질 벗고 죽을 수 있는 죽음
              다 죽어가며 그래도 하나 남을 목숨조차
              사랑 보듬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뿐인 세상에서 현실뿐인 사람들이
              비웃으며, 비웃으며 쳐다보는
              또한 현실뿐인 눈동자를 씩씩하게 뿌리치는
              재만 남은 가슴 끌어안고 내가 죽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아름답고 영원한 진실 증거하며
              처마 밑 댓돌 위에 부서지는 은빛 물방울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부서질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게시기간 : 2002. 6. 2.∼ 6. 8.)



              269   아름다운 관계   장용철

              벌은 꽃의 꿀을 따지만
              꽃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꽃을 도와줍니다.

              사람들도 남으로부터
              자기가 필요한 것을 취하면서
              상처를 남기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것만 취하기 급급하여
              남에게 상처를 내면
              그 상처가 썩어
              결국 내가 취할 근원조차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꽃과 벌 같은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엔 삶의 향기가 가득하지 않을까요.

              (게시기간 : 2002. 5. 26.∼ 6. 1.)



              268   산에 살며   이인로

              봄은 갔건만 꽃은 아직 남아있고
              하늘은 개었어도 골짜기는 침침하네
              두견이가 대낮에도 구슬피 우니
              깊은 산에 사는 걸 비로소 깨닫겠네

              (게시기간 : 2002. 5. 19.∼ 5. 25.)



              267   사랑이여, 오늘도 나는 잠들지 못한다   정성수

              사랑이여
              오늘도 나는 잠들지 못한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사랑도 깊어
              사랑이 깊어갈수록 그리움도 깊어
              그리움이 깊어갈수록 슬픔도 깊어
              어제도 나는 잠들지 못하고
              끝내 꿈조차 꾸어보지 못하고
              새벽이 다시 저물 때까지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잠들지 못한다, 나는
              그대가 우리들의 길을 찾아서
              나의 사랑에게로 걸어 올 때까지
              그대의 손이
              그리움에 지친 내 이마를 짚어줄 때까지
              우리들의 그리움이
              한 송이의  꽃으로 벙글 때까지

              (게시기간 : 2002. 5. 12.∼ 5. 18.)



              266   어머니의 손   정대구

              어머니의 손보다
              더 깊고 큰 우주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한 많은 세월 속을 헤쳐 온
              그 인고의 손은
              단 한 권의 영원한 고전(古典)이다
              가난밖에 쥔 것 없이
              뜨거운 사랑만 가득 괸 샘물이다
              온갖 바람을 다스리는 솜씨로
              밖에서 묻혀 온 우리들의 허물을
              남몰래 밤새워 씻어주신 손
              엄마 손은 약손이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
              어릴 적 아픔 모조리 지워 주신 손
              바늘귀를 꿰시며 문득
              내다보신 어머니의 나라엔 또
              천 년 시름이 강물인 듯 흐르고
              날 개 접힌 한 마리 새가
              안쓰럽게 떨고 있으니
              받은 것 하나 없이
              평생을 주고도 서운한 손이
              새삼 무엇을 바라시던가
              눈물과 인종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손을 보고 있으면
              작은 아픔조차 가릴 수 없는
              내 손이 마냥 부끄러울 뿐
              어머니의 손보다
              더 맑고 솔직한 고전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게시기간 : 2002. 5. 5.∼ 5. 11.)


 

              265   노래   이외수

              좁쌀 한 줌으로 허기진
              새를 유인해서
              그 날개를 새장 속에
              죽는 날까지 가둘 수는 있어도
              그 누가
              머나 먼 세월의 강물 건너
              날아온 영혼
              그 노래까지를
              가둘 수가 있으랴
              울어라 새여
              고개 들면 무한창공 저리도
              푸르른 날에

              (게시기간 : 2002. 4. 28.∼  5. 4.)



              264   내 동생   주동민

              내 동생은 2학년
              구구단을 못 외워서
              내가 2학년 교실에 불려갔다.
              2학년 아이들이 보는데
              내 동생 선생님이
              "야, 니 동생 구구단 좀 외우게 해라."
              나는 쥐구멍에 들어갈 듯
              고개를 숙였다.
              2학년 교실을 나와
              동생에게
              "야, 너 집에 가서 모르는 거 있으면 좀 물어봐."
              동생은 한숨을 푸우 쉬고
              교실에 들어갔다.
              집에 가니 밖에서
              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놀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밥 먹고 자길래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나는 구구단이 밉다.

              (게시기간 : 2002. 4. 21.∼  4. 27.)



              263   내 마음으로 들어 오라   권기창

              어느덧 높이 쌓여 있는
              마음의 담을
              낮추고 싶습니다.

              한 칸 한 칸 내리어
              당신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늘 담 밑에 머물러
              기다리다 애타며
              돌아서는 당신에게

              제 마음의 담을 내려
              길을 내고
              꽃을 심겠습니다.

              당신이 첫발을
              들여놓을 때
              사랑을 노래하겠습니다.

              (게시기간 : 2002. 4. 14.∼  4. 20.)



              262   기다렸던 사랑이 오지 않을 땐   황청원

              피었던 꽃들이 지기 전에 더 빛나듯
              사랑은 기다릴수록 더 깊어지는 것을
              기다리다 지쳐 본 사람은 알리라.

              기다림의 강이 너무 넓어져
              저어도 저어도 닿지 않는 저편 강 언덕
              나룻배는 나를 싣고 강심에 박혔구나.

              물새들만 먼저 강을 건너가고
              흐르는 물 속에 얼굴 하나 비춰도
              어디를 헤매는지 오지 않는 사람아.

              기다렸던 사랑이 오지 않을 땐
              기다렸던 시간마저 버려야 하는데
              막상 버려야 할 마음 숨어 버리고
              오지 않는 사람의 음성만 성성하여라

              (게시기간 : 2002. 4. 7.∼  4. 13.)



              261   작은 연가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게시기간 : 2002. 3. 31.∼  4. 6.)



              260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미상

              눈을 지긋이 감으면
              언제나 내 기억 속 가장 먼저
              당신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결에 번호를 눌러대도
              당신이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올 때면
              내리는 곳에는 항상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기다가도
              우연히 머무는 곳이
              당신 집 앞이면 좋겠습니다.

              내용 없이 편지를 써내려 가다가도
              거기 적혀지는 이름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햇살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날
              창문을 열고 기다리면
              당신이 저 멀리 손짓해 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건네주는 메모지에
              남겨진 전화 메모가
              늘 당신의 것이면 좋겠습니다.

              까페 한쪽 모퉁이에 앉았을 때
              나를 호출해 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잠을 뒤척이다가도
              잠결에 불러보는 이름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게시기간 : 2002. 3. 24.∼  3. 30.)



              259      서동주

              산에는 알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

              나무가 알지 못하게
              자라고 있고,

              흙도 알지 못하게
              숨쉬고 있다.

              그리고 산은
              알지 못하게
              우리를 품고 있다.

              (게시기간 : 2002. 3. 17.∼  3. 23.)



              258   사랑   이현주

              우리가 내어줄 것을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 보다는
              우리가 얼마만큼
              자신을 비우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비워야만
              가득히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사랑은
              물과 같이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하며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하고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습니다.

              사랑은
              항상
              두려움을 몰아내고
              누군가의 문으로
              열린다는 것을
              오늘도 새롭게
              당신께 배웁니다.

              (게시기간 : 2002. 3. 10.∼  3. 16.)



              257   시래기 인생   김경윤

              시래깃국이 식탁에 오른 날이면 입맛이 돈다
              처마 밑 응달진 모퉁이 얼기설기 새끼줄에 매달린
              누렇게 마른 시래기 한 줄 뜯어 와서
              마른 멸치 한 줌 집어넣고
              푹 삶아 끓인 시래깃국
              술 취한 날 아침이면 속까지 개운하다

              푸른 시절에는 잎도 주고 뿌리도 주고
              이제 마른 몸뚱이까지 이렇게 주고 가는
              시래기 인생이라니!
              나도 누군가를 위해
              시래기처럼만 살 수 있다면

              (게시기간 : 2002. 3. 3.∼  3. 9.)



              256   우리 이렇게 사랑합시다   유진하

              꾸미려 하지 맙시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다가섰을 때
              뒤로 물러서는 이별을 본다 할지라도
              겉모습으로 가꾼 사랑에 의해
              시작된 연인의 믿음은
              세월 지나면 주름지고 맙니다

              숨기려 하지 맙시다
              사랑은 감추려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젠가 가면이 벗겨질 날의 두려움 속에
              영원의 약속은 깨지고 맙니다

              우리 이렇게 사랑합시다
              서로 많은 것이 부족해도 솔직해집시다
              거짓은 결코 영원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모습 부족해도
              진실로써 서로의 단점을 감싸 줍시다
              우리 꼭 이렇게 사랑합시다

              (게시기간 : 2002. 2. 24.∼  3. 2.)



              255   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   손종일

              어떤 때는
              그나마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는 자유가
              제게 있다는 데 대해
              감사하고 싶습니다
              하루 중에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제가
              숨쉬고 있는 동안밖에는 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당신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면
              하루 종일 숨을 멈추고
              당신만을 그리워하면
              그리운 당신께선
              제 앞에 우뚝 서실까요?

              (게시기간 : 2002. 2. 17.∼  2. 23.)



              254   1kg의 차이   윤호준

              열 다섯 살에 헤어져 모진 타향에서 살다가
              어머니의 땅으로 가면 어머니는 늘 내 볼을 만지시면서
              ‘어이구, 빼싹 말랐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대하고,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술과 담배와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내 몸무게는 59kg에서 67kg이 되었다.
              여전히 도착하기 전에 가슴 설레는 고향,
              당당히 어머니 앞에 서서 뭐라 말씀하실까 기대했다.
              여전히‘어이구, 빼싹 말랐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어느새 내가 68kg이 되었을 때,
              큰 기대나 걱정 없이 어머니를 뵈러 갔다.
              그때,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우리 막내가 살이 많이 쪘네.
                운동 좀 혀야 되겄다.’라고 말씀하셨다.

              단지, 1kg의 차이였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은
              한낱 몸무게 1kg의 차이가 아니었다.
              어떤 상태, 어떤 상황이든 어머니는 나를 걱정하실 것이다.

              이제 알겠다.
              1kg의 차이에 대한 어머니의 걱정,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게시기간 : 2002. 2. 10.∼  2. 16.)



              253   유언   서정홍

              아들아
              여태껏 내 삶에 지쳐
              아픈 이웃들 돌볼 새 없이 살았으니
              남기고 떠날 이름 석 자조차 부끄럽구나

              내 마지막 그날에
              병들고 시든 몸뚱어리
              무어 쓸모가 있으랴마는
              간이든 콩팥이든 눈이든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주고 떠나련다

              모두 주고 더 줄 것이 없으면
              고된 삶에 허우적거리다가 병든
              마음 좋은 사람들의 새 삶을 위해
              의학 실험용으로 쓰게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되거들랑

              불에 살라
              내 어릴 때 뛰어 놀던 뒷동산에
              재라도 뿌려주려무나
              살아서 베풀지 못한 내 사랑은
              죽어서나 이루어질까

              세상 슬픈 일들이야
              곧 잊고 살더라도
              이 못난 아비 부탁만은 잊지 말아다오

              (게시기간 : 2002. 2. 3.∼  2. 9.)



              252   그리운 별 하나   박창기

              가슴에서 나온
              그리운 저 별이
              오늘따라 밝다

              호수 위에 떠서
              그리움 하나 묻어 놓고
              밤새도록 사랑을 속삭이고

              바라보는 눈 속에
              열망으로 들어와서는
              또 다른 그리움만 낳고

              저 홀로 그리워하다
              모닥불만 지펴 놓고
              그리움에 지쳐 저 홀로 잠들고

              (게시기간 : 2002. 1. 27.∼  2. 2.)



              251   바다야 바다야 내가 왔어   고광자

              가 보자
              내 뛰놀던 축항
              자연의 생태변화
              때론 철석이던 파도에
              몸을 맡기던
              애월 중엄바다 돌바위는
              볼수록 싱그럽고 아름답구나

              이곳이 그리워
              꿈 속에도 만났거늘
              어찌 너를 잊을 수가 있으랴
              어찌 너의 내음이
              그립지 않을 수가 있었으랴
              살아 꿈틀리던 너!
              바다야 바다야 내가 왔어

              부지런한 강태공이
              푸른 바다에 눈 맞추며
              끈기어린 애정을 보내니
              갈매기도 옆에 앉아
              낚시대를 거들고 있다

              이 이른 새벽
              유유히 떠 오른 고깃배가
              수평선을 넘어오는 평화로움을
              서울에서 온 눈동자에 가득 담고 있다

              바다야 바다야 내가 왔어.

              (게시기간 : 2002. 1. 20.∼  1. 26.)



              250   아침 이미지   박남수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갓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게시기간 : 2002. 1. 13.∼  1. 19.)



              249   주전자가 끓는 겨울   남혜란

              유리창 한 장 가득 겨울이 찍혀 있다.
              흰눈이 내리는 것으로 한결 으늑하다.

              엄마는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뜨개질을 하시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주전자가 끓고 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수증기를 뿜으면서
              먼 동화의 나라로 꿈결처럼 떠나간다.

              나도 그 기차에 훌쩍 올라타고
              눈 내리는 벌판을 한없이 달려간다.

              기차는 가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떠나가고
              엄마의 뜨개질은 차츰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춥고 먼 곳에 나가도
              겨울 바람 한 점 들어올 수 없는
              그런 옷이 되어간다.

              (게시기간 : 2002. 1. 6.∼  1. 12.)



              248   첫 마음   천수녀

              새해 첫 날
              이른 아침 세수를 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학교에 입학을 하고 빳빳한 새 책장을 넘기며
              일과표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하얀 병실에 누워 입원해 있다가
              퇴원하던 날의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돌본다면

              사랑하는 연인 처음 만날 때
              콩닥거리던 가슴의 불길
              꺼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높이와 깊이
              넓이와 크기의 각 그릇을
              씻고 닦는 항상 첫 마음을 잃지 않으리

              (게시기간 : 2001.12.30.~2002.1.5.)

3-06.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02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