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3. 어린 왕자 09-20
 

     - 어린 왕자  -      생텍쥐베리 


09 나는 어린 왕자가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하여 별을 떠나왔으리라 생각한다. 떠나는날 아침 그는 그의 별을 잘 정돈해 놓았다. 불을 뿜는 화산들은 정성스레 쑤셔서 청소했다. 그에게는 불을 뿜는 화산이 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침밥을 데우는 데 아주 편리했다. 불이 꺼져 있는 화산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는 그래서 불 꺼진 화산도 잘 쑤셔 놓았다. 화산들은 잘 청소되어 있을 때 는 부드럽게, 규칙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타오른다. 화산의 폭발은 벽난로의 불 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우리 지구 위에서는 우리들의 화산을 쑤시기에는 우리가 너무 작다. 그래서 화산이 우리에게 숱한 곤란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좀 서글픈 심정으로 바오밥나무의 마지막 싹들도 뽑아 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숙한 그 모든 일들이 그날 아침에는 유난히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꽃에 마지막으로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워 주려는 순간 그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잘 있어." 그는 꽃에게 말했다. 그러나 꽃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 있어." 그가 되뇌었다. 꽃은 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감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용서해 줘. 행복해지도록 노력하길 바래." 이윽고 꽃이 말했다. 비난조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된 게 어린 왕자는 놀라웠다. 그는 유리덮개를 손에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꽃의 그 조용한 다정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난 너를 좋아해. 넌 그걸 전혀 몰랐지. 내 잘못이었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었어. 부디 행복해...... 유리덮개는 내버 려둬. 그런 건 이제 필요없어." "하지만 바람이 불면......" "내 감기가 그리 대단한 건 아냐...... 밤의 서늘한 공기는 내게 유익할 거야. 나는 꽃이니까." "하지만 짐승이......" "나비를 알고 싶으면 두세 마리의 쐐기벌레는 견뎌야지. 나비는 무척 아름다운 모양이니까. 나비가 아니라면 누가 나를 찾아주겠어? 너는 멀리에 가 있겠지. 커다란 짐승들은 두렵지 않아. 손톱이 있으니까." 그러면서 꽃은 천진난만하게 네 개의 가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지 마. 신경질나. 떠나기로 결심했으니 어서 가." 꽃은 울고 있는 자기 모습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토록 자존심 강한 꽃이었다...... 10 그는 소혹성 325호, 326호, 327호, 328호, 329호, 330호와 이웃해 있었다. 그래서 일거리도 구하고 견문도 넓힐 생각으로 그 별들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첫번째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그 왕은 홍포(紅布)와 흰 담비 모피로 된 옷을 입고 매우 검소하면서도 위엄 있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아! 신하가 한 명 왔구나!" 어린 왕자가 오는 것을 보자 왕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를 알아볼까?) 왕에게는 세상이 아주 간단하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신하인 것이다. "너를 좀더 잘 볼 수 있게 가까이 다가오라." 어떤 사람의 왕 노릇을 하게 된 것이 무척 자랑스러워진 왕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앉을 자리를 찾았으나 그 별은 흰 담비 모피의 그 호화스러운 망 토로 온통 다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 있었다. 그리고 피곤했으므로 하품을 했다. "왕의 면전에서 하품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니라. 하품을 금지하노라." 임금님이 말했다. "하품을 참을 수가 없어요. 긴 여행을 해서 잠을 자지 못했거든요......" 어리둥절해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네게 명하노니 하품을 하도록 하라. 하품하는 걸 본 지도 여러 해가 되었구나. 하품하는 모습은 짐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니라. 자! 또 하품을 하라. 명령이니라." 왕이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겁이 나서...... 하품이 나오지 않는군요......" 얼굴을 붉히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흠! 어흠! 그렇다면 짐이...... 짐이 명하노니 어떤 때는 하품을 하고 또 어떤 때는......" 하고 왕이 대답했다. 그는 뭐라고 중얼중얼했다. 화가 난 기색이었다. 왜냐하면 그 왕은 자신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무엇보다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불복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전제 군주였다. 하지만 매우 선량했으므로 사리에 맞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만약에 짐이 어떤 장군더러 물새로 변하라고 명령했는데 장군이 이 명령에 따 르지 않았다면 그건 장군의 잘못이 아니니라. 그건 짐의 잘못이니라" 라고 그는 평상시에 늘 말하곤 했다. "앉아도 좋을까요?" 어린 왕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네게 앉기를 명하노라." 흰 담비 모피로 된 망토 한 자락을 위엄있게 걷어올 리며 왕이 대답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의아해 하고 있었다. 별은 아주 조그마했다. 왕은 무엇을 다스린담? "폐하, 한 가지 여쭈어 봐도 좋을까요......" "네게 명하노니. 질문을 하라." "폐하...... 폐하는 무엇을 다스리고 계신지요."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퍽이나 간단히 왕이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왕은 신중한 몸짓으로 그의 별과 다른 별들과 떠돌이별들을 가리켰다. "그 모든 것을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왕이 대답했다. 그는 절대 군주였을 뿐 아니라 온 우주의 군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 별들도 폐하에게 복종하나요?" "물론이니라. 즉각 복종하노라. 규율을 어기는 것을 짐은 용서치 아니하느니라." 왕이 말했다. 그러한 굉장한 권력에 어린 왕자는 경탄했다. 그도 그런 권능을 가질 수 있다면 의자를 뒤로 물려 놓지 않고도 하루에 마흔 네 번 아니라, 일흔 두 번, 아니 백 번 이백 번 해지는 것을 볼 수 있을게 아닌 가! 그래서 버리고 온 그의 작은 별에 대한 추억 때문에 조금 슬퍼진 어린 왕자는 용기를 내어 왕에게 청을 드려 보았다. "저는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요...... 해에게 지도록 명령해 주십시오......" "짐이 어떤 장군에게 나비처럼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닐 것을 명령하거나 비극 작품을 한 편 쓰라고 명령하거나 혹은 물새로 변하도록 명령했는데 그 장군 이 그 명령을 받고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가 잘못일까, 짐이 잘못일까?" "폐하의 잘못이시죠." 어린 왕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옳으니라. 누구에게든 그가 이행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해야 하는 법이니라. 권위는 무엇보다도 사리에 두어야 하느니라. 만일 내가 너의 백성에게 바다에 몸을 던지라고 명령한다면 그들은 혁명을 일 으킬 것이니라. 내가 복종을 요구할 권한을 갖는 것은 나의 명령들이 이치에 맞 는 까닭이다." 왕이 말을 계속했다. "그럼 제가 해지는 것을 보게 해 주십사 한 것은요?" 한번한 질문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어린 왕자가 일깨웠다. "해가 지는 것을 네게 보게 해주겠노라. 짐이 요구하겠노라. 하지만 내 통치 기술에 따라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리겠노라." "언제 그렇게 되나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에헴, 에헴! 오늘 저녁...... 오늘 저녁...... 일곱 시 사십 분이니라! 짐의 명령이 얼마나 잘 이행되는지 너는 보게 될 것이다." 왕이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하품을 했다. 해지는 것을 못 보게 된 것이 섭섭했다. 그리고 벌써 조금 심심해졌다. "이제 저는 여기서 할 일이 없군요. 다시 떠나가 보겠습니다.!" "떠나지 말라. 떠나지 말라. 너를 대신으로 삼겠노라!" 신하가 한 사람 있게 된 것이 몹시 자랑스러운 왕이 대답했다. "무슨 대신이요?" "저...... 사법대신이니라!" "하지만 재판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그건 모를 노릇이지. 짐은 아직 짐의 왕국을 순시해 보지 않았느니라. 짐은 매우 연로한데, 사륜마차를 둘 자리도 없고, 걸어다니자니 피곤해지거든." 왕이 말했다. "아! 제가 벌써 다 보았어요." 허리를 굽혀 별의 저쪽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저쪽에도 아무도 없는데요......" "그럼 네 자신을 심판하거라.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법이 거든. 네가 너 스스로를 훌륭히 심판할 수 있다면 그건 네가 참으로 지혜로운 사 람인 까닭이니라." 왕이 대답했다. "저는 어디서든 저를 심판할 수 있어요. 여기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에헴! 에헴! 내 별 어딘가에 늙은 쥐 한 마리가 있는 줄로 알고 있다. 밤이면 소리가 들리느니라. 그 늙은 쥐를 심판하거라. 때때로 그를 사형에 처하거라. 그러면 그의 생명이 너의 심판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매번 그에게 특사를 내려 그를 아끼도록 하라. 단 한 마리밖에 없는 까닭이니라." 왕이 대답했다. "저는 사형선고를 내리는 건 싫습니다. 아무래도 가야겠습니다."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가지 마라." 왕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떠날 채비를 끝마쳤으나 늙은 임금을 섭섭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폐하의 명령이 준수되길 원하신다면 제게 이치에 맞는 명령을 내려 주시면 되 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일 분 내로 떠나도록 제게 명령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지금 조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왕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므로, 어린 왕자는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한번 내쉬 고는 길을 떠났다. "너를 내 대사(大使)로 명하노라." 왕이 황급히 외쳤다. 그는 매우 위엄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군)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하면서 속으로 중얼 거렸다.

 
  
  
  11
  
  두 번째 별은 허영심에 빠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 아! 저기 나를 찬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군!" 어린 왕자를 보자마자 허영
심 많은 사람이 멀리서부터 외쳤다.
  허영심 많은 사람들에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찬양해 주는 사람들인 것
이다.
  "안녕하세요. 야릇한 모자를 쓰고 계시군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답례하기 위해서지. 나에게 사람들이 환호를 보낼 때 답례하기 위해서지.
그런데 불행히도 이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허영심 많은 사람이 대답했다.
  "아 그래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어린 왕자가 말했다.
  "두 손을 마주 두드려요." 허영심 많은 사람이 가르쳐 주었다.
  어린 왕자는 두 손을 마주 두드렸다.   
  허영심 많은 사람은 모자를 들어올리며 점잖게 답례했다.
  "왕을 방문할 때보다 더 재미있군." 어린 왕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는 다시 두 손을 마주 두드렸다. 
  허영심 많은 사람이 모자를 들어올리며 다시 답례를 했다.
  오 분쯤 되풀이하고 나니 어린 왕자는 그 장난이 재미없어졌다.
  "모자가 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그가 물었다.
  그러나 허영심 많은 사람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허영심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로지 찬양의 말만이 들리는 법이다.
  "너는 정말로 나를 찬양하지?" 그가 어린 왕자에게 물었다.
  "찬양한다는 게 뭐지?"
  "찬양한다는 건 내가 이 별에서 가장  미남이고 가장 옷을 잘 입고  가장 부자
고 가장 똑똑하다고 인정해 주는 거지."
  "하지만 이 별엔 아저씨 혼자밖에 없잖아!"
  "나를 기쁘게 해줘. 그래도 나를 찬양해 줘."
  "아저씨를 찬양해 그런데 그게 아저씨에게 무슨 상관이 있지?"
  어깨를 조금 들썩하면서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 별을 떠났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군)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12
  
  그 다음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그 방문은 매우 짧았지만 어린 왕자를 깊은 우울에 빠뜨렸다.
  "뭘 하고 있어요?"  빈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차 있는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그가 말했다.
  "술을 마시지." 침울한 표정으로 술꾼이 대꾸했다.
  "왜 술을 마셔요?" 어린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
  "잊기 위해서지."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기 위해서예요?" 측은한 생각이 든 어린 왕자가 물었다.
  "부끄럽다는 걸 잊기 위해서지." 머리를 숙이며 술꾼이 대답했다.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그를 돕고 싶은 어린 왕자가 캐물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이렇게 말하고 술꾼은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난처해진 어린 왕자는 길을 떠나 버렸다.
  (어른들은 정말 참 이상하군)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혼자 속으로 중
얼거렸다.
  
  
 13
  
  네 번째 별은 실업가의 별이었다. 
  그 사람은 어찌나 바쁜지 어린 왕자가 도착했을 때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담뱃불이 꺼졌군요." 그가 말했다.
  "셋에다 둘을 더하면 다섯, 다섯하고 일곱을 더하면 열 둘, 열 둘에 셋을 더하
면 열 다섯. 안녕. 열 다섯에 일곱을 더하면  스물 둘, 스물 둘에 여섯을 더하면
스물 여덟. 다시 담뱃불 붙일 시간이 없어. 스물 여섯에 다섯을  더하면 서른 하
나라. 휴우! 그러니까 5억 1백 6십 2만 2천 7백 3십 1이 되는구나."
  "무엇이 5억이야?"
  "응? 너 아직도 거기 있니?
   저......  5억 1백만...... 생각이 안 나는구나......  너무 바빠서. 
  나는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허튼  소리 할 시간이 없어!
   둘에다 다섯을  더하면 일곱......"
  "무엇이 5억이야?" 한번 한 질문을 포기해 본 적이 평생  없는 어린 왕자가 다
시 물었다.
  실업가가 머리를 들었다.
  "이 별에서 54년 동안 살고 있는데 내가 방해를 받은 적은 딱 세 번 뿐이야. 
  첫번째는 22년 전이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를 웬 풍뎅이가 날 방해했어. 
  그게 요란한 소리를 내서 계산이 네 군데나 틀렸었지.  두 번째는 11년 전이었
는데. 신경통 때문이었어. 난 운동 부족이거든. 산보할 시간이  없으니까. 
  난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래. 세  번째는...... 바로 지금이야! 
  가만 있자. 5억 1백만이었겠다......"
  "무엇이 5얼 1백만이라는 거지요?"
  실업가는 조용히 일하기는 글렀다는 걸 깨달았다.
  "때때로 하늘에 보이는 그 작은 것들 말이다."
  "파리?"
  "천만에. 반짝거리는 작은 것들 말이다."
  "꿀벌?"
  "천만에. 게으름뱅이들을 멍청이 공상에 잠기게 만드는 금빛나는 작은 것들 말
이다. 헌데 난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거든! 공상에 잠길 시간이 없어."
  "아! 별 말이군?"
  "맞았어 별이야."
  "5억의 별들을 가지고 뭘 하는 거지?"
  "5억 1백 6십 2만 2천 7백 3십 1개야.   나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정확한 사람이지."
  "그 별들 가지고 뭘 하는 거야?"
  "뭘 하느냐고?"
  "그래."
  "아무것도 하는 것 없어.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지."
  "별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그래."
  "하지만 내가 전에 본 어떤 왕은......"
  "왕은 소유하지 않아. 그들은 다스리지. 그건 아주 다른 얘기야."
  "그럼 그 별들을 소유하는 게 아저씨에게 무슨 송용이 돼?"
  "부자가 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
  "다른 별들이 발견되면 그걸 사는 데 소용되지."
  (이 사람도 그 술꾼처럼 말하고 있군)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질문을 계속했다.
  "별들을 어떻게 소유한담?"
  "별들이 누구 거지?" 투덜대듯이 실업가가 되물었다.
  "모르겠는걸. 그 누구의 것도 아니겠지."
  "그러니까 내 것이지. 내가 제일 먼저 그 생각을 했으니까."
  "그러면 아저씨 것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임자 없는 다이아몬드는 그걸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되는 거지.
임자가 없는 섬을 네가 발견하면 그건 네 소유가 되는 거고.  네가 어떤 좋은 생
각을 제일 먼저 해냈으면 특허를 맡아야 해.  그럼 그것이 네 소유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별들을 소유하고 있는거야.
  나보다 먼저 그것들을 소유할 생각을 한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그건 사실이지. 아저씨는 별들을 가지고 뭘 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들을 관리하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하지. 그건 힘드는 일이야. 하지만 
나는 진지한 사람이거든!"
  어린 왕자는 그래도 흡족해 하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머플러는 소유하고 있을  때는 그것을 목에 두르고 다닐  수가
있어. 또 꽃을 소유하고 있을 때는 그 꽃을 꺾어 가지고 다닐 수가 있고,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을 꺾을 수가 없잖아!"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그것들을 은행에 맡길 수 있지."
  "그게 무슨 말이야."
  "조그만 종이조각에다 내 별들의 숫자를 적어 그것을 서랍에 넣고 잠근단 말이
야."
  "그리고 그뿐이야?"
  "그뿐이지."
  (그것 재미있는데.아주 시적(詩的)이고, 하지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군)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어린 왕자는 중요한 일에 대해서 어른들과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말이야, 꽃을 한 송이 소유하고 있는데 매일 물을  줘. 
  세 개의 화산도 소유하고 있어서 매주 그을음을 청소해 주고는 하지. 
  불이 꺼진 화산도 청소해 주니까 세 개란 말이야.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거든.
   내가 그들을 소유하는 건 내 화산들에게
나 내 꽃에게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유익하지 않잖아......"
  실업가는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할 말을 찾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어린 왕
자는 떠나 버렸다.
  (어른들은 정말 아주 이상야릇하군)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하면서 혼자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14
  
  다섯 번째 별은 무척 흥미로운 별이었다. 
  그것은 모든 별들 중에서 제일 작은 별들이었다. 
  가로등 하나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있을 자리밖에 없었다.
   하늘 한 구석, 집도 없고 사람들도 살지않는 별에서 가로등 켜는 사람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어린 왕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지도  몰라. 그래도 왕이나 허영심  많은 사람이나
실업가. 혹은 술꾼보다는 덜 어리석은 사람이지, 적어도 그가 하는 일은  하나의
의미가 있거든.   가로등을 켤 때는  별 한개를, 혹은 꽃 한 송이를 더 태어나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가로등을 끌 때면 그 꽃이나 그  별을 잠들게 하는거고.
그거  아주아름다운 직업이군. 아름다우니까 진실로 유익한 것이고)
  그 별에 다가가서 그는 가로등 켜는 사람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 아저씨. 왜 가로등을 지금 막 껐어?"
  "안녕, 그건 명령이야." 가로등 켜는 사람이 대답했다.
  "명령이 뭐야?"
  "내 가로등을 끄는 거지. 잘 자."
  그리고 그는 다시 불을 켰다.
  "왜 지금 막 가로등을 다시 켰어?"
  "명령이야." 가로등 켜는 사람이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어린 왕자가 말했다.
  "이해할 건 아무것도 없지.  명령은 명령이니까.  잘 자."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 가로등을 껐다.
  그리고 나서는 붉은 바둑판 무늬의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난 정말 고된 직업을 가졌어. 전에는 무리가 없었는데. 아침에  불을 끄고 저
녁이면 다시 켰었지. 그래서 나머지 낮시간에는 쉬고 나머지 밤시간에는 잠을 잘
수 있었거든....
.."
  "그럼, 그 후 명령이 바뀌었어?"
  "명령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그게 문제지! 이 별은 해가 갈수록 빨리 돌고 있는
데 명령은 바뀌지 않았단 말이야!"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별이 매 분마다 일회전을  하고 있으니까 일 초도 쉴  새가
없는 거야. 매분마다 한 번씩 껐다가 켰다가 해야하는 거지."
  "그거 찬 이상하네! 아저씨네 별에선 하루가 일분이라니!"
  "조금도 이상할 것 없지.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가 벌서 한달이 되어 
있단다."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한 달이?"
  "그래. 삼십 분이니까, 삼십 일이지! 잘 자."
  그리고는 그는 다시 가로등을 켰다.
  어린 왕자는 그를 바라보았다. 
  명령에 그토록 충실한 그 가로등 켜는 사람이 그는 좋아졌다. 
  의자를 뒤로 물리면서 해지는 걸 보고 싶어하던 지난 일이 생각났다.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저 말이야......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야 언제나 쉬고 싶지."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실하면서도 또 한편 게으름부리고 싶을수도 있는 법인 것이다.
  어린 왕자는 말을 계속했다.
  "아저씨 별은 아주 작으니까 세 발짝만 옮겨 놓으면 한 바퀴 돌 수 있잖아. 
언제나  햇빛 속에 있으려면 천천히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쉬고 싶을 때면 
걸어가도록 해...... 그럼 하구 해가 원하는 만큼 길어질 수 있을 거야."
  "그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겠는걸.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잠을 자는 거니까."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그거 유감인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유감이야. 잘 자." 가로등 점화하는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는 가로등을 껐다.
  (저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 왕이나 허영심 많은 사람이나  술꾼, 혹은 실업
가 같은 사람들에게 멸시받을 테지, 하지만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저
사람뿐이야. 그건 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일에 전념하기 때문일 거야)
  더 멀리로 여행을 계속하면서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그는 섭섭해서 한숨을 내쉬며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친구로 삼을 수 있었던 사람은 저 사람뿐이었는데,  그렇지만 그의 별은
너무 작아. 두 사람이 있을 자리가 없거든......)
  그가 그 축복받은 별을 잊지 못하는 것은, 스물 네 시간 동안에 1천 5백 4십번
이나 해가 지는 때문이었다는 것은 어린  왕자가 차마 스스로에게도 고백하지 못
하는 사실이었다.
  
  
  15
  
  여섯 번째 별은 열 배나 더 큰  별이었다. 
  그 별에는 무지하게 커다란 책을 쓰고  있는 늙은 신사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야! 탐험가가 하나 오는군!" 어린 왕자를 보며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린 왕자는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벌써 몹시도 긴 여행을 했던 것이다.
  "어디서 오는 거냐?" 그 노인이 물었다.
  "이 두꺼운 책은 뭐에요? 여기서 뭘 하시는 거지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난 지리학자란다." 노인이 말했다.
  "지리학자가 뭐에요?"
  "바다와 강과 도시와 산, 그리고 사막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지."
  "그거 참 재미있네요.  그거야말로 직업다운 직업이군요!" 어린 왕자는 말하고
지리학자의 별을 한 번 휘둘러보았다. 그처럼 멋진 별을 그는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 별은 참 아름답군요. 넓은 바다도 있나요?"
  "난 몰라."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그래요? (어린 왕자는 실망했다) 그럼 산은요?"
  "난 몰라." 지리학자가 말했다.
  "그럼 도시와 강과 사막은요?"
  "그것도 알 수 없다."지리학자가 말했다.
  "할아버진 지리학자 아녜요!"
  "그렇지. 하지만 난 탐험가가 아니거든. 내겐 탐험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단다.
도시와 강과 산, 바다와 태양과 사막을 세러 다니는건 지리학자의 하는일이 아냐.
지리학자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까 한가히 돌아다닐  수가 없지.   서재를 떠날  
수가 없어. 서재에서 탐험가들을 만나든 거지.  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여 
그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거야. 탐험가의 기억 중에 흥미로운 게 있으면 지리학자
는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조사시키지."
  "그건 왜요?"
  "탐험가가 거짓말을 하면 지리책에 커다란 이변이 일어나게 될 테니까. 탐험가
가 술을 너무 마셔도 그렇지."
  "그건 왜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왜냐하면 술에 잔득 취한 사람에겐 모든 게 둘로 보이거든. 그렇게 되면 지리
학자는 산 하나밖에 없는 데다 산 둘을 기입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그럼 나쁜 탐험가가 될 수 있겠군요?" 어린 왕자가 말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서 탐험가의 정신상태가 훌륭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의 
발견을 조사하지."
  "가보시나요?"
  "아니지. 그건 너무 번잡스러우니까.  그 대신  탐험가에게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거야.  예컨데 커다란 산을 발견했을 때는 커다란 돌멩이를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거지."
  지리학자는 갑자기 흥분했다.
  "그런데 너는 멀리서 왔지!  너는 탐험가야!  너의 별이 어떤 별인지 이야기해 
줘!"
  그러더니 지리학자는 노트를 펴고 연필을 깎았다. 탐험가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연필로 적었다가 그가 증거를 가져오기를 기다려서 잉크로 적는 것이었다.
  "자, 시작해 볼까?" 지리학자가 물었다.
  "아, 내 별은 별로 흥미로울 게 없어요.  아주 작거든요.  화산이 셋있어요. 
둘은 불이 있는 화산이고 하나는 불이 꺼진 화산이지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지요."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지리학자가 말했다.
  "제겐 꽃 한 송이도 있어요."
  "우린 꽃은 기록하지 않아." 지리학자가 말했다.
  "왜요? 그게 더 예쁜데요!"
  "꽃들은 일시적인 존재니까."
  "<일시적인 존재>가 뭐예요?"
  "지리책은 모든 책들 중 가장 귀중한 책이야. 지리책은 유행에 뒤지는 법이 없
지. 산이 위치를 바꾸는 일은 매우 드물거든.  바닷물의 물이 비어 버리는  일도
매우 드물고. 우리는 영원한 것들을 기록하는 거야."
  "하지만 불 꺼진 화산들이 다시 깨어날 수도 있어요.  <일시적인 존재>가 뭐예
요?"  어린 왕자가 말을 가로막았다.
  "화산이 꺼져 있든 깨어 있는 우리에게는 마찬가지야. 우리에게  중요한 건 산
이지. 산은 변하지 않거든."
  "그런데 <일시적인 존재>란 뭐예요?" 한번 한 질문은 평생 포기해 본 적이 없는
어린 왕자가 다시 되물었다.
  "그건 <머지 않은 장례에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는 뜻이지."
  "내 꽃은 머지 않은 장래에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해 있나요?"
  "물론이지."
  (내 꽃은 일시적 존재야.  세상에 대항할 무기라곤 네 개의 가시밖에 없고! 그
런데 나는 그 꽃을 내 별에 혼자 내버려두고 왔어!)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그것은 후회스러운 느낌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기를 냈다.
  "어디를 가보는 게 좋을까요?" 그가 물었다.
  "지구라는 별로 가봐. 대단히 이름높은 별이거든......"
  그리하여 어린 왕자는 그의 꽃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길을 떠났다.
  
  
  16
  
  일곱 번째 별은 그래서 지구였다.
  지구는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 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1백 11명의 왕(물론  흑인나라의 왕을 포함해서)과 7천 명의 지리학
자와 90만 명의 실업가. 7백 50만 명의 술주정뱅이,  3억 1천 1백만 명의 허영심 
많은 사람들, 즉 약 20억쯤 되는 어른들이 살고 있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여섯 대륙을 통틀어 4십 6만 2천 5백 11명이나 되는
가로등 점화하는 사람들을 두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지구가 얼마
나 큰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눈부시게 멋진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모습은 오페라의 발레에서처럼 질서정연한 것이었다. 
  맨 처음은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의 차례였다.
  가로등을  켜고 나면 그들은 잠을 자러 갔다.
  그러고 나면 중국과 시베리아의 가로등 점화하는 사람들이 발레 무대에 나타났
다. 그들 역시 무대뒤로 살짝 몸을 감추고 나면 러시아와 인도의 가로등 켜는 사
람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다음번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  또 그 다음에는 남 아
메리카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 또  그 다음에는 북 아메리카의 가로등 켜는 사람
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무대에 나타나는 순서를 틀리게 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무척 장엄한 광경이었다.
  오직 북극의 단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 켜는 사람과 북극에 있는 그의 동료들만
이 한가한고 태평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년에 두 번 일을 했다.
  
  
  17
  
  재치를 부리려다 보면 조금 거짓말을 하는 수가 있다.
  가로등 켜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한 이야기는 아주 정직한 것은 못된다. 
  지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지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
게 할 수도  있을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지구 위에서 차지하는 자리란 실은 아주
작은 것이다. 지구에서 사는 20억의 사람들이 어떤 모임에서처럼 서로 좀 바짝바
짝 붙어 서 잇는다면 세로 20마일 가로 20마일의 광장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태평양의 아주 작은 섬 위에 차곡차곡 쌓아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여러분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굉장히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오밥나무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들에게 계산을 해보라고 일러주어야 한다.
  그들은 숫자를 좋아하니까. 그럼 그들은 기분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문제를 푸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쓸데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내 말을 믿지 않는가.
  어린 왕자는  그래서 지구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사람이라곤 통 보이지  않는 
데 놀랐다.
  그가 잘못해서 다른 별로 찾아온 게 아닌가 겁이 나 있을 때,  달 같은 빛깔의 
고리가 모래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안녕." 어린 왕자가 무턱대고 말했다.
  "안녕." 뱀이 말했다.
  "지금 내가 도착한 별이 무슨 별이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지구야. 아프리카지." 뱀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지구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니?"
  "여긴 사막이야. 사막에는 아무도 없어. 지구는 커다랗거든."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돌 위에 앉아 눈길을 하늘로 향했다.
  "누구든 언제고 다시 자기 별을 찾아낼  수 있게 별들이 환히 불  밝혀져 있는
지 궁금해. 내 별을 바라봐. 바로 우리들 위에 있어...... 그런데 어쩌면 저렇게 
멀리 있지!"
  "아름답구나. 여기 무엇 하러 왔니?" 뱀이 말했다.
  "난 어떤 꽃하고의 사이에 골치아픈 일이 있단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뱀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잠자코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사막에선  조금 외롭구나......" 어린 왕자가  마침내 
다시 입을 떼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넌 아주 재미있게 생긴 짐승이구나.
  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그가 말했다.
  "그래도 난 왕의 손가락보다도 더 힘이 세단다."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미소를 지었다.
  "넌 힘이 세지 못해...... 발도 없고...... 여행도 할 수 없잖아......"
  "난 배보다 더 먼 곳으로 너를 데려다줄 수 있어." 뱀이 말했다.
  그는 어린 왕자의 발뒤꿈치에 팔찌처럼 몸을 휘감더니 말했다.
  "나를 건드리는 사람마다 그가 나왔던 땅으로 돌려보내주지. 하지만 너는 순진
하고 또 다른 별에서 왔으니까......"
  어린 왕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네가 측은해 보이는구나. 무척이나 연약한 몸으로 이 돌멩이 투성이의 지구에
 왔으니. 네 별이 몹시 그리울 때면 언제고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난......"
  "응! 아주 잘 알았어. 헌데 왜 그렇게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니?"
  "난 그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 뱀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18
  
  어린 왕자는 사막을 횡단했는데 오직 꽃 한 송이를 만났을 뿐이었다. 
  석장의 꽃잎을 가진 볼품이라곤 없는 꽃이었다.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꽃이 말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어린 왕자가 정중히 물었다.
  그 꽃은 언젠가 대상(隊商)의 무리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라구? 한 예닐곱 사람 있는 것 같아. 몇 해 전에  그들을 본 적이 있
어. 하지만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야.   그들은 바람결에 
불려다니거든, 뿌리가 없어서 몹시 곤란을 받고 있다."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꽃이 말했다.
  
  
  19
  
  어린 왕자는 한 높은 산 위로 올라갔다. 
  그가 아는 산이라곤 그의 무릎에 닿는세 개의 화산이 고작이었다. 
  불 꺼진 화산은 걸상으로 이용하곤 했었다. (이 산처럼 높은 산에서는 이 별과
사람들 모두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바늘 끝처럼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만 보일 뿐이었다.
  "안녕." 그가 혹시나 하고 말해 보았다.
  "안녕...... 안녕...... 안녕......" 메아리가 대답했다.
  "너는 누구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지......" 메아리가 대답했다.
  "내 친구가 되어 줘. 나는 외로와." 그가 말했다.
  "나는 외로와...... 나는 외로와...... 나는 외로와......" 메아리가 대답했다.
  (참 얄궂은 별이군! 메마르고 뾰족뾰족하고 험하고,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되풀이하니...... 나의 집에는 꽃 한 송이가 있었지,
그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20
  
  그리하여 어린 왕자는 모래와 바위와 눈 가운데를 오랫동안  걷고난 끝에 드디
어 길을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길들이란 모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통하는 법이다.
  "안녕." 그가 말했다.
  그것은 장미가 만발한 정원이었다.
  "안녕." 장미꽃들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그의 꽃과 쏙 빼닮은 것들이었다.
  "너희들은 누구니?" 깜짝 놀란 어린 왕자가 그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장미꽃들이야." 장미꽃들이 말했다.
  "아. 그래?"
  그러자 어린 왕자는 자신이 아주 불행하게 느껴졌다. 
  이 세상에 자기와 같은 꽃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그의 꽃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원 하나 가득히 그와 똑같은 꽃들이 5천 송이는 되는 게 아닌가!
  (내 꽃이 이걸 보면 몹시 상심할 거야)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기침을 지독히 해대면서 창피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죽으려는 시늉을
할  거야. 그럼 난 간호해 주는 척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러지 않으면  내게 죄
책감을 주려 정말로 죽어 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이렇게도 생각했다.(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을 가졌으니 부자
인 줄 알았는데 내가 가진 꽃은 그저 평범한 한 송이  꽃일 뿐이야. 그중 하나는
영영 불이 꺼져 버렸는지도 모를,  내 무릎까지 오는 세 개의 화산과 그 꽃으로 
내가 굉장히 위대한 왕자가 될 수는 없어......)
  그래서 그는 풀숲에 엎드려 울었다.

5-3-03. 어린 왕자 09-20     끝.       메인메뉴로 이동  재미있는 이야기 메인메뉴로 이동