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00 년
 

 2000년 1월부터 12 월까지 화장실에서 읽는 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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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그렇게 지나가 버렸네 박상천 구두 한 켤레를 바꾸는 사이에 일년이 지나가 버렸네 이발소에 열 번쯤 다녀오는 사이에 일년이 지나가 버렸네 손톱을 오십 번쯤 깍는 사이에 일년이 지나가 버렸네 담배를 칠백 갑쯤 피우는 사이에 일년이 지나가 버렸네 자동차를 몰고 이만삼천 킬로쯤 달려오고 나니 일년이 지나가 버렸네 그렇게 지나가 버렸네 일 년은 한 켤레의 구두처럼 헐어 버린 시간 몇 센티쯤의 머리카락으로 잘려 나간 시간 몇 그램쯤의 손톱으로 깎여 버린 시간 몇 모금의 연기로 흩어져 버린 시간 타이어 몇 미리 정도가 닳듯 닳듯 버린 시간들 헐고, 잘리고, 깎이고, 흩어지고, 닳으며 일 년은 그렇게 너덜너덜 지나가 버렸네 이제 나는 몇 켤레의 구두를 바꿀 수 있을까. (게시기간 : 2000.12.24.∼12.30.) 195 시계 한승원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너는 발 빠른 분침으로 나는 발 느린 시침으로 한 시간마다 뜨겁게 만나자 순간을 사랑하는 숨결로 영원을 직조해 내는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먼지알 같은 들꽃들의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우리 그리고 한 천년의 강물이 흘러간 뒤에 열두 점 머리 한 가운데서 너와 나 얼싸안고 숨을 멈추어버린 그 시계 다음 생에는 우리 이 세상 한복판에서 너의 영원을 함께 부둥켜 안은 미이라가 되자 박새들의 아프고 슬픈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게시기간 : 2000.12.17.∼12.23.) 194 참된 친구 신달자 나의 노트에 너의 이름을 쓴다.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이건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내가 지은 이름만은 아니다. 너를 처음 볼 때 이 이름의 주인이 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손수건 하나를 사도 '나의 것'이라 하지 않고 '우리의 것'이라 말하며 산다. 세상에 좋은 일만 있으라 너의 활짝 핀 웃음을 보게 세상엔 아름다운 일만 있으라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울고 싶은 일이 일어나도 마음처럼 말을 못하는 바보 마음을 알아주는 참된 친구 있으니 내 옆은 이제 허전하지 않으리 너의 깨끗한 손을 다오 너의 손에도 참된 친구라고 쓰고 싶다. 그리고 나도 참된 친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아름다운 만남을 기다리며 (게시기간 : 2000.12.10.∼12.16.) 193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최송 기다릴 줄 아는 자는 행복하다 무언가 꿈이 있고 희망이 있을 테니까 죽음을 기다리는 자도 행복하다 심장이 멎고 의식이 없어질 때 모든 고통이 사라질 테니까 바뀌는 계절을 기다리는 자도 행복하다 계절이 열리는 소리 들을 수 있고 우주의 다양한 모습 볼 수 있을 테니까 봄이 오면 예쁜 꽃들 피어 즐겁고 여름이 오면 파아란 잎파리들의 속삭임 정답고 가을이 오면 불붙은 단풍산이며 시름없이 져 가는 가랑잎들의 비운 마음. 겨울이 오면 백색의 쿠데타로 은빛 신세계를 볼 수 있으니 기다릴 줄 아는 자는 행복하다 (게시기간 : 2000.12.3.∼12.9.) 192 행복합니다 김형영 행복합니다 마지막 돌아갈 곳이 어딘지 분명히 알고 사는 사람 행복합니다 돌아갈 곳이 어딘지 알아 그 길을 닦으며 사는 사람 행복합니다 먼 여정에도 가지고 갈 것이라고는 남에게 베푼 것뿐인 사람 가지고 갈 것이 하나도 없어 살아온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사람 당신은 행복합니다 살아서는 조롱과 부끄러움에 비틀거리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나니 (게시기간 : 2000.11.26.∼12.2.) 191 사랑굿 1 김초혜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를 묶을 줄 압니다. (게시기간 : 2000.11.19.∼11.25.) 190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백유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밤을 하얗게 태워 가며 그리움에 절룩이는 어둠을 저만치 밝혀 낸 마음 가득 채워도 모자란 사랑이 같은 하늘 아래 있습니다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얄밉도록 그리운 사람이 나와 함께 숨을 쉬고 나와 함께 하늘을 올려다 보며 나와 같은 생각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엮어 가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슬픔에 눈물 흘릴 때 손수건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작은 기쁨 하나에도 웃음소리 들려 줄 때 나보다 더한 기쁨으로 껄껄 웃어 주는 사람.... 이처럼 을씨년스런 바람이 일 때엔 그 사람의 따스한 손길이 그리워 가슴이 저려옴을 느낍니다 그리워 목이 메이는 날에 저린 가슴을 움켜쥐고 그 사람의 추억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내게 들려 준 음악을 들으며...... (게시기간 : 2000.11.12.∼11.18.) 189 하늘같은 사랑 작가미상 나는 그대에게 하늘같은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그대가 힘들 때마다 맘놓고 나를 찾아와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그대를 지켜주는 그대가 씩씩하게 살아가다가 혹시라도 그러면 안되겠지만 정말 어쩌다가 혹시라도 힘이 들고 지칠 때가 있다면 그럴 때 내가 이렇게 높은 곳에서 그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개를 떨굼 대신 나를 보아달라고 그렇게 나는 한자리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나는 그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하늘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언젠가 내게로 고개를 돌려주는 그날에 나는 그제서야 환한 미소로 그대를 반겨줄 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대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 그러나 나는 마음을 열지 않는 그대에게 지금 나를 보아달라고 내가 지금 그대 곁에 있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그대의 행복을 바라며 단지 하늘같은 사랑으로 그대를 기다리는 까닭입니다. (게시기간 : 2000.11.5.∼11.11.) 188 잊자 장석주 그대 아직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대 아직 누군가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면 그대 인생이 꼭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 그대 아직 누군가 잊지 못해 부치지 못한 편지 위에 눈물 떨구고 있다면 그대 인생엔 여전히 희망이 있다 이제 먼저 해야 할 일은 잊는 것이다 그리워하는 그 이름을 미워하는 그 얼굴을 잊지 못하는 그 사람을 모두 잊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다 잊음으로써 그대를 그리움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잊음으로써 악연의 매듭을 끊고 잊음으로써 그대의 사랑을 완성해야 한다 그 다음엔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게시기간 : 2000.10.29.∼11.4.) 187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 노혜경 공원길을 함께 걸었어요 나뭇잎의 색깔이 점점 엷어지면서 햇살이 우릴 쫓아왔죠 눈이 부시어 마주 보았죠 이야기했죠 그대 눈 속의 이파리는 현실보다 환하다고 그댈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세상 모든 만물이 나 대신 이야기하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길은 끝나가고 문을 닫을 시간이 왔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게시기간 : 2000.10.22.∼10.28.) 186 친구에게 장성필 나의 친구여 우리 친구라는 이름만으로 서로를 사랑 할 수 없는지 친구이상의 우리가 될 수 없는지 서로의 모든 것을 서로에게 줄 수는 없는지 서로의 슬픔과 서로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데 나의 친구여 이 순간부터 내가 그댈 애인이라 부르고 싶은데 내 마음을 받아 줄 수는 없는지 나의 친구아닌 사랑이여. (게시기간 : 2000.10.15.∼10.21.)

 

              185   포구로 가는 물   위재량

              물은, 포구로 가는 물은
              누가 꼭 강요하지 않아도
              높은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늘 몸을 낮추고 산과 들을 지나
              마른 갈대 허리를 적시기도 하고
              가끔은 인간들의 오만스러움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흐를 때도 있다.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저자거리
              시궁창처럼 더럽혀진 다리 밑을
              싫은 기색도 없이 곱돌아 흐르고
              때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해도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법이 없다.

              짧던 길던 침묵하는 겸손을 안다
              설사 원군이 오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코 비굴한 굴복이나 아부가 아닌
              더욱 낮게 몸을 낮추어
              끝내 포구로 가는 길을 열어 놓는다.

              (게시기간 : 2000.10.8.∼10.14.)



              184   하늘 (삶이 힘듬을 느끼는 친구에게)   이동식

              친구야
              길을 가다 지치면
              하늘을 보아.
              하늘은 바라보라고 있는거야
              사는 일은 무엇보다 힘든 일이니까
              살다보면 지치기도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그렇더라도
              체념해 고개를 떨구지 말라고
              희망마저 포기해 웃음마저 잃지 말라고
              하늘은 저리 높은 곳에 있는 거야
              정녕, 주저 앉고 싶을 정도의
              절망의 무게가
              몸과 마음을 짓눌러 와도
              용기를 잃지 말고 살라고
              신념을 잃지 말고 살라고
              하늘은 저리 높은 곳에서
              우릴 내려다 보고 있는 거야

              친구야
              어느 때이고
              삶이 힘듬을 느끼는 날엔
              하늘을 보아
              그리곤 씨익하고 한번 웃어 보려므나.

              (게시기간 : 2000.10.1.∼10.7.)



              183   가을   백남석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 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 입고서
              남쪽 나라 찾아 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노라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 오니
              밭에 익은 곡식들은 금빛 같도다.
              추운 겨울 지날 적에 우리 먹이려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의 양식

              (게시기간 : 2000.9.24.∼9.30.)



              182   사랑할 때, 너무나 사랑할 때   김현

              사랑할 때,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할 때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먼저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옆자리에는
              조심스럽게 이별의 자리도 마련해둡니다.

              너무나 사랑할 때는 ...

              사랑하는 것,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하지만 그 아픔의 언저리에는
              아무도 모르게 번져 오르는 행복이 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

              (게시기간 : 2000.9.17.∼9.23.)



              181   가을의 노래   이득현

              골목길 돌아가다 보면
              대추의 붉은 볼에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네

              골목길 돌아가다 보면
              가을  풀벌레 노래 소리에
              놀란 감 홍시가
              터질 듯이 매달려 있었네

              골목길 돌아가다 보면
              벙글어 가는 밤송이를 보며
              알밤 같은 영근 사랑 이루고 싶네

              별에서도 가을이 흐르듯이
              가을 바람 성성 불어
              오늘처럼
              노오란 은행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면

              가을 바람 속에 선
              갈 곳 없는 내 마음도
              튼실한 가을의 열매처럼
              영글고 싶네.

              (게시기간 : 2000.9.10.∼9.16.)



              180   나무는   김기영

              시작할 줄 알고
              공짜로 받지 않고
              약속을 지킬 줄 안다

              동토에서
              찬바람과 혈투를 벌이면서
              연하디연한 꽃을 피운다

              만신창이 육신을 훌훌 털고
              속 좁은 텃새에게
              품을 열어주고
              봉정만리 오가는 후조에게도
              쉼터를 준다

              무너져 내리는 토양을 부여잡고
              목마름을 달래며
              탐스런 열매를 키우고

              때마다 고스란히 떠나 보내고도
              서러워하지 않는다

              찬란하길 원하지 않고
              고마움을 베풀 줄 아는 넌
              참으로 사람보다 낫다.

              (게시기간 : 2000.9.3.∼9.9.)



              179   사랑에게   김석규

              바람으로 지나가는 사랑을 보았네
              언덕의 미루나무 잎이 온 몸으로 흔들릴 때
              사랑이여 그런 바람이었으면 하네
              붙들려고 가까이서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만 떠돌려 하네
              젖은 사랑의 잔잔한 물결
              마음 바닥까지 다 퍼내어 비우기도 하고
              스치는 작은 풀꽃 하나 흔들리게도 하면서
              사랑이여 흔적없는 바람이었으면 하네

              (게시기간 : 2000.8.27.∼9.2.)



              178   서른 해   구광본

              처음부터 그대를 알아본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대를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물 빠진 뻘밭에서 갯흙을 일으키며 헤매던 지난
              여름 무언가가 기어간 흔적에 한나절 따라가다
              가뭇없어 눈 들자 바다 너머
              하늘에 가 닿아 있던 온몸으로
              긴 흔적, 그 한 평생의 궤적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대여, 더 멀리 떠나가세요
              아득할수록 깊게 꽃 핍니다
              서른 해 이끌고 온 지친 몸 남루한 밤낮
              그대를 다시 찾아갑니다
              한 눈에 알아보았다는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한 눈에 사랑하였다는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게시기간 : 2000.8.20.∼8.26.)



              177   호수   문병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
              무수한 눈길의 번뜩임 사이에서
              더욱 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 버린 다음
              비로소 만나야 할 사람
              비로소 사랑해야 할 사람
              이 긴 기다림은 무엇인가

              바람같은 목마름을 안고
              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
              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
              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여
              이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여

              (게시기간 : 2000.8.13.∼8.19.)



              176   사랑은 바다로 흘러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박남철

              사랑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을 해보았습니다
              사랑이 깊어졌습니다
              사랑이 더 깊어졌습니다
              사랑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사랑이 그만 미움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미워졌습니다
              사랑이 더 미워졌습니다
              사랑이 더욱 미워졌습니다
              에라 사랑을 찢어 버렸습니다
              사랑은 찌지적 소리를 내며 찢어져 버렸습니다

              사랑이 흘렸습니다

              사랑이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더욱 그리워졌습니다
              사랑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만

              사랑은 바다로 흘러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게시기간 : 2000.8.6.∼8.12.)



              175   호박꽃 예찬   안혜초

              호박의 생애는 그야말로
              베풀기 위해 존재한다

              잎은 잎대로 꽃은 꽃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씨앗은 씨앗대로

              갓 태어난 애호박에서
              탐스러운 어른 호박
              꼬부라진 늙은 호박
              볼품없는 돼지 호박

              잉잉잉 벌 나비 떼
              예저기서 몰려들어도
              기꺼운 듯 기꺼운 듯
              함박꽃 꿀송이 웃음!

              사랑은 주는 거라고
              아낌없이 주는 거라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호박찌게 호박잎쌈
              오손도손 정겨로이
              그 말씀이 들려 오네

              하늘나라 그 말씀이
              향그러이 피어나네

              (게시기간 : 2000.7.30.∼8.5.)



              174   물결   노자영

              물결이 바위에
              부딪치면은
              새하얀 구슬이
              떠오릅디다.

              이 맘이 고민에
              부딪치면은
              시커먼 눈물만
              솟아납디다.

              물결의 구슬은
              해를 타고서
              무지개 나라에
              흘러 가지요……

              그러나 이 마음의 눈물은
              해도 없어서
              설거푼 가슴만
              썩이는구려.

              (게시기간 : 2000.7.23.∼7.29.)



              173   웃음꽃   엄기원

              소나기 내린 뒤의 파란 들판에
              동그란 구름 다리 오색 무지개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두가 즐거워요 아름다워요

              강둑에 풀을 뜯는 염소 오누이
              강물에 잠겨 있는 산마을 풍경
              밝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두가 노래지요 웃음꽃이죠

              (게시기간 : 2000.7.16.∼7.22.)



              172   나이 서른에 우린   백창우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리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에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우리들의 노래와 우리들의 숨결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저 거친 들녁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에 우린 기억할 수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우리들의 만남과 우리들의 약속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를
              나이 서른에 우린 들을 수 있을까

              (게시기간 : 2000.7.9.∼7.15.)



              171   사랑은 큰일이 아닐 겁니다   박철

              사랑은 큰일이 아닐 겁니다
              사랑은 작은 일입니다
              7월의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한낮의 더위를 피해 바람을 불어 주는 일
              자동차 클랙슨 소리에 잠을 깬 이에게
              맑은 물 한 잔 건네는 일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손등을 한 번 만져 보는 일

              여름이 되어도 우리는
              지난 봄, 여름, 가을, 겨울,
              작은 일에 가슴 조여 기뻐했듯이
              작은 사랑을 나눕니다
              큰 사랑은 모릅니다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라는
              지구에서 큰 사랑은
              필요치 않습니다
              해 지는 저녁 들판을 걸으며
              어깨에 어깨를 걸어 보면
              그게 저 바다에 흘러 넘치는
              수평선이 됩니다

              7월의 이 여름날
              우리들의 사랑은
              그렇게 작고, 끝없는
              잊혀지지 않는 힘입니다

              (게시기간 : 2000.7.2.∼7.8.)



              170   어디로   박용철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쉬임없이 궂은 비는 내려오고
              지나간 날 괴로움의 쓰린 기억
              내게 어둔 구름되어 덮이는데.

              바라지 않으리라던 새론 희망
              생각지 않으리라던 그대 생각
              번개같이 어둠을 깨친다마는
              그대는 닿을 길 없이 높은데 계시오니

              아-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게시기간 : 2000.6.25.∼7.1.)



              169   만남   정채봉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당신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게시기간 : 2000.6.18.∼6.24.)



              168   은혜   정형택

              산다는 것은
              은혜를 갚는 일입니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일이고요

              베풀고 갚고
              갚고 베푸는
              우리들의 일상은 행복입니다

              나무들 가지가지 은혜로운 쉼터
              온몸으로 목청껏 노래하는 새

              그래서 숲속은 항상
              은혜의 나라입니다

              은혜는 항상 숲속이고요.

              (게시기간 : 2000.6.11.∼6.17.)



              167   장미 (薔薇)   송욱

              장미(薔薇)밭이다.
              붉은 꽃잎 바로 옆에
              푸른 잎이 우거져
              가시도 햇살 받고
              서슬이 푸르렀다.

              벌거숭이 그대로
              춤을 추리라.
              눈물에 씻기운
              발을 뻗고서
              붉은 해가 지도록
              춤을 추리라.

              장미(薔薇)밭이다.
              핏방울 지면
              꽃잎이 먹고
              푸른 잎을 두르고
              기진하며는
              가시마다 살이 묻은
              꽃이 피리라.

              (게시기간 : 2000.6.4.∼6.10.)



              166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게시기간 : 2000.5.28.∼6.3.)



              165   봄은 간다   김억

              밤이로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게시기간 : 2000.5.21.∼5.27.)



              164   그런 날이 있었지   신효정

              그런 날이 있었지
              눈물나게 그대 바라만 보고
              차마 꺽지 못할
              시린 꽃이던
              두고 갈 수 없어서
              지키고 서서
              그대 그림자나 되고 싶었던
              그런 날이 있었지
              내 그리움 선 채로 산이되어
              그대 꿈이나마 한 자락 보듬어
              한 생이든 반 생이든 지내고 싶던
              가슴 저리게 외로운 날들
              그대가 눈부신 꽃이던 날들

              그런 날이 있었지

              (게시기간 : 2000.5.14.∼5.20.)



              163   나의 자식들에게   김광규

              위험한 곳에는 아예 가지 말고
              의심받을 짓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대로 집에만 있으면
              양지바른 툇마루의 고양이처럼
              나는 언제나 귀여운 자식이었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인생이 힘들 것 무엇이랴 싶었지만
              그렇게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양이 부족한 탓일까
              태풍이 부는 날은 집안에 들어앉아
              때묻은 책을 골라내고 옛날 일기장을 불태우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자꾸 찢어버린다
              이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이 짓을 못하게 되어도
              누군가 나를 기억할까
              어쩌면 그러기 전에 낯선 전화가 울려 올지도 모른다
              지진이 일어나는 날은 집에만 있는 것도 위험하고
              아무 짓을 안 해도 의심받는다
              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평온하게 살지 마라 무슨 짓인가 해라
              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 무엇인가 남겨라

              (게시기간 : 2000.5.7.∼5.13.)



              162   어린 시절   피천득

              구름을 안으러 하늘 높이 날으던 시절
              날개를 적시러 푸른 물결 때리던 시절
              고운 동무 찾아서 이산 저산 넘나던 시절
              눈 나리는 싸릿가지에 밤새워 노래 부르던 시절
              안타까운 어린 시절은 아무와도 바꾸지 아니하리

              (게시기간 : 2000.4.30.∼5.6.)



              161   꽃잎 절구(絶句)   신석초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 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냘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에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져 가노니

              저문 산 길가에 져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

              (게시기간 : 2000.4.23.∼4.29.)



              160   봄밤   이소영

              밤 깊고 어두워라
              이제 그만 잠을 청하자
              지금은 밤의 정령들이 발소리도 죽이고 돌아다니는 시간
              오늘 밤 한 편의 시를 쓰고
              소쩍새 첫 울음까지 덤으로 들었으니
              흐르는 이 봄 밤
              무엇을 더 바라랴
              아름다운 희망과 쓸쓸한 절망 사이
              살구꽃 하얗게 지는 소리
              돌 하나
              풀 한 포기
              베어진 나무등걸도
              숨 죽여 귀 기울이는 밤
              자 떠나자
              그대도 함께 밤 새워 가자
              가다가 꽃을 만나면 꽃잎에 머물고
              냇물을 만나면 돌돌돌 섞여 흐르자
              보드라운 햇살이
              수런수런 봄 강을 흔드는
              아침이 올 때까지.

              (게시기간 : 2000.4.16.∼4.22.)



              159   소문   박종해

              바람이
              라일락 향기를 풀어 내고 있다.
              측백나무는 큰 나무답게 큰 팔을
              우람하게 흔들어대고
              주목나무는 주목나무답게 작은 팔을
              수줍은 듯이 흔든다
              그 사이
              철쭉이 붉은 입술을 열어
              벌과 나비를 불러모으고
              목련이 흰 도포를 갈아입는다

              나무가 나무에게
              꽃이 꽃에게 하는 말을
              벌과 나비들이
              산지사방 퍼뜨리고 있다

              (게시기간 : 2000.4.9.∼4.15.)



              158   꽃씨를 묻으며   허형만

              꽃씨를 묻을 때
              싱싱한 한 줄기 내일을 기다림은
              꽃씨를 묻어 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고관대작이래도
              이토록 떨리는 손놀림을 모른다.
              작고 단단한 꽃씨,
              꽃씨를 묻으며
              햇살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고
              빗줄기도 기다리는 가냘픈 소망,
              가을 하늘보다 맑은 마음으로
              흙에 묻혀 흙이 되지 않기를 비는
              깊은 기다림의 기도를
              꽃씨를 묻어 본 사람만이 안다.
              어둠 속에 묻혔던
              빛살의 터지는 소리,
              아픔 속에 갇혔던
              뜨거운 눈물 솟구치는 소리,
              아, 싱싱한 한 줄기 꽃바람 소리,
              진정 꽃씨를 묻어 본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
              환히 들을 수 있다.

              (게시기간 : 2000.4.2.∼4.8.)



              157   쑥을 뜯으며   박수진

              우리가 아직 겨울 속에 있을 때
              돌보지 않는 개똥무덤이나
              억센 잔디 뿌리 사이에서
              등 기대며 숨 죽인 채
              실 눈 뜨고 기다렸다가
              힘차게도 쑥- 내밀었구나
              가난한 시절 한 때는
              그리도 맛나던 쑥덕 씹으며
              쑥덕공론에 보릿고개 하세월
              보내기도 했다마는 ……
              아이야, 두 눈 크게 뜨고
              온 산천에 다시 돋는 쑥을 보아라
              한 줌 햇살도 가벼이 보지 않고
              긴 겨울 견디던 지난날의 자화상
              토담집 굴뚝에 묻어나던
              향내 짙은 쑥내음 맡아 보아라
              그걸 먹으며 우리네 조상
              수천 년 꿋꿋이 버텨 왔음을
              나 또한 새로 안단다
              쑥을 뜯으며.

              (게시기간 : 2000.3.26.∼4.1.)



              156   오늘은 다르게   박노해

              그렇게 사무치게 언 산내들 헤메이다
              돌아온 처마 밑에 꽃은 이미 피었더냐

              그렇게 거친 싸움터를 뚫고 나와
              겨우 살아 돌아 온 자리가 첫 마음인가
              겨우 찾아든 것이 사람만이 희망인가

              눈물이 붉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어제 그대로인데
              오늘은 그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

              꽃도 같은 꽃이 아니다
              사람도 같은 사람이 아니다
              세계의 끝간데까지 한 바퀴 돌아 온 자리

              무너질 것 무너지고 깨어질 것 다 깨어져
              처음부터 허허로이 일어서는 사람

              다시 처음이다

              오늘 또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다르게 시작하겠습니다

              어제 함께 했던 사람들은
              오늘은 새롭게 대하고
              어제 했던 그 일을
              오늘은 다르게 하겠습니다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납니다

              (게시기간 : 2000.3.19.∼3.25.)



              155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   홍영철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
              지금은 지워진, 아니 희미해진
              마음의 꽃밭 하나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
              결코 스스로 열리지 않는 낡은 창문 너머
              내가 말하면
              바다가 되었다가 강물이 되었다가
              때로는 하늘로 열리는 오솔길이 되는
              굳이 말하지 않고 바라보아도
              슬픔이 되었다가 기쁨이 되었다가
              상처를 감싸는 가슴도 되는
              여기 아주 따뜻한 꽃밭 하나 있었어요
              꽃밭 속에 노래 같은 사람이 있었어요
              바람만으로도 배를 채우시던 어머니
              햇빛만으로도 힘을 키우시던 아버지
              그가 피워냈을까
              지금은 없는, 아니 없을 수 없는
              마음의 꽃밭가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

              (게시기간 : 2000.3.12.∼3.18.)



              154   그리운 바다 성산포 (12. 술에 취한 바다)   이생진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게시기간 : 2000.3.5.∼3.11.)



              153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게시기간 : 2000년 2월27일∼3월4일)



              152      장수명

              산을 오른다.
              산이 좋아서 그저 오를 뿐
              꼭 정상을 정복하겠다는 목적은 처음부터 없다.
              커다란 숲속에서 자기만의 이름을 달고 있는
              나무들 그들과의 만남이 더 없이 소중하다.
              땅 속에 두발을 묻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풀뿌리들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 두며 걷다보면
              산중턱에서도 우리들 세상살이의 모습이
              훤히 보이고 겨울을 지내느라 물기없이
              푸석해진 바위들의 속사정에 눈시울이 뜨겁다.
              새순이 트려고 준비하는 소리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가 않다.
              이런 저런 소심함에 산 꼭대기는 언제나 멀다.

              (게시기간 : 2000년 2월20일∼2월26일)



              151   길 안의 사랑   강영환

              꽃 피고 바람 부는 봄이 오면
              그대 외로움을 느끼리라

              햇살은 푸른 나무잎 사이로 반짝이고
              새들이 작은 날개짓으로 속삭입니다
              지금은 그대 웃으면서 돌아서 갈지라도
              잎 지는 가을이면
              이 겨울이 다 가고 나면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달빛이 흔들리고
              얼어붙은 바람소리 창가에 기울 때

              내 손짓을 느끼리라
              눈물 고인 눈짓을 느끼리라

              (게시기간 : 2000년 2월13일∼2월19일)



              150   홀로 사랑   이남교

              네가 외로움일 때 나는
              네 방안을 밝히는
              한 점 붙박이 등이 되리라.

              네가 그리움일 때 나는
              잠든 고단한 이마를 쓸어주는
              부드러운 서풍이 되리라.

              네가 괴로워 할 땐
              한잔의 술로 녹아들고

              네가 서러워 할 땐
              긴 밤 부둥켜 안고 울어주리라.

              어느 날 네 모든 시련이 끝나고
              이윽고 행복한 날이 오면
              나는 네 곁에 파수꾼처럼 서리라.

              (게시기간 : 2000년 2월6일∼2월12일)



              149   바다가 하는 말이   김오민

              내가 바다에게 말했다
              거기 있어 달라고
              바다가 내게 대답했다
              더는 있어 줄 수 없다고
              나는 다시 바다에게 말했다
              하는 수 없지 갈 테면 가려무나
              그러자 바다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금만 더 있어 주겠다 한다
              내가 애절하게 매달렸으면
              아마도 선연히 가 버렸을 테지만
              갈 테면 가라고 반쯤은 포기하고
              반쯤은 허세를 부렸더니
              바다 역시 반쯤은 당황하고
              반쯤은 인심쓰듯 있어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주 낮게 소곤거렸다
              세상 모든 이치들이 그런거야
              갈 테면 가라고 털어 주면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안타깝게 잡으려 하면
              뻐기면서 돌아서 버리고 말아
              그러니 잡으려 하지 말고 잡혀 줘
              바로 그게 야무지게 살아가는 방법이야
              그 중에서도 가장 모양새 좋은 것은
              잡힌 듯 잡고 있어야 하는 거야

              세상 모든 것들을.

              (게시기간 : 2000년 1월30일∼2월5일)



              148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김경자

              사랑할 때는, 그대
              이렇게 말하리
              "반달은 반달이어서
              아름답다고
              보름달처럼 그리
              튀지 않아서, 꽉 차지 않아서
              정녕 아름답다고"

              미워할 때는, 그대
              이렇게 말하리
              "반달은 반달이어서
              아름답지 않다고
              보름달처럼 그리
              꽉차지 않아서, 튀지 않아서
              정녕 아름답지 않다고"

              (게시기간 : 2000년 1월23일∼1월29일)



              147   겨울나무   이원수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언덕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따라 휘바람만 불고 있는냐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바람만 불고 있느냐

              (게시기간 : 2000년 1월16일∼1월22일)



              146   꽃이 되고싶다   신경인

              봄이 오면
              산과 들을 물들이는
              진달래 개나리보다

              여름이면
              불꽃처럼 타오르는
              장미 달리아보다

              가을이면
              슬픈 눈빛을 하는
              구절초 쑥부쟁이보다

              겨울이 오면
              설악산 대청봉
              그 높은 봉우리
              소나무에 걸린
              눈부신 눈꽃이
              되고 싶다

              한순간 피었다가
              소리없이 스러지는
              은빛 눈꽃이 되고 싶다.

              (게시기간 : 2000년 1월9일∼1월15일)



              145   새 날의 기원   김해강

              새해라, 첫 아침
              동녘 한울엔 붉은 햇살이 뻗혀오르나이다
              무릎꿇고 정성을 구을려 비옵는 마음 한껏 떨리옵니다
              이 땅 겨레의 가슴에도
              이 땅 겨레의 가슴에도
              새로운 붉은 해가 돋아오르사이다
              새로운 힘이 뛰고, 새로운 기쁨이 피어날
              가장 경건한 아침이 열려지이다

              해마다 첫새벽이 오면 비옵는 마음
              이해라 다름이 잇사오리까마는
              팔 짚고 정성을 구을려 비옵는 마음 더욱 두근거리옵니다.
              주먹을 놓고 맹서하오니
              주먹을 놓고 맹서하오니
              적은 일이옵든 큰일이옵든
              하고 많은 가운데 한 가지일지라도
              이 해에만은 뜻대로 일우어짐이 있어주소서

              새해를 맞이하옵는 마음
              가슴이라도 베여 정성을 다하고 싶으옵거든
              어깨라도 끊어 정성을 다하고 싶으옵거든
              오오 새 날이여!
              이 땅에 열리소서. 힘차게 열리소서.
              이 땅에 빛나소서. 아름다이 빛나소서.

              (게시기간 : 2000년 1월 2일∼1월 8일)


3-04. 화장실에서 읽는 시 2000 년   끝.       메인메뉴로  이동  화장실에서 읽는 시 메인 메뉴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