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1. 별 - 프로방스의 양치기 이야기
 

별 - 프로방스의 양치기 이야기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 프랑스) 

뤼브롱 산 위에서 양을 지키고 있을 무렵, 나는 사람 그림자 하나 구경 못하고 몇 주일을 목장에서 혼자, 개 라브리와 함께 지냈다. 가끔 몽 드뤼르 산의 은자 (隱者)가 약초를 구하러 이곳을 지나는 모습을 보거나 고작 삐에몽의 숯 굽는 사람들의 새까만 얼굴을 볼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고독에 젖어 말이없고, 소박한 사람들이라 이야기하는 흥미를 잃어버려 아랫마을이나 읍내에서 떠돌고 있는 소문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보름마다 15일분의 식량을 가지고 올라오는 우리 농장의 노새 방울소리가 비탈진 산길에 들릴 때나, 또 꼬마 미아로 (농장의 아이머슴)의 쾌활한 얼굴이나 노라드 아주머니의 밤색 두건이 언덕 아래에서 조금씩 나타날 때면 나는 정말 행 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랫마을의 소식, 누가 영세를 받았다든가 결혼을 했다는 이야 기를 얻어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우리 주인집 딸, 백리 사방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스떼파네뜨 아씨가 어떻게 지내 고 있는가를 듣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척하면 서 그녀가 축제에 자주 가는가 어떤가, 야외에도 많이 나가는가 어떤가를 물어 보았다. 또 여전히 새로운 멋쟁이 남자들이 찾아오는지 어떤지도.산 속의 불쌍한 양치기인 내게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대답하 겠다. 그때 내 나이 스물이었고 스떼파네뜨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 보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그런데, 반달 치의 식량이 오길 기다리던 어느 일요일 날, 식량이 매우 늦게서야 도착한 적이 있었다. 아침나절에는 "대(大)미사 때문이겠지"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오경, 심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나는 길이 나빠져서 노새가 출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3시경이 되어, 하늘은 개이고 산이 햇빛과 물기로 빛날 때, 나는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불어난 계곡 여울물이 넘치는 소리 틈에 노새의 방울 소리를 들었다. 부활제 날 울리는 커다란 악종 (樂鍾) 소리만큼 빠르고 명랑한 방울 소리였다. 그러나 노새를 끌고 온 것은 노라드 할멈도 아니고 꼬마 미아로도 아니었다. 그건..... 누군지 알아맞추어 봐! 우리 아가씨야. 다른 사람 아닌 아가씨 자신이었어. 버들 광주리들새에 꼿꼿이 몸을 세우고 앉은 그녀는 산바람과 소나기가 걷힌뒤의 시원한 대기로 뺨이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머슴아이는 앓아 누웠고 노라드 아주머니는 휴가를 얻어 자식 집에 가 있었다. 아름다운 스떼파네뜨가 노새에서 내리면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오는 도중 길을 잃었기 때문에 늦게 도착했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그러나 꽃 모양의 리본, 눈부신 스커트, 레이스 따위를 단 그녀의 화려한 옷차림 을 보면, 숲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였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어느 무도회에서 춤 이라도 추느라고 늦은 모습이었다. 오 귀여운 사람! 내 눈은 그녀를 쳐다보기에 지칠 줄 몰랐다. 정말이지 나는 이렇게 가까이서 그녀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겨울이 되어 양떼가 평지에 내려왔을 때 내가 저녁을 먹으러 농장에 들어가면 그 녀는 하인들에게 말을 건네는 법이 없이, 항상 화려한 옷차림에 약간 으스대면서 활발하게 홀을 지나가는 일은 가끔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아씨가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오직 나를 위해서. 어찌 내가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광주리에서 먹을 것을 다 끄집어낸 스떼파네뜨는 주위를 신기한 듯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곧잘 망가질 것만 같은 나들이 옷의 고운 치맛자락을 약간 쳐들고 양 우리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가자는 곳이며 양가죽을 깐 짚을 넣은 침대며 벽에 걸 어 둔 커다란 나의 비옷이며 지팡이, 돌총 따위를 보고 싶어했다. 모든 것이 그녀를 즐겁게 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당신이 사는 곳이군요? 가엾어라. 언제나 혼자서 지내니 얼마 나 지루하겠어요. 무얼 하지요? 무얼 그렇게 생각하지요?" (아가씨, 당신을) 하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했더라도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슴이 너무나 두근거려 단 한 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아차린 듯했다.그러기에 심술궂은 아가씨는 장난으로 나를 골려 주고 좋아라 한 것이다. 내게 말을 건네는 그녀 자신은 선녀 에쓰떼렐와 아주 흡사했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명랑하게 웃는 품이라든가 유령처럼 왔다가는 서둘러 사라지 는 품이 그랬다. "안녕." "안녕히 가세요, 아가씨." 그리하여 그녀는 빈 광주리를 가지고 떠났다. 그녀가 비탈진 길로 사라졌을 때, 노새 발굽에 채여 구르는 조약돌이 하나씩 하 나씩 나의 가슴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듣고 있었다. 해질 무렵까지 나는 졸 듯이, 행여 꿈이 사라질까 두려워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 에 있었다. 거의 저녁 무렵, 계곡 바닥이 파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양들이 서로 밀치고 메에 메에 울면서 우리 속으로 들어갈 때 나는 비탈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아가씨가, 조금 전과 같은 웃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추위와 물에 젖어 두려움에 떨면서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아마 산 아래에서 소나기로 물이 불어난 소르그 강에 이르렀을 때 무리하게 건 너려다가 빠져 죽을 뻔한 모양이었다. 밤이 되려는 이 시간에 농장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아가씨 혼자서는 지름길을 찾는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했으며, 그렇다고 내가 양떼를 떠날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산 위에서 밤을 세운다는 생각이 그녀를 몹시 괴롭혔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가족들이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안심시켰다. "7월은 밤이 짧습니다. 아가씨.... 그저 잠깐만 참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나는 소르그 강물에 흠뻑 젖은 그녀의 옷과 발을 말리기 위해서 급히 불 을 지폈다. 그런 다음 우유와 치이즈를 그녀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가엾게도 아가씨는 불을 쪼일 생각도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에 괸 흥건한 눈물을 보니, 그만 나도 따라 울고 싶어졌다. 그러는 동안 곧 밤이 되었다. 여기저기 산봉우리에 마지막 비낀 햇살과 서쪽에 안개 같은 빛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가씨를 우리 안에 들어가 쉬도록 했다. 새 짚 위에 고운 새 모피를 깔면서 그녀가 편히 쉬기를 염원했다. 나는 문 앞에 나와 앉았다.... 갑자기 양 우리의 창살문이 열리면서 아름다운 스떼파네뜨가 나타났다. 그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양들이 부스럭거리며 짚 소리를 내는가 하면, 잠결에 마구 울어대는 것이었다. 그래 차라리 불 곁으로 나오는 것이 훨씬 더 좋았던가 보다. 그녀가 하는 양을 본 나는 그녀의 어깨 위에 내 염소 모피를 씌워 주고 불을 더 지펴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만일 여러분들이 아름다운 별들이 반짝이는 밤을 새워 본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 다면, 우리들이 잠들고 있는 그 시각에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고요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때는 샘물도 한층 더 맑게 노래하며 연못은 작은 불꽃을 켠다. 산의 모든 정령이 자유로이 오고 가며, 공중에는 무엇이 스치는 소리, 들리지도 않는 작은 음향들이 마치 나뭇가지가 굵어지고 풀잎이 자라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낮은 샘물의 세계요, 밤은 무생물의 세계다. 사람들이 여기에 익숙지 못할 때는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아가씨 역시 몹시 겁을 먹고 떨었으며 아주 작은 소리에도 놀라 내게 바싹 몸을 붙이는 것이었다. 한 번은 저 아래 쪽에서 반짝이고 있는 호수로부터 길고 구슬픈 비명이 우리들을 향해 물결치며 올라왔다. 바로 그때 한 아름다운 유성(流星)이 우리들의 머리 위를 지나 같은 방향으로 흘 러갔다. 마치 우리들이 지금 막 들은 구슬픈 울음소리가 그 빛을 이끌고 가는 것처럼. "저게 뭐지요?" 스떼파네뜨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저건요,천국으로 들어가는 한 넋이랍니다.아씨" 하고 나는 십자 성호를 그었다. 그녀도 그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어 내게 말했다. "그러면, 양치기 당신네들이 마법사라는 것은 사실인가요?" "아뇨, 아씨. 그렇지만 여기 있는 우리들은 별에 더 가까이 살고 있으니까, 평 지에 있는 사람들보다 별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잘 알고 있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양가죽에 감싸여 있는 모습이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귀여운 목동 같았다. "많기도 해라! 얼마나 아름다워! 저렇게 많은 별을 보기는 처음이야.... 저 별들 의 이름을 아세요?" "그럼요, 아씨.... 자 보세요! 우리 머리 바로 위에 있는 저건 (성 야곱의 길 : 은하수)이지요. 그건 프랑스에서 곧 바로 스페인으로 뻗었죠. 용감한 샤르마뉴대제가 사라센을 쳤을 때 저 것을 만들어 그에게 길을 가르쳐준 것이 갈리스의 성 야곱이었대요. 좀더 멀리있는 저것이 (영혼의 수레: 대웅좌) 랍니다. 네 개의 바퀴가 반짝이고 있지요. 그 앞에서 가는 세 개의 별은 (세 마리의 짐승)인데 그 세 번째 별과 마주 대하 고 있는 아주 작은 저 별은 (짐수레꾼)이라는 겁니다. 그 주위에 비오듯이 흩어져 있는 별들이 보이지요? 저것은 하나님이 그의 나라에 두기를 원치 않는 영혼들이랍니다.... 그 조금 더 아래, 저것이 (갈퀴) 혹은 (3인의 왕 : 오리온좌)이지요. 우리 목자들에게 시계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저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지금 자정이 조금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그것보다 조금 아래, 항상 남쪽에서 반짝이고 있는 게(장 드 밀랑), 바로 별들의 횃불(시리우스)이지요. 이 별에 대하여 양치기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즉 어느 날 밤 (장 드 밀랑)이, (3인의 왕)과 (닭장:북극성)과 같이 그들의 친구 별의 결혼식에 초대되었더랍니다. (닭장)은 몹시 서둘러서 제일 먼저 길을 떠나 자리를 높직이 잡았답니다. 저것 보세요, 저 높은 곳, 하늘의 한복판이지요. (3인의 왕)은 훨씬 낮은 곳을 질러서 닭장을 따라갔다나요.그러나 이 게으름뱅이 (장 드 밀랑)은 늦게까지 자고 있다가 완전히 뒤쳐져 버렸대요. 화가 난 그는 두 친구를 멈추어 서게 하려고 들고 있던 지팡이를 던졌다는 군요. 그래서 (3인의 왕)을 또한 (장 드 밀랑의 지팡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아씨, 모든 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은 역시 우리들의 별, (양치기의 별 : 금성)이에요. 새벽녘 우리들이 양떼를 밖으로 몰아낼 때 우리를 비쳐 주며 저녁이 되어 그들을 몰아 넣을 때도 역시 비쳐 주지요. 우리들은 이것을 (마글론느)라고도 부릅니다. 아름다운 마글론는(삐에르 드 프로 방스 : 토성)의 뒤를 쫓아, 7년만에 한 번씩 그와 결혼한대요." "어머나! 그럼 별들에게도 결혼이란 게 있나요?" "그러믄요, 아씨." 그래서 내가 그 결혼이란 게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려고 할 때, 나는 무엇인가 부드럽고 연한 것이 내 어깨 위에 가볍게 얹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리본과 레이스,그리고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스치면서 내게 기대어 오는, 잠들어 축 늘어진 그녀의 머리였다. 그녀는 하늘의 별들이 솟아오르는 아침 빛으로 지워져 흐려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나는 가슴속이 약간 두근거렸지만,내게 아름다운 생각만을 보내준 이 맑은 밤에 의해 성스럽게 보호를 받아 고이 잠들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별들 중 하나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잠들고 있다고 몇 번이나 생각해 보는 것이 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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